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북한 인권문제를 다룰 때 공수(攻守)가 뒤바뀐 보수와 진보의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보수는 그렇게 친화적이지 않은 인권의 전사가 되고, 진보는 슬그머니 눈을 감는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한 걸까?
#1. 필자가 만난 탈북자 중 스스로를 '혁명가'로 칭한 이가 있었다. 그는 동유럽의 체제 전환을 보며 북한 체제에 대한 저항 의식을 가지게 되었고 그의 그런 생각과 행동이 문제가 되어 탈북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렇게 한국 사회에 정착한 그는 혼란스러운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줄 줄 알았던 남한의 진보는 그를 외면했고 보수가 그의 손을 잡아줬다는 것이다. 왜 남한의 진보는 북한 인권문제에 침묵하냐는 그의 물음에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2. 지금은 퇴임하신 서강대 손호철 교수님은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좌파학자로 잘 알려져 있다. 필자가 대학원을 다닌 시절 그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그는 남한의 진보가 북한 인권문제에 침묵하는 것이 언젠가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사실 그 강연의 주제가 무엇이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한 이 한마디만은 내 머릿속에 깊이 남아 있다.
북한 인권문제는 존재하는가?
1948년 <세계인권선언>은 제1조에서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그 존엄과 권리에 있어 평등하다. 인간은 천부적으로 이성과 양심을 부여받았으며 서로 형제애의 정신으로 행동하여야 한다"고 선언하였다. 이러한 인권선언의 언명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국가 혹은 사회공동체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다만 그 이상(理想)을 향해, 우리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북한은 '우리식 인권'이란 개념을 제시하고 '개인은 집단의 한 구성원으로서 사회적 인권을 가진다'고 주장한다. 서양과 동양의 인권관이 다르듯 국가 간 문화적 특수성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인권실태는 문화적 상대성을 이야기하기에는 인류 보편의 넓은 시각에서 바라보더라도 매우 심각하다. 식량난(고난의 행군) 당시 탈북자들이 전한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참혹한 인권 침해 사례는 글로 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여기서 북한 인권문제의 실태를 나열하지는 않겠다. 보수와 진보를 떠나 이 문제에 대한 어느 정도의 공감대가 우리 사회에 형성되어 있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북한 인권문제와 반(反)북한체제의 중첩, 그리고 '인권'의 소외
김대중 정부 이후 확대된 남북교류협력은 북한 인권문제를 침묵하게 만들었다. 남북대화에서 교류협력과 인권문제는 하나의 바구니에 담을 수 없는 이슈였으며 인권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은 대화의 단절을 의미했다. 대신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식량과 비료 등 인도적 지원을 통해 북한 주민의 굶주림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인권문제를 바라봤다. 남한 내 인권단체들이 북한 인권문제에 관심을 갖고 종종 논의해 온 것은 사실이나 논의 이상의 행동으로 표출되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다.
보수 정부는 북한 인권문제를 남북관계의 중요한 이슈로 상정해 왔다. 보수는 북한체제를 부정하고 남북대화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그렇게 북한 인권문제는 반(反)북한체제와 동일시 되었다. 북한 인권문제가 보수의 이슈가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북한인권단체의 대북 활동, 예를 들어 전단지 살포와 같은 행동이 북한에서 인권문제를 해결하는데 얼마나 많은 역할을 했는지 불분명하다. 북한인권단체의 이러한 행동이 북한체제의 경직성을 강화시켰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결과적으로 어떤 관점도 북한 인권문제, 그 자체에 집중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북한인권을 말하지만 정작 '인권'은 사라진 느낌이다. 어쩌면, 한반도 분단체제하에서 인권문제는 그 자체의 문제로 다루어지기 어려운 한계를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한반도의 시각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면 어떨까?
'한반도 인권'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필자는 '한반도 인권'의 관점에서 인권의 가치를 중심으로 이 문제를 바라보고 연대할 것을 제안한다. '한반도 인권'의 관점이란 인권문제를 남과 북으로 나누지 말고,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한반도 공동체의 인권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 연대하자는 것이다.
남한의 인권단체는 더 이상 북한 인권문제에 침묵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행동할 필요가 있다. 북한인권단체 또한 남한의 인권문제에 연대할 것을 제안한다. 안타깝게도 북한인권단체가 남한의 인권문제에 함께했다는 이야기를 아직까지는 듣지 못했다.
인권문제에 남과 북이 따로 있지 않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 우선 우리 시민사회가 한반도 인권의 관점에서 남과 북의 인권문제를 다루고 국제사회와 연대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