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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장 선거에서 네거티브 캠페인을 진행하기로 결정한 건, 주민들의 머릿속에 박힌 내 이미지가 다소 애매했기 때문이라고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남편이 변명조로 설명했다. 그야말로 비겁하고 애매한 변명이었다.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이장 선거처럼 소규모 선거는 유권자들이 이미 후보자들에 관해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네거티브가 더 효과가 있다고. 그래서 그런 거니까···."
"반장님이나 소평댁, 부산댁 언니가 내 이미지가 어떻다고 했길래, 네거티브로 결정한 거야?"
"그게 좀··· 뭐든 이것저것 열심히 하긴 하는데, 어떻게 보면 그게 천성적으로 그냥 좀 오지랖이 넓고 덤벙대는 느낌이라고 할까···."
"오지랖? 다들 아주 정신 분석을 하고 난리가 나셨구만."

 
 기권방지 계도운동 1979
기권방지 계도운동 1979 ⓒ 선거관리위원회
 
"제3의 후보로 등장했다가 사퇴하십시오"

밤이 되자 선거사무소인 우리 집으로 하나둘씩 선거조직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반장, 부산댁, 소평댁에 이어 우 이사까지 등장했다. 자문위원 자리를 하나 억지로 떠맡은 우 이사의 갑작스런 등장으로 선거대책위원회는 활기가 넘쳐흘렀다. 남편은 우 이사에게 다짜고짜 무리한 부탁을 했다.

"자문위원님, 위원님도 박 이장이 교체돼야 한다는 데 절실히 동의하시죠? 그러니까 이번에 제3의 후보로 선거에 등판해 주셔야겠습니다."
"뭐라고? 나보고 이장 후보자가 되라고? 할 일도 많은 내가 왜? 내가 나서야 할 아무런 명분도 없는데."
"잠깐 등장하셨다가 주민들의 표심을 얻은 뒤에 후보 단일화를 통해 우리 후보자님께 표를 좀 모아주는 역할을 하시면 안 되겠습니까?"
"이 친구 이거, 그렇게 안 봤더니만, 아주 못된 것만 배웠구만. 그러면 나는 이번 선거 그만 기권해야겠네."


우 이사가 남편의 제안을 듣고 펄쩍 뛰자, 남편은 사과도 하지 않고 급하게 대화의 주제를 바꿔버렸다.

"이번에 우리 캠프의 선거 슬로건은 '그동안 뭐했노?'로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6년 동안의 박 이장의 행적에 대해서 이 문장 하나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이봐, 사무장! 자네가 그런 꼼수를 쓰면서 이번 선거를 혼탁한 분위기로 끌고 간다면, 나는 정말로 기권할 거라고."


매사에 정확한 우 이사는 남편의 대답 없이는 선대위에 가담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위원님, 후보 단일화 같은 건 꼼수가 아니라 선거 공학으로 봐야 하구요. 어쨌거나 예전 이장 선거의 관례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정정당당한 선거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예전 이장 선거의 관례? 막걸리 사주고, 이장 되면 집 앞에 공구리 쳐주겠다고 하고, 뭐 그런 거 말인가?"

"그럴 일은 없을 거구요. 선거관리위원회의 규정대로 진행할 겁니다."
"허허, 이장 선거와 선관위가 상관이 있나? 아무튼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이장 선거 관련해서 선관위의 규정을 하나라도 말해보게나."

"그게, 어쨌거나 일단 잡음 없이 선거전을 하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쯧쯧, 아무튼 자네를 주의 깊게 한번 지켜보겠어."


네발클럽과 실버카의 격돌

선거전에 돌입하자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인 사람은 소평댁이었다. 소평댁이 우리 마을뿐만 아니라 인근 동네를 통틀어 제법 큰 영향력이 있다는 사실을 나는 선거를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알고 보니 소평댁은 '네발 클럽'의 정신적인 리더였다.

네발 클럽은 정식적인 단체는 아니지만, 농업용 4륜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사람들이 서로 정보를 교환하는 모임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시골에서는 일명 '네발'이라고 불리는 이 오토바이가 어르신들의 손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어르신들은 이 네발을 타고 논과 밭 그리고 산까지 일하러 다니고, 짐칸에는 온갖 것들-봄에는 비료나 퇴비, 가을에는 수확한 농작물-을 싣고 나른다. 네발은 대개 125cc 정도의 배기량에 불과하지만, 시골의 어르신들에게는 최고의 이동 수단이라 할 수 있다.
 
 주차되어 있는 음천마을 주민의 네발과 실버카
주차되어 있는 음천마을 주민의 네발과 실버카 ⓒ 노일영
 
소평댁이 네발 클럽의 리더가 된 것은 폭주와 과감한 코너링을 즐기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소평댁은 인근의 거의 모든 험한 길을 네발로 답사했을 뿐만 아니라, 길이 아니라도 좋다는 말을 생활신조로 삼고 어디든 닥치는 대로 달렸다.

그 결과 소평댁은 우리 마을과 인근의 모든 농로, 비포장도로, 비탈길, 오솔길, 스스로 만든 길 등 도로와 길에 관해서라면 줄줄 외우고 다닐 정도였다. 그리고 네발을 가진 사람들에게 매우 유용한 그런 정보들을 남김없이 공유하는 걸 즐겼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소평댁은 네발을 가진 사람들의 추종을 받기에 이른 것이다.

