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 양당 구조를 넘어 다당제를 지향했던 국민의당은 최근 국민의힘과 합당을 추진한다. 기득권 정치교체를 외쳤던 새로운물결도 대선 이후 더불어민주당과 합당했다. 한국식 단일화 정치의 대안을 살펴보자.
반복되는 한국식 단일화 정치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 1등과 2등 후보의 차이는 0.76%p에 불과했다. 기득권 양당 정치를 타파하겠다던 제3후보들은 양극화된 정치 구도를 넘어서지 못 했다. 정치교체를 외쳤던 안철수·김동연 후보는 완주하지 못 하고 각각 1등·2등 후보와 단일화했다. 심상정 후보는 0.76%보다 높은 지지율을 얻었다는 이유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이처럼 제3후보와 그 지지자들은 끊임없이 단일화와 사표론의 압박을 받는다.
1987년 이래로 대선 국면의 단일화 정치는 계속되었다. 1997년의 DJP 연합, 2002년 노무현·정몽준 후보의 단일화가 있었다. 2012년 안철수 후보는 문재인 후보와의 단일화로 정권교체에 힘을 실었지만, 2022년에는 윤석열 후보와 단일화하여 문재인 정권에 맞섰다.
2010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진보신당 노회찬 후보는 완주를 했다.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와 민주당 한명숙 후보는 1%p 미만의 접전을 펼쳤다. 완주했다는 이유로 노회찬 후보는 소위 민주개혁 진영 지지자들로부터 선거 패배 책임론을 들어야 했다.
반복되는 단일화 정치에서 유권자들은 선택을 강요받았다. 기득권 양당 정치는 상대방을 탓하며 기득권을 유지해왔다. 정치시스템 구조는 건들지 않으면서 상대 진영을 공격하는 정치언어는 요란하다. 대통령 선거를 마치면 인물은 바뀌지만, 기득권 정치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사표론'이 문제다
단일화 정치는 '사표론' 때문에 반복된다. '사표'는 말 그대로 '죽은 표'라는 뜻이다. 선거에서 낙선한 후보자에게 투표한 표, 유권자의 의사가 반영되지 못하는 표다. 1등에 투표하지 않은 모든 표가 사표이지만, 정치적으로 쓰이는 사표는 1등과 멀어 보이는 후보들이 얻은 표, 양자구도에서 당락에 영향을 미치는 표다. 51대 49 싸움에서, 49는 사표가 아니다. 51과 49의 차이인 2%p를 사표라 부른다. 양자 구도가 격해지면 3등 이하 후보와 정당에게 투표하는 시민들은 '사표론'을 듣게 된다. 'C를 찍으면 B가 된다, B를 막기 위해 C가 아닌 A를 지지해야 한다'는 논리로 나타난다.
사표론은 제3후보에 투표할 유권자들을 위축시킨다. 결국 사표론으로 이득을 보는 세력은 거대 양당일 가능성이 높다. 공정한 선거 경쟁을 방해하고, 현재의 기득권 양당 구도에 기여하게 된다.
결선투표제 없는 승자독식게임
30년이 넘도록 반복되는 문제는 정치시스템의 구조적 한계다. 과반수의 지지를 얻지 않아도 1등이 당선되는 승자독식 선거제도에선 단일화 정치가 반복될 수밖에 없으며, 선거승리를 위해 이념과 가치를 무시한 정치공학적인 단일화도 등장한다.
2등 이하 후보 및 정당에 투표한 표도 반영되는 선거제도에선 '묻지마 단일화 정치' 대신 '건강한 연합 정치'가 가능하다. 정당득표율대로 의석수를 배분하는 선거제도에서는 1등이 아닌 2등·3등에 투표한 유권자의 의사도 반영된다. 과반수 정당이 없으면 1등과 3등이 연합해서 정권을 수립할 수 있다. 다양한 정치세력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를 공개적으로 확인한 후에 정치 협상을 시작한다. 승자독식이 아닌 협치와 통합의 정치가 펼쳐진다. 이러한 유럽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대통령제가 아닌 의회중심제(소위 내각제, 의회다수당이 행정부 수반을 맡는 제도) 국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처럼 대통령제를 채택하는 나라에선 승자독식 선거제도를 어떻게 완화할 수 있을까? 결선투표제가 대안이 될 수 있다.
현재 국민의힘·민주당·정의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도입한 결선투표제는 1차 투표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없을시 1등과 2등을 추려서 2차 투표를 하는 제도다. 1차 투표에서 유권자 선호의 다양성을, 2차 투표에서 대표의 정당성을 높인다. 대표적으로 프랑스에서 채택 중이다. 시민들은 누군가의 당선을 막기 위한 결정이 아니라, 선호하는 후보에게 투표 할 수 있다. 대통령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는 데 더 많은 시민적 합의가 필요하다면, 과도기적으로 지방선거부터 실시해볼 수 있다. 2026년 지방선거 광역자치단체장·기초자치단체장 선거에 결선투표제를 도입하고, 이후 시민 여론을 보고 2027년 대통령 선거에서 적용해보면 어떨까.
