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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학창 시절이 끝나면 공부와 영영 작별하는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여기 '중년들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지던 골프를 배우고, 진작에 포기했던 수학책을 다시 펼쳐 든 청년들이 있습니다. 또, '먹고 살기 위해' 재테크를 공부한다는 청년도 있고요. 요즘 젊은이들의 '공부', 오마이뉴스 청년 시민기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들어봅니다. [편집자말]
 주식 투자.
주식 투자. ⓒ pixabay
 
91년에 태어난 나는 '주식은 곧 도박'이라 말씀하시는 부모님 밑에서 컸다. 그 영향 때문인지 주식은 위험한 것이라는 편견이 있었다. 어렵고 복잡한 재테크 대신 은행에 적금을 드는 게 마음이 편했다.

200만 원 남짓한 월급을 받으면, 100만 원 이상을 저축했다. 생활비를 줄이기 위해 배달음식 대신 시장에서 재료를 사 왔고, 사고 싶은 물건이 아닌 필요한 물건을 샀다. 할 줄 아는 재테크는 아끼는 것밖에 없었다. 종종 '현타'가 찾아와도 적금 만기를 기다리며 견뎠다.

1년 뒤 통장에는 정확하게 1213만7907원이 입금됐다. 1200만 원 뒤에 붙어있는 13만7907원이라는 숫자를 보자 허탈했다. 1년 동안 100만 원씩 착실히 넣어둔 대가가 14만 원도 안 되는 돈이라니. 괜히 억울해졌다.

단톡방에서는 친구들이 주식 얘기에 한창이었다. 주식에 넣어둔 돈이 2~3배 이상이 올랐다고 했다. 회사에서는 어떤 신입사원이 50만 원을 비트코인에 투자해서 1주일 만에 9500만 원을 벌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은행에서 받은 14만 원도 안 되는 이자가 너무 볼품없었다.

2년 전 나는 회사랑 가까운 동네에 전셋집을 구했다. 보증금을 마련하기 위해 7000만 원의 대출을 받았다. 당시 내 동기는 영끌을 해서 서울에 있는 구축 아파트를 매입했다. 2년의 시간이 흘렀다. 전셋집 계약기간은 끝났고, 집값은 배로 올랐다. 7000만 원에 전세를 얻었던 내 원룸은 전세 1억이 넘는다고 했다. 2년 전에 영혼을 끌어모아 매입했던 그 친구의 집은 몇 억이 올랐을까.

나의 변화

세상은 나 같은 사람들을 '벼락 거지'라고 불렀다. '벼락 거지'는 자신의 소득에 별다른 변화가 없었음에도 부동산과 주식 등의 자산 가격이 급격히 올라 상대적으로 빈곤해진 사람을 자조적으로 가리키는 신조어(네이버 지식백과)라고 했다.

나도 그것을 인정했다. 스스로 경제적, 심리적으로 패배자를 자처했다. 회사에서 받는 월급이 하찮아 보였다. 주식으로, 코인으로 월급의 수십 배를 쉽게 벌고 싶었다. 거지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주식과 코인을 사고, 집을 사는 방법밖에 없어 보였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도 변화가 필요했다. 하지만 내가 가진 자금은 적었고, 그렇다고 빚을 내서 투자할 용기는 없었다. 가장 쉽게 바꿀 수 있는 것부터 바꿔보기로 했다. 그것은 내 마음, 내 기분이었다. 정신승리.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승리였다.

1. 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잃지도 않았다는 것.
2. 이번 기회는 놓쳤지만, 다음 기회는 꼭 잡겠다는 다짐.
3. "나테크(나에게 투자하는 방법)"도 미래엔 더 큰 수익이 될 것이라는 믿음.

불안한 마음이 고개를 들 때마다 끝없이 저 생각들을 되뇌었다. 정신에서라도 승리를 하고 나면 신기하게도 우울한 기분이 나아졌다. 그리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재테크 공부를 하고, 조금씩 경험을 쌓았다.

먼저, 나만의 재무 포트폴리오를 세웠다. 돈에는 목적에 맞는 이름을 붙였다. 그에 맞게 저축과 투자의 비율을 나눴다. 당장 내년에 필요할 결혼자금은 저축을 하고, 세액공제 혜택을 받기 위해 가입했던 연금저축보험은 연금저축펀드로 이전했다.

안전하게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각종 ETF를 공부하며 장기투자 관점에서 ETF를 매수했다. 그리고 여유 자금이 생기면 그동안 눈여겨봤던 주식들을 소량으로 매수를 시작했다. 오를 때와 떨어질 때를 직접 피부로 느끼며 마음가짐과 전략을 세우고 있다.

우리는 '벼락 거지'를 거부한다 
 
 재테크에 뛰어드는 청년들의 층위는 이처럼 무척 다양하다. 이같은 새로운 흐름을 꼭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재테크에 뛰어드는 청년들의 층위는 이처럼 무척 다양하다. 이같은 새로운 흐름을 꼭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 pixabay
 
코로나19로 인해 예고도 없이 갑작스레 초저금리 시대가 왔다. 나와 같은 2030 MZ 세대(밀레니얼+Z세대)들은 부모님께 "주식하면 패가망신한다"는 소릴 듣고 자랐지만, 그 어느 때보다 주식에 열심인 세대다. 한국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해 주식 투자를 시작한 투자자(300만 명)중 절반(53.5%)이 30대 이하라고 하고, 주식 보유자 중 30대 이하 비중이 34.6%가 넘는다고 한다.

언론에서는 연일 '코인 광풍'에 대해 말하며 '고위험, 고수익을 노리는 한 방 투자자들은 보통 2030 세대이며, 이들은 빚투(빚내서 투자)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주식이든 코인이든 청년들이 유입되는 현상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들이 많은 듯하다. 이런 기사 밑에는 "코인은 곧 도박이다. 도박장에서 돈을 잃어 놓고 왜 우는 소리를 하느냐", "도박에 빠지기 쉬운 2030 세대의 투자를 막아야 한다" 등의 댓글이 보이기도 했다.

물론 이 같은 우려가 아주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주식이나 코인 등에 대해 정확히 공부하지 않은 채 단순히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사실상 투기를 하는 젊은이들이 일부 존재하는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실제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030 세대를 주 고객층으로 안정적인 분산투자를 자문해주는 자산관리 서비스 등의 사업 규모가 크게 늘었다고 한다.

이는 고위험, 고수익을 노리는 투자자들과는 별개로 안정적인 투자를 지향하는 투자자들의 비중도 많다는 이야기다. 또 요즘엔 새로운 플랫폼을 통해 미술품을 공동 구매하는 '아트테크'나 음악 저작권에 투자하는 '뮤직 테크'도 MZ세대를 중심으로 투자 규모가 커지고 있다고 한다. 재테크에 뛰어드는 청년들의 층위는 무척 다양하다.

이 같은 새로운 흐름을 꼭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자기 나름대로의 기준과 관점을 갖고 금융과 투자에 공부해나가는 동년배들도 많다고 생각한다. 기준을 밖에서 찾지 않고, 남이 아닌 어제의 나와 비교하며, 어제의 나보다 오늘은 분명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며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청년들 말이다.

'벼락 거지'나 '한탕주의'와 같은 사회가 만든 프레임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는 나와 같은 이들을 응원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필자의 브런치(www.brunch.co.kr/@silverlee7957)에도 중복하여 실립니다.


#벼락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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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오후에 마시는 아이스바닐라라떼만큼 책 읽고 글 쓰는 일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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