"비너덕 언덕빼기 밑에 쪼매 몬 가서, 할마시 허리매로 꼬부라진 소나무를 지날 짝에는 조심해야 되는 기라. 거(기)는 무신 짐승이 노상 땅을 파디비 놔가꼬, 속도가 있으믄 네발이 히떡(벌러덩) 디비지뿐다꼬(뒤집힌다고)."

네발을 운전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렇게 유익하고 요긴한 정보를 항상 제공하는 소평댁을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소평댁은 부상이나 상처로부터 그들을 지켜주는 요정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말이다.

멀리서부터 굉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소평댁의 네발이 만드는 소리였다. 오토바이의 머플러가 터져서 고장이 난 지 한참 전이었지만, 소평댁은 고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내연기관의 폭음을 날것 그대로 듣는 것을 즐겼다. 요정이라고 하기엔 좀 많이 과격한 편이라고 해야겠다.

"일영아! 아이고야, 아이다. 이사장! 어데 가노?"
"거참, 소평댁 아주머니, 아니 조직국장님! 제가 몇 번을 말씀드렸습니까! 일영이도 아니고 이사장도 아니고 후보자님이라고!"

"아이고야 무시라(무서워라). 알겄네, 알겄어! 지도 첨에는 소평댁이라꼬 먼저 캐놓고, 내한테 지랄해샀네. 다시 해보께, 다시 하믄 되잖아! 그노무 후보자님, 어데를 가십니까요?"
"그냥 일영이라고 해요, 아줌마. 부산댁 언니 집에 볼일이 있어서···."


심각한 표정으로 잔소리를 하는 남편을 향해서는 비죽비죽 웃었다가 소평댁은 고개를 돌려 내 얼굴을 보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후보자님, 내가 네발이 타는 영감 할마시들 한 3명은 우리 표로 맨들었뿐 거 가튼데, 그란데 한 4표는 날리뿐 거 가타가꼬, 우짜노?"
"그게 무슨 말입니까?"


깜짝 놀란 남편이 다급하게 물었다.

"내가 일영이를 지지한다 카이까네 금촌댁이가 고마 박 이장 쪽으로 붙어먹어뿐 거 아이가. 금촌댁이가 쪼로로 움직이가꼬 표 4개가 저리로 가뿐 기라. 하이튼가네 '실버 카' 타는 것들은 하늘의 이치와 땅의 법도를 모른다꼬."

'실버 카'는 수동과 전동 두 가지가 있다. 수동형은 고령자용 보행보조기구라 할 수 있는데, 어르신들이 외출할 때 이 기구를 밀면서 이동할 수 있다. 그리고 전동형은 배터리를 이용해서 움직이는데, 편한 좌석에 앉아 느린 속도로 이동할 수 있다. 금촌댁은 전동형 실버 카를 이용하는 주민이다.

소평댁은 네발과 실버 카 이용자들의 대결 구도로 몰고 갔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소평댁과 금촌댁은 울타리를 사이에 둔 이웃인데, 금촌댁의 집이 비스듬한 비탈 위쪽에 있다. 금촌댁은 오래전에 집 경계를 따라 감나무와 탱자나무를 심었다. 두 사람 간의 관계에 이게 문젯거리였다.

3표를 얻고 4표를 잃다

탱자나무는 무럭무럭 자라서 늘 소평댁 집 창문에 그늘을 만들었고, 가을만 되면 감나무들의 홍시는 소평댁의 지붕과 마당에서 수류탄처럼 펑펑 터졌다. 감나무와 탱자나무 울타리 때문에 분란이 시작된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명절만 되면 고향에 내려온 소평댁의 자식들이 금촌댁의 맏아들과 담판을 벌이곤 했지만, 협상은 늘 결렬됐다. 어느 해에는 소평댁의 막내아들이 나무들을 베고 철제 울타리를 설치하는 비용 전부를 내겠다고 말했고, 금촌댁의 맏아들도 그 제안을 수용했다.

하지만 금촌댁이 결사반대하는 바람에 합의는 깨지고 말았다. 정이 든 감나무와 탱자나무 대신 생명 없는 쇠 쪼가리 따위로 집 둘레를 감쌀 수는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후로 소평댁과 금촌댁은 관계가 더 악화되어 철천지원수가 된 것이다.

"4표를 얻고 3표를 잃어도 아쉬울 판에, 3 빼기 4라니요. 도대체 이게 뭡니까, 조직국장님."

소평댁은 4륜 오토바이에 앉아 먼 산을 바라보며 남편의 반응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 듯했다.

"땅을 죽을똥살똥 한번 파디비봐라, 어데 표 3개가 그냥 툭 튀나올란가. 그라고 내 이런 말은 안 할꼬 캤는데, 부산댁이가 집 내놨다 카는 소문이 있더라꼬. 집 팔아뿌고 인자 곧 동네 떠나뿔 사람인데 비서실장인동 뭔동 그게 잘 되겠냐꼬."

남편은 눈을 질끈 감고 두 손으로 머리통을 움켜잡았다.

#협동조합#마을기업#함양군#지리산의식주연구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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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살다가 함양으로 귀농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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