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댁 언니는 귀농·귀촌인들의 표는 걱정할 필요도 없다며, 무조건 몰표가 쏟아질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그간 박 이장이 베풀어준 무관심과 냉대에 다들 치를 떨고 있다고, 개별적으로 인터뷰를 한 결과를 남편에게 보고하기 시작했다.
"비서실장님, 귀향하신 분들은요?"
"그쪽은 나랑 코드가 좀 안 맞잖아. 아무래도 그분들은 귀향하신 본부장님이 관리하시는 게···."
남편은 언니의 대답을 귀담아듣는 눈치가 아니었다. 집을 내놓았다는 소평댁의 얘기를 어떤 방식으로 언니에게 캐물을지 고민하는 듯했다. 언니를 제외하고는 우리 집에 모인 사람들 모두 심란한 표정이었다.
길에서 소평댁의 얘기를 듣고 남편은 언니의 집으로 가는 대신, 선거조직원들을 우리 집으로 호출했다. 그리고 소평댁은 신이 나서 언니가 곧 이사를 갈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모두에게 선언했고···. 아무튼 그런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 언니가 등장한 것이다.
"비서실장님, 그래 집은 얼마에 내놓으셨습니까?"
"어라, 무영이 아빠!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집을 팔려고 내놓으셨으면 돈 버는 일에만 집중하시지, 선거판에는 왜 뛰어든 겁니까? 이건 돈도 벌고 명예도 얻고, 꿩 먹고 알 먹고, 도랑 치고 가재 잡으려는 심보 아닙니까?"
"아이구야! 어이가 없네. 내가 집을 내놓았다고? 그런 적 없다고. 그리고 비서실장 하는 게, 명예도 먹고 알도 잡고 도랑도 얻는 거라고? 내가 살다 살다 이런 수모와 치욕은 해운대에서 49평 살다가 변두리 24평으로 이사한 이후로 처음이네, 진짜! 일영아, 미안한데 나 비서실장 그만둘게."
당황해서 얼굴이 빨개진 건 오히려 남편이었다. 쯧쯧, 역시나 남편은 경솔의 아이콘답게 에둘러서 묻기보다는 경거망동하고 말았다. 어휴, 이장 후보자 비서실장이 무슨 명예씩이나 얻는 자리라고···.
"요를 쪼매 봐봐라, 부산댁아! 니가 집 내노코 이사 가뿐다 카는 소문이 동네에 쫙 퍼져 있는 기라. 그라이까네 고마 이실직고를 해뿌라꼬."
"소평댁 아줌마! 저 이사 안 가요. 몇 년 전에 시골에서 사는 게 좀 힘들어서 집 팔고 이사 갈까 하고 무산댁 아줌마한테만 얘기 한 번 한 게 전부라구요."
"무산댁이 요년이구만! 헛소문을 양념매로 뿌리노코 마늘꽁다리매로 부산댁이를 달달 뽂아가꼬 우리를 한입에 꿀꺽해뿌겠다, 요 심산이구만. 아이다, 요고는 무산댁이 하고 금촌댁이가 장소팔이 하고 고춘자매로 해묵은 기 틀림없따."
금촌댁에 대한 증오의 확장성은 소평댁의 마음에서 한계가 없었다. 어쨌든 부산댁의 이사에 관한 소문은 여론 조작을 위한 유언비어로 판명이 난 듯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으로 향하는 부산댁을 주저앉히며 반장이 말했다.
"사무장, 뭐 하고 있어! 얼른 부산댁에게 무릎이라도 꿇어. 우리한테 능지처참 안 당하려면."
"죄···죄송합니다, 비서실장님."
뜬소문이라도
남편에 관한 소문을 물어 온 것도 소평댁이었다. 근본도 없고 집도 절도 없어서 처가살이나 하는 못난 놈에다 국가 공인 불효자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라는 풍문이었다. 떠도는 입소문이 모조리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집은 있지만 절이 없는 건 사실이었고, 국가 공인은 아니지만 집안 공인 불효자인 건 맞는 말이었다. 처가살이를 하는 건 아니었지만, 가끔 내 눈에 못난 놈으로 보일 때도 있었다. 그리고 살짝 근본 없이 굴 때도 꽤···. 하지만 어쨌거나 소문에 등장하는 남편에 대한 평가는 과장된 건 틀림없었다.
"욕심이 많아가꼬 제비 다리라도 뽀사뿔 놈이라 카더라꼬."
소평댁은 무척이나 신난 모습이었다. 소문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과 느낌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게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였다. 의외로 남편은 낄낄거리기만 했다. 하지만 반장과 우 이사, 부산댁 언니는 심각한 표정이었다. 반장이 입을 열었다.
"이런 얘기들이 자꾸 만들어지는 건 문제가 있다고 보는데, 웃지만 말고, 자네 생각은 어떤가?"
"뭐, 맞는 말도 있고 틀린 말도 있지만, 투표를 앞두고 이런 얘기가 도는 건, 아무래도 저쪽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는 거겠죠."
"그러니까 무슨 대책을 세워야 하는 거 아니냐고?"
