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인수위가 발표한 국정과제에는 여성가족부폐지가 없었으나 소위 이대남 여성혐오로 대통령이 당선된 국민의힘은 여가부폐지안을 발의하였습니다. 기본 여가부 관련 사업도 다른 부처와 같이 하는 방식으로 업무 분장을 하여 여가부의 실질적인 힘을 뺄 뿐 아니라 여가부 폐지 법안 상정까지 한 것입니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도 구조적 성차별을 외면하는 윤석열 정부의 입장은 변함이 없습니다. 이에 여성, 인권단체들로 구성된 ‘여성가족부폐지 저지를 위한 공동행동’은 다양한 위치에 처한 사람들에게 성평등 전담기구가 왜 필요한지를 연재합니다.[기자말] |
"피해자의 탓, 피해자의 잘못 이런 게 절대 아니고 누구라도 그 상황에 연루가 되면 그 상황에 처하면 누구라도 이런 피해를 겪을 수밖에 없는 이런 구조 이런 방식을 생각해야 합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영화 <사이버 지옥 : n번방을 무너뜨려라>의 끝부분에 디지털성폭력에 함께 대응했던 활동가, 법조인들이 한 말이다. 영화는 텔레그램 N번방의 갓갓과 박사가 어떻게 피해자들을 성착취 하며 영상을 제작하고 유포하는지, 왜 피해자들이 그들의 협박에 넘어갈 수밖에 없는지를 선정적이지 않게 성범죄자들을 쫓은 기자들의 윤리의식과 피해자들의 고통과 용기를 담아냈다.
2021년 대법원에서 25명의 피해자를 성착취한 박사방의 주동자인 조주빈은 징역 42년형, 20여명의 피해자를 성착취한 문형욱은 징역 34년형을 받았다. "현재 N번방 영상은 해외에 서버를 둔 메신저 플랫폼과 다크웹을 통해 전 세계를 상대로 여전히 거래되고 있다"는 자막처럼 성범죄는 현재진행형이다. 디지털 성착취물은 한 번 온라인에 퍼지면 완전한 삭제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것이 디지털 성범죄의 무서움이며, 피해자들의 일상을 흔들고 깨뜨리는 공포이다.
성착취 영상을 보고 유포하는 것이 누군가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란 인식 없이, 여성들은 동등한 인간으로 보지 않고 존엄을 훼손하며 이루어진 성범죄다. 그렇다보니 성착취물의 소지에 그치지 않고 판매하거나 유포한 가담자만 378명 중 44명(11.6%)나 됐다.
대선득표 전략으로 악용된 디지털성범죄 방지법
사건이 알려진 후 시민들의 분노와 여성들의 활동으로 소위 'N번방 방지법'이 만들어졌다. 성폭력처벌법에 디지털성범죄가 포함된 개정안과 전기통신사업법에 디지털플랫폼에 불법촬영물 유통을 방지하는 기술적·관리적 조치 책임을 부과한 개정안이 통과됐다.
그러나 지난 대선 때 윤석열 당시 대선후보와 이준석 국민의 힘 당대표는 통신비밀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개정하겠다고 했다. 연매출액 10억 원 이상 또는 일평균 이용자 10만 명 이상 인터넷 사업자가 콘텐츠 유통 시 불법 촬영물 여부를 사전에 확인하도록 규정한 법을 '검열'이라고 말했다. 공개·비공개 오픈채팅방도 적용 대상이지만 카톡 등 개인적 내용을 들여다보지도 못할뿐더러, 필터링 역시 특정 값과 일치하는지 여부만 살필 뿐 내용을 본다거나 불법이 아닌 영상까지 확인하는 방식이 아님에도 시민들의 일상을 검열하는 것인 양 선동했다. 이미 확인된 불법촬영물이 더 유포되지 않도록 막는 '범죄영상 필터링'은 피해확산을 막는 조치다.
20대 국회 마지막에 여야 가릴 것 없이 의결한 법이며 국민의힘 다의원 다수의 찬성으로 만들어진 법이다.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 의원도 50여명이 찬성해서 만들어진 법이다.
디지털성범죄를 예방할 중심, 여가부
법을 개악하겠다는 윤 정부의 주장도 문제지만 여성가족부(여가부) 폐지도 디지털성범죄를 막는데 걸림돌이다. 디지털성범죄자는 여가부가 중심에 서서 경찰과 법무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공조해야 잡을 수 있다. 또한 자신이 확인할 수 없는 곳까지 자신의 신체와 영상이 떠돌기에 디지털성범죄 피해자들의 공포와 불안이 큰 만큼 피해자 지원은 중요하다. 피해자가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려면 영상물 삭제와 피해자의 정신적 트라우마에 대한 상담 등의 지원이 필요하다.
