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도시화 이면엔 활기를 잃은 농촌이 있다. 장날이면 북적대던 면 소재지는 추억 속 그림이 되고, 좋은 날 벌이던 마을 잔치도 이젠 옛이야기. 골목골목 울리던 어린이들 놀이 소리는 자취를 감추고, 한 반에 몇십 명씩이던 학교도 그렇게 문을 닫는다.
지난 40년 동안 폐교된 학교만 3855개, 그 대부분은 농촌 지역 소재다. 반면 내년 3월까지 신설 예정인 40여 개 학교는 수도권‧혁신도시 등 인구가 몰려 있는 지역.
충북 옥천은 이촌향도와 함께 대청댐 수몰 이후 인구 감소가 지속되면서 지역 학교 폐교도 가속화됐다. 1991년 추소초등학교가 폐교한 데 이어 2014년 대성초등학교 폐교까지 17개교가 문을 닫았다.
사람이 떠난 자리에 학교와 같은 기반시설들마저 사라진다면, 다시 찾아오는 사람도 없을 터. 도시 집중과 지역 소멸이라는 악순환은 그렇게 반복되고 있다.
이런 때, '학교를 살리자 마을도 살아났다'는 소식이 지역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함양 서하초등학교, 남해 상주중학교, 진안 장승초등학교 등이 보여주는 '학교-마을' 상생 사례는 교육 이주가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에 경상남도는 통합교육추진단을 꾸려 도청‧교육청‧민간이 함께하는 '작은학교 살리기'를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옥천에도 작은학교 살리기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청성초등학교는 그 시작을 일궈낸 곳. 분교 격하 위기에 놓였던 청성초는 교육이주를 통해 걱정을 떨쳐냈고, 그렇게 찾아온 이주 가정은 학교를 넘어 청성면에까지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주민들과 행정복지센터, 옥천교육지원청 등 민‧관‧학이 마음을 모은 결과였다. 그 이야기를 들어본다.
청성초 살리기, 그 씨앗은 간절한 마음
한때 5개 초등학교가 있던 청성면. 1932년 개교한 청성초는 현재 면 내 유일한 초등학교다. 이런 청성초마저 사라질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생겨난 건 지난해다. 3년 동안 전교생 20명 이하일 경우 분교로 격하되는데, 2020년 청성초 전교생은 16명이었다. 졸업 4명, 입학 예정 1명을 빼고 더하면 올해 예상 전교생 수는 13명. 그대로 내년까지 이어진다면 분교 격하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 사실을 옥천교육지원청 김일환 전 교육장이 청성면 이장단에 알리며 도움을 청했고, 그렇게 학교를 살리기 위한 마음이 모이기 시작한다.
본격적인 움직임이 시작된 건 지난해 12월. 우선 청성면 마을주민과 청성면 행정복지센터, 청성초, 교육지원청 등이 모여 첫 대책회의를 열었다. 이후 주민들과 행정복지센터는 빈집 마련, 기금 모금, 홍보 등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열심히 뛰어다닌다. 그 결과 지난 1월 교육이주 주택 3곳이 마련됐고, 2월 말 드디어 첫 교육이주 가정이 입주하게 된다. 두 번째 이주 소식도 바로 뒤를 이었다.
"처음 시작할 땐 반신반의였어요. 솔직히 '누가 정말 찾아올까?' 하는 마음도 있었죠. 그런데 막상 빈집을 마련하고 주민들과 힘을 모으다 보니까, 생각보다 호응이 좋은 거예요. 한 집, 두 집 들어오는 사이에 홍보도 많이 됐고, 먼저 이주해온 학부모님들도 적극적으로 외부에 알려주셨습니다." (이현철 청성면장)
청성초 살리기 한 축을 담당했던 이현철 면장. 처음엔 이러한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다. 그저 주민들과 함께 열심히 동분서주했다. 교육이주 주택을 위한 빈집 확보와 수리에 힘쓰는 한편 주민과 학교, 관이 소통할 장을 마련하는 역할도 했다. 이주해온 가정과도 활발히 소통하며 정착을 도왔다.
"청성면민으로서 하나밖에 없는 초등학교가 사라진다는 게 황당한 이야기였죠. 그래서 여러 마을 단체와 행정복지센터까지 모두 마음을 모으게 된 거예요." (청성면민협의회 송성호 회장)
청성면민협의회 역시 이주 가정의 첫해 임대료 전액 지원 등 마음을 모았다. 면민협의회는 청성초뿐만 아니라 청성면 살리기를 위한 주민 협의체를 구성해 기금 모금 등 활동을 이어가고 있기도 하다.
