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패, 몰락, 파산, 심판. 정의당 선거결과를 두고 나오는 수식어다. 평가도 백가쟁명이다. 지역과 현장에 답이 있다, 계급정당으로서 선명성에 답이 있다, 진보적 정책과 의제발굴에 답이 있다, 사회운동과의 연대에 답이 있다, 서민과 대중정당전략에 답이 있다. 다양한 평가를 톺아보면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 태산이다.
다양한 의견이 분출되는 중에도, 각각의 평가 기조가 공유하는 사실이 있다. 진보당의 성과다. 진보당의 약진은 계급정당으로서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산업현장과 지역을 부단히 일구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반면 정의당은 원내정당화 돼 계급정당으로서의 지향을 잃고, 산업현장과 지역에 착근하여 정당을 일구지 않고, 비례의석에 매몰돼 패했다는 평가다. 심지어 거대양당과 같이 불로소득 추구하는 지대추구정당이 됐다며 한탄한다(
<정의당, 심판 받다>, 프레시안, 2022.6.10).
그런데 커져가는 질문이 있다. 진보정당운동과 진보정당정치는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가? 제 역할을 해내는 원내진보정당 없이 진보정치는 성립불가다. 진보정당정치 없이 기후위기 극복과 차별 없는 나라, 불평등을 극복한 복지국가를 말하는 것은 무망하다.
지대추구정당이라는 평가와 진보정당건설사
산업현장과 지역에 착근해 진보정당의 계급적 기반을 튼튼히 하고, 서민의 삶에 닿아 있는 진보적 의제를 끊임없이 발굴 해결해야 한다는 직언. 진보정당의 소명에 충실하여 고유의 색깔을 명확히 하자는 고언. 정의당이 그 역할에 소홀했다는 비판. 백번 옳다. 정의당은 소기의 비판을 겸허하게 수용하고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의당이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에 기대 지대추구정당이 됐다는 한탄은 매우 협소한 평가이며 위험하다.
80년대 민주화와 노동자대투쟁을 겪고, 90년대는 시민사회운동과 진보정당운동 등 진보운동의 굵직한 열망들이 끊임없이 분출됐다. 하지만 소선거구제로 조성된 양당 체제 앞에서 진보정당은 설 자리가 없었다. 1990년 민중당, 1993년 진보정치연합, 1997년 국민승리21 등 거듭된 진보정당 창당 시도가 제도적 장벽에 막혀 무너졌다. 1992년 4월 민중당 해산 이후 진보정당은 이제 끝났다는 분위기 속에서도 노회찬을 비롯한 진보정당운동가들은 진보정당추진위원회를 꾸려 진보정당건설 위해 투신했다. 진정추의 움직임이 정의당의 전신 민주노동당으로 이어졌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민주노동당은 기존 진보정당건설운동과 달리 성공했다. 계급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하더라도 양당체제와 소선거구제 중심의 제도적 한계를 개혁하지 않으면 원천적으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근본적 한계를 알고 있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은 행동으로 이어졌다.
민주노동당은 2000년 2월 16일 전국구 의원 선출 방식에 대해서 위헌소송을 제기했고,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입을 가로막는 근원적 장벽을 해소했다. 2001년 7월 19일 헌법재판소가 한정위헌 결정을 내리며 소송에서 승소한 것이다.
"나는 진보정당 운동의 실패 원인을 세 가지로 정리하고 이를 해소해야만 재창당이 가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첫째 이른바 독자 후보와 비판적 지지 등으로 나눠진 재야 운동 진영의 분열을 극복하고, 둘째 전노협과 업종회의 등 민주노조들이 공식적이고 조직적으로 참가하며, 셋째 신생 진보정당의 진출을 가로막는 선거법을 비롯한 각종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시대 진보의 파수꾼 노회찬>, 2004, 115쪽)
노회찬 의원의 회고에서도 알 수 있듯, 민주노동당은 창당 직후 치러진 2000년 4월 제16대 총선에서는 참패했지만, 제17대 총선에 진출할 수 있는 제도적 토대를 스스로 개척했다. 진보정당건설을 위한 제도적 토대에 대한 고민과 행동이 빚어낸 성과다.
