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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학창 시절이 끝나면 공부와 영영 작별하는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여기 '중년들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지던 골프를 배우고, 진작에 포기했던 수학책을 다시 펼쳐 든 청년들이 있습니다. 또, '먹고 살기 위해' 재테크를 공부한다는 청년도 있고요. 요즘 젊은이들의 '공부', 오마이뉴스 청년 시민기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들어봅니다. [편집자말]
 수학
수학 ⓒ Unsplash

"구구단을 외자. 구구단을 외자. 3x6=19, 3x7=24…"

나는 어릴 적에 숫자가 싫었다. 구구단이 도저히 외워지지 않았다. 아침마다 엉망진창으로 외우고 엄마에게 혼나기 일쑤였다. 유치원, 어린이집을 다니지 않고 혼자서 척척 한글을 떼던 나였지만 숫자의 벽은 너무나도 높았다.

학교에 입학해서도 수학 성적은 바닥을 쳤다. 국어와 수학의 성적 차이가 무려 60점이 넘었다. 아무리 수업에 집중해봐도 소귀에 경 읽기였다. 나는 자동으로 수학을 포기한 사람, '수포자'가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 말고도 수포자 친구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나는 자연스레 문과에 들어갔다. 문과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었다. 국어와 영어에 굉장히 자신이 있는 학생들, 또 하나는 수학이 싫어 도망 온 학생들. 나는 후자였다.

'대체 왜 잘 보던 달력이 찢어지고, 갑자기 버스의 속력을 궁금해하는 거야?' 문제 상황을 가정한 수학문제들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살면서 갑자기 다이빙 보드에서 떨어졌을 시 수면에 도달하는 순간 속도를 구할 일이 몇이나 될까 싶었다.

실제로 성인이 될 때까지 내가 수학을 포기함으로써 불편한 것은 단지 성적표를 볼 때뿐이었다. 졸업과 동시에 수학은 내 생활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다. 이제 영영 안녕이라고 생각했다. 첫 회사에 취업하기 전까지는.

조형물을 제작하는 회사에서 나는 디자인 업무를 맡았다. 어느 날 아파트 6~7층 높이 정도 되는 거대한 원기둥에 붙일 커다란 시트지를 출력해야 했다. 도면에는 반지름과 높이만 나와있었다. 파일을 제작해야 하는데 원의 둘레를 모르니까 대지를 그릴 수가 없다.

갑자기 돌덩이처럼 굳어 있자 옆자리의 직원이 무슨 일이 있냐며 물어본다. 나는 뻔뻔한 얼굴로 "갑자기 원의 둘레를 어떻게 구하는지 기억이 안 나네요"라고 했다. 직원이 말했다. "아~ 2πr이요!" 학교에 그렇게 지겹게 들었던 파이(π)! 3.14가 약 10년 만에 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잠시 동안의 고민이 단 3글자로 해결되었다.
  
또 어느 날은 샘플 조각을 아령형 도면으로 오려야 했다. 주어진 조건대로 그리는데 자꾸 한쪽 각도가 맞질 않는다. 아무리 따라 그려봐도 되지 않아, 실장님에게 SOS를 보냈다. 실장님의 손가락이 이리저리 움직인다. "이 점이랑 이 점을 찍고, 여기를 이렇게 해봐. 그러면 탄젠트 값이 나오지."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가리키는 대로 했더니 정말 원하던 각이 나왔다. 수학은 참 간단명료하구나! 내 머리 속의 복잡함을 풀어주는 마술 같은 수학에 약간 관심이 생겼다. 하지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직장 업무의 얘기, 실생활에서는 역시나 수학을 사용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수학은 참 재밌습니다, 몰라서 어렵습니다"
 
 파르테논 신전
파르테논 신전 ⓒ 정누리
 
그 생각은 그리스와 이탈리아 여행에서 완전히 바뀌었다. 고대 서양사를 실제로 느끼고 싶어 떠난 배낭여행에서 수많은 건축물과 조각상들을 봤다. 파르테논 신전, 콜로세움, 판테온, 다비드, 최후의 만찬… 과학적 비례와 놀라운 상상이 만나 탄생한 수많은 걸작들을 보면서, '왜 그렇게까지 수학을 해야 할까?'라는 의문의 실마리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수학은 어디 따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실생활에 속속들이 녹아 있는 것이었다. 그 순간 모든 것에서 수학의 원리가 보였다. 렌터카의 액셀을 밟는 순간에도, 티켓의 바코드를 읽을 때에도, 고소한 스테이크를 먹고 포스기 앞에 서서 카드를 긁을 때도. 모든 생활에 숫자가 가득했다. 다양한 언어를 쓰는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간단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약속한 언어, 그것이 숫자였다.

집에 돌아와 '성인 수학'을 검색해봤다. 놀랍게도 성인 수포자들을 위한 강좌들이 몇 개 나왔다. 아주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내용부터 시작했다. 어릴 적 막연히 수학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가, 성인이 되어 다시 수학을 시작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상상 이상으로 많았다. 맛보기 강좌에서 강사가 이런 말을 했다.

"정말 수학을 못 한다는 웬만한 사람들은 다 겪어봤습니다. 사실은 수학이 참 재밌습니다. 몰라서 어려운 것입니다."

의도치 않게 맛보기 강좌 30분을 다 들었다. 강좌 홈페이지를 즐겨찾기 했다. 중학교 1학년 수학 교재를 구매했다. 그때는 이해가 안 갔는데, 역시나 지금도 이해가 안 간다. 하지만 달라진 점이 하나 있다면, 모르는 점을 더 빨리 파악한다는 것이다. 어릴 적에는 막연히 뭉뚱그려서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이제는 이 점과 이 점을 잘 모르겠다고 정확히 짚는다.

덕분에 해결도 빠르다. 이것 또한 수학적 사고 아닐까. 다양한 분야에서 일을 배웠더니, 아무것도 몰랐던 어릴 때보다 더욱 노련해졌음을 느낀다. 어떤 이는 어릴 때 학습능력이 훨씬 좋다고 말하지만, 나는 어른이 되어서야 진정한 공부를 하기 시작한 것 같다. 다른 목적이 있어서가 아닌, 순수하게 그것이 배우고 싶어 호기심에서 시작한 공부.

수학을 배우다 보니 일상 속에서도 공식이 보인다. 힘든 것은 반드시 거름이 되고, 비가 온 뒤에는 항상 해가 뜬다. 다양하고 수많은 변수들 속에서 삶의 규칙을 찾아 나만의 공식을 만드는 것. 나는 오늘도 수학을 배우고 있다. 

#수학#자기계발#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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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정누리입니다. snflsnfl8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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