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전략가다. 그렇게 불린다. 그것도 '국가비전' 전략가. 언뜻 생소한 용어 같기도 하지만, 그가 그동안 해온 연구와 작업물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김택환 경기대 특임교수. 독일에서 10년 넘은 유학시절과 <중앙일보>에서 10년동안 기자생활을 했다. 그는 최근 수년동안 '대한민국의 미래'를 고민하면서, 독일을 바탕으로 한 이른바 '넥스트 코리아' 시리즈를 책으로 엮어냈다. 기자와 만날 때마다 그는 항상 이야기한다. "우리도 충분히 독일을 뛰어넘을 수 있고, 경쟁력 있다"고.
지난해 여름, 기자가 그를 만났을 때 "요즘 일본, 중국 등지로 열심히 취재를 하고 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무슨 주제를 가지고 하느냐'고 물었을 때, 김 교수는 "남북 화해 분위기 속에 미국, 일본, 중국 등 주요 인사를 상대로 한반도 정세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한 그가 책을 들고 나왔다. 지난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동 한식당에서 그와 만나 장시간에 걸쳐 이야기를 나눴다.
- 작년에 중국, 일본 등지를 다니면서 한반도 문제에 대해 열심히 취재를 하셨다고 하는데.
"(고개를 끄덕이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죠. 국내 주요 학자와 정관계 인사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 미국 등에서 정치, 외교, 경제, 안보 전문가 등을 두루 만났어요. 그들과 이야기하면서 대전환시대에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그는 기자에게 "좀전에 출판사로부터 받은 따끈따끈한 책"이라며 기자에게 책 한 권을 건넸다. <세계 경제패권전쟁과 한반도의 미래>(김영사)라는 제목이었다. 그에게 곧바로 물었다.
- 베트남 하노이에서 두번째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번 회담이 굉장히 중요해요. 베트남 하노이라는 상징도 있지만... 그동안 우리가 세계 역사 흐름에서 한반도가 평화와 번영으로 갈 수 있었던 기회가 세 번이 있었어요."
- 세 번요?
"그럼요. 처음은 1970년 당시 서독 빌리 브란트 총리가 동방정책을 펼쳐요. 그때 동독의 슈토프총리와 첫 정상회담을 해요. 미소 냉전시대가 막을 내리는 계기가 돼요. 그때 우린 유신시대, 북한은 주체사상이라는 전체주의 국가였죠. 두번째는 1980년대 후반 소련 고르바초프의 개혁, 개방정책을 펼치면서 1990년대 소련 해체와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이 몰락하죠. 우리는 1991년에 남북 기본합의서를 체결했지만, 휴지조각이 됐어요."
- 세 번째는요?
"중국이 개혁개방에 성공하고 베트남도 '도이모이'정책으로, '도이모이'라는 말이 베트남어로 '변경한다'라는 뜻이에요, 사회주의 국가들도 인민들이 잘 사는 나라로 갔죠. 당시 우리에게 기회가 있었어요. 미국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북한 김정일 위원장을 만났고, 북미 국교정상화까지 갔다가 흐지부지되면서 중단됐죠. 미국은 부시정권이 들어서면서 북미정세는 냉전으로 갔고..."
"이번 북미회담에서 30%만 진전 있어도 성공"
- 이번 기회가 그래서 중요하다는 것이군요.
"어쨌든 이번에 김정은 위원장이 (남북대화 등) 중요한 결단을 해줬고, 트럼프 미 대통령도 그것을 받았고, 문재인 대통령이 중재를 잘 했죠. 옛날 속담에 '삼세판'이라는 말이 있죠. 진짜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안 되죠. 지긋지긋한 한반도의 냉전을 떨칠 수 있는 하늘이 준 기회라고 봐요."
- 이번 회담을 두고 여러 분석과 전망들이 나오고 있는데요.
"지난 싱가포르 회담은 상견례 성격으로 봐요. 이번 두번째 회담에서도 저는 북미간 30%정도의 진전만 있어도 성공했다고 봐요."
- 30퍼센트요?
"한반도 문제를 볼 때, 특히 북미관계를 풀어갈 때 10가지의 과제가 있다고 해요. (북미간) 서로 전쟁을 했던 사이였어요. 전쟁 후에는 포로에 대한 문제가 있고, 북한 인권 문제와 핵 미사일, 대륙간탄도미사일 등 많은 문제들이 쌓여 있어요. 이것을 하나씩 하나씩 풀어가야죠."
김 교수는 "지난 70년동안 북한 체제뿐 아니라 미국, 중국, 동북아와의 이해관계 등이 서로 쌓여온 문제들이며, 이것을 단계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말을 이었다.
"북한의 실질적인 비핵화에 대해 말들이 나오는데, 우선 현재의 핵을 어떤 과정을 통해서 없애느냐, 그리고 미래의 핵에 대해서 어떻게 투명하고 국제적으로 관리할수 있느냐가 핵심이에요. 미래 핵 부분은 북한 체제와 관련돼 있기도 하고... 이번 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대륙간탄도미사일 부분까지 통 크게 양보하면 30%이상 진전이 있는 거예요."
