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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가장 맞닿아 있는 술 중 하나인 맥주. 우리는 맥주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문화로서의 맥주를 이야기하고,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에 관하여 이야기합니다.[기자말]
 2022년 1월 24일 서울 시내 편의점에 맥주 판매대 모습.
2022년 1월 24일 서울 시내 편의점에 맥주 판매대 모습. ⓒ 연합뉴스
 
"그러니까 수제 맥주는 손으로 만드는 맥주가 아니고..."

'수제 맥주가 무엇이냐'라고 묻는 친구들을 만나면 언제나 진땀을 흘린다. 수제 맥주도 공장에서 만들어진다고 하면, '그러면 손으로 만드는 게 아닌데 왜 수제 맥주냐'라는 질문이 따라온다.

1970년대 후반,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이 알코올 도수 5도 이상의 주류를 개인이 양조할 수 있도록 허용한 이후, 개성있는 크래프트 비어(Craft Beer)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시에라 네바다처럼 소규모 양조장으로 출발한 곳들의 맥주는 대기업 맥주들 사이에서도 순위권을 다투고 있다. 이 '크래프트 비어'가 한국어로 번역되면서 '수제 맥주'라는 단어가 탄생했다.

맥주를 취미로 들이는 데에 있어, 편의점은 첫 번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슬프게도 '네 캔 만 원'은 사실상 옛말이 되었다. 하이네켄 코리아, 오비맥주, 제주맥주 등 업계 주요 업체들이 물가 상승률에 따라 행사 가격을 4캔 1만원에서 1만1000원으로 인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편의점은 다양한 장르의 맥주를 가장 가깝고 편하게 구할 수 있는 곳이다. 확실히 편의점은 10년 전과 다르다. 대중적인 라거뿐 아니라, IPA, 스타우트, 국내 수제 맥주 등 부담없는 가격에 다양한 스타일의 맥주를 만나볼 수 있는 곳이 되었다.

편의점 수제 맥주 열풍의 중심에 '곰표 밀맥주'가 있다. 대한제분과 세븐브로이 브루잉이 협업해서 만든 이 맥주는 발매 당시 편의점 CU를 통해 집중적으로 팔려나갔다. 곰 캐릭터가 그려진 패키지 디자인, 그리고 달달한 향을 내세워 카스, 테라 등을 제치고 판매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곰표 밀맥주의 대성공 이후, 재미있는 콜라보레이션 맥주들이 연이어 등장했다. CU에서는 이후 구두약 브랜드 말표와 콜라보한 말표 흑맥주, 속옷회사 BYC와 협업한 백양 라거를 내놓았다. 그 외에도 치약, 라면, 캠핑 용품, 골뱅이 통조림, 배달 앱, 치킨, 육포 등 다양한 브랜드와 콜라보한 맥주들이 나타났다. 그러나 이 풍경만을 놓고 수제 맥주의 전성기를 논할 수 있을까.

설득력 없는 콜라보 

최근 편의점에서 발매되었던 콜라보 맥주들을 살펴보자. '아맛나' 아이스크림과 콜라보한 '아맛나 맥주'는 일반적인 라거 스타일을 띠고 있다. 물론 아맛나의 팥맛과는 접점이 없다. 플래티넘크래프트와 유진투자증권이 협업한 '따상주' 맥주 역시 발매되었다. 벨기에식 밀맥주가 과연 주식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지난 여름 CU에 출시되었던 '고급 IPA'는 현대 오일뱅크와 협업한 맥주다. 편의점에서 마실 수 있는 IPA 중 꽤 특색 있는 편이었다. 그리고 이 맥주는 고급 휘발유 카젠의 특성을 담은 벨지안 스타일 IPA로 소개되었다. 휘발유와 식품의 이미지 자체에 접점이 없다. 휘발유의 특성을 담은 맥주란 무엇일까? 맥주의 맛과 아무런 상관없이, 기업의 이미지만 대표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상당수의 콜라보에 설득력이 없다. 콜라보 브랜드를 홍보한 다음, 맥주 맛의 특징을 대충 끼워 맞추는 수준이다. 콜라보레이션 마케팅의 효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성공적인 콜라보는 소비자에게 재미와 맛을 모두 선사할 수 있고, 양 기업에게 기업의 상생을 도울 수 있다. 

재미있는 사례는 많이 있다. 록밴드 데프톤즈(Deftones)와 벨칭비버 브루어리가 협업해서 만든 맥주의 경우, 'Digital Bath', 'Phantom Pride' 등 곡 제목을 따오는 것은 물론이고 데프톤즈의 보컬인 치로 모레노가 직접 홉 재료 선정에 참여했다. 아티스트의 취향을 녹여내면서, 좋은 맥주라는 평가 역시 받았다. 그 외에도 패닉 앳 더 디스코, 메탈리카 등의 밴드가 크래프트 브루어리와 협업을 했다. 팬들에게는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의 취향을 함께 마신다'는 차원의 체험이 될 수 있다.

좋은 콜라보의 예는 국내에도 있다. 맥파이 브루어리가 프릳츠 커피와 함께 콜라보한 발틱 포터(발트해 연안 국가들에 수출하기 위해 영국에서 만들어진 포터Porter 맥주, <The Beer : 맥주 스타일 사전>) 스타일의 '첫차' 맥주를 정기적으로 내놓고 있다. 이 맥주에 매력을 느낀 사람들은 해당 커피를 찾아 마실 수 있다. 공격적인 마케팅 이전에 가장 중요한 것은 '맛'이다.

독특한 콜라보 상품들이 'MZ 세대'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호기심 자극에도 한계가 있다. 맛에 대한 연구 없이, 마케팅에만 몰두한다면 수제 맥주에 대한 인식이 오히려 부정적으로 고착될 수 있다.
 
 편의점은 말 그대로 입문의 '시작점'이다.
편의점은 말 그대로 입문의 '시작점'이다. ⓒ unsplash
 
지금 편의점에서 판매되고 있는 '콜라보 수제 맥주'의 상당수는 대기업의 OEM을 통해 생산된다. 생산 과정이 대기업에 종속되어 있다면, 맛에서 차별점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고민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수제 맥주의 '힙한' 이미지만을 전유한 콜라보 맥주의 난립은 오히려 본질을 왜곡한다.

편의점은 말 그대로 입문의 '시작점'이다. 홉, 맥아, 효모, 밀, 귀리 등. 좋은 재료를 많이 활용한 맥주일수록 단가가 높아지기 마련이다. '4캔 만원'으로 상징되는 편의점 단가에 맞추다 보면 맛의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업계에 있어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편의점에서 맛있는 수제 맥주를 접한 소비자들이 흥미를 느끼고 다음 단계(바틀샵이나 펍, 브루어리에서 마실 수 있는 수제 맥주)로 넘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천편일률적인 콜라보 맥주가 난립한 지금,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포장이 특이하지만, 맛은 특별하지 않은 맥주'. 그것이 수제 맥주의 전부로 여겨지지 않기를 바란다.

#수제맥주#크래프트 맥주#콜라보 맥주#편의점 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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