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이장 업무는 다음날까지 이어졌다. 주민들이 기르는 21종의 가축과 화목보일러 사용에 대한 전수 조사, 주택화재보험 가입 홍보, 그리고 '이장 회의 서류' 전달과 보조사업에 관심 있는 대상자 확인.
소평댁은 농협에 매상하고 남은 서리태를 고르고 있었다. 은색의 큼직한 알루미늄 쟁반 위에 서리태를 펼쳐놓고 쪼그라들거나 썩고 구멍이 난 것들을 골라내는 작업이었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소평댁은 이미 농업용 사륜 오토바이인 '네발'을 타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았는지 목에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다.
"아줌마, 검은콩 이거 집에서 드실 거예요?"
"아이라! 농협 수매가가 아무리 형편없다 캐도 이거를 내가 우예(어떻게) 묵겠노. 팔아뿌야 묵고 살지. 내사 마(나는 뭐) 찌꺼래기만 묵는다꼬. 합천댁이가 서 되만 달라 캐가꼬 이 카고 있는 거 아이가."
하기야 나 역시 두릅과 밤농사를 지으면서 늘 좋은 것들은 팔고, 남은 것들만 먹는 형편이다 보니 소평댁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소평댁의 집은 기름보일러를 사용하는데, 집 안의 공기는 바깥과 다를 바가 없어서, 소평댁이 말을 할 때마다 입에서 입김이 뿜어져 나올 정도였다.
자식들이 구들이 놓인 옛날 기와집을 헐고 콘크리트로 슬래브 단층집을 지으며 기름보일러를 깔았지만, 소평댁은 겨우내 보일러를 돌리지 않는다. 땔감을 장만하느라 고생하지 않을까 하는 자식들의 염려가 소평댁을 겨울 내내 냉방에서 버티게 만든 것이다. 아무튼 좋은 의도가 언제나 좋은 결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썩을 것
"추분데 여 전기장판 위에 앉그라 마. 그란데 무신 일이고?"
"집에 암탉 5마리 수탉 1마리, 몰티즈 1마리 외에 다른 가축이나 동물은 없나요? 그리고 아줌마, 몰티즈 쟤는 이름이 뭐예요, 암컷이에요?"
"고거는 알아서 뭐 할라꼬?"
"아, 면사무소에서 통계 조사가 있어서요."
"짐승이야 머 고게 다지. 자는 암놈 아이가. 손자가 도회지 아파트에서 델꼬 살았는데, 하도 짖어사가꼬 쪼매 전에 우리집에 던지뿌고 가뿟다 아이가. 이름이 뭐라 카더라, 그래 '스글리' 아이다 '스컬리'라 카더라꼬. 내사 마 내 몸뚱아리도 간수하기 힘든데, 야까지 멕이야 되이까네, 야를 마 '썩을 것'이라고 불러뿐다 아이가."
우리 마을에 개들이 유난히 많은 이유 중 하나는 소평댁의 스컬리와 비슷한 처지의 개들도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푸들인 '몰리'를 도시에서 키우다가 함양으로 데려왔다. 하지만 어린 아들과 몰리가 앙숙지간이라서, 같은 동네에 사는 엄마가 몰리를 돌보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 마을에는 푸들, 치와와, 몰티즈, 퍼그 같은 소형견에서부터 불도그, 시베리안 허스키, 맬러뮤트, 사모예드 같은 대형견들까지 있어서 늘 애견대회가 열리고 있는 듯하다. 몇몇 대형견들의 경우에는 논밭의 작물들을 산짐승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고용되었지만, 복지를 비롯한 여러 가지 여건이 열악한 상황이다.
아무튼 이국적 혈통을 지닌 이 개들이 가끔 대탈주를 감행하는 덕분에 동네의 곳곳에서 열정의 열매들이라고 할 수 있는 동서 문화 융합의 결과물들이 탄생한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천진난만한 시골 개의 얼굴 위에 뭔가 이국적인 표정과 미소를 지닌 아름다운 생명체들이 우리 마을에 등장하는 것이다.
소평댁
"그런데 아줌마, 타작마당 뒤에 있는 합천댁 논에다 농로 포장해주기로 했다면서요? 그거 제가 못 한다고 합천댁 아줌마한테 얘기했어요."
"고기 무신 지랄맺은 소리고? 내가 해준다 캤는데. 내가 니 이장 맨들라꼬 얼매나 똥줄이 빠지게 뛰댕깃노. 그란데 고거를 하나 몬 한다꼬?"
"아줌마가 이번 선거에서 많이 도와주신 건 잘 알지만, 농로 포장 같은 건 공적인 사업이라 제가 처리할 수 있는 사안도 아니고, 더구나 아줌마가 약속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이노무 가시나가 알고 보이까네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짐승 새끼였고만. 오야(오냐) 니가 내를 이래 웃사꺼리(웃음거리)로 맨들어 노코 이장질 제대로 할란가 어데 한번 두고 보라꼬. 니가 변사또라꼬 내가 온 데로 댕기매 나발을 불고 댕기뿔 끼이까네."
