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는 시작됐는데 다들 말이 없었다. 마을회관의 공기는 꽁꽁 얼어붙어서 폐에 고드름이 달릴 지경이었다. 마을 입구에 있는 군유지에 폐비닐 수거장을 설치하는 건 미관상 마음에 들지 않고, 그렇다고 자신의 땅을 수거장 부지로 기부하는 건 싫고···.
"다들 꿀이라도 처먹고 왔소?"
반장의 목소리였다. 냅다 고함을 질렀지만, 반장 역시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한참 지난 뒤 홍 영감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늙으믄 마 죽어뿌야지! 내가 갑작시리 기부를 하라꼬 말을 꺼내는 통에 이 사단이 났뿟네. 이 꼴 저 꼴 안 보고 내가 확 죽어뿌믄 내 무덤 옆에다가 폐비닐 수거장인지 지랄인지 그거를 맨들어뿌라꼬."
자신의 무덤 옆 땅을 수거장을 위한 부지로 기부를 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속이 터져서 죽기 전에 누구라도 빨리 기부를 하라고 윽박지르는 것인지 홍 영감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홍 영감이 죽든 말든 누구 하나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등판할 차례인 것 같았다.
통 큰 기부
"사실 제가 어제 민구 오빠랑 통화를 했거든요. 다들 돌아가신 복현댁 아줌마 큰아들 민구 오빠 아시죠?"
홍 영감이 반색하며 입을 열었다.
"내가 잘 알지. 내가 영등포에서 홍 사장 소리를 들을 쩍에, 우리 가게에 잠시 데리고 있었다 아이가. 그노무 아이엠에픈지 지랄인지만 없었어도 내가 홍 회장님 소리를···."
"형님, 1절만 하소!"
"저, 저···. 하이튼(하여튼) 간에 저 동상은 내가 먼 말만 하믄 저 캐샀네. 사람이 조렇게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야, 나 참!"
홍 영감의 말을 자른 반장이 내게 계속하라는 눈짓을 보냈다.
"민구 오빠가 동네에 가끔 와서 농사짓는 타작마당 옆에 밭 있잖아요. 거기 위치가 마을과 가까우면서도 약간 외진 데 있어서 폐비닐 수거장을 설치하기에 딱 좋은 거 같더라구요. 그래서 어제 민구 오빠에게 혹시 마을을 위해 그 땅을 좀 기부를 할 수 있는지 물었구요."
내 말에 다들 침을 꿀꺽 삼켰다. 동그래진 눈들을 보고 있자니 장난을 치고 싶어서 잠시 뜸을 들였다. 애간장이 타들어 가는 눈빛으로 홍 영감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민구 오빠가 자기는 다른 데도 밭이 있으니까, 거기에다가 폐비닐 수거장을 만들어도 된다고···."
"오호! 내 그랄 줄 알았지. 내가 영등포에서 홍 사장일 때, 민구 그노마를 델꼬(데리고) 있으믄서 인간으로 맨든 기라. 짐승 새끼 비스무리한 거를 내가 거다가꼬(거둬서) 하나부터 열까지 갈차가꼬(가르쳐서) 오늘날 정신머리 제대로 박힌 인간으로 내가 맨든 바람에 폐비닐 수거장 부지가 떡하이(떡하니) 생긴 거 아이가."
"형님, 그러면 민구가 수거장 부지를 기부한 게 다 형님 덕분이란 거요?"
반장이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홍 영감에게 물었다.
"머, 수거장 부지가 생긴 거에 내가 얼마 정도의 지분은 있다 요 말이지."
"내가 민구한테 듣기로는 그게 아니던데. 민구 인생에서 제일 최악의 시기가 형님하고 영등포에서 2년 동안 같이 일할 때라고···. 아무튼 그 얘기는 그만 됐고. 우리 노 이장이 고생이 많았네. 설득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야."
반장의 몇 마디 말에 본전도 못 찾고 너덜너덜해진 홍 영감은 헛기침을 내뱉으며 슬그머니 마을회관을 빠져나갔다. 다들 한마음 한뜻으로 내게 고마움을 표시했지만, 정말로 칭찬을 받아야 할 사람은 민구 오빠였다. 오빠와 전날 나눈 대화를 주민들에게 알려야 할 것 같았다.
"다른 마을에는 다 있는데, 부지가 없어서 우리 마을에만 폐비닐 수거장이 없다고 하니까, 민구 오빠가 두말없이 자기 밭에다가 그걸 하라고 했구요. 앞으로도 어르신들 잘 보살펴 달라고 신신당부를 하더라구요. 아무튼 그래서 부지 문제는 잘 해결된 것 같아요."
부지가 확보되자 영농 폐비닐 수거장 설치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매일 면사무소를 방문해서 빨리 좀 처리해 달라고 안달복달 야단법석을 떨며 귀찮게 굴어서 더 빨리 진행된 측면도 있지만, 면사무소에서도 이 시설물을 농번기 전에 설치해야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며칠이 지나자 작은 굴착기 한 대가 와서 수거장 부지 주변을 정리하고, 시설물을 설치할 바닥의 형태와 크기를 만드는 일명 '통기초' 거푸집 작업을 했다. 그리곤 레미콘 차가 와서 콘크리트를 쏟아부었다.
