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무야!
내 사랑이야
정월 대보름엔 질 나서 보게
기적 울리는 중앙선 열차를 타믄
하마 본전은 껀지구 남았어
눈 쌓인 제천역에 당도허먼
의림지를 찾아와
빙어 축제 망우리는 시름을 감아 돌며
천년 소낭구 읍하고 밴길거여
기맥힌게 또 있어
군불 땐 아랫목 빙어를 청하면
주모 손꾸락엔 투박한 사투리 녹어나
빙어 꼬랑지 겨울이 익어 가는데
그깐여너꺼 옷 좀 버린덜 밸겐가
눈 내리는 대보름
얼음 쩡쩡 우는
의림지 까먹지는 말아 주게나
- 김동원 '빙어'
김동원씨의 시(詩)는 제천의 입말이 그대로 담겨 눈길을 끈다. 그가 성장한 제천의 풍경, 그 속에서 체득한 정서가 독자적인 시 세계를 구축해왔다는 평을 받으며 1996년부터 지금까지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지만, 일각의 평가는 달랐다. "뭐 하러 시에 사투리를 쓰느냐"는 지적부터 "표준어가 아니라 이해가 어렵다", "어딘지 촌스럽게 느껴진다"는 반응도 있던 것.
그는 의아했다. '지역에서 나고 자란 내가 내면에서 우러나는 고유의 말로 시를 쓰는 것이 이토록 흉 보일 일인가'. '내면을 가장 적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말들로 자신의 문학 세계를 이룰 수 없다면 그것이 다 무슨 소용일까' 싶은 마음에서다. 이 생각들은 자연스레 그를 지역말이라는 세계 속으로 끌어들였다.
말은 삶이자 어울림 그 자체이기에 그는 지역의 말을 보존하는 것이 어쩌면 삶을, 지역을 더 잘 보전할 수 있는 일이라 믿었다. 행정구역상의 경계나 지역색은 말이라는 어울림 앞에 실은 큰 의미가 없으며, 기득권을 넘어서는 더 소중한 것이 있음을 알리는 일이라 여겼다. 그가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제천말 지킴이'를 자처해온 이유다.
우리네 삶과 정서, 역사가 빼곡히 담긴 말
"제 아우는 저와 7년 터울이 나는데, 제 시(詩)를 본 아우가 (지역)말을 못 알아듣겠다며 잘 이해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분명 같이 듣고 사용하며 우리를 자라게 한 말들인데, 잊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안타깝고 속상했지요. 순간 지역말을 제대로 보존하지 않으면 이 소중한 말들이 다 사라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저를 조급하게 했습니다."
그렇게 지역말 보존에 의지를 갖고 제천말 발굴을 시작한 것은, 그가 월간 <문학공간>을 통해 등단한 1995년부터다. 이후 사라져가는 말을 듣고 수집하기 위해 제천말이 있는 곳이라면 가보지 않은 곳이 없다. 고서적이 있다는 곳은 물론이고 상엿집과 선소리꾼, 농민의 집과 경로당, 마을에서 가장 후미진 집들을 뻔질나게 넘나들었다.
어르신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엔 "너무나 익숙하게 느껴져 채 받아적지 못한 단어들을 곱씹느라" 시간을 보냈다. 어떨 땐 마냥 익숙했던 말들이 시도 때도 없이 낯설게 느껴졌고, 반드시 기록해야 할 말처럼 느껴졌다.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단어들을 휴지나 손바닥에 적어두거나, 급한 대로 눈에 보이는 박스를 북북 찢어 기록하기도 여러 번. 떠오르지 않는 단어를 기억해내느라 제천역 광장에서 교통사고까지 겪었다는 그다.
그가 지역말 발굴에 고삐를 늦출 수 없었던 이유는 단 하나, 구수한 발음과 뜻을 정확하게 구사하는 사람 대부분이 연로한 탓에 시간이 지날수록 지역말 발굴이 어려워질 것을 몸소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게 쉼 없이 제천말을 찾아 30년을 씨름한 결과 마을 사람들이 평소 사용하는 말부터 선소리꾼과 지관의 말까지 총 4천500여 개의 제천말을 수집할 수 있었다.
"묘 터 다지는 노래며, 모심는 노래, 상여꾼들의 노래와 방아타령... 이 속에는 당시 사람들의 삶이 빼곡합니다. 그 정서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것이 바로 지역말이지요. 우리 지역의 민중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말해주는 귀중한 자료이자 삶 그 자체인 겁니다. 이 말을 보존하지 않으면, 당시 사람들의 정서와 삶은 언젠가 전부 사라져버리고 말겠지요. 그렇게 되면 우리 역사에 무엇이 남을까요. 겨우 그런 것이 우리 모두의 역사라 할 수 있을까 싶었던 거지요."
