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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사람들이 우리 고장의 아름다운 정서와 문화를 마음껏 사랑하길 바랐다. 조상들이 대대로 지켜온 문화와 말에 누구보다 자긍심을 가지기를 바랐다."

2018년 9월, 2500여 자의 충북 옥천말을 담은 옥천말 사전 <정겨운 옥천사투리>를 펴낸 조도형씨의 말이다.

안내면 동대리 쓰리마을에서 나고 자라 안내초와 안내중, 옥천공고에서 공부한 그는, 이후 국제종합기계(옥천읍 양수리)를 거쳐 옥천군 문화관광과에서 일했으니 그야말로 옥천을 떠나본 적 없는 본토박이다. 하지만 옥천이 나고 자란 고향이라 한들 그처럼 고향의 말과 역사에 속속들이 관심을 두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랑하고 관심을 가지면 예사롭게 보이는 것이 없다"는 그에게 옥천말 하나하나는 반드시 기록하고 공유해야 할 보물과 다름없었을 터. 그가 이토록 고향의 말과 문화를 보전하는 일에 큰 애정을 쏟는 이유는 뭘까.

나를 키운 말을 지킨다는 것
 
 <정겨운 옥천 사투리>를 쓴 조도형씨
<정겨운 옥천 사투리>를 쓴 조도형씨 ⓒ 월간 옥이네
 
"태어나고 자라고, 떠나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옥천이 좋아요. 쫑말이(막내)가 큰형님을 애틋하게 보는 마음처럼요. 그러니 지역의 일이라면 뭐든 관심을 두게 됐지요. 옥천말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지요. 나를 자라게 한 말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 내가 자란 땅에서 나의 조상들이 썼던 말들이 얼마 못 가 소멸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 책을 만들었습니다."

우리 고장의 정서와 전통, 고유 지명이 얼마 지나지 않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옥천말 사전 발간의 계기가 됐다.

"향토말, 방언, 사투리라고도 불리는 지역말은 고장의 멋과 문화 그리고 역사를 담고 있지요. 우리가 지켜야 할 보물입니다. 특히 옥천은 정지용 시인, 류승규 선생 등을 배출한 문학의 보고이자 산실이기도 하지요. 정지용 시인과 류승규 선생은 옥천말로 옥천의 정서와 풍경이 고스란히 담긴 글을 쓰고 남겼습니다. 이런 옥천말을 지키는 것은 곧 우리 한국의 말과 멋을 지키는 일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옥천말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유연하며 서두르지 않고, 단정하며 착함과 평화가 깃든 말. 느림 속에 여유와 무게가 있어 함부로 대할 수 없는 품위가 엿보이는 말. 이것이 바로 그가 생각하는 '정겨운 옥천말'이다. 그는 이처럼 귀하고 아름다운 말들이 사라져버린다면 우리 지역의 어떤 것도 제대로 전승될 수 없을 거라 여겼다. 일제강점기에 잃어버리곤 지금까지도 되찾지 못한 지명(地名)들처럼 말이다.

"본래 제가 태어난 쓰리마을은 '셔흘' 혹은 '서헐리' 등으로 불렸지요. 고구려 말로 셔흘이란 '서울'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지요. 유추하건대 삼국 교통의 요지였던 옥천은 당시 서울(수도)로 가는 길목이었을 테니 근방에서 그리 불렸을 수 있고, 임진왜란 등을 겪으며 억양이 강해진 까닭에 '쓰리'가 된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뿔당굴'이란 재미있는 지명도, 절터(불당)가 있던 마을이라 그리 불렸을 가능성이 있고요. 옥천은 백제와 신라의 경계이기도 했으니 삽짝(사립문), 고샅(좁은 골목), 엉아(형), 나락(쌀), 깨구락지(개구리)와 같은 말들은 백제어의 흔적이 아닐까 생각해 보지요."

고향 안내면 동대리 쓰리마을에 관한 유래가 옥천말에 대한 관심에 불을 댕기는 계기가 됐다. 옥천군 문화관광과 기능직 공무원으로 일하며 옥천군지 편집을 맡기도 했던 그에게 옥천의 옛 지명과 지역말은 보물창고와도 같았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변형되고 사라진 지명을 알아보기 위해 그 어원을 파고들수록 옥천말은 지워진 지역의 역사와 말, 인접 지역과의 교류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사료처럼 느껴졌다.

