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는 낙엽과 두꺼워지는 겉옷을 보고 있으면 '벌써 올해도 끝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추워지는 날씨와 가까워지는 연말은 곧 여러 TV 채널에서 올해의 연예대상이니, 연기대상이니 하며 올해의 1등을 가리는 시기임을 의미한다.
이처럼 연말은 무언가를 정리하는 시기이다. 방송사뿐 아니라 개개인으로 옮겨 생각해 보면 올해의 좋은 소비는 무엇이었는지, 올해 찾은 맛집은 어디였는지 등등 셀 수 없이 다양한 부문에서 '나만의 1등'을 정리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찾은 '올해의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올해의 책을 선정한 기준은 크게 두 가지이다. 책의 판매량이나 베스트셀러 선정 여부도 그 기준이 될 수 있겠지만 오늘은 내가 책을 읽었을 때 느낀 점을 토대로 선정하고자 한다. 먼저 나의 흥미를 이끌어야 한다. 주관적인 기준일지라도 내가 재미있다고 느껴야 남에게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책의 내용이다. 한번 읽히고 말 이야기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책을 읽은 다음이다. 책을 읽음으로서 최소한의 생각을 요구하고, 더 나아가 '변화'를 이끌어 내는 책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위와 같은 기준에서 선정한 나의 올해의 책은 <연의 편지>이다. <연의 편지>는 2018년 네이버 웹툰에 연재된 조현아 작가의 웹툰 단행본으로 2019년 오늘의 우리 만화상을 수상하였다.
이 책은 주인공 소리가 편지의 흔적을 찾아가며 진행된다. 10화라는 단편 속에서 풀리는 인물들간의 연결 고리는 결국 '나도 오늘 친절을 베풀어야지' 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
"……저 …조금 후회했어요. 그 애를 도와준 걸…. 나도 그냥 가만히 있을걸…하고…"
"하지만 그랬다면 훨씬 더 후회했을 거예요."
왕따를 당하고 있는 친구를 보면 도와주라는 말. 흔히 하는 말이고, 듣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이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소리는 그렇게 하는 인물이다. 이유는 안 하는 것이 더 후회되니까. 그리고 소리는 전학간 그 아이 대신 '표적'이 되었다.
여름방학이 지나고 소리는 도시를 떠나 원래 살던 곳에서 새로운 학기를 맞이한다. 그러나 이전 학교에서의 괴롭힘은 잔상으로 여전히 소리를 괴롭히고, 말이 없는 소리 대신 소문은 발보다 빠르게 퍼져간다. 이때 발견한 것이 연의 편지이다.
편지의 주인공은 마치 소리가 올 것을 알고 있는 듯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소리의 책상 자리에서 찾은 첫 번째 편지는 학교를 소개하는 편지였다. 이 편지에는 도서관, 체육수업 등을 갈 수 있는 본관 지도와 학급 친구들의 얼굴과 이름 카드, 과목 선생님들에 대한 설명, 그리고 두 번째 편지를 찾아달라는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두 번째 편지의 힌트는 도서관의 책이었다. 책의 대출카드를 통해 소리에게 편지를 보내는 이가 호연이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첫 번째 편지에서 준 학급 카드에 정호연이라는 이름은 없었다.
"나도 궁금해. 이렇게 다정한 네가 누군지."
세 번째 편지는 옥상에 있었다. 옥상의 비밀번호는 국궁부가 만들어진 0313. 옥상에 있던 편지 안에는 학교에서 일하시는 김순이 기사님을 비롯한 사감, 조리원의 정보가 있었다. 또 학교 외부의 조력자로 쪽문을 통해 중화요리를 배달받을 수 있는 곳, 추천 메뉴가 적혀 있었다. 추천 메뉴를 시킨 소리는 배달원의 말에 옥상에 또 다른 누군가가 배달시켰음을 깨닫는다. 국궁부가 사용하는 옥상에서 호연이 추천해 주는배달 음식을 먹는 사람. 누구일까?
이렇게 편지는 등장인물 '호연'에 대한 힌트와 다음 편지의 힌트로 구성되어 있다. 총 10개의 편지를 찾아가는 내용으로 정호연이라는 인물은 누구인지부터 국궁부와 무슨 인연이 있고, 어떻게 소리가 올 것을 알고 편지를 적었는지까지 미처 설명하지 못한 내용들이 담겨 있다.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우선 재미있다. 애니메이션과 같은 그림체와 시원한 색감은 보는 눈을 즐겁게 하고, 편지 속 힌트를 찾아 또 다른 편지를 향하는 줄거리는 방심할 틈 없이 흥미롭다. 나는 이 책을 인간관계에 지쳐있을 때 선물받아 처음 알게 되었다. 지루하지 않은 스토리와 두껍지 않은 책은 앉은 자리에서 읽기 충분했다.
두 번째로 이 책은 인간관계를 돌아보게 한다는 점이다. 책을 읽고 '나는 뭘 그렇게 두려워했던 것일까', '나는 매 순간 후회하지 않은 선택을 하고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나에게 소리는 용기를 준다. 또 용기를 통한 '선함'은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왜 호연은 소리에게 편지를 남겼을까? 이는 작가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이다.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호연이 남긴 '편지'는 과거 소리의 호의에 대한 호연의 대답이자 소리를 움직이게 하는 신호가 된다.
소리는 자신이 옳다고 믿은 것은 행하는 타입이다. '만화 주인공이니까 가능한 이야기겠지' 생각하기 쉽지만 견딜 수 없어 도망치듯 전학을 결정하고, 전학간 학교에서도 지워지지 않는 괴롭힘에 소리는 여전히 두려워한다.
이때 만난 호연의 편지는 소리의 친구가 되어 극복의 매개체로 작용한다. 호연의 편지가 그랬듯 이 글이 신호가 되어 인간 관계에 지친 당신에게도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