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만약'이란 게 없겠지만, 1860년대 시작된 근대가 우리 힘으로 이뤄졌다면 어땠을까를 늘 생각합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 근대는 이식된 근대였습니다. 이식된 그 길을 서울에 남아있는 근대건축으로 찾아보려 합니다.[편집자말] |
이 집 앞에 서면 누구나 아련한 추억 하나쯤 꺼내 들게 마련이다. 맵찬 바람이 옷깃을 여미는 늦가을이면, 더 그렇다. 납작한 모서리 박공지붕에 오래된 푸른 기와를 이고, 대흥동에서 흘러내린 언덕 아래 아담한 광장을 품고 있다. 곱게 나이 든 집에선 따스한 정감이 묻어난다. 경의선 신촌역이다. 새로 들어선 역사(驛舍) 한켠으로 밀려나 초라해지고, 모습은 물론 기차역 기능마저 딴 얼굴로 바뀌어 버렸다.
1986년 "이 나라 국시는 반공이 아니라 통일이어야 한다"는 야당 국회의원의 당연한 말에, 영혼 없는 언론이 촐싹거리던 즈음이다. 선후배 몇이 능곡으로 모꼬지 가면서, 이 집에서 열차를 탄다. 모꼬지에서 논쟁은 찌르고 베는 칼처럼 서슬 퍼렇게 날 선 것들이었다. 서로 간 차이가 날카롭고 차가운 얼음으로 부딪친다. 막걸리는 비워져 나가고, 부딪치는 논쟁은 차비마저 탈탈 털어 모두 마셔 버리게 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 모두가 난감하다. 돌아갈 차비가 없으니 천상 발 기차를 타는 수밖엔. 열차마저 뜸한 경의선 철로를 따라 걷는다. 사방은 일렁이는 황금물결이고, 너른 들엔 바지런한 농부들이 점점이 박혀있다. 한나절도 더 걸어 만난 신촌역. 연한 파랑의 나지막한 집이 그렇게도 반갑고 따스하기만 했던, 그해 늦가을 촉감이 여전히 생생하다.
동북아시아 철도전쟁
러시아는 극동 진출 교두보로 일찍이 시베리아 횡단 철도(TSR)를 구상한다. 1887년 노선측량을 마치고, 프랑스 도움을 받아 마침내 1891∼1892년 착공에 들어간다. TSR은 특히 영국과 일본에게 엄청난 위협으로 다가온다. 만주와 한반도가 이들 사이 다툼의 중심으로 부상함은 물론, 1902년 체결된 영·일 동맹이 구상되어 진 직접적 계기다.
러시아 주도로 삼국간섭이 관철된 후, 1896년 러시아-청나라가 밀약을 맺는다. 대가로 러시아는 동청철도(東淸鐵道, 치타∼하얼빈∼블라디보스토크) 부설권을 얻는다. 아울러 1898년 3월엔 동청철도 지선인 남만주철도(하얼빈∼선양∼대련)마저 얻게 된다. 그러자 영국과 일본이 다급해진다.
일본은 그해 4월 러시아와 '니시·로젠협정'을 맺어 만주에서 러시아 권리를 인정하고 한반도에서 자국 이권을 챙기는, 즉 일시적 후퇴전략을 꺼내 든다. 이 협정을 통해 경부선 철도 부설권은 확실하게 일본 권리로 굳어진다. 9월에 마침내 경부선이 일본 손아귀로 넘어간다.
영국도 10월 중국 경봉철도(京奉鐵道, 베이징∼산하이관∼봉천(선양)) 차관계약을 성사시킴으로써, 동북아에서 일시적인 힘의 균형이 이뤄진다. 하지만 문제는 서울∼의주를 잇는 경의선이다. 이 싸움엔 프랑스도 끼게 된다. 철도 부설권은 그만큼 열강의 꿀단지나 다름없었다.
서로 다른 생각
러시아가 채용한 철도는 광궤(레일간격=궤간 1435㎜ 이상, 러시아 광궤는 1524㎜)이고, 일본은 영국의 그것을 채용한 표준궤(궤간 1435㎜)다. 궤간 차이는 철도차량은 물론 역사(驛舍)와 신호·통신 등 모든 기반시설과 운영시스템의 불가피한 차이를 의미한다.
경의선은 러시아에겐 한반도로 남하하는 길이고, 일본에겐 대륙으로 나가는 길이어서 피차간 반드시 거머쥐어야 하는 철도다. 러시아는 남만주철도를 서울까지 연결할 구상을, 일본은 경부+경의선을 러시아가 건설하는 남만주철도와 교차해 영국이 건설하는 경봉철도 잉커우(營口)역까지 연결(영의철도(營義鐵道))할 구상을 한다.
하지만 조선의 생각은 다르다. 1896년 5월 경의선 철도 부설권을 프랑스 피브릴 사(社)에 준다. 7월에 한국철도 규칙을 제정, 한반도 내 철도 규격을 표준궤로 정하는 방침을 세운다. 하지만 이는 아관파천 후인 11월, 러시아 영향으로 광궤로 바뀌게 된다. 이에 일본의 우려가 현실이 되는 것처럼 여겨진다.
