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 시행 이후, 우리의 삶은 참 많이도 변했습니다. 모임, 회식, 동호회... 당연하던 것들이 더이상 당연하지 않아지고, 거리두기는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전에 없던 나날을 마주하고 있는 시민기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편집자말] |
7월, 거리두기 체계 완화를 앞두고 급제동이 걸렸다. 델타 변이 확산 등으로 인해 오히려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예상 밖으로 급등해, 거리두기 완화가 유예된 것이다. 어떤 이는 실망과 아쉬움을, 어떤 이는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특히 몇몇 친구들은 개편안을 보고 휴가 계획을 적극적으로 세우다가, 쓴웃음을 지으며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렸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요즘, 나는 사실 어떤 변화가 생겨도 큰 상관이 없었다. 어떤 결정이 내려지든 내 삶은 더 이상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다.
처음 코로나가 터졌을 때, 나의 계획은 폭격을 맞았다. 생일 파티부터 송년회까지 친구들과의 약속은 모조리 다 미뤄졌고, 1년 이상 다니던 헬스장과 수영장은 굳게 문을 닫았다. 모두에게 열려있던 도서관은 비대면 사전 대출만 운영하게 되어 선착순으로 예약을 경쟁해야 했다. 중국어 학원도 등록하지 못 하고, 야심차게 구매한 교재는 책장에서 먼지만 쌓여갔다.
의욕을 가지고 시작한 1년 계획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자 나는 의욕을 잃었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주말을 틈타 해외 여행이라도 짧게 다녀왔는데, 그것도 당연히 불가능했다. 해소되지 않고 쌓여가는 불쾌함은 곧 나태함과 게으름으로 바뀌었다.
운동도 하루 이틀 안 했을 때나 찝찝하지 3일이 넘어가니 몸이 편했다. 더부룩하고 소화가 안 되는 것 같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시국이라 그런 것인데 어쩌겠냐'며 어깨를 으쓱였다.
이런! 어깨를 으쓱이는 것도 하루 이틀이었다. 내 일상에 급제동이 걸리자 가슴이 콱 막히고 답답했다. 스트레스를 해소했던 여러 가지 취미를 하루아침에 모두 못 하니 마음이 우울해졌다.
인터넷에 쳐보니 이런 현상을 뜻하는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도 있었다. 나 같은 사람이 많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를 해결하자고 굳게 닫힌 헬스장 문을 두드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에게 허용된 공간은 딱 9평 남짓한 원룸이 다였다. 이 울타리 안에서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했다.
영화관을 못 가니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봤다. 자막을 작게 보려니 눈이 아파 인터넷을 찾아보니, 스마트TV가 아니더라도 일반TV로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볼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작고 동그란 모양의 미디어 플레이어를 연결해서 미러링(Mirroring)하면 됐다. 유튜브 영상을 TV로 보니 눈이 확 트였다.
어느 날은 소파에 누워서 TV로 영화를 보다 실수로 저장했던 운동 영상을 눌렀다. 갑자기 쩌렁쩌렁한 트레이너의 기합 소리가 들렸다. 나는 졸지에 무작정 팔벌려뛰기를 따라 했다. 10번만 했을 뿐인데, 갑자기 몸이 가벼워졌다. 홈트레이닝의 효과를 잘 믿지 못했던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운동 매트와 폼롤러를 구입했다.
헬스장에서도 PT 없이 꾸준히 출석했기 때문에 매트를 까는 귀찮음쯤이야 감수할 수 있었다. 오고 가는 시간을 최소 30분 줄이고, 남들의 눈을 의식할 필요 없이 혼자 기합을 넣었다가 엎어졌다가 누웠다가 하니 땀이 흠뻑 났다. 이곳이 조금 과장해서 나만을 위한 전속 트레이닝룸처럼 느껴졌다.
이쯤 되니 혼자 먼지 쌓여가는 중국어 책도 안쓰럽다. 인터넷에 중국어 독학 강좌도 검색해보았다. 무료 강좌를 틀고, 겹치는 부분을 찾아가며 혼자 책을 낭독했다. 발음을 연습한다고 혀에 너무 힘을 줬더니 며칠 동안 혀뿌리가 얼얼했다. 당장 학원을 다니는 것만큼의 효과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코로나가 끝나기 전 예습을 하는 것이라 생각하니 오히려 기대가 부풀었다.
얼굴을 쉽게 볼 수 없는 친구들과는 밤마다 영상 통화를 했다. 대학을 다니는 친구들은 고민을 털어놓았다. 코로나로 인해 갑자기 인터넷 강의 빈도수가 늘어났는데, 집중은 잘 될지, 시험 성적은 잘 받을 수 있을지 걱정된다는 것이었다. 내가 방통대를 다닌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경험담을 묻기도 했다.
나는 전혀 어려울 것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오히려 미처 듣지 못한 부분은 여러 번 다시 반복해서 들을 수도 있고, 질문은 메모해놨다가 메일로 물어봐도 된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나에게 인터넷 강의는 이미 익숙한 시스템인데, 친구들에게는 낯선 변화일 것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것은 시간이 지나면 모두 익숙한 것이 된다. 우리는 코로나라는 새로운 요인에도 무의식적으로 적응해가고 있었다.
나의 집은 새롭게 변했다. 한쪽은 미니 헬스장이 되었고, 한쪽은 강의실, 또 한쪽은 영화관이다. 어느새 나를 가두고 있던 울타리가 오히려 나를 보호해주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고립은 물리적인 감염 예방의 효과도 있었지만, 다른 면으로도 삶을 개편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만날 수 있고, 밖에만 나가면 다양한 사람들과 붙어있던 그때는 외로움을 컨트롤할 필요가 없었다. 남과의 거리가 가까운 만큼, 나와의 거리는 멀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롯이 내 자신을 개편해나가고 있다.
처음에는 코로나를 핑계로 모든 계획을 미뤘지만, 이제는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이 시국이 내 게으름의 핑계가 될 수는 없었다. 코로나는 언젠가 끝나겠지만 시스템의 변화는 멈추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시도를 확장하고 있다. 학교의 원격 수업, 비대면 콘서트, 비대면 금융 서비스, 메타버스 등.
어쩌면 코로나가 끝날 시기만을 기다리지 않고 내 안의 시스템을 구축해나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는 자유의 날을 앞당기는 방법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