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연말 몇몇 지인과 함께 국내에서 절대 마셔볼 수 없는 막걸리를 시음해볼 기회를 얻은 적이 있다. 메이드 인 프랑스 막걸리, 메종 드 막걸리(MAISON de MAKOLl)이다. 프랑스 한인 행사에서 사용했던 막걸리로 프랑스 최초이자 유일의 막걸리 양조장에서 빚은 술이다.
행사를 진행했던 분이 프랑스에서 어렵게 가져온 술을 맛볼 기회를 가진 것이다. 와인의 나라 프랑스에서 만든 막걸리는 무엇이 다를까, 어떤 맛일까라는 호기심이 가득했고 먼 곳에서 왔지만 참 잘 만들어진 막걸리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술이었다.
'전통주'의 한계를 넘어서
사실 전통주의 세계화를 말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나라에서 수출하는 전통주에 관해서 주로 이야기한다. 과거 '전통주 수출'은 그저 교민이 많이 사는 나라에 교민들이 마시기 위한 술을 수출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전통주의 국내 소비가 크지 않은 상황에서, 해외 수출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의 쌀과 누룩, 물 등 우리의 재료를 사용해서 우리 기술로 만든 것을 수출하는 게 전통주의 세계화라고 이야기되곤 했다. 하지만 이제 이러한 생각도 변해야 한다고 본다. 꼭 한국에서, 한국인이, 한국 재료로 만들어야만 전통주일까?
최근 방송에서도 막걸리나 전통주를 다양하게 다루고 있다. 외국인들이 전통주를 마시고, 관심을 가지는 장면 또한 자주 접할 수 있다. 한국 음식에 대한 호기심이 자연스럽게 음식과 어울리는 술에까지 이어진 것일 테다. 이런 현상이 가능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전통주들이 과거와 다르게 외국인들이 좋아할 만한 맛과 향을 구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예능 방송에서 이탈리아 쌀로 만든 막걸리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외국인이 이탈리아에서 현지 재료인 이탈리아 쌀과 맥주 효모, 맥아를 이용해서 막걸리를 빚고, 한국 사람들로부터 막걸리라고 인정 받는 장면이 나왔다. 외국의 재료로 외국인이 이탈리아 현지에서 만든 막걸리라는 것이 재미있는 모습이었다. 물론 예능적인 모습이 가미 되었지만, 막걸리의 현지화를 보여준 것일 수도 있다.
이제 한국에서 전통주를 즐기는 외국인들을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몇몇 외국인들은 한국 사람보다 전통주에 대한 관심이 더 크다. 대표적인 인물이 미국인 더스틴 웨사다. 전통주 소믈리에 자격증을 따고, 전통주를 사랑하는 외국인으로 방송에도 나왔으며 최근에는 전통주 펍을 운영 중에 있다.
그는 전통주를 외국인의 입장에서 소개한다. 그의 전통주 소개 이야기를 듣다 보면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서 전통주에 대한 깊은 애정이 느껴진다. 더스틴 웨사가 소믈리에로 활약하고 있다면, 직접 전통주 제조에 나선 외국인들도 있다. 2016년께 미국 뉴욕에서 한국식 소주인 '토끼소주'를 빚어 화제가 된 브랜 힐이다. 그는 2020년에 한국으로 들어와 충청북도 충주에 양조장을 마련했다.
해외 곳곳에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막걸리들
이뿐만 아니라 외국인을 겨냥한 막걸리도 있다. 미국 시장에서 인기를 끈 '마쿠(Makku)' 막걸리가 대표적이다. 마쿠는 한인 1.5세대인 캐롤 박씨가 만든 스타트업에서 내놓은 막걸리다. 현재 막걸리 자체를 미국에서 생산하지는 못하고 국내의 업체에서 생산해서 수입 판매하는 형태이지만, 애초에 외국인 소비자를 상대로 제품을 기획했다는 게 특징이다.
서양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망고, 블루베리 과일을 넣어 망고 막걸리와 블루베리 막걸리를 만들었는데, 특히 심플한 디자인의 라벨이 돋보여 젊은 층들에게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캐롤 박씨는 2020년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일부 주에서 술집, 식당 등이 문을 닫았는데도 40만 캔이 팔렸"다고 말했다.
그는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생활을 추구하는 밀레니얼 세대들이 등장하면서 미국에서 오래 사랑 받던 맥주의 인기가 떨어지고 세계 각국의 다양한 술이 팔리기 시작했"다면서, "밀레니얼 세대들은 지금 미국에서 유행하는 알코올이 들어간 탄산수처럼 도수가 높지 않은 술을 선호"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앞에서 이야기하던 프랑스의 막걸리처럼 외국에서 생산하는 막걸리도 있다. 미국 브루클린에서 만들어지는 '하나 막걸리'(Hana Makgeolli)가 그렇다. 하나 막걸리는 브루클린에 양조장 겸 판매점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인들이 설립해 주류 미디어의 높은 관심을 받으면서 요즘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이곳의 탁주 도수는 16도로 진하고 걸쭉해서 한국에서 먹은 '가벼운' 막걸리와는 또 다른 맛을 느끼게 해주고 있다.
캐나다에서는 캐나다인이 만드는 '건배 막걸리'가 있다. 캐롤 더플레인은 2019년 한국에서 1년간 '전통' 막걸리 제조법을 배웠다. 한국어 논문을 영문으로 번역해서 읽고 연구했으며 쌀로 만든 술이라는 희소성과 다른 나라엔 없는 독특한 맛 덕분에 캐나다 주류시장에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이 술의 경우 특히 유리병의 라벨에 보름달과 까치를 넣어 한류문화 홍보 역할도 하고 있다.
물론 아직은 전통주에 관심을 갖는 외국인이 많지는 않다. 하지만 희망의 불씨가 이곳저곳에서 보인다. 사케의 경우 미국에서 생산해서 우리나라에 판매하는 미국 사케가 있을 정도로 이미 세계화가 진행됐다. 전통주나 막걸리의 세계화에 한계를 그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국내에서 생산한 술을 수출하는 것에 국한할 필요도 없다.
특히, 생 막걸리의 경우 장거리 유통이 어려우니 외국에서 직접 외국인이 외국의 재료로 만드는 막걸리도 '막걸리의 세계화'의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좋겠다. 외국에서 굳이 타국의 술을 만드는 것은 그만큼 전통주에 대한 애정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전통주 제조를 어떻게 발전시켜나가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언젠가 외국에 나갔을 때, 현지 사람이 만들고 외국인이 설명해주는 전통주를 마시는 날이 오길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에 동시 게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