지역말, 보존을 넘어 보전까지
그는 이 귀한 말들이 좀 더 체계적으로 정리되길 바랐고, 앞으로도 사용될 수 있도록 예문을 곁들인 사전 발간의 꿈을 키웠다. 지역말을 한데 묶어 기록하는 데에도 큰 의미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예문을 함께 수록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겼다. 사전 속 말들이 "이런 단어가 있었다는 것"을 기록하는 역할에만 그친다면, 앞으로 적재적소에 사용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고 어떤 맥락에서 사용하는 말인지 이해가 어려울지 모른다는 우려에서다.
"보존을 넘어 보전까지 나아가기 위해서는 예문이 중요하지요. 저 역시 사전을 제작할 때 예문을 만들고, 말의 제대로 된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 시간과 정성을 들였습니다. 그 결과 4500여 개의 단어 중 1천747개 예문을 담은 <청풍명월 사투리 만세>를 발간할 수 있었지요.
하지만 남은 3천여 단어에 예문을 달고 사전을 다시금 발간해 내는 것은 앞으로 제게 남겨진 숙제라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책을 보고 '예문을 만드는 것이 뭐가 그렇게 어렵느냐'고 말하기도 하지요. 저는 그런 사람이 참 반갑고 귀한 인물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느낀다는 건 우리 지역말을 잘 안다고 자부한다는 뜻이겠지요. 그분들을 모셔서 같이 예문을 달고, 지역말을 묶고 이런 활동을 할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2018년 12월 발간된 <청풍명월 사투리 만세>는 그가 사투리를 채집한 30년의 세월 동안 발품과 입품, 귀동냥으로 얻은 소중한 제천말과 예문 그리고 적재적소에 쓰이고 해석될 수 있는 표준어 해설까지 함께 담아 의미를 더한 사전이다. 숙고해 어렵사리 예문을 달고, 지역 곳곳 사투리를 조사하며 수집한 제천말을 담아 이 사전을 묶으면서 그가 '제천 사투리 사전'이라는 이름이 아닌, '청풍명월 사투리 만세'라고 이름을 붙인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제천은 1개 읍 7개 면 9개 동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하지만 백운면에서 쓰는 말을 같은 제천이라고 해서 의림동에서도 똑같이 사용하지 않는다는 거지요. 그런데 이 말을 '제천 사투리'라고 해버리면 누군가는 다시금 소외를 겪게 되지 않을까 우려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천 사투리라고 제목을 붙이는 것은 일종의 언어도단이라고 생각하게 된 거지요. 따라서 제가 주로 조사를 거친 권역의 사람들이 쓰는 말 즉 '청풍명월 사투리'라 이름을 붙이게 된 것입니다."
이유는 이뿐만이 아니다. 강원도 영월, 경상북도 문경 등과 인접한 제천은 과거 교통이 발달하지 않을 당시 인근 충북 충주·단양, 강원도 영월·정선·평창·횡성 등을 아우르는 생활권에 속해있는 까닭에 말 역시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데, 이에 특정 지역 사투리라 선을 긋는 것 역시 큰 의미가 없다 여겼다. 말이란 어울림이자 삶 그 자체이기에 어느 지역의 소유라 무 자르듯 정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다.
"제천은 경상과 강원의 접경지역이기에 상권이 발달한 지역이기도 했습니다. 전국적인 약초시장이 있어 유동 인구도 많았지요. 말이란 생활 권역을 중심으로 비슷한 양상을 보이니 제천 사투리는 언뜻 들으면 경상도 말 같기도, 강원도의 말 같기도 합니다.
인접 지역의 문화이자 향토까지도 담아낸 것이 바로 지역말이기 때문일 겁니다. 말은 누구나 사용해온 것이고 민초들의 어울림이라는 한 줄기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그것에 특정 지역의 이름을 붙여 누구의 것인지를 따지는 것 역시 경솔한 일이 되지는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했습니다."
표준이라는 획일화, 도시라는 집약에서 벗어나
"지역말을 조사하는 것은 인접 지역과의 교류 과정과 그 문화, 역사까지도 엿보는 것과 다름없지요. 그 말은 지금껏 우리가 익숙하지 않았던 이 땅의 역사를 배우고 익히는 것과도 다름없습니다."
김동원씨는 하나의 지역말 속에는 그 말이 탄생한 필연적인 이유와 역사가 있음을 강조한다. 우리 지역말 하나를 안다는 것은 우리 지역의 역사를 들여다보고, 전국의 말을 들어보는 것과도 다름없다는 것. 우리가 살아가는 지역은 곧 자신의 뿌리이자 정서의 기반이기도 하기에 지역의 언어는 이 땅의 역사와 더불어 자신의 역사를 들여보는 것과도 다르지 않다.
뿐만이 아니다. 지역말 하나가 없어진다는 것은 소중한 우리의 말 하나가, 또 그 말이 탄생한 한 줄기 역사가 사라지는 것과도 같기에 한 단어라도 보전돼야 한다는 것이 김동원씨의 생각이다.
