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
윤 대통령의 '노무현 팬심'은 유명하다. 그는 대선 후보 시절 SBS <집사부일체>에서 가수 이승철씨의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를 부르며 "노 대통령이 돌아가셨을 때 이 노래를 많이 불렀다"고 말했다. 제주 강정 해군기지를 찾았을 때는 노 대통령을 언급하며 잠시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또 배우자 김건희 여사는 이명수 <서울의소리> 기자와 한 통화에서 "(남편이) 노무현 영화를 보고 혼자 2시간 동안 울었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은 화물연대 총파업 앞에서도 19년 전 같은 일을 겪었던 노 대통령을 호출했다. 그는 지난달 29일 시멘트분야를 대상으로 처음 업무개시명령을 내리며 "법과 원칙을 바로 세우고 불법 파업의 악순환을 끊어 국민들의 부담을 막고자" 한다고 밝혔다. 2003년 5월 6일 "사회 질서를 무너뜨리는 일방적인 불법 집단행동은 용납될 수 없다"고 강경하게 나온 노 대통령과 닮은 기조다. 여권은 '업무개시명령은 노무현이 만들었다'는 논리도 꾸준히 펼치고 있다.
'노무현이 만든 업무개시명령'의 모순
그런데 노무현 정부는 당시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노 대통령 스스로 2003년 6월 2일 청와대에서 언론사 편집국장들을 초청해 점심식사를 하며 "화물연대는 여러 번 파업하겠다고 했는데 정부는 대화 창구를 열지 않았다. 대화 창구가 없어서 열라고 했다"고 인정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후에도 노동계와 갈등이 이어지자 정부는 화물노동자들의 운송 거부에 따른 혼란을 막겠다며 '업무개시명령(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14조)'을 도입했다.
2003년 12월 8일 국회 건설교통위원회 회의에서 서상섭 당시 한나라당 의원은 이 제도가 "부당하게 강제 근로를 강요하는 위헌적 요소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화물연대 집단활동이 아무리 미워서 나라의 물류수송이 마비되었다고 한들 건설교통부가 나서서 전가의 보도 같은 업무개시명령제도를 도입하려는 것은 잘못"이라며 "노동3권 보장이 부정되고 있는 것은 둘째치고, 조그만 생존권적 파업까지 불허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업무개시명령의 개념 자체에도 허점이 있다. 화물노동자는 법률상 노동자가 아니다. 정부 역시 화물연대를 노조로 인정하지 않고, '파업'이 아닌 '집단운송 거부'란 표현을 쓴다. 그러면 노동자가 아닌 이들에게 정부가 강제로 '일하라'는 명령을 내릴 수 있을까? 업무개시명령은 출발부터 모순을 안고 있는 셈이다. 같은 맥락에서, 공정거래위원회까지 나서 화물연대를 사업자 또는 사업자단체로 본다는 전제로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를 살피겠다는 것 또한 앞뒤가 안 맞는다.
서상섭 의원이 지적한 위헌성 문제 역시 그대로다. 대한민국 헌법 33조는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선언했다. 국민의 기본권은 법률로만 제한받되 자유와 권리의 본질은 침해받지 않는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무엇이 불법파업인지 명확히 짚진 않은 채 연일 '노조 때리기'에만 몰두하고 있다. 그가 수시로 말하는 "헌법정신"을 존중하긴커녕 헌법 위에 군림하려는 모습에 가깝다.
노림수는 분명하다. 윤 대통령과 여권은 취임 6개월 만에 곤두박질친 지지율을 만회하는 방법은 '노조 혐오'를 자극, 전통적 지지층 결집을 꾀하는 수밖에 없다는 계산을 끝낸 모양이다. 1일 정진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민주당과 민주노총이 주축이 된 대선 불복 좌파 연합이 국정 혼란을 가중시키면서 체제 전복의 기회만 노리고 있다"고 발언함에 따라 전선은 더욱 선명해졌다. 협치는 필요 없고 진영 대결로 국정을 이끌겠다는 기조 역시 뚜렷해졌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그토록 좋아하는 노무현 대통령은 앞서 언급한 오찬에서 "화물연대 때 강하게 발언했는데 왜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았나(라고들 하는데), 밀어붙이면 엄청난 출혈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03년 5월 9일 문재인 민정수석으로부터 화물연대 파업 현황 보고를 받았을 때도 "각종 갈등현안에 대해 제도적이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며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2년 뒤, 노 대통령은 KBS <참여정부 2년 6개월, 노무현 대통령에게 듣는다>에서도 화물연대 파업 등을 겪으며 '갈등 조정'이 얼마나 어렵고, 얼마나 중요한지를 길게 토로한다.
