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첫 명절, 떡을 빚으려면 쌀가루에 뜨거운 물을 부어야 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설마 저걸 사람 손으로 반죽할까 싶었다. 나를 비롯한 가족 누구도 반죽할 엄두를 못 냈다. 처음에는 주걱으로 살살 젓던 시어머니가 이내 맨손으로 반죽을 치댔다. 오랜 세월 떡을 빚어오면서 뜨거운 물을 견딜 정도로 살갗이 무뎌지셨나 보다.
그랬던 시어머니가 2년 전부터 떡집에서 송편을 맞추신다. 고된 명절 노동을 며느리 세대에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서다. '이쁜 딸 낳고 싶으면 송편 잘 빚어야 한다'는 말로 태어나지도 않은 딸을 두고 외모 인질극을 벌이던 풍습에, 어머니는 그렇게 종지부를 찍으셨다.
돈 주고 산 건 송편뿐만이 아니었다. 전, 튀김, 김치 등 웬만한 명절 음식도 가게에서 맞추기 시작했다. 환호성이 터졌다. 익반죽만큼이나 며느리들을 괴롭히던 청양고추와도 작별했다. 그간 부추전 반죽에 넣을 청양고추를 맨손으로 다질 때마다 손에 열감이 들어 온종일 고생하곤 했다.
시어머니의 파격은 '며느리들 떡국 먹는 타이밍'까지 이어졌다. 전에는 밥 한술 못 뜬 상태로 설거지를 했다. 준비한 음식을 내놓으면 곧이어 50인분의 기름진 그릇들이 부엌 개수대로 얄밉게 몰려왔다. 하지만 해야만 했다. 내 떡국 먹으려면 설거지를 해서 빈 그릇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설거지하기 전에 떡국을 먹을 수 있게 됐다. 비결은 일회용 용기였다. 어머님이 명절 당일 아침에 일회용 밥그릇, 국그릇, 접시, 컵을 쓰기로 결정한 덕에 설거지 부담이 확 줄었다.
떡을 맞추고, 음식을 주문하고, 일회용 용기는 쓰는 것. 시어머니는 그렇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며느리 노동 해방'을 이뤄내셨다. 그간 집안에서 여성의 노동을 줄이려던 시도가 아예 없었으니, 시어머니의 도전은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었다. 당신께서는 받지 못했던 사랑의 형태였다. 경험하지 못한 사랑을 다음 세대에 물려준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받아보지 못했던 존중과 배려를 며느리에게 주고 싶으셨던 거다.
사랑도 받아본 사람만 다시 줄 수 있다고 했던가. 나도 시어머니에게 받은 사랑을 되돌려주고 싶다. 나의 두 아이가 결혼해 배우자를 데려온다면, 조금 다른 방법으로 '명절 혁명'을 이뤄보고 싶다.
덜 만들고 덜 먹기
상차림으로 고통받는 건 우리나라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미국 작가 헬렌 니어링이 소개한 전설적인 일화가 기억난다.
한 농가의 여인이 매일 인부 대여섯 명의 식사를 준비해왔다. 한 끼를 준비하기 위해 온종일 시간을 들여야 했다. 밥만 차리다가 하루가 다 가버린 셈이다. 결국 그녀는 조용히 미쳐버렸다고 한다. 왜 정신을 놓아버렸던 걸까? 치료받으러 가는 마차 안에서 여인이 반복해 읊조렸던 말에 답이 있다.
"인부들이 20분 만에 싹 먹어 치웠어. 20분 만에 다 먹어 치웠어."
하루 종일 준비한 음식이 허무하게 사라졌다. 나는 그 말에 일종의 동지애를 느꼈다. 명절 밥상도 마찬가지다. 며칠간 식사 준비에 들이는 시간이 무색하게 식구들은 음식들을 빠르게 흡입해버린다. 이게 한국 며느리들만 겪는 일이 아니었다니.
이 서글픈 중노동에 대한 헬렌 니어링의 해결책은 무엇이었을까?
식사를 간단히, 더 간단히, 이루 말할 수 없이 간단히 -빨리, 더 빨리, 이루 말할 수 없이 빨리- 준비하자. 그리고 거기서 아낀 시간과 에너지는 시를 쓰고, 음악을 즐기고, 곱게 바느질하는 데 쓰자. 자연과 대화하고, 테니스를 치고, 친구를 만나는 데 쓰자. 생활에서 힘들고 지겨운 일은 몰아내자. -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 중
헬렌 니어링이 제안한 노동을 줄이는 비결은 '간단히', '빨리' 준비하기였다. 명절 상차림은 푸짐해서 보기 좋고, 식욕도 돋우며, 먹는 즐거움이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종류와 양이 많기도 하다. 고기류, 전류, 튀김류, 나물류, 삶은 해물, 탕류, 과일에 떡은 기본이요, 다식에 전통 음료까지. 이 수많은 음식들을 다 차리려면, 도저히 간단할 수 없고, 빠를 수도 없다.
