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어딘가 남과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서른에야 ADHD라는 병을 처음 알았고, 서른여덟에 성인 ADHD 확진을 받았습니다. 실체를 모르는 병에 대해 고민하는 동안 사람들 각자가 품고 사는 보이지 않는 아픔을 살피게 되었습니다. 많은 아르바이트와 직장을 거친 후 자신에게 맞는 생활을 찾은 지금, 저의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보이지 않는 장애와 함께 살아가는 모든 분들의 삶을 대변할 수는 없지만, 함께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고 손을 흔들어 봅니다. [편집자말]

첫 상담은 망했다. 2화에서 얘기한 적이 있다. 내게 '절대 ADHD가 아니다'라고 하시던 상담선생님과 어영부영 계속 만나다 마지막 회기에 "저는 아무래도 ADHD가 맞는 것 같아요"라고 털어놓은 이야기. 이어진 대화는 이러하다.

"안 변할 것 같네요. 차라리 스님이 되지 그랬어요."
"아, 그것도 생각해 봤는데요…"

웃을 얘긴 아닌데 생각할 때마다 웃는다. 그때 선생님은 화가 났던 것 같다. 내 고집과 완벽주의가 문제라고 꼬집으신 건데, 나는 출가를 생각한 적이 있다며 진지하게 답한 거다. (의도 파악, 그게 뭐죠? 먹는 건가요?) 의도를 직접 설명까지 하셨으나 난 끝까지 "그쵸. 안 변할 것 같아요" 하며 맞장구를 치다 나왔다. 무안을 줘도 몰라서 못 받는다. 이것만 봐도 딱 ADHD 같구먼.

그런데 나중에 정신이 들면 뒷북으로 상처받는지라, 그날의 대화가 마음에 콕 박혔다. 의지를 부정당한 것보다 왜 ADHD라고 생각하는지 관심 가져주기 바란 기대가 끝내 좌절된 게 슬펐다. 그렇게 11회기의 상담을 마치고 나니 깊이 이해받는 대화에 더 목이 탔다.

허나 내 가슴의 대나무숲엔 늘 강풍이 불고, 난 얼굴에 미역처럼 감기는 머리칼을 씹으며 쉰 목소리로 외칠 뿐.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내 전두엽은 ADHD 전두엽!!

성인 ADHD와 심리상담

몇 년 후, 다시 상담 받을 기회가 생겼다. 상담을 처음 받을 때도 아동ADHD 전문가나 ADHD를 '아는' 전문가가 아닌 '성인ADHD 전문가'를 찾기가 어려웠는데, 두 번째는 나라에서 지원하는 상담이어서 상담할 곳조차 직접 고를 수 없었다. 걱정스러웠다. 괜히 안 좋은 기억만 늘리는 거 아닌가? 전처럼 억지로 다니게 되진 않을까?

하지만 인생의 마지막 상담 기억을 다르게 남기고 싶었다. 닫힌 마음의 열쇠를 순순히 건네드릴 요량으로, 아니, 여기 있으니 제발 열어달라는 심정으로 두 번째 상담센터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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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회기 내내 상담선생님은 진심 어린 눈으로 내 얘기를 경청하셨는데, 여기서도 병 정체성을 속 시원히 인정받진 못했다. 상담 중 ADHD 확진을 받고 소식을 전했지만 마찬가지였다.

선생님은 내가 너무 생각이 많다고 하셨고, 병명에 얽매일까 경계하셨다. 하지만 그저 '생각 많고 예민해서 힘든 사람'으로 치부되며 살아온 나는 한 번이라도 진한 인정과 이해를 받고 싶었다. 병과 함께 살아오며 생긴 내 마음의 구조를 이해받으려면 병을 뚜렷이 인지하는 전문가가 필요했다.

성인ADHD가 있는 경우 상담에 불만을 느끼기 쉽다고 한다. "ADHD를 임상적으로 유효한 질환으로 고려할 가치가 없다고 무시하거나, 이 질환과 환자의 특별한 요구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부족한 전문가를 만났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Young&Bramham, <청소년과 성인을 위한 ADHD 인지행동치료> 참고).

이런 경험은 교육‧사회‧보건의료 서비스에서 되풀이되고, 그동안 쌓인 불만족에 대한 보상심리가 새로운 치료자에게 투영되기 쉽다. 상황 판단이 더디고 정서적 압박에 취약한 경우,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지 못해 치료의 방향이 생각과 다르게 흘러가는 것도 불만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성장통을 견디는 일

그럼에도 나는 힘든 시기를 지나는 지인들에게 상담을 권한다. 상담은 내게 이해받지 못하는 서러움도 안겨줬지만, 타인의 이해에 의지하지 않고 바로 서는 방법도 가르쳐줬다. 두 번째 선생님과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저는 정말 이해받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내가 나를 이해해 주는 게 첫 번째예요. 이해에 신경 쓰는 마음 밑바닥에 뭐가 있는지 살펴보세요. 혹시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것이 있는지."

