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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덜 쓰는 일을 자랑처럼(?) 기록해온 지 3년 째다. 매일 가계부 쓰는 건 물론 냉장고 텅 비기 전까지 장을 보지 않았던 무지출 Day, 중고물품 팔기, 고장난 물건 고쳐 쓰기, 키즈카페 대신 공원 다니기, 사교육 아닌 부모표 학습 등을 실천하고 깨달은 바를 적어 내려갔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불부터 개는 작은 습관조차 기운찬 삶의 원동력이 되는데, 절약은 오죽했을까. 쓰는 재미로 살던 내가, 안 쓰는 재미를 기록하니 매일매일 신났다.

​그런데 돈 쓰는 일을 자랑하긴 쉽지만, 안 쓰는 일을 떠벌리고 다니는 건 역시 위험부담을 져야 했다. 하루 식비 10000원이든, 15000원이든, 한 달 생활비 75만원이든 100만 원이든, 절약의 기록에 대한 글에는 날선 비판과 조롱이 잇달았다. 그들의 반응은 주로 두 가지였다.

'사치'와 '궁상'이란 극과 극
 
 하루 식비 15000원. 누군가에겐 궁상이고, 누군가에겐 사치였다.
하루 식비 15000원. 누군가에겐 궁상이고, 누군가에겐 사치였다. ⓒ 최다혜
 
첫 번째는 '당신의 절약은 사치'라는 거다. 가난한 이들에게 절약은 선택이 아닌 필수며, 유희가 아닌 고통이라는 지적이었다.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면서 소득마저 적은 이들을 배려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들었다. '노는 듯 절약하니 박탈감을 느낀다'는 푸념을 듣고서야 정신을 퍼뜩 차렸다.

시사IN 변진경 기자가 쓴 <청년 흙밥 보고서>를 읽다보면, 청년들의 흙밥은 충격적이다. 라면에 케첩소스를 발라먹고, 폐기처분 삼각김밥을 냉동실에 여러 개 얼려뒀다가 며칠에 걸쳐 하나씩 꺼내 먹는다. 햇반 하나로 세 끼를 쌈장에 비벼 먹고, 물만 마시며 굶는일도 허다하다.

집밥을 하는 건 언감생심이었다. 집밥을 하려면 주방을 갖춘 집과 식재료를 관리할 시간과 체력이 필요했다. 대부분의 청년들에게는 이마저도 부족했다. 젊어서는 돌도 씹어 먹는다지만, 그 말은 틀렸다. 물에 다시마만 우려 말아먹었더니, 20대의 15%는 건강이 위험했다.

이런 상황에서 하루 식비 15000원을 가지고 '소박한 밥상'을 자처하는 내가 부끄러웠다. 15000원을 검소하다 말하기에 누군가에게는 큰 돈이었기 때문이다. 절약을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부터 박탈감을 일으켰다. 그들의 기준으로 볼 때 내가 하는 절약은 유희나 다름 없었다.

두 번째는 '당신의 절약은 궁상'이라는 거다. 빵 한 조각, 요거트 한 팩조차 망설이다 못 사는 삶을 지켜보자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면 늦기 전에 요령껏 소비하면서 즐거움을 느끼라는 말이었다.

결국 얼마를 쓰든, 궁상과 사치라는 극과 극의 조롱을 들었다. 재밌어서 시작했지만, 글을 쓸 때마다 머릿속에는 재판이 열렸다. '최소한의 소비'는 궁상일까 사치일까? 판결 없는 재판은 흐지부지 끝나기 일쑤였고, 한동안 <오마이뉴스> 연재를 이어갈 용기마저 쭈그러들어 버렸다.

그렇지만 쓰고 싶었다. 나는 비장하게도 절약 글을 한 편이라도 더 씀으로써 세상이 조금이라도 바뀌기를 바랐다. 세 가지 이유에서다.

[첫 번째] 덜 쓰는 삶의 명랑함

적은 돈으로 살아가는 게 불편할 수는 있지만 부끄러워서는 안 된다. 그런데 우리는 왜 주눅부터 드는 걸까? 소비 절제를 주저하게 하는 발원지는 '오직 소비가 행복이다'라는 편견이었다. 그 일방적인 주장을 깨고 싶었다.

대중이 접하는 미디어는 대부분 '쓰는 삶'을 추켜세운다. 기업 광고 자본으로 움직이는 탓이다. 미디어에서 행복의 유일한 척도는 무엇을 얼마나 가졌는지다. 멀쩡히 작동하는 유선 청소기를 두고, 무선 청소기로 업그레이드해야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으며, 가사 노동을 줄일 줄 아는 쿨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편리한 물건을 누리는 사람을 비난하려는 게 아니다. 유복한 삶만이 행복해 보이는 편파적인 미디어에 돌을 던지고 싶다. 절약은 고행이 아니다. 다만, 그렇게 그려질 뿐이다. 그래서 절약가들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5년째 입는 낡은 리넨 셔츠와 에코백, 그리고 단 한 대의 자동차가 불행을 반증하지 않는다. 삶의 행복은 소유가 아닌 '경험'이라는 의견도 '소비가 행복'이란 의견에 팽팽히 맞서야 한다. 그래야 한국의 많은 이들이 빚으로 메우는 체면 치레 소비를 줄이고, 물건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두 번째] 소비를 덜 해야 환경이 산다
 
