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가장 맞닿아 있는 술 중 하나인 맥주. 우리는 맥주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문화로서의 맥주를 이야기하고,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에 관하여 이야기합니다. [기자말] |
팬데믹으로 인해 '혼술족'이 늘어났던 2020년, 세븐브로이가 대한제분과 손을 잡고 내놓은 곰표 맥주는 가공할 만한 흥행을 거뒀다. 곰표 캐릭터의 귀여운 이미지, 그리고 패션프루트 향을 곁들인 가벼운 밀맥주에 많은 대중이 열광했고, 콜라보 마케팅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기록되었다.
누적 판매량은 지금까지 3400만 개를 넘어섰다. 곰표 맥주의 성공 공식을 그대로 쫓은 맥주들이 우후죽순 이어졌다. 콜라보는 구두약, 속옷, 치약, 아이스크림, 골뱅이, 껌 등 품목을 가리지 않았다. 심지어 증권사와 협업한 '주식 맥주'까지 등장했다. 주세법 개정에 힘입어, 더 많은 수제 맥주들이 편의점으로 진출했다.
브랜드 마케팅 수단이 된 편의점 맥주
곰표 맥주 출시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수제 맥주 시장의 풍경은 어떨까. 편의점에서 만날 수 있는 수제 맥주는 대부분 콜라보 맥주의 형태를 띠고 있다. 곰표 맥주의 흥행을 맛본 세븐브로이는 최근 게임 쿠키런과 손을 잡고 비엔나 라거 스타일의 맥주를 내놓았다.
'맥주 팔아 우주 간다'를 모토로 내세우는 더 쎄를라잇 브루잉 역시 콜라보 마케팅에 더 큰 힘을 기울이고 있는 업체다. 농심 새우깡과 협업한 '깡맥주 오리지널', '깡맥주 블랙', 아기공룡둘리의 캐릭터 고길동의 이미지를 빌린 '고길동 에일' 등이 이들의 주력 상품이다.
앞서 언급한 맥주 외에도 비슷한 사례는 많다. 현재 편의점 수제 맥주는 대기업의 광고판으로 탈바꿈한 것처럼 보인다. 물론 콜라보레이션의 의의 자체를 부정할 이유는 없다. 우수한 콜라보레이션은 '윈윈'을 완성한다. 기업은 브랜드의 이미지를 환기할 수 있고, 수제맥주 업체 역시 기업의 인지도에 힘을 얻어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
문제는 맛이다. 결국 대부분의 콜라보 맥주는 색다른 패키지만큼 색다른 맛을 보여주지 못했다. 물론 태생적인 한계 역시 존재한다. 수제 맥주의 특장점은 대기업 맥와 달리, 더 다양한 양질의 재료를 사용해 차별화된다는 맛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편의점에 입점하기 위해 단가를 낮추게 되는만큼 맛에도 한계가 생긴다. 그래서 편의점에 입점 수제 맥주 역시 비엔나 라거, 위트 에일 등 일부 스타일로 한정된다. 그나마 맥파이 브루잉과 플래티넘맥주, 그리고 게임 업체 블리자드가 협업한 '데블즈 블러드'가 흔히 찾기 어려운 레드 에일을 선보인 정도다.
뮤지션 박재범과 손을 잡고 증류식 소주 '원소주 스피릿'을 흥행시킨 GS25는 프리미엄 주류 전략을 맥주로도 확장켰다. 블랑제리뵈르 버터맥주 4종이 그 결과물이다. 한 캔에 6500원, 4캔 세트는 24000원이다. '가심비'를 즐기는 MZ 세대를 공략했다는 설명이 뒤를 잇는다. 이미 품귀 현상이 벌어지는 등 반응은 뜨겁다.
그러나 맛에서는 다른 맥주와 차별화가 되지 않는데, 버터나 헤이즐넛 등의 향을 내는 착향료가 더해진 정도다. 임페리얼 스타우트, 뉴잉글랜드 IPA 등 비슷한 가격대에 판매되는 수제 맥주도 적지 않다. 이것을 '프리미엄 맥주'라고 부를 수 있는지 의문이다.
현재 한국 수제 맥주 시장의 풍경은 비슷한 사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기형적이다. 수제 맥주 시장의 자생성이 부족한 상황에서, 편의점이 시장을 좌우하는 변수가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4캔 11000원 할인은 '맥덕(맥주 마니아)'에게나, 일반 소비자에게나 매력적인 선택지다. 그러나 언제까지 편의점이 종착지가 될 수는 없다. 이미 수제 맥주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편의점의 콜라보 맥주 난립이 반갑지 않게 여겨진다. 오히려 '수제 맥주는 독특한 패키지에 특별할 것 없는 맛 맥주'라는 편견을 우려한다.
효력 다한 '굿즈 맥주', 그 다음은?
지난 5월, 코스닥 상장 1주년을 맞아 '브루잉 데이'를 연 제주맥주 문혁기 대표는 "마케팅에서 메가 트렌드였던 콜라보 굿즈 열풍이 맥주 캔으로 넘어왔고 크게 흥행했다. 고객들은 이런 재미있는 굿즈 맥주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인기 속에 출시된 맥주 신제품은 맥주와 무관한 브랜드의 굿즈로 도배되기 시작해 맥주의 본질은 사라졌고 굿즈 맥주만 남았다"고 말했다.
제주맥주 역시 '굿즈'와 다름없는 콜라보 맥주를 여럿 출시했다는 것이 아이러니했지만, 그의 진단은 한국 맥주 시장의 문제점을 관통하고 있었다.
굿즈 맥주의 성공은 한국 수제 맥주 시장의 성공이 아니다. 마케팅에 종속된 맥주를 마신 고객들이, 그 다음 단계인 편의점 바깥 수제 맥주로 유입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오랫동안 지역에서 고객들과 호흡하며, 새로운 레시피를 만들고 맥주의 흐름을 연구한 양조장들은 국내에 많이 있다. 양조장의 역량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수제 맥주 몇 종이 일정한 가격(6900원)으로 편의점에 입점되기도 했지만, 아직 '굿즈 맥주'에 비해 화제성과 인지도는 현저히 떨어진다.
이미 소비자들은 콜라보 맥주, 굿즈 맥에 대한 피로감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MZ 세대 마케팅, '인싸' 마케팅 등의 단어를 공염불처럼 외는 것도 효력을 다 했다. 결국 본질은 맛이다. 더 나아가, 어떻게 편의점 바깥에 있는 맥주들이 소비자를 만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 역시 필요하다.
더욱 많은 오프라인 펍과 식당, 그리고 축제 등을 통해 맥주의 경험치를 늘릴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 온라인 배송으로 수제 맥주를 받아볼 수 있는 가능성도 열려야 한다. 맥주의 다양성을 알릴 수 있는 창구에 대한 고민도 필요할 것이다. 곰표 맥주 출시로부터 2년이 넘게 지난 지금, 업계에는 또다른 과제가 주어진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