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통령선거가 끝난지 얼마나 됐다고 또 선거란다. 오는 6월 1일 열리는 전국동시지방선거다. 광역단체장과 기초단체장, 광역의원과 기초의원을 합해 약 4000명의 공직자를 뽑는 중요한 선거가 두 달 남짓 남았다. 또 선거라니 지긋지긋하다고 느끼는 유권자들도 있겠지만 지방선거 나름의 묘미는 있다.
결선투표제가 없고 양당의 발언권이 큰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단 1명의 지도자를 뽑는 대통령선거에서는 표가 거대양당 후보들에게 수렴되는 것이 일종의 법칙으로 통한다. 반면 지방선거에서는 유권자가 여러 장의 투표지를 받기에 교차투표가 가능하고, 특히 기초의원 선거의 경우 여러 명의 의원을 뽑기 때문에 소신투표가 가능하다.
따라서 지방선거는 지역주민들을 제대로 대변할 수 있는, 준비된 후보라면 소수정당 소속이거나 무소속이더라도 기회가 있다는 점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만들어 볼 수 있는 장이다.
이재명 전 대선후보에 대한 평가가 어떻든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를 역임하면서 여러 복지 정책을 만들어 '이재명식 지역모델'을 제시했고, 이것이 이재명 전 후보가 대통령 후보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계기라는 점에는 대부분의 유권자가 동의할 것이다. 이처럼 선거에 출마한 각 후보들이 지역에 대해 어떤 모델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고, 비전과 비전 간의 경쟁과 토론, 타협으로 지방선거를 지역주민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의 계기로 만들어볼 수 있다는 것이 또 한 가지의 묘미가 되겠다.
이러한 지방선거의 의미를 살리려면 첫째, 오랫동안 지역에서 헌신하고 기반을 닦아온, 주민들의 눈에 띄는 후보들이 있어야 한다. 둘째, 각 후보들이 정책과 비전으로 승부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셋째,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통해 유권자가 소신껏 투표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새로운 세력이 의회로 입성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지방선거를 두 달 남겨둔 지금, 지방의원 선거구조차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지방선거를 치르는 의미가 있을지 사실 의문이다.
중대선거구제 개편 골든타임, 이미 지났다
대선이 끝날 무렵 더불어민주당이 던진 정치개혁 카드에는 기초의원 선거구를 현행 2~4인에서 3~5인으로 개편하는 안이 포함돼 있었다. 대선 이후 선거제도 개편과 지방의회 선거구 획정 논의가 시작됐지만,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에서는 양당간 이견을 전혀 좁히지 못하고 있다. 유권자도 답답하고, 후보도 답답한 상황이다.
마포구 마선거구(서강동·합정동) 기초의원 선거를 예로 들어보자. 이 지역은 현재 2인 선거구로 2명의 구의원을 뽑는 곳이다. 향후 정개특위에서 합의된 바에 따라 3인 이상 선거구로 개편되는 경우, 마포구 마선거구는 선거구의 이름이 바뀔 가능성이 크고, 무엇보다 다른 선거구와의 인구 수 편차로 인해 관할 지역이 서강동과 합정동에서 서교동, 망원1동까지로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후보자의 입장에선 만약 선거구 개편이 이뤄지는 경우 현재 선거운동용 현수막, 선거운동복, 명함 등에 써있는 '마포구 마선거구'라는 문구를 모두 바꿔야 한다. 또한 두 행정동에서만 선거운동을 하는 것으로 구성한 예산과 전략, 계획이 모두 틀어지게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기초의원은 해당 지역의 유권자를 대변해 의정활동을 하는 사람이다. 위처럼 선거구 개편이 이뤄지는 경우, 어제는 서강동, 합정동을 중심으로만 활동해왔던 정치인이 오늘은 4개 동 지역 주민들을 모두 대변해 선거운동을 해야 한다. 선거운동이 의정활동에 앞서 후보가 해당 지역 유권자를 얼마나 잘 대의할 수 있는지 증명하는 과정이라면, 유권자의 입장에서도 후보에 대한 정보가 부족할 뿐더러 '이 후보가 과연 우리를 제대로 대변해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것이다.
