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재보궐선거 딱 한 달 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이 정국을 뒤흔들었다. 그런데 선거 후 한 달 가까이 지난 5월 초 현재, 너도 나도 부동산 민심이 중요하다고들 하지만 '투기를 어떻게 잡을까'를 말하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지금은 종합부동산세·대출규제 등을 완화하자는 얘기가 여당에서 나오고 있다.
4월 2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난 신정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재선, 전남 나주화순)은 이 상황을 가리켜 "임기응변"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선거 패배 원인도 "모든 과정에서 현상적인 대처만 많이 했다"는 데에서 찾았다. "국민들이 '민주당은 여의도에만 있구나'란 느낌이 들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지금 민주당은 "(현장 사람들을 여의도로) 불러들여서 (이야기를) 듣지 않나"라고도 진단했다.
해법은? '정교함'이다. 그는 부동산 대책에서도 '투기는 엄단'이라는 기조를 제대로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놔서 근본적인 개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합법적 행위여도 도덕적으로는 허용되지 않도록 (제도를) 섬세하게 설계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래서 제가 부동산백지신탁제를 제안했다. 현재로선 가장 정확한 해법이라고 생각한다."
신정훈 의원은 지난해 7월 국회의원과 1급 이상 고위공무원의 경우 실거주용이 아닌 부동산은 매각하거나 수탁기관에 관리·운용·처분을 위임하는 부동산백지신탁제(공직자윤리법 개정안) 법안을 대표발의했다. 그는 "(부동산 시장은) 정보나 자산이 부족한 사회적 약자가 뺏기는 구조"라며 "누군가 피눈물나게 하는 부(富)의 강탈을 막는 사회적 규범을 만들자"고 했다.
"조국-박원순 문제 접근한 자세가... 결국 문제해결도 못해"
- 4.7 재보선 결과는 어떻게 봤나.
"(민주당이) 국민을 화나게 한 것 아닌가. 국민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지 못하고, 당위적이며 우리가 주장하고 싶은 것에만 너무 의존해서 정치를 풀어왔다. 가령 조국, 박원순, 윤석열-추미애 등등을 우리가 '원칙적으로 틀렸다'고 하기보다는 거기에 접근하는 자세가... 국민의 불편한 마음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했다. 결국 이 문제들 모두 미완으로,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은 것 아닌가. 이런 자세부터 우리가 오만했다고들 하지 않나.
최근 정부나 국회에서 내놓은 각종 정책들이 임기응변식이었다. 부동산 대책 등만 봐도 그렇다. 또 제가 호남이라서 그런지 지역에선 '180석을 만들어줬는데 왜 일을 그따위로 하냐'고들 한다. 사실 압도적 지지율로 정부를 세우고 국회 의석 수도 얻었는데 개혁과제, 불평등 문제 등을 폼나게 하지 못했다. 이제 와서 볼 때는 다 예상할 수 있던 문제였다는 생각도 드는데... 근본적으로 집권 여당의 책임감, 유능함이 다 (국민의 기대나 실제 필요한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 '예상할 수 있던 문제였다'는 것은 어떤 사안들을 말하는가.
"아주 정점에 있던 현안들 대부분이다. 윤석열 총장 징계 문제, 국가인권위원회의 고 박원순 시장 사건 조사 결과, 법원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배우자) 정경심 교수 판결... 법원 판결이 나오고 이럴 때쯤 반응하면 굉장히 늦은 거다.
정치는 그보다 앞서서 판단해야 하는데, 대개 이 사안들은 위험신호가 왔을 때에야... 우리가 덩치가 커서 그랬나도 싶고, 판단이 늦었다. 그리고 이 사안들은 설령 우리가 인정하고 싶지 않더라도 이미 국민들이 동의하고 사회적으로 권능을 가진 시스템에서 나온 판단 아닌가. 좀더 겸손해야 했다."
- 왜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전체적으로 당의 상층부, 또 당청 관계에선 청와대가 중심이다 보니 당이 국민의 의사, 또 의원 전체의 뜻을 수렴하는 데에 굉장히 부족했다."
"계파의 문제? 문파의 문제? 중심 못 잡은 건 우리 책임"
- 선거에서 참패했지만, 전당대회에서도 쇄신의 방향이나 방법 등을 둘러싼 토론이 치열한 분위기는 아닌 것 같다.
"이번 전당대회 자체가 당원들과 만남이 불가능하다. 합동연설회 등을 할 때 유튜브 생중계를 봐도 시청자가 보통 150명, 많아야 250명이더라. 구조적으로 당원들과 소통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후보자들이 4.7 재보선 평가나 쇄신 노력 등을 많이 얘기할 기회가 부족했다.
