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화운동 후 39년. 떠난 자는 떠난 자대로, 남은 자는 남은 자대로 여전히 그날의 진실을 위해 싸우고 있다. 그들을 만나본다.[편집자말] |
이 책은 짓밟힐수록 살아났다. 전두환 정권은 출간되자마자 책 2만권을 압수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숨죽여 읽으면서 '지하 베스트셀러'가 됐다. 책에 담긴 잔혹한 학살의 진실이 입에서 입으로 퍼지면서 87년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됐다.
한때는 비밀스러운 책이었다. 황석영 작가의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왔으나, 집필자는 따로 있었다. '광주의 이름 없는 청년들'이었다. 이들이 5.18 민주화운동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 유명 작가의 힘을 빌린 것. 극심한 감시와 억압을 피하기 위한 묘책이었다.
황석영 작가는 '광주의 이름 없는 청년들'의 방패막이가 됐다.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책을 펴내는 걸 승낙했다. 1985년 10월 세상에 나온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이하 넘어 넘어) 이야기다. 이 책은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난 시민들의 뜨거운 항쟁을 기록했다.
첫 책이 나온 지 32년 만인 2017년, <넘어 넘어>의 수수께끼가 풀렸다. 그해 10월 <넘어 넘어> 전면 개정판이 출간되면서 '광주의 이름 없는 청년들'이 세상에 알려진 것. 초고를 집필했던 이재의(63)씨가 기록자로 추가됐다. 이씨는 5.18 당시 전남대 학생으로 항쟁에 참여했다. 당시 전남대 들불야학 학생들과 '투사회보'를 제작·배포했던 전용호(61)씨도 책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 8일, 광주 동구 옛 전남도청 인근 카페에서 공동 저자 이재의씨와 전용호씨를 만났다. 또 다른 공동저자인 황석영 작가는 '집필중'이라며 책에 얽힌 숨은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두 사람을 만나보라고 권했다. 두 사람은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있던 이야기를 풀어놨다. 독재정권의 총칼에 살아남아 <넘어 넘어>를 출간할 때까지의 긴박했던 과정을 전한다.
대학생 시민군
1980년, 이재의는 전남대 총학생회 '비밀기획팀원'이었다. 여기서 그는 '대학의 소리'라는 유인물을 제작해 배포했다. 학생회에서 발행하는 성명서 수준의 유인물과 달리 정세를 분석하고 시국을 논하는 소식지였다. 광주항쟁 당시 그는 대학생 시민군이 됐다.
5월 22일 아침, 이씨는 녹두서점으로 갔다. 당시 광주지역 학생운동을 하는 이들에게 아지트 역할을 했던 곳이다. 이날 이씨를 비롯한 전남대 총학생회 집행부는 회의 끝에 전남도청 상황실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계엄군이 휩쓸고 간 전남도청은 아수라장이었다. 쉴 새 없이 전화벨이 울렸다. 외부로 유일하게 통화할 수 있는 행정전화였다. 버려진 무전기 예닐곱 개에서도 계엄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황실 한 귀퉁이에선 시민군에게 붙잡힌 계엄군이 조사를 받았다.
"상황실은 질서가 없었다. 단순한 호기심에 드나드는 시민들도 있었지만, 계엄군의 정보원이나 공작원이 끼여 있을 가능성이 컸다. 특히 스포츠형의 머리나 단단한 몸매 등 수상한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상황실 출입을 통제해야 했다. 총과 수류탄을 들고 상황실 책상 위로 올라가 전남대생이라 밝히며, 서로의 신분을 확인하고 상황실 출입을 통제하자고 제안했다. 이때부터 증명서를 소지한 사람만 출입하게 됐다."
23일 저녁, 이씨는 전남도청을 빠져나가 집으로 갔다. 밤을 꼬박 새운 데다 옷도 갈아입어야 했다. 그러던 중 집에서 형과 누나에게 잡혀 강제로 고향 곡성으로 보내졌다.
