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들이 생존권을 위해 쟁의행위를 하면 수십, 수백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각오해야 하는 상황. '노란봉투법' 제정 요구가 커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당은 연내 법 제정을 약속했지만 정부·여당·재계의 반대가 거세다. 노란봉투법의 의미를 살펴보는 연쇄 인터뷰를 진행한다.[편집자말] |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 "노동권도 중요하지만, 재산권도 중요하다. 소유권을 침해하면 공산주의가 된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 "노조를 누를 수 있는, 노조가 무서워하는 게 바로 손해배상 소송인데 그것까지 다 빼앗아버리면 우린 아무 힘이 없다." (13일 경사노위·경총 간담회)
재계와 정부가 연일 노란봉투법 반대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노란봉투법이 헌법상 재산권을 침해하고 기존 법 체계를 흔든다는 한국경영자총협회 주장을, 정부·여당이 반복해 재생산하는 식이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노란봉투법이 "위헌 소지가 있다"고 했고,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불법 파업을 조장하는 황건적 보호법"이라고 했다. 급기야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은 "사유재산 제도를 없애는 공산주의"라면서 색깔론까지 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장이자 '노조법 제2·3조 개정 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은 이용우 변호사는 "노란봉투법이 위헌이라는 주장은 법리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노란봉투법이 위헌이면, 현행 노조법 3조에 이미 손해배상 청구 제한 조항이 존재하는데 이것도 위헌이냐는 것이다. 이 변호사는 "노조를 누를 수 있는 게 손배소"라는 손경식 경총 회장의 말을 겨냥해 "이는 손해배상 소송을 손해의 보전 수단이 아니라, 노조 통제 수단으로 생각해왔다는 자기 고백"이라고 꼬집었다.
노란봉투법은 파업 노동자들에 대한 기업의 무분별한 손해배상소송을 제한하고, 하청·특수고용·간접고용·비정규직도 교섭할 수 있도록 보장하자는 취지의 노조법 2·3조 개정을 통칭한다. 이 변호사는 "노동 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역시 헌법상 기본권인데 비정규직일수록 더 지켜지지 않는다"라며 "노란봉투법의 핵심은 헌법상 권리를 실질화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이 변호사는 "2003년에 두산중공업 배달호씨가 분신한 지 20년이 지났다"라며 "최근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470억 손배소로 사회적 관심이 커졌는데, 지금 시기를 놓치면 앞으로도 법 개정이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변호사를 지난 13일 서울 서초구 변호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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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우 변호사 "노동 3권은 '공기'... 하청 노동자들이 만든 기회 놓쳐선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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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성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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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총, 왜 토론 피하나... 진중함 없이 '공산주의' 선동뿐"
현행 노조법 제3조(손해배상 청구의 제한) : 사용자는 이 법에 의한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입은 경우에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에 대하여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
- 최근 경총, 전국경제인연합회, 일자리연대 등 경영계 단체들이 '노란봉투법은 헌법상 기본권인 재산권 침해'라며 일제히 반대에 나서고 있다.
"법리적으로 맞지 않는 주장이다. 현행 노조법 3조에 이미 재산권에 대한 제한이 들어있는데, 여기에는 위헌 시비가 없지 않나. 어느 수준까지 재산권을 제한하는 게 적절하냐는 정책적인 토론은 가능하겠지만, 재산권을 침해했으니 위헌이고 민사법 체계와 맞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다."
- 김문수 경사노위 위원장은 '재산권과 노동권은 균형을 맞춰야 하는데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지면 문제가 많다'면서 재계 입장을 되풀이했다.
"거꾸로 지금까지가 심각한 불균형 상태 아니었나? 노동 3권 역시 헌법상 기본권인데, 현실에선 이게 거액의 손배소에 의해 질식돼왔다. 최근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들의 파업만 봐도 그렇다. '0.3평' 감옥 투쟁은 스스로에게 가혹한 파업이었을지는 모르지만, 외부적으로는 철저히 평화적인 점거 농성이었다. 폭력·파괴 행위도 없었다. 그런데도 회사는 이 노동자에 470억 손배를 청구했다.
이는 분명 헌법이 보장한 노동 3권의 취지에 어긋난다. 현재 노조법 3조 '손배 제한' 조항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를 바로잡는 게 헌법에도 부합하는 방향 아닌가.
재산권과 노동권의 경중도 따져봐야 한다고 본다. 둘 다 기본권인 건 맞지만, 헌법을 보면 재산권은 제한할 수 있다고 명시돼있는 반면 노동 3권은 제한 조항 자체가 없다. 노동권이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측면이다. 그런데도 '재산권 침해하면 공산주의'라는 식의 선동을 한다. 어이가 없고 안타깝다."
- 지난달 29일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가 경총에 노란봉투법 관련 공개 토론을 제안했다. 답이 왔나.
"없었다. 왜곡 선동만 하지 말고 진중하게 합리적인 논쟁을 하자는 거였다. 쌍용차 손배 이후만 따져도 수십 명이 사망했다.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운동본부는 100여 개 시민·노동·법률·종교단체들이 모인 기구다. 우리를 피하면 경총은 대체 누구와 얘기하겠다는 것인지 답답하다. 토론에 자신이 없는 거라고밖에는 이해가 안 된다."
"노조 가입한 사람, 노조법상 근로자로 '추정'하는 조항 넣자"
현행 노조법 제2조(정의)
1. "근로자"라 함은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ㆍ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하여 생활하는 자를 말한다.
2. "사용자"라 함은 사업주, 사업의 경영담당자 또는 그 사업의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사업주를 위하여 행동하는 자를 말한다.