심지어 명절 음식은 유난히 조리 과정이 복잡하다. 명절 갈비를 삼겹살처럼 굽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그럴 수 없다. 고기 핏물을 빼고 준비한 양념에 충분히 재운 후 끓여야 한다. 갈비뿐만 아니다. 산적, 튀김, 전, 탕, 나물 등을 만들기 위해 각종 재료를 반죽하고, 굽고, 튀기고, 데치고, 무쳐야 한다. 종류도 많고, 손도 많이 가며, 넉넉히 준비해야 하는 명절 음식. 결국 여성들은 그 많은 음식을 준비하느라 쉬지 못한다.
시어머니께서는 새우, 오징어, 고구마를 튀기는 수고로움을 줄이기 위해 튀김을 돈 주고 사셨다. 나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명절 상차림을 간소화하자고 제안하고 싶다. 세 가지 과일을 한 가지로 줄이고, 세 가지 튀김을 한 가지로 줄이자. 30장을 굽던 전은 10장만 굽고, 세 종류를 사던 생선은 한 종류만 사자. 노동을 줄이기 위해 남의 노동을 살 수도 있지만, 덜 먹는 방법도 있는 법이다.
이렇게 명절 노동을 줄이면 시간이 남는다. 그 여유를 즐기며 가족들과 산책하고, 술과 차를 마시면서 수다를 떨자. 힘들고 지겨운 명절 노동을 몰아내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고, 다 같이 앉아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 나눌 수 있다.
함께 일하기
나는 외식을 줄이고 집밥을 차려 먹으면서, 식비를 과거 대비 한 달 40만 원 정도 절약하고 있다. 1년 저축액을 480만 원 늘린 셈이다.
사람들은 묻는다. 차라리 40만 원을 쓰는 게 어떻겠냐고 말이다. 얼마간의 돈으로 편하게 김밥을 사 먹고, 때로는 남이 구워서 배달까지 해주는 삼겹살을 먹는 게 낫지 않냐고.
나는 집밥의 수고로움을 더는 쪽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한쪽에 쏠려 있던 육아와 가사 노동을 수많은 토론(이라 쓰고 다툼이라 읽는다) 끝에 바로잡았다. 집밥을 하는 게 힘들고 억울하다면 그건 집밥 때문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문제가 집밥이 아닌 다른 데 있을 경우, 외식으로 덮어버려선 안 된다. 나중에 터질지도 모른다. 카드빚이 늘어나서 터질 수도 있고, 외식하고 돌아와서도 여전히 부부 중 한 사람만 청소기를 돌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명절 음식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음식이 아니다. '노동의 불균형'이다. 명절 노동이 힘든 건 육체적으로 고되기도 하지만, 정신적으로 서럽기 때문이다. 며느리인 우리 모두 귀한 사람이라 배웠다. '인간은 평등하다'는 21세기 명제에도 불구하고 명절에는 일해야만 하는 사람과, 일할지 말지를 선택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나눠진다. 일해야만 하는 며느리의 자존감은 쭈그러들기 십상이었다.
시어머니께서는 돈 주고 송편을 맞춤으로써 며느리들의 노동량을 줄여주셨다. 나는 절약가로서 다른 방법을 택하고 싶다. 송편을 돈 주고 사는 대신 함께 빚어 노동량을 줄이고 싶다. 몸도 덜 고되고, 그간 혼자 일하던 여성들의 쭈그러든 자존감도 펴지리라. 나는 가족이 모두의 노동으로 모두가 행복을 누리는 관계이길 바란다. 온 식구가 둘러앉아 빚는 송편이라면 노동의 빛과 결이 달라질 수도 있다. 뭐든 짐을 나눠서 지면 기꺼운 마음으로 하게 된다.
그리고 나는 더 나아가 일회용 용기를 쓰지 않아도 되는 명절을 이뤄내고 싶다. 시어머니의 진심을 충분히 알지만, 명절 한 상 차린 후 50L 쓰레기봉투에 가득 찬 일회용 용기를 볼 때마다 지구에 죄를 짓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최소한의 소비, 최소한의 명절
누군가는 "꼭 음식을 직접 만들어야 할까요"라고 질문할지도 모르겠다. 요리는 분명 귀찮은 일이다. 설거지는 두말할 것 없다. 그럼에도 나는 다 같이 송편을 빚고, 다 같이 기름기 묻은 그릇을 닦고 싶다. 좋은 재료로 정갈한 밥상을 차리고, 뒷정리까지 마치는 일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사람으로 살고자 한다. 돈을 쓰면 수고로움을 줄여줄 수는 있지만, 돈에 의존할수록 내가 점점 무능해진다는 위기감이 들기 때문이다.
나는 송편을 빚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식구들 먹을 전 몇 장 정도는 구울 수 있는 어른이고 싶다. 이런 어른은 번 돈보다 적게 쓰고, 남은 돈을 저축할 수도 있다. 스스로 할 줄 아는 게 많다는 건 절약해서 저축할 여력도 많다는 의미다.
며느리들의 명절 노동을 줄이기 위해 필요한 건 떡집과 반찬가게와 일회용 용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며느리들에게 진짜 필요한 건 '미니멀리즘' 아니었을까. 적은 돈과 시간, 에너지로 다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고민하다 보면 포기할 것과 새로 해야 할 일이 구분되기 마련이다.
시어머니께서 당신만의 방식으로 명절 혁명을 이뤄내신 것처럼, 나도 나답게 더 나은 명절 문화를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