"개교 후 89년이 되도록 총동문회가 없었는데, 학교가 어려울 때 나서야 한다는 마음으로 이번에 모이게 됐어요." (이종두 청성초 총동문회장)
동문들에게 소식을 전한 건 청성초를 졸업한 궁촌리 이종두 이장이었다. "꿈을 심어 준 마음의 고향인데 이대로 내버려 둘 수 있겠냐"는 공감 아래 총동문회가 설립됐고, 기금이 모였다.
지난해 12월 말부터 현재까지 모인 기금은 총 7600만 원. 교육이주 주택이 될 빈집 수리와 주택 임대료 지원 등에 쓰인다. 또 학생 장학금과 배드민턴부 지원, 졸업생 해외연수 등을 위해서도 사용된다. 어린 시절 학교를 향한 애정은 지금의 청성초를 살려내고 있었다.
"학생들이 없고, 어르신들도 돌아가시게 되면 마을이 사라질 수도 있잖아요. 마을이 없어지면 면 자체도 있을 수 없죠. 동문회는 그런 위기의식으로 학교 살리기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러 사람이 마음을 다해 노력한 덕분일까. 8월 기준 8가구, 10명의 학생이 이주하는 쾌거를 이룬다. 9월에도 2가구의 이주로 학생 2명이 더 늘 예정이라고 하니 이제 분교 격하에 대해선 한시름 놓은 셈. 청성초 살리기의 꿈은 그렇게 현실이 됐다.
사람이 온다, 활력이 생긴다
"도시에 있을 땐 코로나 때문에 학교도 못 가는 상황이었죠. '시골 작은 학교로 보내볼까?' 생각하게 된 이유였어요." (김혜란씨)
그렇게 인터넷 검색으로 정보를 찾다가 우연히 청성초 교육이주 모집 안내문을 접하게 됐다. 이후 바람도 쐴 겸 한번 둘러보자며 청성면을 찾았고, 3일 정도 고민한 결과 이주를 결심한다. 첫 교육이주 가정이자, 지금은 청성초 학교운영위원회 위원장인 김혜란씨 가족의 이야기다.
지난 2월 김혜란·연군흠씨 부부와 연하음(청성초 6학년), 연주원(청성초 1학년) 남매 총 네 식구는 교육이주 주택으로 마련된 산계3리 '귀농인의 집'에 새 보금자리를 잡았다.
"처음엔 이곳으로 꼭 와야겠다는 마음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막상 둘러보러 왔을 때, 면장님부터 동문회장님, 마을 이장님, 면민협의회장님까지 다 나와서 맞이해주시더라고요." (김혜란씨)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이사 와도 관심이 별로 없잖아요. 우리를 정말 환영해주신다는 느낌이었죠." (연군흠씨)
처음의 환대가 이주에 대한 확신으로 이어졌다. 도움과 관심은 이주한 후에도 쭉 이어졌다. 이현철 면장과 주민들은 오며 가며 안부를 묻고, 맛있는 음식을 나눴다.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낯선 곳, 게다가 첫 교육이주 가정이었기에 더 쉽지 않았을 이들 가족이 편안히 정착할 수 있던 배경이었다.
"이웃 주민분들도 도움을 많이 주셨죠. 이제는 서로 편안한 사이가 된 것 같아요. 저희도 감사한 마음에, 먹을 것도 가져다드리고 그러죠." (연군흠씨)
산계3리 이주찬 이장은 특히 감사함을 전하고 싶은 인물 중 한 명. 그는 이주 초기부터 지금까지, 여러 방면으로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해왔다.
"우선 학생들이 있는 집이 이사를 오면 우리 마을이 젊어지잖아요. 아이들 소리도 나고요. 노령인구가 많은 마을에 활력소가 되는 거죠." (이주찬 이장)
현재 산계3리 교육이주 가정은 김혜란씨 가족을 포함해 총 2가정. 이주찬 이장은 계속해서 마을에 살고 싶게끔 환경을 마련해주고 싶다고 말한다. 그런 그에게 한 가지 고민이 있다면 불편한 교통 문제.
"마을에 버스가 들어오질 않아서 학생들이 청산에 나가고 싶어도 부모님이 없으면 나갈 수가 없어요. 연필 하나 사러 가고 싶어도 못 가는 거죠." (이주찬 이장)
이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 옥천군 도시교통과와 함께 논의를 나눴다. 그 결과 버스는 배차 시간 등을 고려했을 때 현실적으로 어렵고, 하루 2회 정차하던 다람쥐 택시를 4회로 늘리는 대안은 가능하다는 답변을 얻었다. 이주찬 이장은 앞으론 면 차원에서 버스를 운영하는 방식도 고려해봐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농촌중심지 활성화 사업으로 마을 벽화도 그리고, 쓰레기 분리수거장도 새로 만들었어요. 앞으로 농촌활력지원센터 마을 만들기 사업에도 공모하려 하는데, 잘 진행된다면 마을이 더 밝고 쾌적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주찬 이장)
교육이주는 마을을 위한 새로운 시도에 물꼬를 틔워줬다. 그 활기를 이어가려는 마음이 있는 한, 학교와 마을의 상생 이야기도 계속 꽃을 피울 것이다.