자신이 국회의원이라도 된 것처럼 온갖 약속을 남발하고 다니는 소평댁을 정리해야 했다. 이장 선거가 끝나고 남편은 조직국장을 맡았던 소평댁을 버려야 마을이 제대로 돌아간다고 말한 바 있다. 순박한 웃음을 지닌 소평댁에게 매정하게 말한 것은 마음 아팠지만, 이 순간이 지나고 언젠가는 화해의 순간이 올 것이라고 믿는 수밖에 없었다.
이장 회의 서류를 건네받은 우 이사는 흐뭇한 표정이었다. 선거 때 자문위원을 맡았던 우 이사는 우리 선거 캠프가 유언비어 살포 같은 꼼수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중심을 잘 잡아 준 역할을 했다. 사실 우 이사의 올바른 판단 덕분에 우리 쪽의 선거 운동이 바른길을 걸을 수 있었다.
우 이사는 동물도 기르지 않았고, 보조사업이나 지원사업에도 관심이 없었을 뿐더러, 심지어 집에는 그 흔한 보일러도 없었다. 6평짜리 컨테이너에다 세간붙이를 늘어놓았으니 보일러가 없는 것도 당연했다. 우 이사는 여름에는 선풍기 하나, 겨울에는 온풍기 하나로 함양의 기후에 순응하고 살았다.
얼핏 보면 세속을 초월한 도인처럼 보이지만, 우 이사에게는 다른 속사정이 있었다. 우 이사의 아내는 산골 마을 출신인데, 절대로 시골로 낙향하려고 하지 않았다. 집 근처에 대형 마트와 수영장이 꼭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골의 살림살이에 대해 워낙 빠삭하게 잘 알고 있었기에, 다시 어릴 적의 고생을 하고 싶지 않다는 게 결정적 이유였다.
홀아비
우 이사가 농막에 가까운 컨테이너를 치우고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겠다고 한 지 벌써 5년이 흘렀다. 봄이면 씨앗을 뿌렸고, 여름이면 꽃이 폈고, 가을이면 풍년 되었지만, 우 이사는 겨울이면 행복하지 못했다. 사랑하는 님이 옆에 없어서였다.
그러다 보니 우 이사의 시골살이는 어정쩡한 상태의 연속이었다. 전입신고를 하고 주소지를 함양으로 옮겼지만, 자신의 반쪽은 여전히 도시에 남아있는 처지라서 여러 가지 곤란한 문제들이 많았다. 더구나 그림 같은 집이 초원 위에 세워지려면 도시의 아파트를 팔아서 목돈을 손에 넣어야 했는데, 우 이사의 아내는 그걸 용납하지 않았다.
처음에 우 이사는 자신의 노동만으로도 집을 지을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워낙에 성실하게 평생을 살아온 터라 몇 년 만 고생하면 농사를 통해 자신이 번 돈으로 집을 장만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우 이사는 닥치는 대로 미친 듯이 일했다. 자신의 땅뿐만 아니라 이곳저곳 몇 년째 방치된 논밭을 임대해서 농사를 짓고, 틈틈이 양파밭과 감자밭에서 품도 팔았다. 하지만 결과는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는 정도였다.
트랙터나 콤바인 같은 고가의 농기계를 소유하고 대규모로 농사를 짓는 대농이 아니면, 농촌에서 삶을 지속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깨닫게 된 것이다. 사실 소농은 자신의 삶을 재생산하는 것조차 버겁다. 귀농한 지 3년째에 접어들고서야 우 이사는 소농의 삶이 어떠한지 대충 파악한 듯했다.
그렇다고 우 이사가 그림 같은 집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다만 해가 바뀔 때마다 그림의 평수가 점점 줄어들 뿐. 어쨌든 우리 마을에는 우 이사와 비슷한 처지의 아재들이 다섯 분이나 있다. 아내들이 도시에서 살기를 고집해서 팔자에도 없는 홀아비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재, 아지매는 아직도?"
"그 얘기는 그만하지, 노 이장."
진심으로 간절하게 나는 우 이사가 겨울이면 행복하면 좋겠다. 멋쟁이 높은 빌딩 으시대지만 유행 따라 사는 것도 제멋이지만, 반딧불 초가집이든 그림 같은 집이든 우 이사가 님과 함께 같이 산다면 참 좋겠다.
첫 업무 완료
우 이사의 집 방문을 마지막으로 첫 번째 이장 업무가 끝났다. 우리 마을에는 소형견 34마리(암컷 22)와 대형견 28마리(수컷 11)가 살고 있었다. 그리고 닭은 312마리였는데, 수탉은 14마리였다. 그 외에도 오리 암컷 2마리, 암염소 7마리와 숫염소 2마리, 그리고 토끼 4마리가 살고 있었다.
또한 마을 전체 45가구 중에 화목보일러를 사용하는 집은 12곳이었고, 이들 중에 주택화재보험을 가지고 있는 집은 6곳이었다. 면사무소의 방침대로 보험이 없는 집에는 화재보험에 가입하라고 권했다. 그리고 보조금 지원사업에 관심 있는 주민은 총 11명이었다.
이장 선거를 거치며 개인적으로 나를 싫어하게 된 사람들조차도 '이장 회의 서류' 사본을 집집마다 배포하는 것에는 환영을 표했다. 그만큼 주민들은 이장과의 소통을 원하고 있었다. 면사무소의 복사기에게는 미안하지만, 2021년 1월부터 시작된 이장 회의 서류 배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