"뭐 그렇다고 제가 저희 부모님을 모시고 웃으면서 동네 한 바퀴 돌 수도 없는 거고. 이런 종류의 유언비어는 그냥 무시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대응이 최고의 대응인 거 같은데요."
다들 갈피를 잡지 못해 입을 다물고 있는 동안 소평댁이 박 이장을 비롯해서 무산댁, 금촌댁에 관한 얘기 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최근의 일에서부터 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사건도 있었다. 소평댁은 뭐랄까 '치부 백과사전'을 편찬하기 위해 가슴에다 한 땀 한 땀 이야기를 새겨넣는 사람처럼 보였다.
"마음에 드는 거 있으믄 아무꺼나 골라보라꼬. 내가 네발이 타고 동네방네 확 뿌리뿔 끼이까네."
남편의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나, 그건 아마도 전쟁···. 소평댁의 달콤쌉싸름한 제안에 남편의 마음이 동요하며 흔들리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눈동자 너머에서 계산기의 숫자들이 빠르게 점멸하고 있었다. 단 한 사람, 우 이사를 제외하고.
"소평댁 누님, 뭐 하자는 겁니까! 그런 소리는 꺼내지도 마세요!"
"와 안 된다꼬? 저짝이 그 카믄 우리도 이 캐야지!"
"헛소문 퍼트리면, 우리도 저쪽하고 똑같은 사람이 되는 겁니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니 혼자 성인군자 되뿌라. 내는 잡년이 되가꼬 우리 일영이 이장 만들어뿔 끼이까네. 내는 금촌댁 그년이 선거에서 이기는 꼬라지는 죽어도 못 본다꼬."
소평댁에게 투표는 금촌댁과의 일대일 자존심의 대결이다 보니, 이장 선거 따위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었다. 선거 같은 중요한 선택의 문턱에서도 최종적 판단은 이성보다는 감정의 몫인 듯했다. 소문에 대한 대응 방안을 두고 선대본은 두 그룹으로 갈라졌다.
소평댁, 반장, 부산댁 언니, 남편은 뜬소문이라도 만들어서 공급하자는 쪽이었고, 우 이사와 나는 소문 공장의 가동을 반대했다. 사실 내 마음속에서도 저쪽 편에 똑같은 방식으로 되갚아 주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렸지만, 참기로 했다. 내 선택이 위선인지 도덕적·윤리적 판단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런 경우 위선과 선을 구분하기가 쉽지는 않은 것 같다. 다만 우 이사의 결정이 위선이 아님은 확실하다.
이장 선거를 앞두면, 소문 공장은 철야 작업을 할 정도로 바빠지고 수요자도 급증한다. 수요가 많아서 생산이 증가하는 것인지 생산량 때문에 소비자가 많아지는 것인지 잘은 모르겠다. 하지만 유권자이자 소비자의 입장에서 소문은 공짜로 받는 오락거리라서 복잡한 공약보다 더 매력적인 상품이기는 하다.
"형수, 금촌댁 소문은 필요 없구요. 박 이장 관련해서 하나 만들어 보자구요."
"아이라, 금촌댁 고 할마시 꺼가 더 재밌고 충격적이라꼬."
반장의 제지에도 소평댁은 금촌댁을 저격하는 얘기만을 늘어놓았다. 어차피 소문을 만들자고 했을 때부터 소평댁에게 이장 선거 같은 건 아예 관심 밖의 일이었다.
"고 할마시가 혼례를 치를 짝에, 볼따구에 연지는 무칬는데(발랐는데) 마빡에 곤지는 안 찍었뿟는 기라, 그래가꼬 팔자가 씨다 아이가."
"아, 형수! 좀 그만하고. 박 이장 얘기할 거 뭐 없어요?"
반장의 재촉에 화를 낸 사람은 소평댁이 아니라 우 이사였다. 팔짱을 끼고 반장과 소평댁을 노려보던 우 이사는 폭발하고 말았다.
반전
"다 때려치웁시다. 이장 선거 이게 뭐라고 방구석에 모여서 이 지랄을 떨고···."
감자를 캐고 흙무더기만 남은 밭처럼 정적만이 흘렀다. 늘 웃으며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우 이사의 분노 앞에서 소평댁마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반장은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간신히 우물우물 입에서 단어를 뽑아냈다.
"형님, 잘못했습니다. 소문 퍼트리는 건 없었던 걸로 하자구요. 죄송합니다."
"이보게, 반장! 내 이런 얘기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오늘은 말해야겠네. 내가 우리 후보자님 지지해 달라고 돌아다니다 보니까, 다들 나보고 이장을 하라는 얘기를 많이 하더라고. 뭐 그런 소리를 들어도 우리 후보자님이나 주변에 모인 분들이 훌륭하니까, 내가 못 들은 척했는데, 오늘 여기 모여서 하는 짓거리를 보니까···."
우 이사의 말에 반장과 남편은 침을 꿀꺽 삼켰다.
"내가 이번에 이장 선거에 나가야겠네."
순식간에 우리 집은 우 이사의 이장 출마 선언을 위한 장소로 변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