내 경험과 판단을 부정당할 때 느끼는 섭섭함과 화 속에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싶은 마음, '인정'과 '소속'의 욕구가 있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남의 반응에 신경 쓰는 마음이 조금 작아졌다. 내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구분하는 연습은 바꿀 수 없는 일에 기대를 내려놓게 해줬다. 상담에서 실패한 부분과 잘된 부분이 만나 욕구를 어느 정도 자급자족하는 능력을 만들어준 셈이다.

심리상담은 척추 교정과 비슷했다. 예전부터 허리가 안 좋아 이런저런 노력을 했지만 갈수록 불편이 커졌다. 그러다 어느 교정원에 다니면서 알게 됐다. 나아지려고 해온 자세와 운동이 내 몸에 필요한 것과 정반대였던 걸.

걷는 법, 앉는 법, 서는 법, 눕는 법을 하나하나 다시 배웠다. 여러 번 설명을 들으며 내 척추와 골반 모양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몸을 이해하니 어떤 자세를 취하고 피할지, 어떤 운동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할지 혼자서도 판단할 수 있게 됐다.

정신 차려 보니 마음의 척추가 심하게 휘어 있었다. 도움이 안 되는 방식으로 나와 사람들을 보며 살다가 중심이 틀어졌고, 틀어진 중심은 사소한 일도 버겁게 만들었다.

인지행동치료를 하며 생각하는 습관을 하나씩 살피고 다른 관점을 대입해 봤다. 내 마음의 모양을 머릿속에 스캔하고 사용법을 배우니 내면과 세상을 보는 시선에 조금씩 균형이 잡혔다. 상담은 무엇보다 자신의 말을 듣기 위한 것이었고, 마음의 열쇠를 사용해야 하는 건 남이 아닌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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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몸을 치료받고 온 날 더 몸이 쑤시듯, 나아지는 과정에서 이겨내야 하는 것도 있었다. 어떤 날은 흘러간 줄 알았던 과거의 감정이 되살아나 덮쳐왔다. 상담 회기는 쌓여가는데 나는 제자리만 맴도는 것 같아 환멸을 느낄 때도 있었다.

지나고 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약해진 마음으로 낯선 사람을 만나 가장 내밀한 이야기를 꺼내놓는 과정이 순탄할 수 있을까. 나는 오해와 상처를 성장통으로 만들 능력이 있는데, 그걸 잘 몰랐던 게 아닐까.

세 번째 상담을 시작하며

얼마 전 상담 치료를 새로 시작했다. 트라우마 치료와 성인ADHD 상담이 가능한 전문가와 연이 닿았는데, 이참에 각 잡고 적금을 헐기로 했다. 전처럼 타인의 이해에 의존하진 않겠지만, 세상에나 내 귀가 당나귀 귀였고 감추고 사느라 죽는 줄 알았다며 호들갑도 떨고, 이 귀를 이렇게 써먹으면 어떻겠느냐며 머리도 맞대보고 싶다.

지난 상담에서 아쉬웠던 점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몇 가지 다짐을 했다. 여러분께 공유한다.

1) 첫 회기에 들어가기 전에 치료 목표와 기대하는 점, 걱정되는 점을 적어보자. 보통 첫 회기엔 치료 계획을 상의하는데, 내담자의 생각이 구체적이면 상담사도 방향을 설정하기 쉽다.

2) 전체 회기 중 한 번 이상은 상담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메타적 대화를 시도하자. 진행 방향, 상담 방식, 상담 전과 달라진 점, 자신의 태도나 마음 상태 등을 돌아보고,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솔직하게 전해 보자. 상담사와 나는 권력관계가 아닌 수평적 협력 관계이며, 나 역시 치료의 주체다.

3) 수첩에 상담일지를 쓰자. 기록은 상담 전, 상담 중, 상담 후로 나누어 상담 전에는 상담 때 할 말을 적어두고, 상담 중에는 들은 내용이나 떠오르는 생각을 메모한다. 상담이 끝나면 간단히 소감을 쓴다. 상담 중 알아차리지 못한 감정과 생각이 올라오곤 하는데, 치료의 실마리가 여기에 있을 수 있다.

4) 상대방의 기대치에 맞추려 하지 말고 자기 욕구에 귀 기울여 진심을 말하자. 치료를 위한 관계에서조차 가면을 쓰거나 거리를 둔다면 성장하기 어렵다. 상담사도 완벽한 사람이 아니며, 나에게는 신뢰관계를 회복할 힘이 있다. 치유는 이 신뢰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아무리 뛰어도 멀리 있는 지평선. 타인에 대한 이해란 그런 느낌이다. 하지만 상담으로 배운 것이 더 있다. 누군가 날 이해 못 한다고 느낄 때, 전부는 아니라도 부분은 이해했을 수 있고 당장은 아니지만 시간이 흘러 더 이해하게 될 수도 있다. 이해도 소통도 '모 아니면 도'는 아니다.

'자기이해'에 닿도록 도와주는 대화 상대도 정해져 있진 않다. 삶에 이해가 깊은 친구여도 좋을 것이고, 책이나 영화, 일기장일 수도 있다. 천천히 가자. 사람은 긴 과정에 있고, 길을 찾는 사람은 제자리에 머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