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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나를 붙잡은 말들'은 프리랜스 아나운서 임희정씨가 쓰는 '노동으로 나를 길러내신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아빠가 얼마 전 72년 만에 처음으로 면접을 봤다. 태어나 부여받는 나이인 1세와 지금의 나이인 72세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데. 일흔둘에 면접을 본다는 것도, 면접이라는 것을 태어나 처음 본다는 것도 모두 아득해 나는 손가락으로 하나둘 부질없는 숫자들을 세어보았다.

나는 열여덟 살 때 첫 면접을 봤다. 집 앞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 후에도 수많은 회사와 사람들을 마주하며 다 셀 수도 없는 면접을 보았는데 아빠는 처음이라니.

72라는 숫자 앞에서 무너진 경력
 
 나이가 일흔을 넘기자 아무도 아빠를 부르지 않았다.
나이가 일흔을 넘기자 아무도 아빠를 부르지 않았다. ⓒ pxhere
 
그도 그럴 것이 아빠는 십 대의 나이에 면접 없이 동네 어르신의 부름을 받아 공사장에서 소일거리를 시작했다. 그 일은 일흔이 될 때까지 이어졌기에 아빠에게 면접은 생을 통틀어 없었고, 멀었고,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나이가 일흔을 넘기자 아무도 아빠를 부르지 않았다. 동네 어르신도, 함께 일하던 현장 근로자들도, 작업반장도, 아는 지인들도, 더이상 아빠를 찾지 않았다. 아빠는 맨날 누군가의 전화를, 함께 일하자는 말을 기다렸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기다릴 수 없을 것 같은 날에는 먼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고, 어디론가 나가보기도 하고, 술을 마시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도 아빠에게 일을 주지 않았다.

아빠는 여전히 힘이 셌고 온몸이 근육이었고 밥도 한 번에 두 공기씩 먹었다. 하지만 고혈압과 당뇨가 있고 몇 년 전 공사 현장 3층에서 떨어져 얼굴을 다쳐 광대뼈가 주저앉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흔둘'이었다. 아빠는 자신의 나이를 부정하고 싶었을 것이다. 젊어 보이고 싶어서가 아니라 일을 하려고. 일을 하기 위해서 어쩌면 나이를 낮추거나 속이고 싶으셨을 것이다.

한창 일을 하던 시절 아빠는 여기저기서 부르는 곳이 많았다. 작은 체구는 다부졌고 자기 몸의 몇 배나 되는 장비와 자재를 거뜬히 이고 지었고, 체력과 능력을 뛰어넘는 성실함이 있었다. 가장 먼저 현장에 나와 가장 늦게 퇴근을 했고 그다음 날도 가장 먼저 출근했던 사람이었으니까.

일을 맡기면 군소리 하나 없이 묵묵히 해냈고, 월급을 받을 때면 허리를 90도로 숙여 '감사합니다'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아빠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인사할 때나 무언가 고마운 일이 생길 때는 항상 손을 모으고 허리를 깊게 숙였다. 함께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은 아빠를 좋아했고, 일을 더 많이 주었고, 계속 주었다. 생을 통틀어 정규직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착실함으로 자기의 고용을 보장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아빠의 나이가 일흔이 넘자 모든 것은 멈추었다. 아빠는 여전히 첫차를 타고 제일 먼저 현장에 나갈 수 있고, 예전과 똑같지는 않겠지만 의지와 애씀으로 다른 사람들과 비등하게 일을 해낼 수 있고, 적은 월급이라도 똑같이 허리 숙여 인사할 사람이었지만, 일흔둘의 나이는 다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아빠의 경력과 실력과 노력은 72라는 숫자 앞에 가려져버렸다.

제발 쉬시라고, 이제 일을 그만할 때가 되었다고, 설명과 설득을 반복해도 아빠는 듣지 않았다. 돈을 떠나 자기는 아직 일을 할 수가 있는데 뭐라도 해야 한다고, 어디라도 자기를 받아주는 곳이 있으면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 말투에서 나는 한탄 섞인 간절함을 느꼈다.

아빠 인생의 첫 면접

결국 아빠를 모시고 동네 주민센터로 찾아가 일자리 구직신청을 했다. 연세가 많아 힘들 것 같다는 말과 그래도 등록해 드릴 테니 일자리가 나면 연락을 드리겠다는 직원의 설명을 들은 후, 신청서 희망직종 칸에 아빠는 두 글자를 적었다.

청소.

어딘가와 무언가를 쓸고 닦는 일, 청소. 한때 건설현장에서 능력을 인정받으며 성실한 일꾼으로 노동했던 아빠가 이제 그토록 원하고 바라는 일은 청소가 되었다니. 청소라는 일이 낮거나 미미한 일이 절대 아니지만, 그 두 글자를 보고 나니 이제 나에게 청소는 귀찮거나 하기 싫은 일이 아닌 먹먹한 일이 되어버렸다.

