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일 일요일 저녁, 올림픽 야구를 보며 고구마를 10개 먹은 듯 답답한 마음에 잠시 채널을 돌렸다. 남자 높이 뛰기 결승이 있었다. 우리나라 선수가 있겠어 하며 그냥 지나려는 순간 오른쪽 위편에 조그맣게 빛나는 메달 표기가 보였다. 호기심에 시청 버튼을 눌렀다.
짧은 머리에 장대처럼 마른 한국 선수가 보였다. 밑에 자막으로 '우상혁'이란 이름이 보였다. 솔직히 처음 들어본 이름이었다.
우상혁 선수는 이보다 싱그러울 수 없는 미소로 관객에게 박수를 유도했다. 그 모습은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라기보다는 마치 콘서트에서 호응을 유도하는 인기 스타 같았다. 나 역시도 힘껏 손뼉을 쳤다. "짝짝짝"
그는 관중의 박수 소리와 함께, 큰소리로 기합을 넣은 후 성큼성큼 뛰더니 장대를 향해 돌진했다. 도약 후에 우아한 학처럼 바를 넘었다. 머리부터 허리, 다리까지. 혹여나 걸릴까 봐 심장은 두근거리고, 손에 땀이 났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장하다, 우상혁
그 뒤로 조금 과장에서 난리 블루스가 났다. 우상혁 선수는 두 주먹 불끈 쥐고, 카메라에 달려가 기쁨의 포효를 했다. 메달을 딴 것도 아니고, 2m 35cm를 넘은 것뿐인데 너무 오버 아닌가 생각할 때쯤에 이 기록은 24년간 깨지지 않았던 한국 신기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더구나 본인 최고 기록도 2m 31cm였다. 올림픽 결승전에서 최고 기록을 경신한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1cm를 더 넘으려면 1년 가까운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그런데 단번에 4cm를 뛰어넘었다. 더구나 올림픽 결승이라는 가장 큰 무대에서 이룩한 기적이었다.
그의 기쁨이 휴대전화 영상을 넘어 나에게까지 전해졌다. 좋아하는 야구는 진즉에 잊어버렸다. 현재까지 순위는 전체 7명 선수 중 3위였다. 그다음 도전은 2m 37cm였다. 앞서 몇 명의 선수가 성공했다. 특히 카타르 선수는 더 넘을 수 있는 공간이 보일 정도로 여유로웠다. 나도 채널을 고정하며 기다렸다.
드디어 우상혁 선수가 등장했다. 아까와 달리 살짝 긴장한 모습이 보였다. 하긴 얼마나 긴장이 될까. 어쩌면 이번 도전의 결과에 따라 메달 여부가 결정 될 수도 있었다. 이내 긴장을 풀고, 다시 한번 바를 향해 힘차게 달렸다. 결과는 실패였다. 그래도 함박 웃음는 잃지 않았다. 장하다. 우 선수.
1등이었던 카타르 바르심 선수가 2m 39cm로 높이를 올렸다. 이때 우상혁 선수도 모험을 걸었다. 37cm를 패스하고 39cm에 도전한 것이다. 메달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1, 2차 시도 실패 후 마지막 시도가 도래했다. 긴장된 나와 달리 그의 얼굴에는 다시 미소가 찾아왔다. 이 순간을 즐기는 듯 보였다. 다시 박수를 유도하며 바를 향해 돌진했다. 장대 앞에 다다라서 힘차게 도약한 후 바를 넘기 시작했다.
머리와 허리 부분은 통과했다. 속으로 나도 모르게 '됐어!'를 외쳤다. 하지만 끝내 다리 부분이 걸려버렸다. 바닥에 떨어지는 바를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아...' 하는 탄성이 나왔다.
아쉬운 듯 잠시 누웠다가 금세 일어나 씩 하고 웃더니 거수경례를 했다. 알고 보니 우상혁 선수는 군인 신분이었단다. 나도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잘했다. 정말 최고로 잘했다. 결국 4위로 마무리했다.
메달보다 돋보였던 그 당당한 모습
한 사람의 밝은 에너지가 이렇게나 좋은 영향을 줄 수 있구나. 우상혁 선수를 만난 후 남은 주말이 힘찼다. 앞으로 이 선수가 나아갈 길이 무척 기대되었다.
그날, 그 힘이 야구에까지 전해진 것 같다. 패색이 짙은 9회 말 기적 같은 끝내기 안타로 역전승을 거두었다. 나만의 생각이지만 분명 우상혁 선수의 긍정 힘이 전해진 것 같다.
경기가 끝난 여운이 오래도록 남았다. 예전만 해도 금메달을 따지 못하면 죄인이 된 듯 고개를 숙이곤 했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에서는 경기 자체를 즐기는 젊은 선수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간 준비한 모든 것을 경기에 쏟아붓고, 결과와 상관없이 자신을 스스로 다독이는 모습에서 보는 사람까지도 응원하게 했다.
나중에 우상혁 선수의 인터뷰를 보았다. 역시나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소감을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아. 이제 홀가분합니다. 진짜 후회 없이 뛰었습니다. 진짜 이거는 후회 없는 경기가 맞고요. 진짜. 저는 행복합니다. 진짜."
그 순간 몸에 전율이 흐르며 내 안에도 행복의 기운이 가득 퍼졌다. 인터뷰까지도 이렇게 멋질 수가.
마흔 넘은 아재가 된 뒤로 누군가의 팬이 돼본 적이 없는데, 우상혁 선수의 팬이 되기로 했다. 앞으로 경기가 있을 때마다 찾아보고 싶어졌다. 주책이면 좀 어때. 코로나로 힘든 이 시기에 그의 긍정 에너지를 마음껏 느끼고 싶다.
금메달보다 더욱더 멋진 금빛 미소를 지닌 당신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