'학교-마을 살리기'는 이제부터가 시작
청성초 학교운영위원회와 학부모회가 만든 '청성교육공동체 다아트'는 학교와 마을이 함께 살아날 또 다른 길이다. 교육이주 가정이 주축이 된 다아트는 마을교육과 면내 돌봄 체계를 튼튼히 다지기 위해 구성됐다.
그 활동으로 지난 7월엔 행복교육지구 주민제안교육사업을 통해 '청성 어린이 기자단'을 설립했다. 청성초 학생 16명이 참여한 어린이 기자단은 여름방학 동안 청성면 곳곳에 숨은 이야기를 취재해 마을 잡지를 만든다. 학생들이 마을과 교류하며 생생한 배움을 얻을 수 있도록 연결고리를 마련한 것.
앞으로도 맞벌이 가정이 겪는 돌봄 공백을 메우고, 이주여성과 어르신을 대상으로 한글 교실을 여는 등 여러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한편 이러한 마을교육공동체 활성화를 위해선 행정의 적극적인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할 테다.
"청성교육공동체를 시작하면서 교육지원청과 함께 논의해야 할 일이 많아졌죠. 교육장님이나 장학사님들이 도움을 많이 주시려 하세요." (김혜란씨)
이와 같은 주민과 행정의 협력은 작은학교를 살리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 김혜란·연군흠 씨 부부가 민‧관‧학 협력체계를 강조하는 이유다.
"작은학교 살리기를 위한 민‧관‧학 협력으로 도시에 살던 사람들을 끌어올 기반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때 이주해온 가정을 비롯한 주민들의 의견이 실제로 정책에 반영돼야 해요."
교육이주 가정을 위한 일자리 마련은 정책 수립이 시급한 사안 중 하나였다. 연군흠씨는 "도시에서의 삶에 지쳐 농촌에 오고 싶어도 환경이 조성되지 않아 못 오는 분들이 많다"고 말한다. 더 좋은 교육환경을 찾아 농촌으로 왔어도, 정주할 여건이 안 된다면 자녀의 졸업과 함께 다시 떠날 수밖에 없을 터. 현재 직장 연계를 지원하는 체계가 마련돼 있긴 하지만, 직업 선택에 다양성이 없다는 한계가 있다. 교육이주를 직접 경험한 결과 체감한 문제였다.
"카페를 하고 싶은 사람도 있고 미용실이나 옷가게를 하고 싶은 사람도 있겠죠. 그런 사람들을 위한 공간 지원을 해준다면, 면 지역에도 자연스럽게 문화 기반시설이 생기고, 경제도 활성화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청성면 살기 좋네' 소리도 저절로 나오지 않을까요?"
튼튼한 정주 기반이 마련된다면 자연스레 찾는 사람은 늘어난다. 농촌의 빈집이 사라지고, 학교는 학생들 웃음소리로 떠들썩해질 테다. 돌봄센터나 도서관 같은 기반시설이 생기고, 마을의 미래를 함께 생각할 주민 공동체도 살아난다. '청성초 살리기'에서 '청성면 살리기'로 나아가는 지금의 모습이다.
"청성초 살리기가 시작된 후로 청성면 인구가 꾸준히 늘고 있어요. 학교를 살리면서 빈집 문제도 해결하고, 인구도 늘어나게 된 거죠." (이현철 면장)
최근에는 청성면 살리기를 더 북돋아 줄 희소식이 있기도 했다. 국토교통부의 '2021 지역수요 맞춤지원 공모사업'에 '청성면 산성문화마을 주거플랫폼 구축 사업'이 선정된 것. 연립주택 15호와 작은 도서관‧실내놀이터 등이 포함된 복합문화센터가 지어질 예정이다.
이러한 변화의 바람이, 청성면을 타고 다른 면까지 쭉 이어진다면 '농촌 살리기'를 현실로 만들 수 있을 터. 그 시작은 면마다 있는 작은학교를 위해 민‧관‧학이 힘을 합치는 데 있다.
"농촌 지역 인구가 계속 줄어서 고민하는데, '작은학교 살리기'가 충분히 도움이 됩니다. 귀농‧귀촌 패러다임을 교육이주 쪽으로 바꾸고, 일자리와 같은 정주 여건을 마련해준다면 인구감소 문제에도 빛이 보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현철 면장)
(* '졸업할 때까지 월세 5만원, 교육이주 명소된 이 마을' http://omn.kr/1v8xk로 이어집니다.)
월간 옥이네 통권 51호(2021년 9월호)
글·사진 정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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