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고 어리석다'. '치매'라는 단어의 뜻을 풀어보면 이렇다. 고령화 현상이 우리보다 몇십 년 앞서는 일본에서는 2004년, 치매를 공식 용어에서 삭제했다고 한다. 국민 공모를 통해 치매를 대체하는 용어로 '인지증'이 선정되었고, 지금은 이 명칭이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자연스럽게 정착된 듯하다. 나는 이 단어를 우에노 치즈코의 어느 책에선가 처음 보았다.
차별이나 무시를 담지 않은 좀 더 적절한 단어의 선택,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치매'라 하든 '인지증'이라 하든 인간이 늙어가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피할 수도 없는 모습들을 어떤 마음과 눈길과 손길로 대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더 관심이 간다. 물론 이 두 가지가 완전히 별개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완전히 같은 문제 또한 아닌 듯하다.
차별의 뜻을 담지 않는 적절한 언어를 쓴다고 해서 우리 마음 깊이 자리 잡은 차별의 뿌리가 자연스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언어와 우리들 마음의 풍경 사이에는 어쩌면 생각보다 먼 길이 놓여 있을지 모르겠다. 여튼 이 글에서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익숙한 용어가 '치매'인 것 같아 그렇게 쓰려 한다.
부모님이 치매에 걸렸다
아마도 4년 전 쯤부터 부모님의 행동을 보며 '어 왜 이러지?'라는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뇌에서의 치매 진행은 그 전부터 이미 진행되고 있었을 것이다. 부모님 집에 내려가 있을 때 '오늘은 특별 메뉴를 해야지' 생각하고, "저녁은 내가 들어와서 할 거니까 밥 하지 말고 있으면 돼"라고 말하고 나갔다 오면, 어머니는 습관적으로 밥을 해놓고 기다리셨다. 내 이야기를 잠깐 잊은 게 아니라 전혀 기억을 못 하셨다.
부모님이 좋아하실만한 반찬 몇 개를 만들어놓고 꺼내 드시라 하고 나갔다 오면, 습관적으로 꺼내던 것만 꺼내 드셨다. '왜 이걸 못하지?'라는 당황스러움과 '이런 게 치매 초기 증상인 건가 보구나'라는 생각이 함께 들었다. 그 이후부터는 밥솥에, 냉장고에 메모를 붙여놓고 나갔다 오곤 했다. 이렇게 방금 한 말이나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부모님에게 나타나는 주요 '증상'이었다.
부모님과 함께 병원에 가서 문답검사를 받아보니 어느 정도 진행 중인 것 같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때부터 하루 세 번 먹는 뇌 영양제를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마 몇 달 후 오빠가 부모님을 모시고 가서 MRI 검사를 받았다. 기억력 등의 상태로 볼 때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조금 더 진행되지 않았을까 예상했었는데, 의외로 아버지가 훨씬 더 많이 진행된 상태였다. 의사는 아버지의 경우 정신력으로 지금의 치매 상태를 견뎌내는 것 같다며, 직업이 뭐였는지 물었다고 한다.
자식들을 다 기억하고 전화 통화 하면서 안부를 묻는,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이 상태를 위해 아버지의 정신은 엄청나게 애쓰고 있는 것이라고? 치매가 정신력으로도 어느 정도 극복이 가능하다고? 이렇게 아버지는 마지막 만났을 때까지 심신이 다 힘든 상태에서도 눈을 마주치고 힘겹게 말을 이어가시며, 이 땅에서의 생에 최선을 다하셨다. 삶은 의료기기의 정확도를 넘어서는 '신비'의 영역이 있음을 종종 느끼곤 한다.
MRI 진단 후 부모님은 치매약을 드시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는 어머니의 치매 치료 지원 신청도 했다. 월 3만 원 한도로 치매약 등 치료비를 지원해주는 제도이다. 치매는 예상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악화되기도 한다는데, 부모님은 급격한 변화 없이 유지되는 편인 것 같았다. 여러 요소들이 영향을 끼치겠지만, 약과 뇌 영양제 등의 효과도 분명히 있는 듯했다.
현재 부모님의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나니 대응하는 나의 태도도 조금씩 달라졌다. 어느 날엔가는 부모님이 아침식사 후에 사과를 드시고 나서 대화하는 것을 들었다. "여보, 우리 밥 먹고 사과 먹었소?" "안 먹었어요." "그럼 하나 먹을까?" "예."
그렇게 아침 식후 두 번 부모님은 사과를 드셨다. 방에서 이 상황을 들으며 웃음이 나왔다. 예전이었다면 "좀 전에 사과 먹었잖아"라고 바로 말했을 것이다. 그런데, 꼭 필요한 게 아니라면 굳이 정확한 사실을 말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다행인 건 이런 상황이 무한 반복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경우 가벼운 기억력 감퇴만이 아니라 어두운 밤이라든가 어떤 상황에서는 조금 심한 심리적·정신적 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나에게는 낯설었던 그런 시간들이 쌓이면서 부모님의 현재를 조금 더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연약함을 보듬고 돌보는 마음
소수의 사람들만 겪던 질환이 이제 누구에게나 가능성이 있는 '평범한' 노화 현상이자 질환이 되면서, 일반적으로 치매에 대한 이야기를 예전보다 훨씬 쉽게 나누게 된 것 같다. 자기 부모의 치매 이야기나 자신의 치매 가능성에 대한 걱정 등이 주요 이야기 거리로 다뤄진다.
나 역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치매'라는 말이 가능한 피해야 할 말처럼 느껴졌는데, 지금의 나는 그렇지는 않다. 임락경 목사님은 치매란 죽음의 공포를 이기도록 해주는 신의 축복이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노화가 우리 모두의 것이듯 '치매' 역시 정도와 양상의 차이는 있겠으나, 아주 많은 사람들이 지나쳐갈 길이라는 생각을 이제는 한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건강하게 늙어가기를 바라고, 당연히 치매 역시 피해갈 수 있기를 바란다. 이를 위한 여러 가지 노력들도 할 것이다. 그러나 노력이 항상 미래를 확실하게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살아가면서 '노력'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최악'일 수 있는 우리의 삶을 받아 안는 '수용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언제부터인가 하게 된다. 이것은 개인에게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인간적인 사회를 위해서 사회가 꼭 갖춰야 할 능력이 아닐까 한다.
나 역시 어머니의 인지 기능이 지금 상태를 유지하면서 돌아가실 때까지 지금만큼 이 생을 누릴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이를 위해 내가 소소하게 할 수 있는 것들을 살피며 지낸다. 그러나 삶이 내 원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기에 그 어떤 상황을 맞게 될지 모른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한다.
관련된 책이나 여러 정보들을 접하다 보면, 일반적으로 보기에 아무것도 아닌 조건과 환경의 변화에도 치매를 비롯한 노화는 극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고 한다. 그만큼 노인들의 몸과 마음은 너무나도 부서지기 쉬운 연약한 상태인 것이다. 이런 뒤늦은 관심과 공부가 함께 살아가는 어머니를 알아가는 데 도움이 되어주는 것 같다. 물론 같이 살아가면서 알아가는 것 역시 많기에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삶 자체가 넓은 의미의 공부일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꾸준히 약하고 늙고 또 그렇게 죽음을 맞을 우리네 삶에 대해 알아가고 싶다. 그리고 이런 인간의 연약함을 서로 기대고 보듬는 돌봄의 마음과 문화에 대해서도 찬찬히 살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