옥천 고유의 말을 지키고, 기록하고, 계승하기 위한 그의 여정 역시 그의 고향 안내면 동대리 쓰리마을 사람들의 입말을 기억해 내는 것에서 시작됐다. '독은 단지, 닦다는 부시다...'. 옛 기억을 더듬어 지금까지 자주 사용되는 익숙한 말들을 먼저 떠올려 기록했다.

옥천군지와 함께 우리 지역과 인접한 보은군지까지 찾아 뒤적거렸고, 2011년 지역 곳곳을 다니며 듣고 적으며 발굴한 말들을 더해 <옥천신문> 여론광장에 게시한 것이 첫 발걸음이었다. 이후 2017년 7월 <월간옥이네>가 창간하면서 초대 편집장 장재원씨의 제안을 받아 그가 발굴한 옥천말을 소개하게 된 것이 <정겨운 옥천사투리>의 초석이 됐다.

"옥천말 단어 하나를 꼽아 그 유래를 쓰고, 그 아래 50~60개가량의 사투리를 쭉 적어 연재한 게 옥천말 사전을 꿈꾸게 된 시작이었지요. 책을 발간하면서는 뜻을 보완해 적어 넣고, 인터넷이나 국립국어원 방언찾기 시스템을 통해 찾기 어려운 말들에는 적절한 예문도 삽입했습니다. 그렇게 우리 지역 출판사이기도 한 고래실의 손을 거쳐 책이 탄생했습니다. 옥천말이 이어준 의미 있는 인연이라 생각합니다."

올갱이, 도실비, 올뱅이... 한 가지 뜻을 가진 다른 옥천말?

그렇게 <정겨운 옥천사투리>가 발간됐다. 지역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고 편찬한 책이었지만, 어쩐지 안내면 동대리 일대에서 쓰는 그의 모어(母語) 위주로 구성됐다는 점이 아쉬웠다.

"다음 책을 낼 때는 좀 더 다양한 권역의 주민들을 만나 옥천말을 함께 발굴하고 보완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점차 옥천말을 정확히 구사하는 사람이 줄고 있으니 서둘러야 할 필요를 느끼고요. 관심 있는 우리 지역사람들과 함께한다면 다음엔 더욱 풍성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옥천은 예로부터 역(驛)과 참(站)이 존재하는 교통의 중심지이자 인근 지역과 활발히 교류하던 지역이었기에 '당기다-땡기다'처럼 전국적으로 쓰이는 사투리가 사용되고, 장(場)과 금강, 여울 등으로 생활 권역이 나뉘어 같은 옥천말이라도 사용에 다소간의 차이가 있는 것이 특징 중 하나. 안내-안남(동이면 일부), 청산-청성(동이면 일부), 군북, 군서, 옥천-이원 등 각각의 생활권역에 해당하는 발굴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한 것에 아쉬움이 남았다.

"고려 시대까지 거슬러 가면 안내와 안남은 '안읍현'으로 묶여 있었으니 오랫동안 같은 생활권에 있었다고 볼 수 있지요. 군서는 옥천 내부 교통이 발달하기 전까지는 주로 인접 지역인 충남 금산과 교류했을 가능성이 있고, 금산은 전라북도 완주·진안 등과 경계를 마주하고 있으니 그 영향이 있었을 겁니다. 청산과 청성은 영동과 경북 상주와 인접해 또 다른 권역을 형성하고 이원과 옥천은 대체로 비슷한 양상을 보이지요."

이 중에서도 그가 주목하는 지역은 군북면이다. 과거 안내면에 속했던 군북면 막지리는 안내와 비슷한 말을 구사하지만, 강을 끼고 있어 다른 읍·면과 접점이 적은 독자적인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막지리 외에 용호리, 추소리 등이 이러한 특색을 보인다고.