전용호는 전남대 들불야학과 독서토론 동아리 '잔디' 활동을 하면서 사회 문제에 눈을 떴다. 이재의와는 학교 선후배 사이로 만나 '대학의 소리'를 함께 만들었다. 그도 '당연히' 대학생 시민군이 됐다.
전씨는 주로 YWCA 건물에 있었다. 당시 청년·학생 홍보본부가 여기에 있었다. 전씨는 가두방송을 이끌면서 항쟁 지도부의 메시지를 시민들에게 전파했다. 홍보차량에 '투사회보'를 싣고 다니며 뿌리기도 했다.
'투사회보'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대변인 역할을 했던 윤상원 열사가 이름을 지은 소식지로, 계엄군 학살의 실상과 시민의 저항과 임무 등을 담아낸 유인물이었다.
한번은 '전남대 스쿨버스'를 찾아 거리를 헤매다가 어렵게 찾아내기도 했다.
"시민들에게 신뢰감을 주려면 '전남대 스쿨버스' 만한 게 없었다. (스쿨버스) 차량 열쇠가 없어 고민하는데, 방직공장에서 일하다가 시민군이 된 김상집이 군대에서 익힌 기술로 시동을 걸었다. 그렇게 전남대 스쿨버스를 이끌고 거리를 돌며, 궐기대회 개최 소식을 시민들에게 알렸다. 주로 유인물을 뿌리는 역할을 했다. 가두방송을 한 건 여학생이었다."
전씨는 27일 계엄군의 '상무충정작전(광주재진입작전)' 때 녹두서점으로 피신했다가 간신히 살아남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5.18민주화운동이 끝난 뒤 체포돼 수감생활을 해야 했다. 전씨는 1980년 말, 감옥에서 나왔다. 이씨는 1981년 8.15특사로 석방됐다.
진실을 알리자... 기록을 모으다
"27일, YWCA를 빠져나오면서 궐기대회를 주도했던 김태종(당시 전남대 국문학과 4)이 쓴 성명서와 원고 등을 모두 가지고 나왔다. 언젠가 분명히 좋은 자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 모아놨던 거였다. <넘어 넘어> 출판에 많은 도움이 됐다." (전용호)
"끝까지 도청에 남아 있지 못했던 게 아직도 가슴에 맺혀 있다. 그래서 한동안 내가 한 일과 5.18에 대해 말하지 못했다. <넘어 넘어>를 만들자고 할 때 거절할 수 없었다." (이재의)
1984년 10월, 누군가 이재의를 찾아왔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도청 항쟁지도부 외무위원장이었던 정상용이었다. 정씨는 전남대 출신 청년 활동가로 광주항쟁 당시 구속되기도 했다. 그는 이씨에게 "광주항쟁을 기록하는 일을 맡아 달라"고 제안했다. 당시 이씨는 전남대 경제학과 3학년 복학생이었다.
정씨가 이재의를 적임자로 꼽은 이유가 있었다. 첫째, 5.18 이후 수감돼 10개월간 옥고를 치렀고, 이후 다른 사건에 연루된 적이 없었다. 또, 도청 상황실에서 활동한 데다 수감생활을 하며 5.18 관련자들과 함께 지내 취재가 용이하다는 강점도 있었다.
"5.18의 진실을 알리는 일이었다. 당시 전두환은 광주 사람을 폭도라고 하면서 죽은 사람도 없고 집단 발포도 없다고 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이재의)
광주항쟁에 참여한 혐의로 투옥됐던 정용화가 자료를 갖다 줬다. 오래전부터 모아둔 거라고 했다. 80년 10월 형집행정지로 석방되면서부터 자료를 수집했다는데, 항쟁 당시 개인들이 써놓은 목격담과 병원 기록, 재판 기록, 사진 등 사과상자 여섯 박스 정도였다.
