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이 두 달도 남지 않았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일상에 제약이 많았기에, 일 년이 통째로 사라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어느 해보다 많은 변화의 파도가 밀려온 해였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언택트(untact)'가 아닐까? 언택트는 '접촉하다'는 의미의 'Contact'에 부정의 의미인 접두사 'Un-'을 합성한 신조어로, 가급적 사람과 접촉하지 않는 '비대면'의 경향이나 행동 등을 말한다. 50대가 된 나는 일상에 들어온 언택트란 파도에 빠르게 올라타기가 쉽지 않았다.
배달 안 하던 맛집 음식점도 배달앱에 등극
나는 얼마 전까지 배달 음식 주문 앱을 쓰지 않았다. 독점 배달 앱의 수수료 논란을 보면서, 직접 가게로 전화 주문을 해야 소상공인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루는 배달 메뉴 전단을 찾고 있는 내가 답답했는지, 아이들이 배달 앱으로 시키자고 했다.
주문은 생각보다 간단했고, 심지어 '문 앞에 놓고, 벨만 눌러주세요'라는 배송 주문도 요구할 수 있었다. 손가락 몇 번 움직인 후,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내 눈앞에 턱 하니 놓인 따끈한 쌀국수를 보고 나도 모르게 내뱉었다.
"완벽한 언택트로구나!"
그후로 자꾸 배달 앱에 손이 간다. 음식 가게로 주문 전화해서 주소를 부를 때 아파트 동호수를 여러 번 확인할 필요가 없다. 메뉴와 개수를 말하는 과정에서 착오가 생길 일도 없고, 가끔 무뚝뚝한 사장님의 응대로 기분 나쁠 일도 없기 때문이다.
최근 내가 사용하는 배달 앱에 우리 동네 유명한 중국 음식점이 올라왔다. 화교 3대째 운영 중인 이 음식점은 배달 하지 않는 집으로 더 유명했다. 전통도 트렌드를 이길 수 없구나 싶었다.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언택트는 대세다. 사람들은 앱으로 미리 주문하고 가게에 들러 가져간다. 대형 커피 전문점에서 시작한 사전 주문 앱은 패스트푸드 업계로 빠르게 퍼지고 있다. 소비자가 직접 고른 다양한 조합으로 즉석에서 샌드위치를 만들어주는 패스트푸드 브랜드도 올 7월부터 앱 사전 주문 서비스를 실시해 반응이 좋다 한다. 실제 이용해보니 천천히 고를 수 있어 좋았다.
고른 빵을 굽겠느냐 말겠느냐부터 시작해 치즈, 채소, 소스 등 즉석에서 6~7가지 선택을 직원에게 바로바로 말해야 하는 부담감이 없다. 매장에서는 잠깐 고민하느라 머뭇거리면 주문을 기다리는 직원에게 미안하고, 내 뒤에 기다리는 다른 고객도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일반 음식점이나 고속도로 식당에서도 무인 주문대(키오스크)를 통한 주문도 점점 일반화되어 가고 있다. 앞으로는 사람과 사람이 마주 보고 주문 하고 주문 받는 일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는 사람들 간의 관계에도 언택트가 들어오게 했다. 내가 속한 독서 모임도 원격 화상회의로 만난다. 처음에는 평소 화상 전화도 잘 사용하지 않는다는 회원들이 화면상으로 만나자 어색해했다.
오디오를 켠 발표자는 사람들의 반응을 알 수 없으니, 혼자 이야기를 하다 보면 뻘쭘한 분위기로 끝나곤 했다. 듣는 사람도 바로바로 반응할 수 없어 답답했다. 대화의 공기(분위기)까지 공유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횟수가 늘어나면서 회원들은 오디오를 적당히 켜고 끄며 토론에 참여하고, 적절히 몸짓(바디 랭귀지)을 사용하기도 한다. 모임 장소에 오가는 시간을 아낄 수 있는 등 긍정적인 면도 있었다. 하지만 회의 방을 만드는 내 차례가 되자 또 한 번 언택트 산을 넘어야 했다.
구글 아이디로 접속하고 하라는 대로 따라갔는데 갑자기 "캘린더에 일정 세부 정보를 공개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에 당황했다. '왜 내 스케줄을 천하에 공개하라는 거지?', '누구든지 내 스케줄을 알게 된다는 건가?', ' 혹시 비공개로 하면 회의가 개설되지 않는 건가?' 혼란스러웠다.
50대 회원 중에는 나처럼 당혹스러운 경우가 많았다 한다. 영어로 된 홈페이지에 들어가 헤매거나, 대학생 자녀에게 하나하나 물어보다 구박을 받기도 했단다. 하지만 그렇게 하나씩 배우면서 우리도 적응해간다.
내가 전자책을 보다니...
언택트는 사람 간의 관계뿐 아니라 물건에 대한 생각도 바꾸게 했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에 따라 공공도서관이 자주 문을 닫았다. 일상 외출도 자제하니 눈으로 보고 책을 고르는 서점에도 발길이 뜸해졌다.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주문하다가, 공간적 경제적 이유로 전자책 대여를 생각했다. 영화∙TV OTT서비스처럼 정액권을 끊고 무제한으로 대여할 수 있는 전자책 플랫폼을 알게 되었다.
처음엔 물성이 없는 전자책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하지만 책 뷰어(viewer)를 나에게 맞게 설정하니 쉽게 금방 적응되었다. 무엇보다 글자를 아주 크게 키워서 읽으니 속이 다 시원했다. 노안이 와서 작은 활자를 읽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평소 궁금했던 책을 부담없이 펼쳐 볼 수 있는 것도 좋았다. 모바일로도 연동이 되니 자투리 시간에도 쉽게 책을 읽는다. 필기구 들고 밑줄을 그을 필요도 없다. 손가락으로 드래그만 하면 여러 색깔로 저장된다. 검색 기능도 있어서 내가 원하는 단어를 검색하면 해당 본문을 찾아준다.
전자책은 나이가 들수록 가볍고 단순하게 살자는 내 삶의 명제와도 잘 맞는 듯하다. 디지털카메라가 일반화되면서 인화된 사진과 두꺼운 앨범이 사라지듯이 어쩌면 종이책도 점점 사라는 것은 아닐까? 김초엽의 SF소설 <관내분실>은 종이책이 모두 전산화된 가까운 미래, 도서관을 죽은 사람들의 기억(마인드)을 보관하는 추모의 공간으로 묘사한다.
1950년대 텔레비전 보급으로 영화관이 사라질 것이라고 하고, 1980년 비디오(TV)가 라디오를 죽인다고(The Buggles <Video Killed the Radio Star>) 노래 했지만 극장과 TV, 라디오 모두 공존한다. 종이책과 전자책도, 장소를 제약받지 않는 비대면 회의와 얼굴을 마주한 온기있는 만남도, 주문 앱을 통한 편리한 배달음식과 주방에서 막 만들어낸 식당 음식도 여전히 공존할 것이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가 코로나19가 종식된 이후에도 언택트 환경은 빠르게 진행돼 그 비중이 높아질 것으로 예측한다. 새로운 언택트 환경은 대개 IT 기술적 진화를 바탕으로 한다. 나이가 들수록 그 속도를 따라잡기는 쉽지 않겠지만, 언택트 문화에 소외되지 않기 위해서는 유연한 사고로 적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대면은 인간적이고 비대면은 비인간적이라는 편향된 사고도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만 바뀔 수 있었다. 아직은 문자보다 전화 통화로 목소리 듣는 것이 좋고, 택시 앱보다 여전히 길에서 손을 흔들어 택시를 잡는 나조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