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올 것이 왔다. 북한이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공식 인정한 것이다. 13일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4월 말부터 원인을 알 수 없는 열병이 전국적 범위에서 폭발적으로 전파, 확대 돼 짧은 기간에 35만여 명의 유열자(발열자)가 나왔으며 그중 16만 2천여 명이 완치됐다"고 보도했다. 또한, 지난 12일 하루 동안 1만 8천 명의 유열자가 발생했고 현재까지 18만여 명이 격리 및 치료를 받고 있으며 이 중 6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2020년 북중 국경지역을 봉쇄한 후 코로나19 청정국을 주장하던 북한이 며칠 사이 코로나바이러스의 폭발적인 확산을 공식 인정한 것이다. 아직까지 정확한 코로나19 확진자 규모가 파악되고 있지는 않지만 상당한 규모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코로나19의 확산에 북한은 '전국의 모든 도·시·군을 봉쇄하고 각 사업단위·생산단위·거주단위별 격폐(격리) 상태에서 생산활동'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 방역을 "국가 존망과 관련된 중대한 정치적 문제"로 강조하던 북한 당국의 입장에서 말 그대로 국가적 위기 상황에 봉착한 것이다.
이러한 국가적 위기 상황에 대응한 북한의 보건의료 인프라는 매우 열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 스스로도 2021년 6월 유엔에 제출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이행보고서에서 보건인력의 부족과 제약의료기기 공장의 낮은 기술기반, 그리고 필수 의약품 부족으로 현지 수요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음을 시인하였다. 코로나19의 급속한 확산이 1990년대 식량난만큼이나 북한 주민들의 삶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윤석열 정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북한이 코로나19의 대규모 확산을 인정한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인도적 지원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5월 3일 발표한 110대 국정과제에서 '조건 없는 인도적 지원'을 제시하고, 특히 '북한이 호응할 경우 코로나19 관련 긴급 지원'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 후보자 또한 지난 12일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북한에 대한 코로나19 방역물품 지원에 대해 "이미 통일부에 관련 예산까지 편성"돼 있는 상황이며 "제재와 상관없이 인도적 지원을 할 수 있으니 최대한 준비"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상당히 전향적인 모습임에 분명하다.
사실 남북은 2007년 10.4 남북정상선언의 후속 조치로 남북보건의료·환경보호협력 분과위원회 제1차 회의를 개최하고 감염병 분야를 포함한 보건의료 협력사업을 적극 추진해하는데 합의한 바 있다. 또한, 2018년 개최된 9월 평양정상회담에서 "전염성 질병의 유입 및 확산 방지를 위한 긴급조치를 비롯한 방역 및 보건·의료 분야의 협력을 강화"하는데 합의하였다. 관련하여 권영세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문재인 정부 당시 남북이 체결한 남북 합의에 대해 "새 정부에서도 계속 유효할 것"이라고 답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남북 간 인도적 협력은 '인도적'으로 접근해야
남북 간 인도적 협력은 말 그대로 '인도적'으로 접근해야 하며 정치적 성과는 그 결과로부터 파생되어야 한다. 특히 전염병에 대한 공동 대응은 한반도라는 생명공동체가 함께 대응해야 할 핵심과제이다. 또한, 인도적 협력은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얻는 과정이다. 지난 2019년 우리 정부가 추진한 대북 타미플루 지원사업이 좌절되면서 남북 간 신뢰에 상당한 악영향을 끼쳤던 과거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인도적 협력은 서로의 신뢰를 확인하는 과정일 뿐만 아니라 상대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다. 북한에서 코로나19의 확산은 북한 주민의 고통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정부가 이제 막 출범한 상황에서 남북 간 보건의료 협력은 남북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이자, 향후 남북관계를 가늠할 수 있는 첫 시험대가 될 것이다.
중장기적으로 우리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윤석열 정부는 "'한반도 보건의료협력 플랫폼'을 통한 민관 상시 인도적 협력 체계 구축"을 국제과제로 제시한 바 있다. 관련하여 남북은 보건의료와 생태환경 분야의 협력에 있어 하나의 '한반도 생명공동체 구축'이란 관점에서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적극적인 대북 인도적 협력을 통해 남북 간의 신뢰를 회복하고 북한 주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