- 북한은 대북 제재를 풀고, 경제적으로 이득을 취하는 방향으로.
"그렇죠. 미국은 2016년 이후 북한을 여행금지국가로 해놓고 있고, 유엔을 통한 대북제재를 끌어 왔으니까... 우리도 개성공단 재개를 비롯해 금강산 관광도 풀 수 있고, 지난번 싱가포르 회담이 만남이라는 의미에서 30% 의미가 있다면, 이번에도 비핵화를 위한 30%의 진전만 있어도 성공이라고 보는 거죠. 그리고 나머지 30%는 앞으로 2년 후 트럼프 대통령 재선 때 쓰겠죠."
"트럼프 대통령은 2021년 재선을 위해 북한을 세기의 이벤트로 쓸 것"
- 2021년 미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을 위해서 북한 카드를 쓴다는 거죠?
"그렇게 보는 거죠. 트럼프 대통령 재선을 앞두고 북한과 또 회담을 할 거예요. 북미사이의 나머지 3분의 1 카드를 쓰고,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 나머지 재임 기간 동안 북한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어요."
- 가능할까요?
"(곧바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유럽 등 전 세계적으로 (무역 등으로) 싸움을 걸고 있는데, 유일하게 싸움을 하지 않고 '좋은친구'라고 하는 곳이 북한이에요. 물론 트럼프식 고도의 전략과 전술이죠.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이란, 쿠바보다 북한과 거래하는 것이 훨씬 (미국 내부적으로도) 효과가 크다고 보는 거죠. 세기의 이벤트로 만들고 있잖아요."
- 북한 입장에선 어떨까요.
"북한은 결국 개혁개방으로 갈 수밖에 없죠. 사실 대북 경제제재에 중국, 러시아 등이 동참하면서 경제적으로 압박이 심하다고 들었어요. 이번 취재 과정에서 느낀 점은, 김정은 위원장이 조선시대로 따지면 태종을 넘어서 세종이 되고 싶어한다는 거예요. 지난 7년 동안 자신의 정적들을 제거하고, 이제는 인민들을 잘 살게 하고, 자신은 성군의 이미지로 남고 싶은 거죠. 문제는 어떤 식의 개방으로 갈 것이냐죠."
- 여러 모델이 나오긴 했죠. 베트남 방문 목적도 그런 것으로 보이고.
"(잠시 있다가) 김정은 입장에선 베트남도 연구할 필요가 있죠. 또 미국도 추천을 했고... 그런데, 베트남식 개방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마도 뭔가 획기적인 방식으로 가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아마 김정은 위원장이 베트남 삼성 공장을 방문하게 되면..."
- 그렇죠. 북한 경제고위인사가 동행하고, 삼성전자 하노이공장 주변을 둘러봤다는 이야기도 나오니까요.
"지금 삼성이 베트남에서 고용하는 사람이 16만명이에요. 북한 1년 지디피(GDP)가 삼성 총 매출액의 8분의 1 수준이에요. 세계적인 투자자인 워런 버핏이 저에게 한 말이 '삼성도 북에 투자를 해야한다'고 할 정도예요. 김 위원장도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있을 것이고, 자신만의 새로운 모델을 고민할 겁니다."
- 새로운 모델이라면? 책에도 언급돼 있던데요. 하이테크 모델?
"(곧장) 그래요. 북한 개방 모델은 '퀀텀점프'로 가야 해요. 현재 북한 공업 수준이 경공업인데, 아예 곧바로 하이테크 산업을 적극 유치해서 새롭게 판을 짜서 가야 하는 거죠. 베트남식 개혁개방과는 차원이 다른..."
- 베트남을 뛰어넘어야 한다?
"그래요. 김정은 위원장 입장에선 이미 중국을 봤어요. 그리고 싱가폴, 베트남까지 다 보고 있는 거예요. 어렸을 때는 스위스에서 경험을 했고... 스위스에서 유학이 어쩌면 '신의 한 수'가 될 수도 있죠. 스위스는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 중 하나잖아요. 정밀시계를 중심으로 한 제조업, 의약바이오, 금융, 관광 등 4개 분야에선 세계 톱이에요. 지금 김 위원장이 원산 등을 관광지로 개발하는 것이 다 이유가 있는 거예요."
"북한 개방모델은 스위스+중국+싱가폴+베트남+한국 혼합"
- 스위스식으로 갈 수도 있다는 말씀이네요.
"물론 쉽지 않겠죠. 그래서 김 위원장의 베트남 다음 일정이 중요하죠. 어딜 가겠어요? 바로 대한민국을 보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스위스, 중국, 싱가폴, 베트남에 이어 우리나라까지 5개 나라를 보고, 경험을 하는 거예요. 그걸 통해서, 북한식 개혁개방의 그림이 나올 것이고."