"청풍은 충주댐이 생기면서 수몰의 아픔을 간직한 지역이기도 하지요. 이곳 수몰민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표준어로 기록된 이야기는 어딘지 그때 내 마음 같지 않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아마 '우리의 언어'로 쓰여진 게 아니기 때문일 겁니다. 그 사람의 내면과 슬픔의 맥락에 가장 적확한 입말만이 이들의 아픔과 감정을 정확히 표현할 수 있다는 뜻이겠지요."
표준으로 규정된 가공된 말이 아닌, 정제 없는 감정을 담은 입말만이 한 인간의 내면과 가장 가까운 것은 당연할 터. 지역 사람의 정서와 말을 그대로 기록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김동원씨는 이런 노력에 앞서 지역말을 대하는 인식 개선이 우선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사람이 사용하는 억양이나 말투에 따라 어딘지 어수룩하고 '촌스럽다'는 인상, 고집스럽고 억셀 것이라는 판단. 이런 것 역시 차별의 일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런 시선 때문에 나고 자란 곳의 말을 자유롭게 구사하는 것이 아닌, '세련되다'고 포장된 표준어로 자신의 말을 가공하는 것이겠지요. 지역말 보존은 인식의 개선부터 조금씩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가능해질 때 표준이라는 획일에서 벗어나 개성과 개개인이 존중받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고요."
"지역말, 영원토록 빛날 소중한 자산"
"지역을 다녀보면, 구수한 입말과 그 표현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들은 대체로 80세 이상인 분들이 많지요. 70대만 돼도 억양만이 남아있을 뿐 그 맥락에 맞는 말의 맛과 표현을 완벽하게 구사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지역말 보존은 시급한 문제이고, 제 세대에서 이뤄야 할 소명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가 제천말 보전을 위해 지역말로 쓴 시를 발표하고, 사전을 발간하는 등 지역말 보전에 박차를 가하는 이유다. 이전에 만났던 어르신을 다음에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란 불안감, 그가 남겼던 말의 정확한 의미를 확인하지 못한다면 이대로 '사어(死語)'가 되고 말 것이란 조급함. 이 마음들이 그에게 소명 의식을 부여했다.
하지만 아무리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고 해도 소명의식에 준하는 만큼의 충분한 활동을 하기란 쉽지 않다. 개인 주도로 지역 곳곳을 다니며 지역의 말을 발굴하는 일은 인력과 예산 등 많은 것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개개인이 지역을 찾아다니며 예문을 만들기도 쉽지 않았을뿐더러 책을 발간하려 해도 예산을 지원받는 데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시청의 문을 4년간 두드린 결과 800만 원을 지원받아, 1천 권의 책을 간신히 낼 수 있었지요. 제가 처음 시청을 찾아가 '우리 지역말을 담은 사전을 내려고 하는데, 예산을 지원받을 수 있는 사업이 있느냐'고 물으니, '선생님 제천에 사투리가 어딨시유?' 하고 되묻더군요. 웃지 못할 이야기입니다."
김동원씨는 지역말을 기록하고 보전하기 위해서는 행정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를 기반으로 주민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이끌 수 있도록 연구하고 기록하며, 지역말이 담긴 콘텐츠를 만들어 나갈 필요성이 있다는 것. 그 기반을 닦기 위한 지역말 보전 조례 제정 역시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어느 지역에나 자신이 나고 자란 지역말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꼭 한 명씩은 있을 겁니다. 제천에 제가 있고, 옥천에 조도형 선생님이 있듯이 말입니다. 이런 민간의 노력과 더불어 개인을 지원하려는 지역의 노력도 필요하지요.
저는 지역말에 관심을 가진 지역 주민이 하나의 단체를 이뤄 구술, 채록 등의 발굴 작업을 진행하고 행정이나 지역 대학 주도로 세미나와 발표회 같은 학술 연구가 동시에 이루어지면 좋을 것이란 생각을 합니다. 두 가지가 물 흐르듯 연계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행정의 몫이겠지요."
지역말을 찾아다니며 발굴한 귀중한 사료 역시 지역의 중요한 자산일 터. 하지만 행정에서 이에 쏟는 관심이 크지만은 않다. 이처럼 맥 빠지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1987년 제천말을 지키고 기록하기 위해 시작된 '제천사투리보존회' 역시 지금은 일시적인 휴면기에 들어갔으니, 김동원씨의 속도 바짝 타들어 갈 수밖에.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라 생각하는 거지요. 지역을 도시 비슷하게 만들기 위해 눈에 보이는 세련된 결과를 내려고 노력하지요. 하지만 우리만의 말을 가지고 잘 소통하는 것만으로도 지역에 갖는 애착심을 키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역에서 난 문인의 문학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그 문학성을 인정받는다면, 그 정서를 깊이 공유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이처럼 지역의 말은 소중한 자산이 될 가능성이 무수합니다. 만일 우리 지역의 100년 이후를 생각해본다면, 우리 지역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요. 사람이고, 말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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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옥이네 통권 63호(2022년 9월호)
글‧사진 서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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