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옥천군 이원면 용방리. '칠방리'라는 이름이 더 익숙한 곳, 마을 깊숙이 차가 한 대 지나갈 만한 좁은 길을 따라 들어간다. 시원하게 흐르는 금강 물소리가 들리는 비밀의 숲 속 그곳에 '강변의 추억'이 있다. 왕리(46), 지헌명(64)씨 부부의 삶터이자 일터인 이곳은 '카페'지만, 마치 시골 사는 이웃집에 놀러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곳의 대표 메뉴는 다름 아닌 '딤섬'. 중국이 고향인 왕리씨의 솜씨다. 커피와 딤섬이라니. 새로운 조합이라는 생각이 들려 하는 찰나, 메뉴판 가운데를 크게 차지한 '보이차'가 눈에 띈다. "딤섬과 보이차는 원래 세트"라는 왕리씨의 말을 들으니, 딤섬과 보이차 그리고 이 카페에 대해 더욱 궁금해진다.
정말 맛있는 딤섬과 보이차를 선사하고 싶어서
부부와 이 마을의 인연은 1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에서 살던 그들은 귀촌한 지인의 집에 놀러 왔다가 마침 매물로 나온 이 집을 보고 단숨에 마음을 뺏겨 버렸다. 그로부터 2개월 뒤 부부는 이곳으로 귀촌하게 된다.
왕리씨의 고향은 북경, 지헌명씨의 고향은 서울이니만큼 도시에서만 살아온 부부이지만, 시골에 적응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마을이 크고 작은 문제로 어려움을 겪을 때도 '마을 일이 내 일이라' 열심히 도왔다. 그렇게 그들은 서서히 마을에 스며들었다. 그렇게 13년차 이원면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삶터를 바로 앞에 둔 이 공간이 카페로 쓰인 건 2년 전부터다. 이전에는 '하얀 여울꽃'이라는 이름의 식당을 운영했는데, 메뉴와 공간에 대한 고민이 계속 이어지면서 지금의 사랑방이 됐다. 이곳을 찾는 이웃과 손님이 편안하게 머물 공간을 고안한 결과. "정말 맛있는" 딤섬과 보이차를 다른 사람들도 먹어 볼 기회를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러나 업종 변경 뒤 코로나19가 확산되며 사실상 문을 닫았다. 다시금 복작복작해진 건,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딤섬과 보이차의 주재료는 모두 현지에서 직접 매수한다. 조미료도 사용하지 않는다. "모든 메뉴의 원재료만큼은 정말 자신 있다"고 자부하는 이유는 자신과 가족이 먹을 생각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그 흔한 인터넷 지도에 등록도 하지 않은 것도, 많은 사람이 찾는 가게이기보다는 이 음식의 가치를 알고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찾아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다. 커피와 무카페인 음료도 다양하다.
이곳의 여름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또 따로 있다. 여름에만 판매되는 '뚝배기 빙수'가 있기 때문. 얼얼할 만큼 차갑게 얼린 뚝배기 그릇에 얼음이 한가득 담긴 빙수라니. 바로 아래 금강의 시원한 물줄기도 그만큼 시리지는 않을 거다.
모락모락 김이 나게 바로 쪄내는 통통한 '홍콩식 딤섬'은 통새우와 부추, 두 종류다. 이곳에서는 속 재료뿐만 아니라 딤섬 피도 밀전분과 고구마전분을 환상의 비율로 섞어 직접 만든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직업이 요리사인) 한 손님이 "밀 전분으로 비율을 맞춰서 피를 만들기 어렵다"는 말을 덧붙이며 그 수고스러움을 인정한다.
강변의 추억에서는 이전에 딤섬과 함께 만두도 판매했다. 그러나 둘 중 딤섬의 인기가 확연히 높아 만두 판매를 중지하고 딤섬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딤섬은 재료를 미리 준비해야 해서 방문 전 예약을 해야 한다.
찻잎도 직접 생산... 이 부부는 보이차에 '진심'이다
"보이차는 이쪽으로 오세요."
카페 한 편에는 보이차를 위한 공간이 마련돼 있다. 목공이 취미인 지헌명씨의 작품인 티테이블을 앞으로 두고 귀여운 크기의 중국 찻잔과 차를 우리는 기구, 다양한 종류의 보이차가 그 주변을 장식하고 있다.
"크게 네 종류의 보이차가 있어요. 보이홍차, 생차, 백차, 숙차. 가공방식에 따라 달라지는데, 색과 향, 맛 모두 달라요. 종류에 따라 우리는 온도도 달라야 하고요. 생차는 찻잎을 따서 한 번 볶은 후 말린 것이고 백차는 볶지 않고 그대로 말린 거예요. 숙차는 찌고 말리는 과정을 반복하고 발효시킨 것이고요. 오래된 것일수록 비싸지죠. 어떤 종류든 독소 배출에 좋고 알코올 분해 효과가 있어서 중국인들은 술을 마시는 도중에 보이차를 많이 마셔요."
보이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 끝도 없다. 그 종류에 따라 맛이 변하는 과정, 수확하는 시기와 지역에 따라 달라지는 맛, 보관하며 숙성하는 환경이 맛에 미치는 영향, 차를 따르는 방법과 마시는 예절 등 끝없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왕리·지헌명씨 부부는 '보이차에 진심'이다.
더욱이 흥미로운 부분은 이곳 보이차가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보이차는 본래 중국 원난성 지역에서 생산된 것만이 그 이름으로 불릴 수 있다. 원난성의 높은 해발고도에서 자연적으로 자라는 차나무에서 수확한 찻잎이 '진짜' 보이차라고 한다. 왕리·지헌명씨 부부와 중국에 있는 왕리씨의 가족은 수령 500여 년이 넘는 원난성의 나무를 세 그루 임대해 매년 보이차를 만든다. 그러니까 생산부터 소비까지 직접 하지 않는 일이 없는 셈이다.
"먹는 것이기 때문에 농약 같은 것 없이 깨끗해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수확하는 나무도 직접 고르고 말리고 발효하는 과정도 다 보기 때문에 정말 좋은 차라고 자부할 수 있어요."
이들 부부가 말하는 좋은 보이차란, 잎이 크고 하나의 줄기에 잎이 여러 개 난 것, 다 우려진 잎의 모양이 본래의 형태를 유지하는 것, 높은 산에서 자라고 봄에 새로 난 잎으로 만든 것이다. 차를 우릴 때는 처음 두 번 정도는 먼지를 헹궈내는 과정으로 찻물을 버리면서 잔을 데우고 총 15회 정도 우려낼 수 있다. 횟수에 따라 달라지는 맛을 입 안 골고루 음미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현재는 모든 장비가 티테이블에 있는 탓에 함께 둘러앉아 내려 주는 차를 마시는 형식이지만, 손님이 직접 내려 마실 수 있는 방식도 고민하고 있다고. 하지만 이곳에 왔다면 차에 관한 이야기를 함께 마시는 즐거움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카페 강변의 추억은 이제 가족 같은 이웃들의 목소리로 채워진다. 지헌명씨의 목공예품을 보러 또 사러 오는 사람들의 상에도 어느새 동그란 딤섬 찜기가 자리를 차지한다.
따로 홍보하지 않아 한 번도 와 보지 못한 손님은 있지만, 한 번만 오는 사람은 없다는 이곳. 왕리·지헌명씨 부부는 방문할 손님이 담아 갈 '강변의 추억'을 위해 오늘도 미소로 맞을 준비를 한다.
월간옥이네 통권 47호(2021년 5월호)
글·사진 소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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