- 김 위원장이 지난 평양 회담에서 남한 방문 약속을 했으니까요.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과 어느 정도 성과를 낸 다음에, 대한민국에 와서는 경제적인 부분과 함께 역사적인 부분에서 결자해지를 해야죠. 김일성 주석인 할아버지 세대부터 맺혀 있던 것을 해결해야죠. 독일의 빌리브란트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봐요. 우리 국회에서 '6.25전쟁 잘못된 선택이었다, 남북이 서로 미래로 가자'고 말할 수도 있다고 보는 거죠."
- 지금같은 한국당 분위기에선 김 위원장의 국회 연설도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목소리를 높이며) 그러니까 더 해야죠. 역사는 피하면 안 됩니다. 김 위원장이 설령 우리 국회에서 계란세례를 맞더라도 해야죠. 미래로 가기 위해선... 한반도의 신냉전이라는 역사의 매듭을 풀기 위해서라도 (김 위원장이) 좀더 담대하게 가야 할 필요가 있어요. 우리는 지금 상상력이 필요해요. 신냉전을 뛰어넘을 리더가 할 수 있는 그런 상상력..."
- 이번 북미 회담 이후 문재인 정부도 바빠질 것 같은데.
"현 정부 역할도 굉장히 중요하죠. 물론 지금까지 중재자로서 잘 해왔지만...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도 더욱 돈독하게 해야 하지만, 한미 관계뿐 아니라 한일, 한중 등 관계도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시켜야죠."
- 새로운 차원이라면?
"한미 과거 군사동맹도 중요하지만, 동북아에서 미래로 가기 위한 조치들이 필요하죠. 방위 분담금 문제도 있지만, 향후 4차산업혁명 과정에서 미국의 적극적인 투자를 이끌어내야죠. 일본, 중국과의 외교도 청와대가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우리 주변 국가들은 한반도를 자신들의 이해관계에서만 바라보고 있죠. 결국 이것을 누가 풀어야 하느냐, 우리가 할 수밖에 없어요."
김 교수는 "미국과 중국이라는 거대 패권국가 사이에서 전략적으로 남북이 힘을 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이를 위해 빅 프로젝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가 생각하는 '빅 프로젝트'는 무엇일까?
"지금 보세요. 전세계적으로 냉전은 의미가 없어졌어요. 김정일-트럼프 회담이 상징하는 거예요. 이제 중요한 것은 경제예요. 미중간 무역전쟁에서 남북이 어떻게 전략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느냐, 고민을 해야죠. 예를 들어 비무장지대(DMZ)에 새로운 생태창업도시를 만드는 거예요. 여기에는 남북간 청년들이 참여하는 창업, 스타트업을 적극 지원하고, 워런버핏이나 손정의 회장 등 외국자본도 적극 유치하자는 거죠."
- 생태 창업도시가 좀전에 말씀하신 북한식 개혁개방의 모델이 될 수도 있겠군요.
"그래요. 물론 전제조건이 북이 먼저 비핵화를 전략적으로 실천해야 하고... 이 도시가 어찌 보면 북한경제가 퀀텀점프로 가는 상징이 될 수 있죠. 그래서 스위스와 싱가포르, 그리고 대한민국과 베트남을 합친 경제모델로 가는 것이고... 스위스의 관광 산업, 싱가포르의 국가 주도, 베트남의 개혁개방, 그리고 대한민국의 하이텍과 융복합된 4차 산업혁명을 이용하는 거예요."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사실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모를 정도다. 그만큼 내용이 풍부하다. 또 그의 말대로 자유로운 상상력도 나온다. 그리고 항상 강조하는 말이 있다. 바로 '미래를 위한 역사인식과 리더십'이다. 김 교수는 최근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의 5.18 망언에 대해서 "역사적인 반동"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이번 책에서 트럼프, 시진핑, 푸틴, 아베의 리더십 분석도 하셨다고.
"이들은 하나같이 '스토롱맨'의 리더십이에요. 독불장군식이자 비민주적 러더십이죠. 미국의 트럼프는 크레이지, 중국의 시진핑은 황제, 러시아의 푸틴은 차르, 그리고 일본의 아베는 이들에 비해 약하지만 마초 리더십이죠. 하나같이 국수주의 및 국가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어요. 독일의 메르켈 같이 국제 공조나 협업보다는 자국의 패권과 눈 앞의 이익에 매몰돼 있기 때문에, 당분간 세계가 불확실과 혼돈의 사회로 가는 이유이기도 하죠."
그와의 이야기는 마지막으로 향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리더십 이야기였다.
"문재인 대통령의 리더십은 촛불에 기초한 민주적 리더십이에요. 스트롱맨의 리더십보다 더욱 민주적이고, 평화적이고, 국제적인 리더십으로 가야죠. 이번에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현 정부에 대한 주문들이 많았어요. 정리하면, 두 가지 미션이 있어요. 하나는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의 시대로 가야 하는 거죠. 이를 위해 남북관계뿐 아니라 주변국들과의 전략적 대응을 하는 것이구요. 내부적으로는 대연정이라는 것을 해봐야 하는 거예요. 반대진영에 대해 무조건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는 방안을 생각해야죠. 그것이 정권을 재창출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