구조물 설치가 시작된 건 콘크리트 타설 후 1주일이 지나서였다. 오전에 작업이 시작될 때 공사를 맡은 업체의 사장과 잠깐 인사를 하고, 면사무소에 들러서 볼일을 다 보고 다시 현장으로 돌아왔다. 사장과 얘기를 나누고 있던 홍 영감은 내가 등장하자 슬금슬금 자리를 피해 마을회관 쪽으로 사라졌다. 사장이 내게 말했다.
"아이고, 이장님은 참 좋으시겠어요."
"네?"
"마을에 저런 홍 회장님 같은 분이 계셔서 땅도 기부하게 만들고, 마을을 위해 여러 가지 좋은 일도 많이 하시니까, 이장 업무가 얼마나 편하겠어요."
"아, 네!"
민구 오빠가 부지를 기부했든 홍 영감이 자기 덕분이라고 소문을 내고 다니든, 어쨌든 영농 폐비닐 수거장이 드디어 마을에 생겼다. 수거장의 늠름한 모습을 찍은 사진을 마을 주민들에게 보냈다. 그리고 앞으로는 농사에 사용된 비닐들을 꼭 폐비닐 수거장에 가져다 놓으라는 당부의 문자를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여자 셋의 '참전'
폐비닐 수거장 설치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고양이가 또 로드킬을 당했다. 마을 앞 왕복 2차선 도로에서 자동차에 부딪힌 고양이가 몇 마리나 죽어 나갔는지 정확히 기억도 나지 않을 지경이었다.
비가 조금 많이 오면 좁은 배수로 때문에 늘 물이 넘쳐나서 불안해하는 주민들을 위해 배수로 정비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는데, 일단은 도로에 과속 방지 턱 설치를 위해 집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우리 마을의 이름은 음천이다. 하지만 사실 음천과 내천 그리고 구천, 이렇게 세 곳의 거주지가 합쳐진 지명이다. 내가 사는 음천에서 내천까지의 거리는 거의 2.7km이고, 구천까지의 거리는 대략 3.5km이다. 내천과 구천은 음천보다 고지대에 자리 잡은 촌락들이라서, 읍에라도 나가려면 우리 마을 앞 내리막길을 통과해야 한다.
그런데 내천과 구천의 주민들이 우리 마을회관 앞의 이 내리막길에서 속도를 너무 내는 것이다. 내가 이장이 되기 전에 서울댁·부산댁 언니와 함께 이 도로에 과속 방지 턱을 설치해 달라고 몇 번이나 전임 박 이장에게 건의하고 면사무소에도 3번 찾아갔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도로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내가 8년 전에 귀농했을 때도 마을에는 주민들보다 고양이들이 더 많았다. 다른 곳에 비해 훨씬 많은 냥이들이 비교적 안정적인 생활을 꾸려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서울댁 언니 한 사람의 헌신 때문이었다.
언니는 완벽한 집사이자 묘권 신장(猫權伸張)을 위해 노력하는 투사였다. 고양이 사료를 준다고 눈 흘기는 주민들을 향해 도끼눈을 뜨고 레이저 광선을 발사하는 바람에 언니는 머리채를 거머잡힌 적도 있었다.
내가 귀농했을 즈음에 언니는 이미 많이 지친 상태였다. 50마리를 훌쩍 넘어선 냥이들에게 식사와 간식을 바치는 것도 만만치 않았지만, 의지를 할 만한 집사 동맹군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서울댁 언니의 집사 연합군으로 곧바로 참전하고, 뒤이어 부산댁 언니가 우리 마을로 귀촌해서 지원병으로 입대한 덕분에, 냥이들은 그나마 제대로 된 집사 체계를 갖출 수 있었다. 나보다 3년 먼저 귀촌한 서울댁 언니가 냥이들을 모실 수 있는 집사 시스템의 기반을 다져 놓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부산댁 언니와 내가 매달 사료값을 분담하고, 함께 주민들과 맞서 싸우면서 탈진해 있던 서울댁 언니는 자신의 본질을 서서히 되찾을 수 있었다. 우리가 모시는 '코리안 숏헤어' 중 흰색·갈색·검은색이 섞인 '삼색이'의 도도함이 서울댁 언니의 정체성이었다.
부산댁 언니의 경우는 치즈색·주황색 줄무늬가 있는 '치즈태비'의 아이덴티티를 지니고 있는데, 친화력과 애교가 장난이 아니다. 나는 그냥 운동신경이 좋은 편에 속하는, 회갈색 털에 검정색 줄무늬가 있어서 고등어를 닮은 '고등어태비' 정도의 정체성을 지녔다고 보면 될 듯하다.
어쨌든 냥이 '주드'가 로드킬을 당한 그날 저녁 서울댁 언니의 전화를 받았다.
"일영아! 나는 이 난폭하고 야만적인 시대를 더는 못 참겠다. 니가 이장일 때 이번에는 꼭 과속 방지 턱 설치하자, 알겠지!"
"언니, 제가 이장이지만 동시에 집사라구요. 걱정 마세요. 우리 함께 외쳐요, 이야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