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 최고의 목수들이 지은
아름드리 소나무 숲 사이 99칸
한 천 년은 살만 하건만...
-디카시 <보은 우당 고택에서>
지난 주말에는 오장환문학제가 열리는 보은에 다녀왔다. 더불어 보은의 우당 고택도 봤다. 속리산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이 큰 개울을 이루고 개울 중간에 돌과 흙이 모여 삼각주를 이뤘는데, 그곳에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고 그 중앙에 엄청나게 큰 기와집이 있으니 그곳이 바로 우당 고택이었다. 이웃의 영재들을 뽑아 사비를 들여 교육시킨 선각자의 집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개화기 때의 개량식 한옥의 구조로 학술적으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한다. 규모가 엄청 큰 우당 한옥을 보며 새삼 생의 덧없음을 느꼈다. 저렇게 큰 집을 지어 놓고 한 천 년은 살 법한데, 고작 100년도 못 살고 떠나는 것이 생이라니, 참으로 씁쓸하게 느껴졌다. 보은의 천재 시인으로 일컬어지는 오장환의 생은 더욱 비극적이다. 월북 시인으로 한 동안 한국에서는 묻혀 있었고, 지병으로 요절하지 않았던가.
제23회 오장환문학제는 오장환 시인 탄생 100주년 기념의 의미도 있어 더욱 뜻 깊은 행사로 치러졌는데, 오장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서 제정된 제1회 오장환 디카시신인문학상 시상식도 오장환 문학상, 오장환 신인문학상과 함께 열려 디카시로서는 또 하나의 새 지평을 여는 뜻 깊은 자리였다.
2017 제10회 경남 고성국제디카시페스티벌 행사의 일환으로 제3회 디카시작품상 시상식이 열린 바 있는데, 그때 보은의 송찬호 시인의 디카시 <비상>이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시상식에 송찬호 시인과 함께 온 한 기자가 오장환 디카시신인상을 제정하면 어떻겠는가 라는 제안을 했다.
하동의 이병주하동국제문학제 디카시공모전, 양평의 황순원문학제 디카시공모전 등이 있지만, 디카시신인상은 제정된 적이 없었던 터라 좋은 제안이라는 생각을 하고 즉석에서 의기투합하여 제1회 오장환 디카시신인문학상이 탄생한 것이다.
디카시는 아직 등단 제도는 없다. 디카시가 출범한 지 14년으로 이제 막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시 장르로 자리를 잡고 있는 터라 디카시 전문 시인은 없고, 주로 시인으로 등단 분들이 디카시를 창작하고, 또 경계를 넘어 수필가들이나 아마추어 시인들도 즐겨 디카시 창작을 하고 있다.
보은문화원과 계간 디카시가 MOU를 맺고 계간 디카시를 발행하는 한국디카시연구소가 주관사로서 오장환 디카시신인문학상 응모에서부터 심사까지 전반을 진행했다. 첫 해라 한국디카시연구소 대표 자격으로 나도 김왕노 시인, 최광임 시인과 같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좀 사적인 얘기지만, 제1회 오장환 디카시신인문학상 시상식에서 심사위원을 대표해서 심사평을 하며 다음과 같이 부연했다. 2004년부터 디카시라는 신조어로 경남 고성 지역을 중심으로 디카시 문예운동을 펼쳤고, 또 오장환 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그것이 공교롭게도 오장환 연구로는 박사 제1호였다.
600여 편의 응모 작품 중에서 강영식씨의 <망부석>이 수상작으로 결정돼, 강영식 씨가 오장환 디카시신인문학상 수상의 첫 영예를 안았다. 강영식씨는 오장환 디카시신인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시인으로 출발을 하게 되었는데, 문단에서 이를 어떻게 바라봐 줄지가 사뭇 궁금하다.
보은군(군수 정상혁)은 19, 20일 양일간 오장환 시인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를 '보은대추축제'에 맞춰 뱃들공원 내 오장환 문학거리를 꾸미며 성대하게 열었다. 문학거리에는 오장환 시인 특별전시관, 문학도서관, 디카시 및 시그림 전시 등의 콘텐츠로 볼거리를 제공했다.
오장환 시인은 1930년대를 대표하는 천재시인으로 고향인 보은에서는 2006년 '오장환문학관'과 '오장환 생가'를 건립하고 해마다 그의 문학정신을 기리는 '오장환문학제'를 개최한다. 비극적 생을 살다간 오장환은 짧은 생을 살다 갔지만 그 시는 살아서 영롱하게 빛을 발하는 것도 참 패러독스하다.
덧붙이는 글 | 디카시는 필자가 2004년 처음 사용한 신조어로, 디지털카메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을 포착하여 찍은 영상과 함께 문자를 한 덩어리의 시로 표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