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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 달이 조금 넘는 병원 생활을 끝내고 집으로 온 지도 보름이 넘어섰다. 내 집인데도 처음엔 낯설게 느껴졌던 공간이 그새 많이 익숙해졌다. 넘어지거나 부딪치는 사고가 일어나면, 그동안 쌓아온 공든 치료의 탑이 무너질 수 있어서 불안한 마음으로 조심조심 가능한 만큼 움직이고 있다. 퇴원을 앞두고는 집에서의 생활이 실감이 안 났는데, 이제는 또 병원에서의 생활이 아득한 옛날 같은 느낌이다.

퇴원할 만한 오늘의 내 몸이 있기까지 나의 최측근은 간병사님이었다. 내가 침대를 벗어날 수 없었던 두 달 간은 전적으로 내 손발이 되어 주었고, 그 이후 두 달 간은 조금씩 움직이려 노력하는 나를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도와주고 응원해 주었다.

내 몸을 타인에게 맡기는 일
 
 간병사님은 내가 침대를 벗어날 수 없었던 두 달 간 전적으로 내 손발이 되어 주었다.
간병사님은 내가 침대를 벗어날 수 없었던 두 달 간 전적으로 내 손발이 되어 주었다. ⓒ elements.envato
 
타인이 내 손발 역할을 해주어야 하는 상황은 당연히 불편하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불편을 감수하는 능력이 필요했다.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남을 돌본다는 것에 관심을 갖고 보게 된 책 중에 <노인 수발에는 교과서가 없다>라는 게 있었다.

재미라곤 하나도 없을 듯한 책 제목에 비해 아주 재밌게 읽었던 책이다. 그 책에 따르면, 수발은 2인3각 경기와 같이 서로를 맞추어가는 과정이다. 같은 시간에 같은 목표로 호흡을 맞춰야만 넘어지거나 나뒹구는 일 없이 하루하루 일상을 별 탈 없이 살아낼 수 있다.

통증을 견뎌내는 일, 24시간을 침대에 누운 채로 있어야 하는 일, 입맛이 전혀 없는데 누운 상태에서 남이 떠주는 밥을 삼키는 일, 침대에서 머리만 밖으로 내밀고 목을 가누면서 귀에 물이 들어가지 않게 애쓰며 머리를 감는 일 등 순간순간이 불편함 그 자체였다.

간병사님은 내 표정, 말, 몸짓 등을 통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아냈다. 그리고 불편함을 피할 수는 없지만, 최대한 덜 불편하도록 내 몸을 조심스럽게 만지고 살피고 닦아주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 나의 아픔과 불편을 넘어 주변을 볼 여유가 가끔씩 생기자 내 옆 낮고 좁은 간이침대에서 거의 24시간을 보내고 있는 간병사님이 보였다. 좁은 공간으로 간호사들이 수시로 드나들었고, 무엇을 하지 않더라도 밤이건 낮이건 계속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상황에서 간병이란 것이 이루어졌다.

'저 좁은 데서 24시간의 대부분을 보내야 하는 게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참 힘들겠다.'

입원 두 달쯤 되던 때였던지 후배랑 전화하던 중에 간병인과 계속 같이 있어야 하는 것도 참 불편하겠다는 말을 후배가 했다. 그 말을 들으며 오히려 나는 '당연히 내 옆에 있어야 되는 사람이 없으면 난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간병사님의 손길과 존재에 익숙해져 있었다. 혼자 있는 시간과 공간을 즐기는 편인데, 전적으로 남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자 어느새 그런 욕구 자체가 없어져 있었다.
 