이미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후보라면 오히려 다행인 상황이다. 선거구제 개편의 가능성으로 주요 정당의 후보 선출 절차가 늦춰지고 있고, 각 출마예정자도 예비후보자 등록을 미루고 있다. 이렇게 유권자들은 후보를 검증할 기회도 빼앗기고 있다.
민주당 소속 정개특위 간사인 김영배 의원은 농성에 돌입하며 "현실적으로 4월 15일 금요일에 본회의를 하지 못하면 지방선거를 치를 수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선거구 획정은 지난해 12월 1일에 이미 끝났어야 했다. 후보를 검증해 최선의 인물을 뽑고자 하는 유권자들과 지방선거에서 지역을 위한 비전을 들고 주민들을 만나고자 하는 후보들은 이미 손해를 보고 있다. 골든타임은 이미 지났다. 1분이라도 빨리 중대선거구제 개편과 선거구 획정을 마무리 짓고 유권자들의 손해를 조금이라도 줄여야 할 때다.
누구의 책임인가?
대선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지난 2월 민주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현실화와 대선 결선투표 도입, 국회의원 중·대선거구제 도입, 기초의원 선거에 3인 이상 대선거구제 도입을 포함한 정치개혁을 약속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전 후보는 "저희는 거대 의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치개혁은 (안철수·김동연 후보 등과) 합의가 되면 언제든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대선 이후 본격적인 정치개혁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만, 합의가 쉽지 않아 보인다. 민주당 의원 74명은 농성에 돌입했고, 정의당 이은주 의원은 단식까지 선언했다. 1차적인 책임은 선거제도 개혁을 완강히 거부하는 국민의힘에게 있다. 하지만 민주당에게도 책임이 있다.
이재명 전 후보의 말처럼 민주당은 거대 의석을 가지고 있다. 국민의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선거제도 개혁은 여야간 이권 다툼이 아닌 민의를 고스란히 담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인 만큼 마음만 먹는다면 법개정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정 안 된다면 대구·경북 지역을 제외하고 광역의회 의석을 독식하다시피 하고 있는 민주당이 광역의원들로 하여금 기초의원 선거구를 모두 3~4인 선거구로 획정하도록 하면 된다.
현재 여당은 민주당, 국회와 모든 지방의회 의석을 압도적인 비율로 가지고 있는 다수당 역시 민주당이다. 이제는 그 많은 의석을 써야할 때다. 한편 국민의힘은 선거제도 개혁이라는 과제를 더이상 이권 다툼이 아닌 시민들의 권리를 확장하는 취지로 이해하고 진지하게 협상에 임해야 한다.
선거는 일꾼을 뽑기 위한 것, 선거제도 개혁은 유권자를 위한 것
지난 2018년 서울 마포구 지방선거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모든 영역을 장악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 주민 일자리를 창출하고 주민들의 해외여행 자제를 권고해 외화 유출을 방지하겠다"는 여당 구의원 후보가 당선된 적이 있다. 진정 지역주민을 위해, 제대로 일 할 수 있는 사람을 민주적으로 뽑는 정상적인 공천절차를 거쳤다면 이런 후보가 민주당의 후보로 나오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현재 마포구의회 소속 18명의 기초의원 중 절반 이상이 업무추진비 비리, 방역수칙 위반 등 비위행위로 인해 비판기사에 등장한 적 있는 사람들이고, 그 중 한 명은 대법원 선고로 의원직을 박탈당했다. 지금과 같이 딱 절반씩 거대양당끼리 의석을 양분하는 기초의회가 아니라, 단 한 명의 견제세력이라도 있는 기초의회였다면 비위행위가 이렇게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선거는 결국 유권자들이 자신의 의사를 정치와 행정을 통해 대변할 대리인을 세우는 과정이다. 선거제도 개혁이라는 참 오래된 과제 역시 국민의 의사를 정치에 제대로 반영하기 위한 과정이다. 위와 같이 유권자들을 망신시키는 마포구의회의 두 사례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국민들의 무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선거제도 개혁으로 보다 수준높은 지방의회, '지방의회 무용론'이 무용한 지방의회가 만들어진다면, 이는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입장에서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니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