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를 결정할 땐 관련부서 직원들 전원이 직급 상관없이 모두 참여하고 있어요. (투자 대상이) 일정 점수가 안되면, 이사장이나 대통령이 나서 (투자를) 지시해도 할 수가 없어요."
그는 당연하다는 표정이었다. 차성수 한국교직원공제회 이사장의 말이다. 차 이사장은 유독 '민주적', '수평적' 이라는 단어를 많이 썼다. 기자가 다른 연기금에 비해 교직원공제회의 투자 운용 실적이 좋은 이유를 물었을 때였다. 차 이사장은 "어떤 외압도 받지 않고, 독립적이고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교직원공제회는 금융시장 등에선 조용한 '큰 손'으로 통한다. 올해 4월말 기준으로 자산만 36조 1081억원에 달한다. 회원수도 81만명에 이른다. 회원 대다수는 국내 초중고 교사와 대학 등 교육기관에서 일하고 있다.
사학연금의 경우 교사 등이 강제로 가입되는 반면, 공제회는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1971년에 교직원 7만명이 자산 12억원으로 시작했다. 50여년만에 회원수는 10배이상, 자산규모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증가했다.
특히 최근 5년동안 교직원공제회가 투자로 올린 수익률은 평균 5.9%에 달한다. 글로벌 경제의 침체속에 대부분 연기금 투자 실적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등 저조했던 것에 비하면 놀라운 성적표다. 공제회는 이미 국내외 금융시장 뿐 아니라 에너지 등 환경친화적인 인프라에도 적극 투자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교직원공제회 빌딩에서 차 이사장과 마주 앉았다. 차 이사장은 지난 참여정부때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을 지냈고, 서울 금천구청장을 오래동안 지내면서 현장에 밝은 행정가로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지난해 10월 교직원공제회 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후 81만 회원 조직을 이끌고 있다. 여름 휴가도 잊은 듯 그의 일정표는 빼곡했다.
시장의 조용한 '큰손' 교직원공제회... 36조원 고수익 운용 비결
- 두달 후면 이사장으로 일하신지 1년이 돼 간다고 들었는데요.
"점점 더 책임감을 크게 느끼고 있어요. 처음에 들어와서 이런 저런 개혁안을 들고왔는데...(웃으면서) 우리 직원과 회원들의 요구를 잘 받아서 하나씩 정립해 나가고 있습니다. 특히 공제회 (자산 등) 규모가 커지고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커지면서 어느때보다 사회적 책임도 크게 느끼고 있어요."
- 사실, 일반 국민들 사이에선 교직원공제회라는 이름 자체가 생소한 분들도 있습니다. 2021년이면 50년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예전의 '계(契)' 나 '두레'와 같은 공동체 문화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된 것으로 보면 됩니다. 전국의 초중등학교 선생님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교직원이 되시면 대체로 공제회에도 가입하시고, 전체 교직원의 88% 정도가 회원이에요. 우리가 해야할 가장 중요한 일은 회원들이 매달 낸 돈을 잘 관리해서, 그분들이 퇴직할때 잘 돌려드리는 것이에요."
- 자료를 보니까, 자산규모가 엄청나더군요.
"(지난 4월말 기준으로) 36조원이 넘어섰으니까요. 회원이 80만명이 넘는데, 이들을 위한 금융기관으로서, 무엇보다 재정건전성이 중요하잖아요. 작년에 대부분 연기금 등의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했어요. 대신 우리는 작년에도 4.5% 성장을 했죠."
차 이사장은 "전체적으로 국내외 경제상황이 어려워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가 쉽지않고, 수익도 올리기가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교직원공제회는 국내외 금융시장 이외 각종 친환경 인프라 사업 등 대체 투자에도 꾸준히 비중을 늘려왔다. 그는 "작년에 대체 투자 부문에서 11.0% 실적을 올렸다"고 소개했다.
- 다양한 부문의 투자를 늘리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그동안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 따로 있는지.
"그것이 조직문화와 연결이 돼 있다고 봐요. 특히 돈을 움직이는, 기금운용에 대해선 철저하게 민주적으로 하는 겁니다."
- 민주적으로요?
"(고개를 끄덕이며) 좀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최근 좋은 투자처를 찾기도 어렵지만, 중요한 것은 투자 결정을 제대로 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죠. (투자 결정을) 이사장이나 팀장이 지시해서 하는 것이 아녜요. 투자관련 부서에서 일하는 직원은 직급과 상관없이 함께 결정하는데요, 이같은 수평적 의사결정이 기금 운용의 안정과 효율성을 가져왔다고 보는 거죠."
- 사실 지난 박근혜 정부 시절, 국민연금의 경우 여러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당시 보건복지부장관과 공단 이사장 등이 사법처리를 받기도 했는데요.
"직장내 민주주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됐죠. 사실 민주주의라는 것이 1987년 이후 제도로서 만들어지긴 했지만, 상호 신뢰의 문화로 자리잡기까지는 30년 넘는 세월이 걸렸어요. 경제민주화 역시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기업이나 공장에서의 민주주의는 부족하죠. 오죽했으면 법으로 규제를 하겠습니까."