이처럼 말은 강과 장이 형성하는 생활권역에 따라 같은 옥천이라도 과거부터 교류해온 인접 지역과의 역사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 옥천읍에선 주로 올갱이라 부르는 다슬기를 군북면 추소리에서는 도실비, 청성면 등에서는 올뱅이라 부르는 것이 그 일례다.

"군북면 추소리 출신인 류승규 선생의 소설 '아주까리'는 옥천말로 쓰인 대표적인 문학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같은 옥천사람인 제가 읽기에도 모르는 말들이 많이 나와요. 그 생활권, 그 세대에만 쓰였던 표현이나 말이 대부분이기 때문이지요.

그 말들이 모두 제대로 해석되지 않고 사라졌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말을 사라지게 했으며 사라지게 만들까요. 여전히 알쏭달쏭한 말을 보면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개정판을 낼 기회가 있다면 군서·군북의 말들을 함께 발굴해 묶으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정겨운 옥천 사투리> 앞표지
<정겨운 옥천 사투리> 앞표지 ⓒ 월간 옥이네
 
옥천말 보존하기 위해 필요한 것

"지역말을 발굴·보존하기 위해서는 채록해 예문을 만드는 것과 동시에 음성을 함께 남겨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특유의 억양과 높낮이로 표현되는 말맛, 표현법에 따라 미세하게 의미가 달라지기도 하기 때문이지요. 지금 살아계신 지역 어르신이 이 특유의 억양과 말맛을 정확히 구사하고, 우리는 그 말을 채록할 수 있는 마지막 세대인지도 모르기에 옥천말 보존은 하루빨리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이루어져야 하는 과제라 생각합니다."

조도형씨는 입말과 억양을 그대로 들어볼 수 있도록 녹음을 통해 음성을 기록하는 등 직접 듣고 말하고 발음 해보기의 중요성을 동시에 강조한다. 지역 소식지와 잡지·신문 같은 매체를 통해 지역말을 문자로 기록하는 한편, 직접 듣고 소리 내어 발음해보고 문맥에 맞춰 사용할 기회도 장려해야 한다는 것. 또, 행정이 지역의 정서와 말이 담긴 옥천문학 연구를 지원하고, 옥천말 보존의 취지를 가진 도서 출간 지원과 배부, 지역말 콘텐츠 제작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밝혔다.

"지역말 조례가 있는 지역에서는 지역어 사전 제작·출간을 행정에서 주도하기도 하고 경상북도, 강원도 등에서는 매년 지역말 경연 대회를 열기도 하지요. '전라도 사투리 경연 대회'는 지역 방송을 통해 방송되기도 하고요. 이처럼 지역말을 발음하고 문맥에 맞게 사용할 수 있는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조성해야 합니다.

옥천도 매년 각종 축제가 열리는데, 그 시기에 맞춰 옥천말 경연대회를 열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겠지요. 익숙하다 느껴졌던 옥천말이라도 속속들이 알아보고 발음해 본다면 달리 느껴질지 모를 일입니다. 익숙하다고 그냥 넘어가고, 그 귀함을 따져보지 않는다면 영원히 소중함을 모를 일입니다."

조도형씨는 지역말 말하기 대회가 그저 수상을 위한 허울뿐인 행사에 그치거나 일시적인 행사에 지나지 않도록 직접 우리 지역 어르신과 학생·청년·중장년층이 소통, 교류하고 새로운 말을 발굴하기도 하며 상황에 맞는 말을 체득하는 형식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직접 듣고 말하며 대화로 체득한 언어는 우리의 핏줄 속에 새겨진 '지역말'처럼 오래도록 의식 속에서 잊히지 않기 때문이다. 또 그 과정과 대본을 기록집·녹음·촬영 등을 통해 기록하고 보관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조도형씨는 "지역말을 보존하는 것은 자신의 뿌리이자 정서의 버팀목을 심는 일과 다름 없다"며 "'촌티 난다', '촌스럽다'는 말이 억압하는 지역에 대한 애정을 누구나 마음껏 표현하고 말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오길 바란다"고 전했다.

[관련기사]
"제천에 사투리가 어딨시유?" 여기 다 나와 있습니다 http://omn.kr/21hok

월간옥이네 통권 63호(2022년 9월호)
글‧사진 서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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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리#옥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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