이러한 이유로 여가부 산하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내에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이하 지원센터)가 만들어진 것이다. 지원센터는 불법촬영과 유포 등 디지털 성범죄 피해에 대해 상담 및 의료지원, 삭제지원, 수사지원, 소송 등 법률지원, 사후모니터링(점검) 등 종합적인 서비스를 원스톱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전에는 피해자들이 직접 자신의 피해 영상물을 검색하여 해당사이트에 삭제 요청을 하거나, 자비로 디지털 장의사 업체 등을 찾았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의 정신적 경제적 피해가 가중됐다. 지원센터는 해당 사이트에 삭제를 요청할 뿐 아니라 경찰 신고를 위한 채증,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 요청 등도 한다.
그런데 여가부를 폐지하면 이러한 역할을 할 중심이 사라지게 되는 셈이다. 물론 경찰이나 법무부도 역할을 하지만, 피해자의 고통을 최소화하려면 그 중심에 여가부가 있어야 한다. 지원센터는 지금도 예산이 적어 센터 직원 한 사람당 피해자 180여명을 맡고 있을 정도로 열악하다.
게다가 최근 법무부는 디지털성범죄 등 대응TF(태스크포스)의 업무가 끝나지 않았음에도 팀장인 서지현 검사에게 성남지청으로 복귀하라고 했다. 법무부가 TF를 해체할 가능성도 있다는 예측까지 오가는 와중에 TF 전문위원들은 항의의 의미로 대거 사퇴했다. 서 검사에 대한 인사 조치는 법무부의 디지털성범죄 처리와 가해자 처벌에 대한 의지를 유추할 수 있는 상징적 사건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성폭력을 강력 범죄로 분류하여 강력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폭력 피해자 지원을 법무부로 이관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현재의 모습에서는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의 삶은 정치인들의 표로 망가뜨릴 수 있는 정치판의 말이 아니다
2020년 대검 범죄분석 결과 4대 강력범죄 중 성범죄 비율은 91.3%이나 되고 이 중 디지털성범죄가 약 23%에 이른다. 디지털성범죄로 피해 입은 사람이 4명 중 한명인 셈이다. 여성가족부와 경찰청 등에 따르면 불법촬영 피해 건수는 2020년 2239건으로 2018년에 비해 3배나 늘었다. 2020년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의 피해자 지원 수는 4973건으로 접수 건수의 대략 68.7%를 지원했다고 한다.
그러나 올해 2022년 여가부 예산안은 1조 4115억 원으로 전체 예산의 0.23%에 지나지 않고 이중 성범죄 등 폭력 예방 및 피해자 지원 사업 등 권익보호 사업 예산은 7%에 불과하다. 아직도 지원센터의 존재를 몰라서 개인적으로 해결하는 피해자들이 많다. 한림대 미디어스쿨 한림랩 뉴스팀은 이들을 상대로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 존재에 대해 아느냐고 물었는데, 응답피해자 26명 중 11명만이 알고 있었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더 많은 인력과 재원으로 홍보하고 지원하는 게 더 필요하다.
디지털성범죄는 성착취 영상물을 소비하는 사람과 제작하고 유포하는 사람이 함께 공모하는 집단적인 성폭력이다. 앞서 언급한 영화에 나오듯이 여성들을 동등한 존엄한 인간으로 보지 않는 성차별적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성착취물을 보는 것을 범죄로 인식하지 않는 성차별적 문화와 성착취영상물이 돈이 되는 현실에서 성착취물의 제작과 유포가 확산되고 있다. 구조적 성범죄이기에 이를 예방하려면 성평등 인식을 확산하는 운동과 불법산업에 대한 규제와 처벌이 같이 가야 한다. 그렇기에 성인지감수성을 기본으로 가져갈 수 있는 정부부처가 중심에 서야 디지털성폭력을 예방할 수 있다.
그런데도 김현숙 여가부 장관은 여가부 폐지에 동의한다고 하니 디지털성범죄에 얼마나 필요한 인력을 배치하여 활동할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윤 정부가 말하듯 성폭력 피해 예방 및 보호와 성별영향평가 등은 다른 부처로 이관할 수 없는 고유 업무다. 타 부처로 이관하면 새로 업무를 시작해야 하므로 사실상 성폭력피해 업무는 상당기간 업무 수행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현 정부는 여전히 여가부 폐지를 위한 행보를 멈추지 않고 있다. 여가부 폐지 법안을 발의했을 뿐 아니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면 여가부를 폐지할 수 있다며 선거 전략으로 사용하고 있다. 피해자의 인권이 아니라 표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표를 위해 성폭력을 당하는 피해자는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정치인들의 표로 망가뜨릴 수 있는 정치판의 말이 아니다. 영화에서 취재하던 기자들의 말대로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 수 없어서 용기를 낸 피해자들이 있어서 텔레그램 성착취가 드러났고 범죄자를 잡을 수 있었다." 피해자의 용기로 만들어진 디지털성범죄 근절을 보수정권의 득표전략 때문에 멈출 수는 없다.
나아가 누구든 피해자가 될 수 있는 디지털성범죄의 구조를 바꾸어야 하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한 것이다. 함께 울고 함께 싸우며 여기까지 왔기에 우리는 반드시 여가부 폐지를 막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명숙은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의 상임활동가로, 여가부폐지 저지 공동행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