그런데 저는 4.7 재보선 결과는 우리의 정책과 태도의 문제라고 본다. 이걸 철저하게 분석해서 혁신안을 내놔야 한다. 하지만 은근슬쩍 이 문제가 계파 또는 청와대의 문제인 것처럼 보는 발언들이 전당대회에서 나왔다. 굉장히 잘못됐다. 당의 시스템이나 당청 관계 문제를 봐야지, 마치 우리 정체성이나 가치·계파 문제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프레임 씌우기다. 당에도, 한국 정치에도 도움되지 않는다."
- 강성 지지자, 이른바 '문파' 문제도 논란거리다. 조응천 의원은 27일 페이스북에 '문파가 문자행동을 할수록 재집권은 멀어진다'고 썼는데.
"저는 그게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요소'라고 본다. 강성 지지층에게 책임을 돌릴 게 아니다. 인기영합주의에 편승하지 않도록 잘 경계해야 하는데, 중심을 못 잡은 것은 우리 책임이다.
우리는 문재인 대통령의 높은 국정수행 지지율에 편승한 경향이 있다. 또 당의 정책 해결 능력을 훨씬 확장해야 했는데 오히려 폐쇄적으로 변했다. 더 의석 수가 적었을 때는 을지로위원회 등을 만들어 적극 현장을 찾았다. 지금은 (현장 사람들을 여의도로) 불러들여서 (이야기를) 듣지 않나.
또 하나 중요한 것, 놓친 것이 있다. 국민들이 '민주당은 여의도에만 있구나'란 느낌이 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어 국민의힘이 지배하는 지역과 민주당이 적극 지지를 받는 지역에선 정치의 품질이 달라야 할 것 아닌가. 또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잘하니까 광역단체장 평가 1위를 하지 않나. 그런 지방자치 영역에서도 민주당의 정책·소통 능력을 훨씬 키워야 한다."
"기준 없는 국회의원 부동산 전수조사는 폭탄놀이"
- 계속 민주당의 정체성, 가치 등은 지켜가야 한다고 말하는데, 민주당이 어떤 면에서 그걸 잘 못 지켰다고 평가하는 건가.
"민생 문제에는 굉장히 세심하고 정교하되 가치나 도덕적 기준에는 단호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이 모든 과정에서 임기응변, 현상적인 대처만 많이 했다.
이를 테면 부동산 문제도 1가구 2주택도 안 된다며 처분하라고 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부모 부양이나 자녀 교육 등으로 1가구 2주택인 경우도 있다. 도시민들이 지방에 생계를 위해 보유한 집도 있는데, 우리는 그것까지 단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정책 불신이 생겼고, (민주당이 내세운 기준이) 사회적으로나 도덕적 규범으로 자리잡는 것에도 실패했다.
또 공직자 부동산 투기 의혹이 터지니까 9급 이상 모든 공직자의 부동산을 신고하자는 얘기도 나왔는데, 어찌 보면 '마녀사냥' 같은 느낌이다. 투기성 부동산은 엄단해야 하지만 민생·생계형 부동산은 그보다 자유로워야 하는 게 민주주의고, 시장주의에 기반을 둔 대한민국에 맞는 정책이다."
- 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 '친문'이고, 대학생 시절인 1985년 미국 문화원 점거농성을 했던 '86세대'다. 친문과 86세대가 민주당을 주도하면서 세대교체도 안 되고, 당에 온정주의가 작동했다는 평가는 어떻게 생각하나.
"아주 어려운 질문인데... (안경을 고쳐쓴 뒤) 일단 저는 입당한 지 6년 정도밖에 안 돼서 계파엔 어울리지 않는다. 다만 문재인 정부를 만들 때 기여한 부분은 있다. 또 저는 (중앙정치 중심으로 활동한) 86세대의 길을 걷지 않고, 현장·지자체의 길을 쭉쭉 걸어와서 계파를 따지는 것을 경계한다. 또 언론 등에서 이렇게(친문, 86세대) 말하는 것은 분열과 갈등의 프레임이라 생각한다.
우리 스스로 도덕적 기준을 굉장히 높여야 한다. 동시에 정교해야 한다. 그런데 정교하지 못해서 자해적·자학적 기준을 너무 많이 설정했다. 국회의원 300명 부동산 전수조사만해도 우리가 기준을 설정해서 들어가야 한다. 그것도 없이 결과 나와서 공개하면 어떻게 될까. 얼마나 위험한 폭탄놀이인가. 그런 경계를 잘 구분해야 한다."
- 그럼 민주당 소속 공직자 때문에 보궐선거를 하게 되면, 후보를 내지 않기로 했던 당헌당규도 비현실적이었다고 보는가.
"우리가 여러 공론화 과정을 거쳐 바꿨으면 모르는데, 정해 놓은 규칙이 우리한테 안 맞으니까 당원투표를 핑계로 바꿔버렸다. 이런 게 임기응변식이다. 저는 광역자치단체장이 잘못했더라도 개인의 과오와 나라 전체 살림의 책임감을 비교해보면, (무공천 당헌·당규가) 조금 과도한 점이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당이 그런 원칙을 변경하는 과정은 대단히 무리였다."