경의선 부설권을 얻은 피브릴 사는 투자자 모집에 실패하고 시간을 허비해, 약속한 착공 일자(1899년 7월 이내)를 지키지 못할 상황에 직면한다. 프랑스 자금이 투입된 시베리아철도와 동청철도 등으로 러시아는 자본 여력이 없다. 이에 피브릴 사는 1899년 5월 일본에 부설권 양도 의사를 밝힌다.
일본에겐 넝쿨째 굴러온 호박이지만, 걸림돌도 여럿이다. 7월 이내 착공은, 경부선 건설에 허덕이는 일본에게도 불가능에 가까운 시간이다. 6월 26일 한국은 피브릴 사에 계약 파기를 통고한다. 이즈음 경원선 부설권 싸움에 독일도 참여함으로써, 한반도 북부 철도는 열강들 각축장으로 변모한다.
하지만 한국 정부 생각은 전혀 다르다. 자력으로 경의·경원선을 설치할 계획을 세운다. 1899년 3월 조선인이 설립한 대한철도회사(아래 철도회사)에 착공기한 5년 조건으로 두 철도 부설권(6월 경원선, 7월 경의선)을 인가한다. 정부도 이 회사가 기술 및 자본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정부 기구로 9월에 서북철도국을 설립하여 직접 시공에 나선다. 엄청난 자금압박과 재정난에도 불구하고 이용익(李容翊) 주도로, 피브릴 사 측량 결과와 기술자를 승계하여 1902년 3월 협궤(표준궤보다 좁은 궤도)로 서울∼개성 간 노반공사를 시작한다.
음흉한 일본
하지만 자본과 기술이 없는 서북철도국이 원만히 공사를 완료되지 못하리란 전망은 일반적 인식이었다. 이에 일본은 일본제일은행을 동원, 부설권을 가진 철도회사에 부족자금대여 방식으로 회사를 장악할 계획을 짠다. 그러나 공사는 서북철도국이 주도하는 중이고, 철도회사는 1904년 7월 이내 착공해야 권리가 인정되는 실정이다. 예상대로 1903년 1월 서북철도국 공사가 중단된다.
한편 1903년 2월 16일, 러시아가 경의선 철도 부설권을 한국에 요청한다. 일본은 물론 철도회사도 강력하게 반대한다. 한국은 4일 만에 러시아 요구를 거절하나, 다급해진 일본이 3월 10일 철도회사와 출자계약을 성사시킨다.
서북철도국과 모호하던 권리관계도 7월 13일 고종이 철도회사에 경의선 건설을 인가함으로써 사실상 종료된다. 그러나 일본도 실정이 여의치 못하다. 경부선과 경의선 동시 시행은 엄청난 부담이다. 일본은 착공기한 연장을 모의한다.
7월 16일 러시아가 거듭 부설권을 요구하나, 18일 한국 정부가 자력으로 경의선을 건설할 것임을 밝히면서 러시아 요구를 거절한다. 그러나 고종이 철도회사에 부여한 건설구간은 서울∼평양에 국한되었다. 평양∼의주 구간은 불명확하다.
철도회사와 서북철도국이 서울∼개성은 철도회사가, 개성∼의주는 추후 협상하기로 합의한다. 9월 8일 철도회사와 일본 간 차관계약이 이뤄진다. 이 계약에 따라 경의·경원선 부설권을 일본이 완전하게 장악하게 된다.
러·일전쟁 도화선
동북아에서 철도를 놓고 다투던 싸움이 러·일 간 협상으로 귀착된다. 1898년 5월 러시아가 획득한 남만주지선∼압록강 간 철도 부설권은 일본의 영의철도 노선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다. 일본 또한 경원선을 연장, 길림에 이르는 철도와 아울러 경의·영의철도를 관철하기 위해 러시아와 협상에 나선다.
1903년 10월부터 1904년 1월까지의 협상은 결국 결렬되고 만다. 핵심 쟁점은 '한반도 북위 39° 이북에 대한 영구 중립지대 설정과 만주를 일본 이익 범위 밖에 두는 내용'에 대한 차이였다. 이는 실질적인 한·만 지역의 철도 접속 문제였으며, 아울러 그간 한·만에서 영·일·러·불의 다툼이 결코 합의에 이를 수 없는 쟁탈대상임을 재확인한 것일 뿐이었다. 결과는 러·일전쟁의 개전이었다.
경의선은 러·일전쟁 와중에 착공되어 1906년 운영을 개시한다. 지금의 서울역이 1925년 완성되기 전까지 용산∼수색이 경의선 주 구간이었다. 신촌역은 1920년 만들어져 운영을 시작한다. 서울역 완성으로 주 운행구간이 바뀌기 전까지 시발(始發)역 기능도 한다.
집은 얌전하다. 한적한 시골 간이역을 연상시킨다. 구석으로 밀려나 동그마니 외떨어진 집을 바라보고 있자니, 측은함을 넘어 가슴 한구석이 아프고 시리다. 얼마나 많은 독립운동가가 이 역을 통해 만주로 떠나야만 했을까? 전답과 재산을 앗긴 얼마의 민중이 고향을 버리고 간도로 도망하듯 쫓겨 가야 했을까? 작은 이 역사(驛舍)에 갇힌 한숨과 피눈물, 두려움은 또 얼마였을까?
우리는 통일을 갈망한다. 통일은 곧 연결이면서 변화이고, 회복이다. 경의선은 다행히 통일을 예비하고 있다. 그리되면 가장 빨라지고 바쁘게 변화할 철길이 경의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