결선투표제의 함정과 이를 개선한 선호투표제
결선투표제도 완벽한 제도는 아니다. 보완할 점이 있으며, 그 대안으로 선호투표제가 있다. 선호투표제는 두 가지 장점이 있다. 첫번째 장점은 투표횟수다. 보통의 결선투표제는 투표를 두 번 하기 때문에 선거비용이 상대적으로 늘어난다. 선호투표제는 후순위 선호까지 투표하기 때문에 한 번의 선거로 충분하다.
선호하는 후보를 2순위까지 투표할 수 있다고 가정하고, 1순위 하얀당, 2순위 녹색당에 투표했다고 하자. 1차 투표결과 국민당 25%, 개혁당 15%, 녹색당 16%, 노랑당 14%, 하얀당 10%, 극우당 20% 지지를 얻었다. 내가 투표한 하얀당은 가장 낮은 순위를 얻어서 먼저 탈락한다. 표는 2순위 녹색당으로 이전된다. 모든 표에 2순위 선호가 있기에 가장 꼴찌 후보에게 투표한 표는 2순위 표로 이전되며,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면 한 번의 투표로 최종 당선자를 가릴 수 있다.
두번째 장점은 유권자의 선호가 더 정확하게 반영될 수 있다. 보통의 결선투표제에서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약한 호감도가 있는 중도 성향의 후보보다, 소수의 사람들이 강하게 지지하는 (반면 다수의 사람들에게 비호감도가 있는) 극단적인 성향의 후보가 2차 투표에 오를 위험이 있다. 예를 들어 다수의 후보가 있을 경우, 80%의 시민들이 절대반대하는 극우후보가 20%의 강고한 지지층의 지지로 2차 투표에 진출할 수 있다. 그런데 선호투표제에선 결과가 다를 수 있다. 아래 두 경우를 비교해보자.
<보통의 결선투표제>
<선호투표제>
보통의 결선투표제에선 극우당이 2차 투표에 진출하지만, 선호투표제의 경우 위의 표처럼 극우당은 최종 순위 4등으로 밀려나 2차 투표에 진출할 수 없다. 이처럼 결선투표제의 단점을 보완한 선호투표제는 유권자 의사를 더욱 정확하게 반영할 수 있다.
단일화·사표론 정치가 아닌 모든 시민의 투표를 존중하는 정치개혁을
단일화를 하지 않아서 사표를 만든 책임은 3등 이하 후보와 정당에게 있지 않다. 3등 이하 후보와 정당에 투표한 시민도 잘못이 없다. 사표론의 책임은 사표가 많이 발생하는 기존 정치시스템에 있다. 또한 선거제도 개혁에 침묵하는 기득권 정치에 있다.
공직선거는 정기적으로 찾아온다. 상대 후보가 당선되면 대한민국이 망한다는 말로 유권자들을 협박하기 전에, 왜 사표를 줄이는 선거제도 개혁에 침묵하는지, 사표론을 외치기 전에 본인들의 책임은 없는지, 거대 정당이 답해야 한다. 적대적 공존을 가능케 하는 거대 양당의 열혈지지자들도 마찬가지다. 이제 단일화를 강요하는 정치를 거부하자. 사표론을 들먹이는 기득권 정치를 향해 질문하자. 사표를 만드는 정치시스템을 바꾸자.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이례적으로 여야의 주요 대선 후보들이 모두 승자독식 선거제도를 넘어서는 정치개혁에 공감대를 이루었다. 그저 말뿐인 공약이 아니려면 대통령 선거 이후에도 스스로 기득권을 내려놓는 정치개혁에 힘써야 한다. 지금까지 선거제도 개혁에 배타적이었던 국민의힘은 집권 여당으로써 통합과 협치의 정치개혁에 나서야 한다.
국회 다수당인 민주당 또한 대선 국면에서 공약으로 걸었던 다당제 정치개혁을 실천하는 데 힘써야 한다. 선호투표제를 포함한 다양한 정치개혁에 여야가 함께 힘을 모을 수 있도록 시민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선거제도가 달라지면 더 많은 시민들의 투표가 존중받을 수 있다. 모든 시민의 투표는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최근 지방선거제도와 관련한 여야의 정치개혁 합의는 아쉬운 점이 많았다. 지방선거 이후 더 나은 선거제도 개혁을 바라며 글을 마친다. 당신의 소중한 투표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