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기자들이 취재 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
카타르 월드컵 경기 중계를 지켜본 지인들은 두 번 놀랐다고 말한다. 하나는 향상된 한국 대표선수들의 활약상. 또 하나는 수만 명이 몰린 경기장 관중석에서 침을 튀기며 응원하는데도 마스크를 낀 사람은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집 밖을 나설 때마다, 장소를 이동할 때마다 제일 먼저 마스크부터 찾는 한국인으로서는 당연한 반응이다.
때맞춰 대전시가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를 해제하겠다고 밝혔다. 전국 지자체 가운데 첫 선언이다.
대전의 코로나19 발생률이 다른 지역에 비해 현저히 낮은 건 아니다. 5일 현재 질병관리청 집계자료를 보면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 중 13번째다. 평균보다는 낮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의미 있는 통계는 아니다. 대전보다 높은 강원, 충북, 전남, 전북을 비롯해 대전보다 발생자가 적은 광주 등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날 대전은 전날에 비해 감소하기는 했지만, 인근 충북(747명)보다 많은 774명의 신규 코로나19 감염자가 나왔다.
대전시는 마스크 해제가 필요한 이유 중 하나로 실효성이 없다는 점을 꼽았다. 식당과 카페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실내 공간에서 대부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장우 대전시장은 10월 확대간부회의에서 "실내에서 의무적으로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는데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실내 마스크 착용은 개인 자율에 맡기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또한 아동의 언어 발달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고 주장했다. 올 하반기 서울시와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가 서울시 어린이집에 다니는 0세부터 5세까지 영유아 454명을 대상으로 '언어 인지 발달 문제'를 조사한 결과 인지발달, 언어발달 평가에서 각각 약 25%, 35%에 해당하는 어린이가 위험군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대전시는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화가 해제된 외국 국가가 많다는 점'을 내세웠다. 특히 지난 10월 10~14일 세계지방정부연합(UCLG) 총회를 개최한 경험이 해제 건의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 행사엔 전 세계 144개국, 546개 도시에서 6000명 이상이 참석했는데 외국 참가자의 경우 실내에서도 마스크 착용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런데도 우려했던 코로나19 대확산은 없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자영업자 비율 역시 대전시의 마스크 해제 결심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대전시의 2020년 기준 사업체 수는 16만4406개다. 이 중 1인 사업체인 자영업체 수는 10만389개로 전체의 61.1%를 차지했다. 여기에 2~4인 사업체(4만 2443개, 25.8%)를 포함할 경우 5인 미만 사업체가 86.9%에 달한다. 자영업자 중에는 카페, 식당 등 숙박음식점업과 도소매업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역 안에서는 시가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마스크 해제를 건의한 것을 '이유 있는 행정'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존재한다. 마스크 해제 시점과 관련해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질병관리청도 지난 2일 설명자료를 통해 "겨울철 유행 상황을 지속 모니터링하면서 공개토론회, 자문위원회 논의 등을 거쳐 실내 마스크 의무 완화 시기 등을 구체화할 계획"이라며 "단일 방역망 가동이 중요한 만큼 대전시와 긴밀히 협의해나가겠다"라고 논의 필요성을 인정한 바 있다.
'마스크 정치' 아닌 '마스크 행정' 필요
그러나 이장우 시장이 '이달 15일까지 중앙정부가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화를 해제하지 않으면 내년 1월부터 행정명령으로 자율결정하도록 하겠다'고 밝힌 점은 '마스크 정치'라 할 만하다. 논의 과정 없이 당장 해제하기엔 이르다는 근거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특히 위중증 환자도 여전히 수백 명대를 유지하고 있고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도 매일 수십 명이 보고되고 있다. 충분한 논의 과정 없이 갑자기 시한을 못 박아 행정명령을 발동하겠다는 것을 두고 일각에서 '여론을 의식한 정치' 아니냐고 지적하는 이유다.
실제로 이장우 시장은 최근 코드인사 의혹 등 시정과 관련해 각종 논란과 몸살을 앓고 있어 돌파구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2006년 대전 동구청장(당시 한나라당), 2016년 대전 동구 국회의원(당시 새누리당)을 지낸 그는 박근혜 대통령 시절 '친박 호위무사'를 자처하며 '막말 정치인'으로 구설에 올라 지역시민단체로부터 '최악의 정치인'으로 뽑히기도 했다. 이후 총선에서 낙선했지만 올해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 선거대책본부 부본부장을 맡은 뒤 6.1지방선거에서 대전시장에 당선됐다.
정기석 코로나19 특별대응단장 겸 국가 감염병 위기대응 자문위원장의 의견 역시 경청할 만하다. 그는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실내 마스크 착용을 해제했을 때 억울한 죽음과 고생을 하게 되는 고위험 계층을 책임져야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신중하게 접근하는 게 옳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같은 날 김태흠 충남도지사는 대전시장의 흐름에 가세했다. 그는 "마스크 의무 착용 해제 문제를 우리 도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검토해 달라"며 "중앙정부가 이 부분을 적극 검토 안 할 시에는 지방정부 차원에서 하겠다는 내용도 검토해 달라"고 말했다.
물론 감염병 예방과 관련 마스크 착용 또는 해제 권한은 시·도지사에게 있다. 대다수 시민도 하루 일찍 마스크에서 해방되기를 원한다.
그렇더라도 마스크 해제 여부를 축구 시합하듯 앞다퉈 결정할 일은 아니다. 마스크 정치가 아닌 마스크 행정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