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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 시행 이후, 우리의 삶은 참 많이도 변했습니다. 모임, 회식, 동호회... 당연하던 것들이 더이상 당연하지 않아지고, 거리두기는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전에 없던 나날을 마주하고 있는 시민기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편집자말]
 거리두기 없는 삶을 이젠 상상하기 어렵다.
거리두기 없는 삶을 이젠 상상하기 어렵다. ⓒ unsplash
 
"달라지는 건 없을걸. 난 이 정도 거리두기가 딱 좋은 것 같아."

6월말 새로운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된다는 논의가 진행될 당시 이후 계획을 묻자, 한 지인은 이렇게 답했다. 다소 쌀쌀맞은 대답 같기도 하나 나도 이에 꽤 동감한다. 소수 의견이긴 하겠지만, 코로나19 이후 우리 삶에 자리 잡은 '사회적 거리'라는 개념을 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분명 더 있지 않을까?

코로나19가 일상에 깊숙이 침투하면서 새로운 단어가 마치 원래 쓰였던 단어처럼 자리를 잡았다. 이젠 '거리두기'란 단어 없이는 어느 곳도 편하게 출입하기 어렵다. '너와 나 사이에 거리를 둔다'는 거리두기, 서로 간의 적당한 거리는 이제 공론화된 사회적 합의이자 암묵적인 미덕이 됐다.

이 좁은 대한민국에서 우리가 얼마나 서로 부딪히며, 그리고 부대끼며 살아왔는지 지금처럼 체감하는 시기가 있을까? 인생은 원래 서로 부대끼며 사는 것이라고들 하지만, 어쨌든 지금의 나는 서로 한 걸음 떨어져 각자의 영역과 공통의 공간을 존중하려는 노력이 존재하는 현재 '거리 두는 사회'의 순기능을 느끼는 중이다.

거리를 두는 것, 그 이상의 의미

수도권 만원 지하철에 매일 같이 오르면서 나와 타인 사이의 거리가 거의 없다시피 지낸 탓인지, 타인의 간섭과 시야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숨통이 트인 듯한 느낌을 받곤 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행한 뒤부터, 나는 사실 꽤나 쾌적하게 숨을 쉬고 있다.

출퇴근 시간 수도권 대중교통 내에서 물리적 거리두기는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예전에 비해선 최대한 서로 밀착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느껴진다. 줄을 서거나 플랫폼 의자에 앉아 있을 때도 웬만하면 거리를 둔다. 시끄럽게 통화나 대화를 하거나, 마스크를 낀 상태에서도 불필요하게 가까이 접촉하는 일이 훨씬 줄어든 것은 물론이다.

예전엔 사람들과 지나치게 붙어 앉아야 해 꺼렸던 식당도 좌석 사이에 거리가 생기면서 전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가게 됐다. 또 한동안 멀리했던 영화관에 오랜만에 갔을 때, 옆자리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뜻하지 않은 해방감을 느끼기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들이 반복되며, 우리가 서로 붙어 사는 상황에 너무 익숙해져 서로의 공간을 침해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즉, 한국 사회에서 보기 어려웠던 '개인의 공간을 존중하고 서로 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공공 에티켓'의 이로움을 현재 상황을 통해 느끼고 있다. 지하철을 기다릴 때도, 음식점에서 밥을 먹을 때도,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때도 늘 침해당하고, 동시에 타인의 영역을 침해했던 나의 울타리가 잠시나마 온전한 상태를 유지하는 듯하다.

아울러 불필요한 다수의 사적 모임이 제한되며, 직장인을 괴롭게 하던 잦은 회식이 사라졌음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가 그동안 의식하지 못했던 '거리 두는 생활'을 누군가는 굉장히 기다려 왔으며, 또 반기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나에겐 해방감으로 다가오는 거리두기가 반대로 누군가에겐 피해를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코로나19가 반드시 종식되어야 하듯, 사회적 거리두기 역시 궁극적으론 사라져야 하는 조치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싶다.

소상공인은 물론 여러 산업군의 종사자가 거리두기로 막심한 피해를 입었으며, 거리두기를 할 수 없는 상황도 여전히 존재한다. 또한 수만 명이 모이는 콘서트장, 다같이 함성을 지르며 응원하는 스포츠 경기장에서 함께 울고 웃으며 같은 감정을 공유하던 그때를 그리워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다만 코로나19로 비롯된 새로운 일상은 내게 '거리'라는 개념을 새롭게 생각할 기회를 주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물리적 거리가 생기니 심리적 거리도 뒤따라온다. 보통 '심리적 거리'는 서로 간 간격이 있어 마음을 트고 지낼 수 없는 서먹서먹한 느낌을 이르는 부정적인 의미의 '거리감'을 뜻했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심리적 거리'는 공동의 공간에서 타인이 불편하지 않게끔 배려하고, 또 그러한 배려로 불편함 없이 나의 공간을 유지한다는 긍정적인 의미의 거리감이다. 이번을 계기로 배운 것은 그것이 단 1미터, 2미터 거리를 두는 것만으로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더라도 
 
 새로운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돼도 나의 일상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새로운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돼도 나의 일상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 최한슬
 
7월 1일 0시를 기점으로 시행되려 했던 수도권의 새로운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 하루를 앞두고 일주일 더 유예됐다. 7월 6일 오후 기준,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다시 1100명을 넘어섰다. 예방접종을 받지 않은 청·장년층을 중심으로 감염이 크게 늘며, 우리는 또다시 기로에 서 있다.

아무리 인원 제한과 영업시간 제한과 익숙해졌다고 한들, 때론 그러한 제약이 불편했던 것은 사실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밤 10시면 아쉽게 돌아서야 했던 지난날을 생각하면 거리두기 완화로 식당, 카페 등의 영업 시간이 늘어난다는 소식에 잠시 반갑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방역 조치 완화에 대한 우려 역시 컸다. 결국 시행 하루 전 다음을 기약하게 됐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곧, 혹은 언젠가 시행될 거리두기 완화는 결국 개인의 자발적인 방역 수칙 준수를 전제로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가가 정한 거리두기는 완화된다 하더라도 나의 생활은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마스크 쓰기, 손 씻기, 그리고 물리적 거리두기 역시 계속 이어질 것이다.

백신 접종과 감염 확산세에 따라 사회적 거리두기는 차츰 재편될 것이라고 본다. 모두가 손꼽아 기다리는 코로나19의 종식도 하루빨리 찾아오길 바란다.

한 가지 더 바라는 것이 있다면, 우리가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그날이 오더라도, 서로의 건강과 생활을 지켜주고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지금의 마음가짐을 완전히 잊진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개인과 사회 공동의 노력으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마음 놓고 각자의 공간을 누릴 수 있길, 바라본다.

#사회적 거리두기#거리두기#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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