"우리가 투쟁을 통해서 민주주의를 쟁취해 왔다면 이제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민주주의를 성숙시켜 나가고 또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우리 사회를 통합시켜 나가야 이제 그야말로 성공할 수 있는 것 아니냐, 그리해야 되는 것 아니냐. 지금 그래서 저도 대통령 후보로서 공약할 때 이 점을 매우 중요하게 내세웠습니다. 실제로 저와 제 참모들이 여러 가지 공약을 내세웠지만 핵심공약은 '개혁, 통합' 이 두 가지였습니다. 개혁, 통합 이 두 가지였는데 개혁 부분은 잘된 것, 못된 것 있지만 상당 부분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통합의 부분에 있어서 한 발짝도 앞으로 가지 못했습니다. 정치의 영역에서만 그런 것도 아니고 노사영역에서만 안 된 것도 아니고 우리 사회 다른 부분 갈등에 있어서도, 말하자면 '지금 뚜렷한 어떤 사회적 대안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 아니냐, 사회적 합의를 가지고 있지 못한 것 아니냐.' 정치에 있어서의 갈등구조, 노사에 있어서의 갈등구조는 그것 자체만이라면 큰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이 다른 제 영역에 있어서의 갈등구조를 더 깊게 하고 해결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에 그래서 문제제기를 한 것입니다. 기본적으로는 갈등문제입니다.
제가 갈등문제에 대해서 얼마만큼 절박했겠느냐, 한번 짐작을 한번 해 봐주시기 바랍니다. 2003년 2월달에 천성산 터널중단요구 단식이 시작됐습니다. 바로 제가 당선자 시절에 시작됐고 역시 그해 3월에 전교조 나이스(NEIS) 문제로 전교조와 정부가 갈등, 부닥쳤고, 역시 3월달에 환경단체가 새만금 중단을 요구하면서 3보1배를 시작했습니다. 그 다음에 2003년 5월달에 화물연대가 파업을 했습니다. 그때까지 지금도 그렇지만 화물연대는 노동조합이 아닙니다. 노동조합이 아니지만 갈등을 풀지 않고 그냥 두고 있으니까 터져버린 것입니다.
6월달에는 철도파업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7월달에 원전수거물 폐기물 하는 관리센터 부안 사건이 터졌습니다. 사실 이 중에서 천성산, 사패산 사건도 있고, 사실 사패산 사건에는 나도 원인을 제공한 측면이 있어서 미안하긴 하지만 어떻든 부안 방폐장은 17년 동안 미루어온 정책과제라서 더 미루어 둘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한번 해결해 본다고 덤벼들었던 것이 조금 성급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런 문제들에 부닥치면서 쭉 하나하나 대강 잠은 재웠지만 구조적으로 이런 문제에 또 부닥쳤을 때 우리 사회가 대처할 역량을 가지고 있느냐, 솔직히 말씀드려서 아직 아닙니다."
19년 전 그가 남긴 것
그로부터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한국 사회의 갈등 조정 역량은 여전히, 매우 부족하다. 어쩌면 더 나빠졌을지도 모른다. 전경련이 지난해 OECD 30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우리의 '갈등지수'는 3위인 반면, 정부의 갈등관리 능력을 나타내는 '갈등관리지수'는 27위로 극과 극이었다. 데이터 집계 문제로 산출 근거가 2016년 자료였음을 감안하면, 2022년 12월 현재 두 수치 모두 나아졌을 가능성은 만무하다.
더는 법치만 목놓아 외칠 때가 아니다. 윤 대통령은 스스로 "그런 사람 또 없다"던 노무현 대통령이 남긴 진짜 숙제를 고민해야 한다. 갈등을 조정하고 대화와 타협으로 함께 한 발짝 나아가는 정치 말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어떤 불법에도 타협하지 않고 노사 법치주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12월1일 이재명 부대변인)"는 말만 반복하는 대통령실을 보면, 윤 대통령의 '팬심'이 무엇인지 도통 감을 못 잡겠다. 그가 좋아하는 노무현은 어떤 노무현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