조직문화와 혁신 그리고 민주주의
그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흔히들 '민주주의는 공장 문 앞에서 멈춘다'라고 합니다. 특히 우리 직장문화는 여전히 과거 권위적인 관행들이 남아있어요. 지금 보세요. 전체 인구 구조나 세대가 바뀌면서, 사회전반에 걸쳐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고 정치와 사회도 변하는데 노동과 삶의 현장은 잘 바뀌지 않고 있는데, 안타깝죠. 민주적인 조직문화는 이젠 필수가 되는 시대예요. 이것이 조직 혁신의 '키(핵심)'라고 생각해요."
- 그동안 사회든, 기업이든 다양한 부문에서 '혁신'을 이야기해 왔는데.
"그래요. '혁신'이라는 말을 하지만, 그 바탕이 되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봐야하는 거예요. 저도 여전히 과거와 같은 방식이 남아있을 수 있고, 가끔 실수도 해요. 중요한 것은 과거 관행을 빨리 정리하고, 수평적 조직문화를 만들어야죠. 그것을 통해서 서로 신뢰하고 협업을 통해서 성과를 내는 것이 혁신이죠."
교직원공제회는 '더 케이웨이(The-K Way)'라는 이름으로, 조직문화 혁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차 이사장은 "기존의 수직적인 조직문화에서 수평으로, 지시에서 소통으로, 차별에서 평등으로 변화를 꾀하는 과정"이라며 "이를 통해 기금운용의 투명성과 안정성을 유지하고, 조직의 지속가능성도 높여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공제회 회원만 80만명이 넘는 거대 조직입니다. 회원들 사이의 이해와 요구도 다양할 것 같은데요.
"(웃으면서) 물론 쉽지 않죠. 기본적으로 공제회는 회원들의 생활안정과 복지를 위해 존재하는 곳입니다. 이제 조직이 50여년이 돼 가면서, 세대간의 차이에 따른 요구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어요. 인구 고령화에 따른 한국사회의 변화가 우리 공제회에도 그대로 나타나는거죠. 이제 10년후에는 80세 회원들도 엄청 많아지게 됩니다. 미래를 준비해야죠."
- 그래서 이번에 별도의 티에프(TF) 조직을 꾸리신거군요.
"내후년이면 공제회가 만들어진지 50년이예요. 이때는 과거 베이비부머 세대였던 회원들이 대거 은퇴를 하게됩니다. 이들 세대에 맞는 복지서비스를 만들어야죠. 중요한 것은 지난 50년을 발판삼아 앞으로 50년, 100년동안 지속가능한 공제회를 만들어가는 것이죠."
그는 '지속가능성'이 공제회가 앞으로 나아가야할 핵심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계속 늘어날 수십조원에 달하는 자산을 운용하거나, 국민경제에 미치는 책임과 회원들의 만족도를 위해서라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서 조직내 필수적인 운용원리로 '민주주의'를 재차 강조했다. 이를 바탕으로 공제회가 현재와 미래세대의 연결과 소통의 창구가 돼야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 스스로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 어떤 면에서 쉽지 않다고 생각하는지.
"예를 들어 사회공헌 사업을 할때, 과거에는 얼마를 어디에 기부하고, 사진찍고... 이런 보여주기식 사업이 있었죠. 하지만 이젠 이런 사업도 책임의식을 갖고 매우 예민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회공헌이든, 복지사업이든 중요한 것은 회원들의 삶의 현장에 어떤 영향을 주는 것이냐예요."
- 단순 보여주기식 사업이 아닌 회원들이 정말 필요로 하는 사업을 하자?
"현장 교사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바로 교육 현장이예요. 최근 몇년사이 과거와 같은 교육시스템의 문제가 드러나면서, 교사들의 자존감이 크게 떨어지고 있습니다. 공제회 차원에서 교사들이 현장에서 겪는 각종 고통과 고민 등을 치유하기 위해 '회원 심리상담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물론 철저하게 익명성을 갖고 상담을 진행합니다. 또 교사들이 자율성을 갖고, 창의적인 수업을 하고 싶다고 하는데 예산때문에 못한다고 해요."
- 공제회에서 이같은 수업을 원하는 선생님도 지원해주겠다는 거군요.
"우리 회원들을 위한 복지사업이기도 하고, 어찌보면 '교실혁명' 세상을 바꾸는 사회공헌 사업이기도 하죠. 공제회의 존재 기반은 교육에서 나옵니다. 교육은 다음 세대를 위한 것이죠. 이것도 투자라고 봐요. 올해 임시정부 100년을 맞이해서 교직원과 청소년 등을 대상으로 역사탐방을 하고, 미래 교사인 사범대와 교대 등 학생 대상으로 해외탐방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다 그 때문이죠."
그의 생각은 또렷했다. 81만 교직원 회원을 위한 조직의 지속가능성이다. 어느 금융기관보다 높은 수준의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면서, 회원들의 복지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다. 인구 고령화와 다양한 세대간의 요구도 공제회가 넘어야 할 큰 산이다. 차 이사장은 그 산을 넘기위해 다시 '민주주의'를 강조한다. 수평적 의사결정과 소통,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혁신. 차 이사장이 그리는 교직원공제회의 미래는 여기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