"누군가의 불로소득은 누군가의 피눈물... 이걸로 막자"
- 지난 3월 초 LH사태가 터지면서 공직자 부동산 투기 문제가 큰 화제였는데, 선거 후에는 부동산 얘기할 때 전혀 거론되지 않고 있다.
"(정치권에서 부동산 문제를 두고) 혼돈이 극심하다. 부동산 대책은 공급을 늘리자, 임대사업자들의 투기성 부동산을 환원시키자, 1가구 다주택을 최소화하자 등 다양한 얘기가 있는데, 저는 부동산의 실제 쓰임을 중심으로 법을 만드는 것이 핵심 해법이라고 본다. 지금은 다들 부동산을 '재테크 수단'으로 인식한다. 토지라는 한정된 자원을 몇몇 사람이 독점해서 쓰고 있다. 이것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
공직자의 부동산 투기도 두 가지다. 내부 정보를 이용하는 문제가 있고, 일반적으로 시세차익을 노린 투기가 있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부동산 투기가 실사용을 위한 것과 시세차익을 노린 것 사이에 걸쳐져 있다. 3기 신도시 아무리 조사해봐도 공직자 이해충돌 사례는 0.01%가 넘지 않으리라고 자신한다. 나머지는 너도 나도 다 하는,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기다. 이걸 공직자만 마구 잡아도 안 되고, 그렇다고 부동산 거래를 금지시킬 수도 없지 않나.
그런데 실태를 보면, (부동산 시장은) 정보나 자산이 부족한 사회적 약자가 뺏기는 구조다. 어느 정치인(이재명 지사)이 최근 '누군가의 불로소득은 누군가의 손실을 기반으로 이뤄진다'고 정리했던데, 명쾌하다. 하지만 이건 범죄가 아니다. 결국 합법적 행위여도 도덕적으로는 허용되지 않도록 섬세하게 (제도를) 설계하는 일이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우격다짐으로 해왔다. 그래서 제가 부동산백지신탁제를 제안했다. 현재로선 가장 정확한 해법이라고 생각한다."
- 좀더 소개해달라.
"누군가 피눈물나는, 부의 강탈을 막는 사회적 규범을 만들자는 것이다. 부동산백지신탁제는 국회의원과 1급 이상 고위 공무원을 대상으로, 업무 관련성을 떠나 투기성 부동산은 보유하지 않도록 하고 처분을 강제하며 시세차익은 환수하자는 제도다. 일단 공직자들에게 지침을 제시해 전 국민에 귀감이 되는 사회적 규범을 만들어야 한다. 사람들이 '부동산 투기한다'고 너무 당당하게 말한다. 그게 누군가의 호주머니를 빼앗는다는 생각을 전혀 안 한다."
"부동산백지신탁제, 토지공개념의 기본정신 담은 제도"
- 부동산 투기 의혹은 여야 가리지 않고 나오는데, 부동산백지신탁제를 국회가 선뜻 만들까. 이해충돌방지법만해도 발의 후 처리까지 8년 걸렸다.
"이해충돌방지법도 국회의원 의정활동 포함 여부로 논쟁이 많았다. 부동산도, 지금까지 여야에서 쏟아낸 대변인 성명을 보면 각 당이 부동산 투기에 얼마나 단호한지가 담겨 있다. 그런데 정작 자신들 문제가 되면... 그럼에도 정치권이 결단해야 한다.
이해충돌방지법은 공직자의 윤리규정으로 큰 의미가 있지만, 부동산 투기대책으로는 많이 부족하다. 부동산 문화와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은 부동산백지신탁제다. 그리고 굉장히 합리적인 제도다. (부동산백지신탁관리위원회가) 엄정한 심사를 해서, 20년동안 근무했던 곳에 살았던 집, 자녀들이 다른 지역 대학에 진학해 부동산을 구입하는 경우 등은 인정하기 때문이다."
- 더 근본적인 개혁 차원에서 '토지공개념(공익을 위해 토지의 소유·처분을 제한)'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토지공개념이 우리 사회 전반의 법과 제도로 관철되는 것에 찬성한다. 그런데 부동산 백지신탁제 하나도 못하는데 헌법을 바꿔야 하는 토지공개념이 (가능할지)... 저는 토지공개념의 기본 정신을 0.01% 농도로나마 시행하는 것이 부동산백지신탁제라고 생각한다."
- 인터뷰하는 동안 부동산 문제 관련해서 이재명 지사를 호평했는데, 어떤 이들은 이 법안 자체를 '이재명법'이라고 부른다.
"저 '이재명계' 아니다(신정훈 의원은 정세균 전 국무총리와 가깝다 - 기자 주). 그런데 이재명 지사가 잘하는 것은 칭찬해주고 싶다."
[4.7 재보선 후 다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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