5. "노동쟁의"라 함은 노동조합과 사용자 또는 사용자단체간에 임금·근로시간·복지·해고 기타 대우 등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인하여 발생한 분쟁상태를 말한다. 이 경우 주장의 불일치라 함은 당사자간에 합의를 위한 노력을 계속하여도 더 이상 자주적 교섭에 의한 합의의 여지가 없는 경우를 말한다.
- 현재 국회에 총 8건의 법안이 올라와 있다. 보완할 부분이 있다면.
"노조법 2조 부분이다. '비정규직 보호법', '진짜 사장 책임법', '쟁의 행위 보장법'의 성격을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 그간 노조법상 '근로자', '사용자', '노동쟁의' 정의가 협소하게 규정되고 해석됨으로 인해 IMF 이후 양산돼온 하청, 간접 고용, 특고(특수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겐 제대로 된 노동 3권이 없었다. '손배 폭탄' 방지로 출발한 노란봉투법 논의가 그간 노조법 3조 개정에 집중됐었다면, 이제는 파업까지 가기 전 평소 취약 노동자들이 마땅히 보장받아야 하는 노동권에 방점을 둘 때다.
먼저 '근로자' 정의를 보자. 특고, 간접고용, 플랫폼 등 새로운 형태의 노동자들은 노동자로 인정받기 위해 많은 시간 싸워야 했다. 최근 대법원이 학습지 교사, 방송 연기자 등을 노조법상 근로자로 인정하는 등 진전이 있었지만, 대법원 판결까지 10년 안팎이 걸렸다. 이에 노동조합을 조직했거나 노동조합에 가입한 사람은 노조법상 근로자로 '추정'한다는 조항을 신설할 것을 운동본부 차원에서 제안하려 한다. '추정'이기 때문에 사용자 입장에서 노동자가 아님을 반증할 수 있는 여지도 열려있다.
'사용자' 정의에는 노동관계에 실질적인 지배력이나 영향력을 가지는 자, 혹은 사내하청을 둔 원청 등을 명시해 하청 노동자도 원청과 교섭할 수 있도록 명확히 해놔야 한다. 이건 이미 대법원 판례, 중노위 판정, 노동법 학설, ILO(국제노동기구) 국제 노동 기준 등 모든 면에서 정리가 된 부분이다. 재계도 이에 대해선 문제 제기를 잘 하지 않는다. 흔히들 '사용자 개념 확대'라고 하는데, 표현이 틀렸다. 새로운 권리를 추가하는 게 아니라 기존의 법 취지를 회복시키는 것이고 더이상의 불필요한 논란을 종식하자는 요구이기 때문이다. 대우조선, 하이트진로 하청 노동자들처럼 원청이 교섭을 해주지 않아 파업까지 해야 하는 사례들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노동쟁의'의 정의도 넓힐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합법적으로 쟁의하기'는, 낙타가 바늘 구멍 통과하기보다 어렵다고들 한다. 현재는 '임금·근로시간·복지·해고 기타 대우 등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에 한해 노동쟁의의 목적을 제한하고 있는데, 정리해고나 구조조정, 자회사 전환, 매각 등 정작 노동자의 지위나 생존에 직결되는 사안에 대한 노동쟁의를 막아 문제가 돼왔다. 이것이 수정되면 정리해고 반대 파업이었던 쌍용차 사태 같은 상황이 생겼을 때 지형이 많이 바뀔 수 있다."
- 결국 합법 파업의 범위를 넓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 모든 시민이 노동자 아닌가. 노동 3권이 제대로 행사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손해배상 소권 남용을 금지하는 조항을 추가할 것도 제안하려 한다. 손배의 본래 목적은 피해의 보전인데, 실제 노동 현장에서는 노조 탄압, 조합원 탈퇴 압박 수단으로 악용되는 측면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당장 최근 손경식 경총 회장의 발언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노조가 무서워하는 게 손배인데, 빼앗기면 회사가 힘이 없어진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 손배가 노조를 통제하는 수단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꽉 차 있는 것이다. 대놓고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하는 건데, 제동을 걸어야 하지 않나."
"노동 3권은 '공기'... 하청 노동자들이 만든 기회 놓쳐선 안 돼"
- 민주당과 정의당이 올해 내 법 제정을 약속하긴 했지만, 노동계에서 지난 20년 동안 필요성을 외쳐오고도 법 통과는 요원했었다.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라고 했던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들의 파업에 많은 이들이 공감한 것 같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TBS 의뢰로 지난 7월 22일~23일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노동자 처우 개선을 위해 원청의 사용자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물음에 찬성 52.8%, 반대 20.4%였다(자세한 사항은 여론조사기관 및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여론조사에 노동 이슈가 등장한 것 자체가 이례적이었는데, 찬성 의견이 반대보다 30%포인트 이상 높았던 걸 보고 크게 놀랐다. '월급 200만원 받는 노동자들이 임금 올려달라고 파업한 걸 갖고 470억 원 손해배상을 무는 건 좀 아니지 않냐'는 상식과 사회적 공감이 형성된 것이다.
최근 정치권의 관심과 움직임 양태가 좀 달라진 것도 그런 여론 때문일 것이다. 천재일우(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기회)다. 이번에도 법을 통과시키지 못한다면 앞으로 법 개정은 어려울 거라고 본다. 200년 노동법 역사를 통해 쟁취한 노동 3권은 현장의 노동자들에게 '공기'와 같은 것이다. 사용자와의 관계에서 절대적 약자인 노동자가 대등한 힘을 갖도록 모이고, 행동하도록 보장한 것이 노동 3권이다. 노란봉투법은 노동자들에게 다시 공기와 생명을 불어넣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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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봉투법①] 유최안 "죽음 결심했었다...470억 손배? 더 잃을 것도 없다" http://omn.kr/213u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