제주4·3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던 시절, 이를 처음 세상에 알린 부분은 소설 <순이 삼촌>이란 문학작품이었다. 이후 이 땅의 수많은 예술가들은 누구보다 앞서 제주4·3의 진상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한편 미해결 과제에 대한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해 왔다. 제주4·3 70주년을 맞아 '제주4·3과 문화예술'이라는 제목으로 문화예술의 각 장르별 제주4·3 작품들을 소개하는 장을 마련한다. -기자말
6월 항쟁과 제주4·36월 항쟁 이후, 제주에서 제주청년문학회, 놀이패 한라산, 우리노래연구회, 그림패바람코지 등이 결성됐고, 연합체 성격으로 제주문화운동협의회(제문협)가 조직됐다. 이들과 시민사회단체가 '4월제공동준비위원회'를 구성, 1989년 '사월제'를 준비했지만, 당국의 방해로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강사로 나선 작가 현기영은 서울에서 경찰서에 유치되는 바람에 행사에 참여하지 못했다. 추모굿에 나설 예정이던 심방은 당국에 의해 연금으로 소재 파악이 어려웠고, 마당극에서 심방 역할을 했던 관객 정공철이 대신 나서는 상황을 겪기도 했다. 제주청년문학회의 4·3 시화전 전시작품들도 경찰에 압수됐다. 놀이패 한라산과 제주청년문학회에 대해 경찰이 뒤늦게 수사에 나서면서 참여 예술인들이 고초를 겪었다.
이후 1993년까지 '사월제'는 매년 열리며 4·3을 알렸다. 1988년 창립된 그림패 '바람코지'는 1989년 제주대 판화동아리 칼그림패 '거욱대'가 동참한 가운데 최초의 '4·3미술제'를 개최했고, 서울 그림마당 민에서 '4·3넋살림전' 순회전시를 갖기도 했다. 1990년 박경훈은 토민(土民)을 주제로 제주와 서울에서 목판화전을 갖고 제주 민중들의 삶을 소개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제주 지역 문화예술가들의 집합체인 제주민예총이 1994년 2월 창립됐다.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제주도지회로 출범한 제주민예총은 창립선언문에서 "반외세 자주통일의 꿈을 이루려 했던 4·3민중항쟁 정신을 예술 창작과 실천 속에서 보듬어 안아 역사의 연표 위에 자랑스럽게 기록되도록 할 것"이라 밝혔다.
4·3의 성격을 민중항쟁으로 규정하는 한편 이를 예술창작으로 확장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4월제를 계승, 첫 사업으로 '제주4·3예술제'를 진행하게 된다. '제주4·3예술제'는 이후 '4·3예술제', '4·3문화예술제'(2001~), '4·3문화예술축전'(2007~) 등의 이름을 거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강정효씨는 제주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집행위원장·제주 민예총 이사장입니다. 이 글은 제주4.3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에서 발행한 <4.370신문>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