새벽녘의 탑동 바다 바다 가까운 이 병원에 있을 때는 우리 병실 간병사님 두 분이 새벽마다 산책을 나가셨다. 창문을 내다보다가 저멀리 두 분이 걷는 모습이 보이길래 사진을 찍었다. 많이 확대해야 겨우 찾을 수 있을 만한 크기이다. 손자들에게 할머니 찾아보라고 보내시라며 사진을 두분에게 보내드렸다.
새벽녘의 탑동 바다바다 가까운 이 병원에 있을 때는 우리 병실 간병사님 두 분이 새벽마다 산책을 나가셨다. 창문을 내다보다가 저멀리 두 분이 걷는 모습이 보이길래 사진을 찍었다. 많이 확대해야 겨우 찾을 수 있을 만한 크기이다. 손자들에게 할머니 찾아보라고 보내시라며 사진을 두분에게 보내드렸다. ⓒ 이진순
 
무수한 허드렛일로 유지되는 일상

간병이라는 것이 힘들고 고된 박봉의 일이라 한국인들은 간병을 하려는 사람이 적고, 간병인의 90% 정도인 20만 명 정도가 중국동포라고 한다. 간병사님도 그중 한명이다. 간병사님이 쓰는 말투나 단어는 당연히 남한의 우리들과는 꽤 다르다. 들어본 지 오래됐지만, 어렸을 적부터 익숙했던 단어들을 간병사님을 통해 듣곤 했다.

예를 들면, 목욕을 시키려다가 때수건을 안 갖고 왔다며 "제까닥 가서 가져올까?"라고 간병사님이 묻는다. "제까닥 갔다 오는 사이에 누가 제까닥 문 열면 어떡해?"라고 맞받으며 웃었다. 성격이 급했던 아버지가 종종 썼던 '제까닥'은 '얼른, 바로'를 뜻하는 북한 말이다.

입원 중 특히 초기에는 누워 있다가 갑자기 또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다가 눈물이 주르륵 흐를 때가 종종 있었다. 사고 당시를 상상하거나 지금의 상황을 떠올리다가 그런 순간들이 문득 문득 찾아오곤 했다.

그럴 때 간병사님은 애써 위로의 말을 찾거나 특별한 대응을 하지 않았다. 항상 옆에 있는 사람이 위로하려 애쓰는 스타일이었다면, 불편하고 부담스러웠을 것 같다. 그 시간이 지나길 말없이 기다려준 덕에 나는 조금 더 편하게 내 감정을 풀어낼 수 있었다.

간병사님에게서 그동안의 간병 경험을 들어보니 간이침대가 있는 것은 양반이고, 맨바닥에서 자야 하는 병원도 많다. 바닥의 냉기가 너무 심해서 담요 한 장만 더 달라고 부탁하면, 이미 한 장 받아가지 않았냐고 찬바람 불게 쏘아대는 간호사들도 있다고 했다.

냉기를 막아줄 작은 핫팩을 사던지 다른 간병인을 통해서 환자가 쓰는 것처럼 둘러대서 담요를 얻기도 했다. 병원마다 또 개별 간호사마다 간병인들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가 큰 것 같다. 

의료업계에서는 간병인에 대해 '가장 낮은 곳에서 일하지만 가장 필요한 존재, 생명의 최전선에 서 있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러나 또 한편에선 '전문성이 요구되지 않는 허드렛일을 하는 존재'라며 무시하는 인식도 분명 존재한다. 우리의 일상은 무수한 허드렛일로 이루어진다. 우리 삶의 가치는 이런 일상의 허드렛일 속에서 피어나는 어떤 것 아닐까?

대통령이 후보였던 시절, 취업을 준비 중인 젊은이들을 만나서 '손발로 노동해 가지고 되는 건 없다, 인도도 이제는 안 하고 아프리카나 하는 것이다'라고 했던 말을 기억한다. 물론 맥락상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하느라 한 말일 것이다. 그러나 이 사회에는 땀 흘리며 손발로 노동하는 무수한 노동자들이 있고, 그들이 지금의 이 사회를 있게 한 주역이기도 하다.

지금 이 시간에도 코로나19 방역 현장, 자연재해의 현장, 돌봄의 현장 등 무수한 현장에서 인간의 손과 발이 사람과 사회를 살리는 역할을 해내고 있다. 미래의 기술이 인간적 기술이기 위해서는 손발노동에 대한 무시, 아프리카에 대한 무시를 전제로 한 기술은 아니어야 하지 않을까?

머리로만이 아니라 마음과 손발로 내 삶을 가능케 해주셨던 간병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간병#간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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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른 겨울밭, 붉은 동백의 아우성, 눈쌓인 백록담,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소리와 포말을 경이롭게 바라보며 제주의 겨울을 살고있다. 그리고 조금씩 사랑이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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