 사지 않는 일, 환경을 살리는 일
사지 않는 일, 환경을 살리는 일 ⓒ 최다혜
 
소비하지 않아야 생산하지 않는다. 우리가 물건 하나를 산다는 건, 쓰레기가 하나 늘어나는 일이며, 판매된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탄소 가스를 배출하며 하나를 더 생산해야 한다는 말과도 같다. 가장 친환경적인 행동은 재활용을 잘 하는 게 아니라, 사지 않는 일이다.

우리는 미세먼지를 두려워 하면서도, 욕망을 줄이는 데 소극적이다. 불필요한 물건을 사지 않는 일이야말로 최악의 미세먼지와 기후변화를 막을 근본 대책이다.

혹자는 '소비하지 않으면 경기가 죽는다'라고 말한다. 예쁜 쓰레기를 거부하고, 튼튼한 물건 하나를 오래 쓰는 소비자가 늘어나면, 시장도 재빠르게 움직일 것이다.

돈은 사자마자 바느질이 풀리는 허술한 리넨 바지 만드는 회사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 우리의 소중한 돈은 질 좋은 옷을 만드는 회사의 이익 창출에 기여해야 한다. 또한 나머지 자본이 탄소 배출하는 공장 말고 경험과 배움을 제공하는 산업으로 투자될 수도 있다. 소비자가 사지 않는 습관이야말로 환경과 시장이 공생할 수 있는 토대다.

[세번째] 돈에 덜 의존하는 행복을 꿈꾼다

돈으로 교환할 수 있는 물건과 서비스의 가치를 폄훼하는 게 아니다. 돈 한 푼 안 쓰며 다이어트 성공해 보겠다고 혼자 하루 만보 걸으며 살을 빼는 것은 시간과 노력 면에서 비효율적일 수 있다. 오히려 피트니스 센터에서 전문 트레이너의 조언을 받거나, 요가원에서 매트를 깔고 자세를 교정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전문가가 수 년, 수 십 년 쌓아올린 경력은 돈으로 교환해야 마땅한, 고급 노동력이다.
 
현대의 새로운 가난이 만연하는 세상에서 상품에 중독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죄악이거나, 또는 두 가지 다일 수 있다. 소비를 하지 않고 무언가를 한다는 건 불가능하다....직장에 다니지 않거나 소비를 하지 않는 사람은 쓸모없는 인간으로 취급된다.
-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중, 이반 일리치 지음

그러나 오직 돈에만 의존하면, 돈 없이는 무능해진다. 이반 일리치는 '현대의 새로운 가난'이라 표현했다. 일해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물건과 서비스로 교환하는 생활은 풍요로운 듯 보인다.

하지만 직접 할 줄 아는 게 줄어들고, 소비로만 삶이 유지되는 건 우리를 점점 쓸모 없게 만드는 과정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일을 해서 돈을 벌지 못 하면, 살 수 없을 거란 공포로 만연하다.

그래서 가장 적은 돈으로, 삶을 건실하게 꾸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중이다. 고기를 사 먹는 게 즐거운 줄 모르지도 않고, 신용카드만 긁으면 쉽게 오를 수 있는 유럽행 비행기도 안다.​ 돈 쓰면 좋은 일들이 분명 많지만, 그게 '의존'으로 이어질까 봐 두려워서 절약 훈련을 한다. 인생의 행복을 소비에만 의존하다 보면, 분명 돈이 떨어질 어느 날, 삶이 곤두박질 칠 것이다. 삶의 행복이 돈에 좌우되지 않도록, 검소하게 산다. 돈 쓰는 재미 안다. 하지만 안 써도 재밌는 일들을 꾸리는 능력자가 되고 싶은 것이다.

나는 1등 절약가는 아니다. 하루 식비 5천 원으로 생활하는 블로거와 1주일 식비 3만 원인 절약모임 멤버를 부러워하고 존경하는 절약 연습생이다. 생활비에 손대지 않지만, 부부 용돈으로 카페에 가거나 외식을 할 때면 부끄럽기까지 하다.

절약을 가장 잘 해서 쓰는 글이 아니라, 돈 덜 쓰는 사람들이 용기를 내길 바라서 쓴다. 돈 쓰는 삶 못지 않게 덜 쓰는 절약가들이 위축되지 않고 당당하길 바란다. 누군가에게 궁상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이런 절약마저 사치일 수 있지만, 좋은 경험은 나눠야 한다. 그래야 '빈곤=불행'이란 어처구니 없는 공식이 와해되지 않을까? 그리고 점점 뜨거워지고 매캐해지는 지구의 숨통도 트이길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dahyun0421)에도 실립니다.


#최소한의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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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고, 글 쓰고, 사랑합니다.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세상을 꿈 꿉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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