진보정당 활동가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진보정당의 정체성과 소명뿐만이 아니라, 제도적 존립의 기반을 닦기 위해 노력해온 역사도 있다.
"정의당의 지대 수익이 현재 한국 선거제도상의 제한된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에서 나온다"는 비판은 정의당이 비례의석만을 바라보고, 진보정당 정체성을 등한시했다는 정당한 비판 의도와 무관하게, 진보정당건설을 위해 헌신해온 역사 자체를 부정할 수 있다.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는 진보정당 건설에 있어 역사적 진전을 이룬 제도다. 진보정당을 훼손하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해서는 안 된다.
원내정당의 의의
원내정당화에 대한 비판도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대선과 총선이라는 전국단위 선거에서 국민이 정의당을 믿고 찍을 수 있는 원내정당으로서 역할 하도록 만들어야지, 원내정당화 비판은 진보운동과 정당정치를 대립시키는 결과로 수렴될 뿐이다.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장애인, 성소수자, 여성, 청년 그리고 서민의 정당으로 다시 재건하자. 교차성을 이어 투명인간을 위한 정책을 생산하자. 그런데 그 과정은 정치로 성취해나가야 한다. 기후위기 극복과 차별 없는 나라, 불평등 극복을 통한 복지국가 이룩은 특정 지역에 국한된 이슈가 아니다. 국가 전반의 대개혁이 필요하다.
정의당이 진보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바로잡고, 계급정당으로 다시 태어나도, 거대양당을 설득하고 견인하며, 원내정당으로 역할 해야 조금이라도 진전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다당제 개혁의 의의
체제 내 진보정당의 선택이 언제나 옳을 수는 없다. 검수완박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유럽식 온건다당제도 정체성이 뚜렷한 정당 사이의 경합을 기본 골자로 한다. 타협의 자세 자체를 적대하지 않는다. 진보정당의 세력이 과소대표(under-representation) 되는 상황, 즉 '민주당 이중대론'의 뿌리를 직시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한국의 양당체제는 소수정당의 독자적인 정체성이 성장할 수 없는 구조다. 민주당 지지자의 분할투표(split-ticket voting)에 전전긍긍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정의당이 과소대표 되면서 제 몫의 온당한 의석까지 거대양당에 빼앗기는 동안, 진보정당으로 연결되어야 할 고유의제와 지지표 또한 거대양당으로 흡수되는 상황을 직시하자는 것이다. 지난 대선 많은 여성들이 정의당을 지지하지만, 국민의힘에 반대하며, 민주당에 표를 몰아준 현상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계급정당이자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진보정당으로 거듭나자. 동시에 양당 체제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을 함께 추구하자. 다당제 개혁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과제다.
원내진보정당 재건과 정치개혁
원내진보정당인 정의당은 재건을 논의하며, 정치개혁을 함께 이야기하자. 대선 직전 민주당이 기망하듯 제안한 중대선거구제 시범지역 선거결과를 비판하자. 진보정당의 몫을 제대로 요구하기 위한 운동도 함께 시작하자.
중대선거구제 시범 실시지역 30개 중, 12개 선거구는 소수정당의 당세가 약한 지역이었기에 거대양당의 나눠먹기로 귀결되었다. 소수정당이 출마한 18개 시범지역에서 소수정당이 당선 된 곳 또한 4곳에 불과하다. 양당의 무분별한 복수공천 때문이다. 충남 논산 가선거구(5인)의 경우 더불어민주당 5명, 국민의힘 4명, 정의당 1명을 공천했고, 더불어민주당 3명, 국민의힘 2명이 당선되었다. 양당체제 구조적 모순의 정점인 무투표당선자는 무려 508명에 달한다.
진보정당의 비토(veto)가 선명하지 않았던 적은 없다. 다만 목소리 높여도, 제 몫을 온전히 받지 못했고, 왜소화되어 있는 동안 정체성마저 흔들리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존립기반에 대한 현실적 고민 없는 개혁은 성공할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장석준 칼럼 <정의당, 심판 받다>에 대한 반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