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
26일 오전 8시 10분께였다. 지인에게 문자메시지 한 통이 왔다. 대전시 유성구 현대프리미엄아울렛에서 불이 나 주변이 까만 연기로 뒤덮였다는 소식이었다.
확인해보니 화재는 이날 오전 7시 45분께 발생했다. 행정당국은 소방 인력 400명 등 700명 가까운 인원을 현장으로 급파했다. 소방차 24대, 구급차 11대도 배치됐다.
출동 규모만 놓고 봐도 큰불이었다. 하지만 큰 염려는 하지 않았다. 재산 피해는 있겠지만 적어도 인명 피해는 없을 거라고 판단했다. 개장시간인 오전 10시보다 한참 이른 시각이니 직원도 출근 전일 테고, 신고 즉시 구조대가 출동했으니 별일 없겠거니 했다.
오전 9시께, 다른 지인이 화재 현장 사진을 보내왔다. 여전히 아울렛 건물 전체가 연기로 뒤덮여 있었다. 한 시간 넘게 진압작업을 했는데도 여전히 불길이 잡히지 않는 걸 보고 '화재진압에 어려움이 많구나'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예정된 다른 취재를 하러 나섰다.
몇 시간 뒤, 관련 보도를 확인하다가 깜짝 놀랐다. 화재 현장 지하에서 사망자가 발생한 데다, 연락이 두절된 실종자들이 있어 수색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순간 '그 이른 시간에 왜'라는 의문과 함께 내가 잊고 있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야간 노동자와 새벽 출근 노동자였다.
"너무 힘들어 그만두려고 했다"
화재는 이날 오후 3시께가 돼서야 진압됐다. 희생자 신원은 이날 오후 4시를 넘겨 최종 확인됐다. 7명이 숨지고 1명이 크게 다쳤다. 사상자들은 모두 아울렛 지하에서 일했다. 시설관리(경비, 소방)를 하던 야간 노동자거나 쓰레기 처리·청소 분야 하도급 회사 직원, 물류업체 직원 등 상대적으로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근무하는 이들이었다.
이중 A씨(33)는 소방시설을 관리하던 외주업체 소속이었다. 이날 야간근무를 마치고 맞교대(퇴근)하기 전 화를 당했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직후 백화점 주차요원, 마트 아르바이트, 택배 상하차 등 여러 일을 하다가 현대아울렛 일을 맡았다. 그의 유가족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새벽 근무로 잠도 못 자고 일이 너무 힘들어 그만두려고 했다. 일찍 그만뒀더라면 이런 일은 안 당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B씨(36)는 물류 쪽에서 일하다 숨졌다. B씨의 유가족은 27일 "다른 쪽에서 물류 일을 하다가 (현대아울렛으로) 옮긴 지 얼마 안 된다"며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려고 생각하던 중이었다"고 했다. 두 사람 모두 '너무 힘들어 그만두려고 했다'는 것이다.
아직 정확한 화재 원인·경위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소방당국 등은 27일 종일 현장 합동감식을 벌였다. 윤석열 대통령도 이날 사고 현장을 찾아 합동분향소를 조문하고 유가족을 만나 위로했다. 충분한 보상을 위해 노력하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화재 원인과 경위, 보상 못지않게 중하게 살펴볼 지점이 있다. '너무 힘들었다'고 호소했다는 희생자들의 전반적인 노동환경이다. 근무 중 휴게시간과 공간은 제대로 보장됐을까. 건강권 보호를 위한 기업의 조치가 충분했을까. 화려한 아울렛의 지상세계를 지탱하기 위해 지하에서 분주하게 땀 흘렸을 그들의 일터는 안전하게 근무하고 퇴근할 수 있는 곳이었을까.
마침 노동부가 현대백화점에 대해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르면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건설업은 공사 금액 50억 원 이상) 사업장에서 근로자 사망 등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사고 예방 의무를 다하지 않았을 경우 사업주·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현대아울렛 화재 참사를 계기로 우리 사회가 화려한 쇼핑몰 조명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야간·새벽근무 노동자들의 근무환경을 살펴보고 개선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