당시 자료와 기록을 모은 사람은 정용화만이 아니었다. 전남대 출신 조봉훈도 기록을 모았다. 조씨는 1978년 '전남대 민주교육지표사건' 등 시국사건에 연루돼 투옥됐다가 1980년 11월 석방된 후 고향 광주로 돌아왔다. 그해 12월, 구치소 복역 중 알게 된 소준섭을 만나 함께 광주항쟁을 기록하자고 제안한다. 소준섭은 5.18 당시 현장에는 없었으나 조씨와 함께 광주 시내 목사와 신부, 신도, 구속자 가족 등을 만나 자료를 수집하고 증언을 기록했다. 이렇게 모은 자료들을 정리해 1982년 '광주백서'란 이름으로 42면짜리 팸플릿 약 120부를 인쇄해 세상에 내놓기도 했다.
여러 갈래로 진행되던 광주항쟁 기록 작업은 1984년 11월 전남민주청년운동협의회(이하 전청협)가 출범하면서 하나로 모아졌다. 전청협 초대의장을 정상용, 부회장을 정용화가 맡게 되면서 가장 중요한 사업으로 '5.18 진상규명'이 선택된 이유도 크다. 정상용은 이재의에게 집필을 제안한 사람이고, 정용화는 5.18민주화운동 자료를 수집한 사람이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넘어 넘어> 출판 작업이 시작됐다.
신혼집에서 담요 뒤집어쓰고 타이핑
광주항쟁 기록을 제안 받은 이재의는 고교 동창이었던 조양훈을 찾아가 <넘어 넘어> 집필 작업을 제안했다. 조양훈은 전남대 독서토론 동아리 '루사(RUSA)'에서 함께 활동한, 이씨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친구'였다. 조양훈은 집필과 함께 책에 삽입된 항쟁 지도를 만들었다.
이재의와 조양훈의 신혼집에 집필 작업장이 마련됐다. 두 사람은 정용화가 모아온 자료부터 분류했다. 항쟁 당시 주요 사건별로 핵심 인물 40여명을 취재 대상으로 선정하고 증언을 기록했다.
"1984년 12월, 결혼을 앞두고 정상용에게 제안을 받았다. 고민이 됐다. 아내는 세무 공무원으로 운동권과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이었다. 어렵게 말을 꺼냈는데, 그런 일이라면 얼마든지 하라고 했다. 조양훈도 막 결혼했을 때여서 번갈아 옮겨가면서 밤새 글을 썼다. 혹시 타이핑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갈까 봐 창문을 담요로 가렸다. 그것도 모자라 담요를 뒤집어쓰고 타자기로 원고를 썼다." (이재의)
전용호는 5.18민주화운동 직후 구속됐다가 1980년 말 감옥에서 나왔다. 광주지역의 문화예술계 상임 운동가로 활동하면서 <넘어 넘어>의 자료수집 등에 힘을 보탰다. 집필 작업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으나 궂은일을 도맡았다.
원고가 서서히 완성되어 가자 '명목상 집필자'로 나서줄 사람을 고민하게 됐다. 순간 전용호의 머리에 떠오른 건 황석영 작가였다. 전씨는 1982년 황석영 작가가 노래극 <넋풀이>를 만들 때 인연을 맺었다. <넋풀이>에 나오는 노래 중 하나가 광주항쟁의 상징이 된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황 작가라면, 이름을 빌려줄 것 같았다.