나와 상관 없었던 무언가가 나의 일 혹은 나에게 소중한 사람의 일이 되었을 때 생기는 감정들이 있다. 내가 집 안을 청소할 때 아빠는 집 밖 어딘가를 청소하게 될 거라는 생각이 따라 일었다. 낯선 곳들을 청소하게 될 아빠를 상상하니 차라리 건설현장보다 나은 것 같으면서도 그래도, 그렇지만, 같은 마음이 따라붙었다.

아빠의 간절한 마음이 닿았는지 주민센터에서 문자가 왔다.

'아파트 외곽청소원 모집/ 09시~15시 / 격주 토요일 근무 / 급여 107만 원 / 당일부터 근무 가능자'

아빠는 모든 조건이 좋았다. 청소라는 일도, 100만 원이 넘는 월급도, 그리고 당장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도. 그렇게 아빠는 72년 인생 처음으로 면접이라는 것을 보게 되었다. 나는 아빠에게 잊지 말고 보청기를 양쪽에 잘 끼고, 작업반장의 말을 잘 듣고, 또박또박 잘 얘기하고 오라며 걱정 섞인 응원을 보냈다. 생의 첫 면접. 아빠의 준비물은 보청기 두 쪽이었다.

당장 달려가고 싶었다. 옷이라도 한 벌 사서 입혀드리고 싶었고 차로 면접 보는 장소까지 모셔다드리고 싶었다. 아빠도 내가 고등학교 때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러 간다고 했을 때, 대학교 졸업 후 첫 입사시험을 보러 간다고 했을 때 이런 기분이셨을까. 그저 아빠의 면접을 상상해보며 합격 소식을 바라면서도, 아빠가 아파트 청소원이 되길 간절히 바라는 내가 죄송스러웠다. 응원을 하면서도 힘이 되지 못했다.

마음이 불안했다. 걱정스러웠다. 일의 여부를 떠나 아빠의 첫 면접이 애가 탔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아빠 지금 일하고 있대. 작업반장이 바로 일하자고 했단다. 아파트 청소하고 있대. 아이고 햇빛이 쨍쨍한데 모자도 안 쓰고 갔는데..."

작업반장도 나이를 뛰어넘는 아빠의 성실함을 알아보셨던 것일까. 이렇게나 빨리 합격하시다니. 전화를 끊고 아빠가 일을 하고 있다는 말과 엄마가 모자를 챙겨주지 못했다는 두 마디 말이 아빠의 보청기처럼 양쪽 귀에 박혔다.

순간 나는 일을 하지도, 모자를 쓰지도, 나가지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빠의 합격 소식이 기쁘고 슬펐고, 엄마의 걱정이 고맙고 짠했다. 이제 아빠 생의 두 번째 직업이 생겼다. 아빠는 건설현장 노동자 다음으로 청소원이 되었다.

아빠의 합격을 자랑하고 싶다
 
 아빠는 건설현장 노동자 다음으로 청소원이 되었다.
아빠는 건설현장 노동자 다음으로 청소원이 되었다. ⓒ pexels
 
나는 어떤 감정을 품어야 할까. 자식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딸이 아빠를 생각하는 마음으로써, 한 사람이 한 사람을 헤아리는 마음으로써. 한동안 생각이 흩날려 정리할 수 없었고 마음이 요동쳐 무엇도 다잡을 수 없었다. 청소원이 된 아빠에게 멋진 모자를 하나 사드려야 하나. 보약을 지어 드려야 하나. 용돈을 보내 드려야 하나. 아니다. 한 달 후 아빠는 월급을 받으면 나에게 용돈을 쥐여주실 분이었다.

아빠의 취업을 축하해 드리고 싶다. 면접도 한 번에 붙고 바로 일도 시작하는 그 능력과 체력에 힘껏 박수를 보내고 싶다. 새로운 일터에서도 아빠는 건설현장에서 일했던 그때처럼 많은 사람들의 부름을 받고 성실함을 인정받고 그 보상으로 월급도 받을 것이다. 급여가 들어오면 여전히 허리 숙여 작업반장에게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시겠지.

그러고는 오늘 아빠가 월급을 받았으니 다 같이 외식을 하러 가자고 제안하실 것이다. 아빠는 자신이 번 돈으로 가족에게 고기를 사 줄 때 제일 행복해하셨다. 아내와 자식에게 고기를 많이 그리고 자주 사 주기 위해 매일 노동했을 아빠.

그래서 나는 아주 기쁘게 고기를 먹으며 아빠의 쓸모와 가치를 마구마구 인정해 드리고 싶다. 내가 첫 직장에 합격했을 때 뛸 듯이 기뻐하며 나를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녔던 아빠처럼, 일흔둘 생의 첫 면접에서 단번에 합격한 아빠를 여기저기 자랑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필자의 브런치(www.brunch.co.kr/hjl0520)에도 실립니다.


#아버지#청소원#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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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면 삶의 면역력이 생긴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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