"1985년 4월 중순, 서울에서 회의가 열렸다. 황석영 작가가 이 자리에 참석해 집필 책임을 맡겠다고 수락했다. 얼마 뒤, 초고를 갖고 황석영 작가 집으로 갔다. 항쟁 진행과정은 많은 참여자들의 증언과 자료를 토대로 면밀하게 검증된 내용이라 가급적 고치지 말아달라고 부탁드렸다. 또, 사찰 당국이 출판과 동시에 들이닥칠 것을 고려해 황 작가가 원고를 다시 옮겨 쓰기로 약속했다. 그는 흔쾌하게 동의했다." (전용호)
황석영 작가는 초고를 받아 여관에서 한 달 반 이상 두문불출하며 원고를 완성했다. 머리말과 서문에 해당하는 '역량의 성숙' 부분은 직접 썼다. 문병란 시인의 시 '부활의 노래'에서 제목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따왔다. 1985년 5월 20일, 이렇게 <넘어 넘어>가 세상에 나왔다. 전두환 정권은 2만권을 통째로 압수했지만, 겉표지에 아무런 디자인도 없는 <넘어 넘어>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와 <전두환 회고록>
2014년, 황석영 작가와 이재의, 전용호가 19년 만에 다시 뭉쳤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일베'나 극우 선동가 집단이 5.18민주화운동을 왜곡하고 폄훼하는 일들이 잦아졌다. 심지어 극우인사 지만원씨는 광주에 북한군이 내려왔다는 이야기를 공공연히 떠들고 다녔다. <넘어 넘어> 초판 작업에 참여했던 '광주의 이름 없는 청년들'은 역사의 진실이 왜곡되고 무너지는 현실 앞에 더는 침묵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개정판 간행위원회를 꾸리고 국민성금을 모았다.
개정판 집필 작업은 이재의와 전용호가 나눠 맡았다. 전씨는 증언자 1472명의 증언을 읽고 사건을 구성했고, 이씨는 계엄군 자료와 1988년 국회청문회 자료, 2007년 국방부 과거사 진상규명회의 <12·12, 5.17, 5.18 사건 조사결과 보고서> 등을 분석해 원고를 집필했다.
2017년 10월, 황석영과 이재의, 전용호 세 사람의 이름을 내걸고 <넘어 넘어> 개정판이 출판됐다. 32년 전, 군사정권 때와 달리 집필진을 감출 이유도 없어 공개하기로 했다. 개정판은 지금까지 약 2만부가 팔리며, 꾸준히 읽히고 있다.
"5.18은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사실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5.18과 관련해 가짜뉴스를 생산하는 자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우리(5.18민주화운동에 직간접 참여한 자들)가 보고 경험한 대로 최대한 사실에 근거해 집필했다. <넘어 넘어>는 광주의 진실이다." (이재의)
"<넘어 넘어>는 5.18의 진실을 기록하려고 노력한 책이다. 5.18을 잘 모르는 젊은 세대와 광주전남 외부 지역 국민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아직도 5.18 당시 사라진 75명 행불자들의 시신이 어디에 있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진상규명을 반드시 해야 한다." (전용호)
광주 금남로의 5.18민주화운동 기록관에는 이재의가 집필한 <넘어 넘어>의 초고가 보관돼 있다. 이씨는 초고를 보여주며 취재진에게 말했다.
"<넘어 넘어>는 지금보다 더 엄혹한 시대에도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렸다. 5.18을 왜곡하고 혐오하는 발언들이 늘어날수록 <넘어 넘어>는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지난 2017년 말, 황석영과 이재의-전용호는 <넘어 넘어> 개정판을 낸 공로로 '만해문학상 특별상'을 받았다. 같은 해 출간된 <전두환 회고록> 1편(혼돈의 시대)은 5.18민주화운동을 왜곡했다는 이유로 출판 및 판매금지 된 상태다.
[기획 / 오월ing]
ⓛ 죽은 시민군 엄마가 산 시민군에게..."살아야제, 29만원 전두환도 골프치는디" (http://omn.kr/1j9so)
②-1 해남 땅끝마을 사는 '여자 광수' "지만원 그놈이 나를..." (http://omn.kr/1jauj)
②-2 '광수' 지목된 두 시민군의 증언 "통합병원 시신 정말 이상했다" (http://omn.kr/1jb7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