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기자들이 취재 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 법률사무소 김앤장 변호사들이 참석했다는 이른바 '청담동 술자리 의혹'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관련 의혹이 제기된 뒤 줄곧 침묵하고 있던 '목격자' 첼리스트가 경찰조사에서 "전 남자친구를 속이려고 거짓말을 했다"라고 진술했다는 내용이 11월 24일 언론을 통해 일제히 전해졌기 때문이다.
언론 보도 직후 처음 의혹을 제기했던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진술이 사실이라면 윤석열 대통령 등 관련된 분들에게 심심한 유감을 표한다"라고 고개를 숙였다. 윤 대통령은 다음날(11월 25일) 여당 지도부와의 만찬회동에서 이례적으로 "(청담동 술자리에서 불렀다는) '동백아가씨'는 내가 모르는 노래다"라며 "가짜뉴스니까 걱정하지 말라"라고 관련 의혹을 거듭 일축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도어스테핑(출근길 문답)을 준비하려면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조간신문을 다 봐야 하는데 무슨 새벽 3시까지 술을 마시겠나?"라고도 했다. 특히 한동훈 장관을 적극 옹호하는 발언도 잊지 않았다.
"한동훈(법무부 장관) 그 친구와 평생을 같이 지내봤지만, 알코올 분해효소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술을) 전혀 못 마시고 저녁식사에서 반주 할 때도 옆에서 구경만 하고 있다가 2차 맥주 (마시러) 간다고 하면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더라. 그런데 그런 친구가 무슨 술자리에 간다는 게 말이 되나?"
하지만 여전히 의문점은 남는다. 첼리스트가 전 남자친구에게 '거짓말'을 한 이유나 배경이 충분히 설득력있게 제시되지 않았고, <오마이뉴스>의 취재 결과 첼리스트가 전 남자친구 외에도 최소 지인 2명에게 관련 의혹을 얘기했기 때문이다.
첼리스트 '오빠'라고 밝힌 사람 "함구하겠다"
김의겸 의원과 시민언론을 표방한 <더탐사>가 지난 10월 24일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처음 제기했을 때만 해도 기자는 '반신반의(半信半疑)'했다. 먼저 왜 반신(半信)했냐 하면, 윤석열 대통령이 원래 술을 좋아하고, 대통령에 취임한 직후에도 만취한 듯한 사진까지 공개됐고, 청담동 술자리 의혹이 있었던 날로 지목된 7월 20일 새벽 이후 이날 예정된 여성가족부 업무보고가 갑자기 취소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반의(半疑)'했냐, 술자리에 30명 김앤장 변호사들이 참석했다는 증언이 상당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기자는 청담동 술자리 의혹은 사실 여부를 꼭 확인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판단했다. 사실이라면 '중대한 문제'를 함축하고 있다고 판단해서다. '대통령-법무부 장관'이라는 공적 권력의 중심축과 '법조계의 삼성'이라고 불리우는 거대로펌 김앤장 변호사의 만남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특히 김앤장은 한국 정부에 대항해 '먹튀 논란'의 론스타를 변론하고 있고,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사건에서도 일본측(신일철주금, 미쯔비시중공업)을 대리하고 있어서 더욱 그렇다.
기자는 청담동 술자리 의혹이 처음 제기된 다음날부터 의혹의 사실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취재에 나섰다. 먼저 지난 10월 25일 목격자이자 증언자인 첼리스트의 핸드폰 번호를 입수해 그와의 전화통화를 시도했다. <더탐사>가 보도한 첼리스트와 전 남자친구의 전화통화 내용이 상당히 구체적이긴 했지만, 목격자이자 증언자인 첼리스트 본인에게 직접 청담동 술자리 사실여부를 다시 확인하고, 좀더 자세한 설명을 듣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첼리스트에게 전화했더니 자신을 첼리스트 '오빠'라고 밝힌 사람이 대신 전화를 받았다. 그 '오빠'라는 사람은 <더탐사>에서 보도한 첼리스트와 전 남자친구의 전화통화 녹음 자체에 대해서는 "녹취된 것은 맞다"라고 인정했다. 다만 청담동 술자리 사실여부에 대해서는 "함구하겠다"라고 말했다. (
관련기사 : "윤석열-한동훈-김앤장 술자리 증언, 녹취된 건 맞다" http://omn.kr/21bzg) 청담동 술자리가 사실이지만 지금은 말하기 어렵다는 것인지, 사실여부를 영원히 묻고 가겠다는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묘한 답변이었다.
다만 청담동 술자리가 있었던 새벽에 첼리스트와 전 남자친구가 술자리와 관련한 내용으로 통화했고, 그것이 녹음된 것 자체를 첼리스트쪽이 인정했다는 것은 작은 성과였다. 하지만 첼리스트 본인이 아니라 '오빠'라고 밝힌 사람한테서 얻은 진술이라는 점에서 '사실'(fact)로서는 불완전했다.
최초 제보자 "거짓말을 할 동기와 목적 없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같은 날(10월 25일) 청담동 술자리 최초 제보자인 첼리스트의 전 남자친구와 연락이 닿았다. 이날 늦은 저녁에 1시간 30분이 넘도록 전화인터뷰를 진행했다. 하지만 인터뷰가 끝나고 난 다음날 그는 "지금은 어떤 기사도 원하지 않는다"라며 자신의 인터뷰를 보도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결국 그의 인터뷰는 보도되지 않았다. 다만 '청담동 술자리를 언론에 제보하게 된 동기가 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답변한 내용은 공익과 관련된 내용이라고 판단해 그 일부를 공개한다.
"7월 20일 (그 얘기를 여자친구한테) 듣고 나서 정말 충격적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게 믿겨지지 않아서다. 이것이 사실인지 체크하고 싶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거 아닌가? 여자친구가 거짓말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더탐사> 등에) 제보하게 됐다."
'전 여자친구가 꾸며서 얘기했을 가능성은 없나?'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전혀 아니다, 말도 안되는 얘기다. 거짓말을 하려면 동기와 목적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없다"라고 거짓말 가능성을 일축했다.
기자가 첼리스트의 '오빠'라고 밝힌 사람, '최초 제보자'인 전 남자친구를 접촉하며 취재하는 동안 흥미로운 '제보'가 들어왔다. 지난 10월 29일 기자도 잘 아는 프리랜서이자 작가인 E씨가 "지난 3~4월 트위터를 통해 첼리스트를 알게 됐고, 9월 말에 그 첼리스트로부터 <더탐사>가 보도한 녹취록과 거의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라고 알려온 것이다.
그를 설득해 11월 2일 공식 인터뷰를 진행했고, 그는 지난 9월 21일 첼리스트로부터 직접 들었다는 얘기를 이렇게 전했다.
"축제나 행사 등 일을 많이 소개해주는 대표(이세창 전 한국자유총연맹 총재 권한대행)가 한 명 있다. 윤석열이 당선되고 그분이 일을 많이 소개해줬고, 당선 덕택인지 그런 일들이 더 많아졌다. 그리고 최근에 돈도 많이 벌었다. 그 대표가 소개한 그런 자리들을 많이 갔는데 어떤 자리에는 윤석열 대통령도 왔다.' 그래서 제가 '직접 보니까 어때?'라고 묻기도 했다. 제가 '내가 글 쓰는 사람이잖아. 이거 단독 기사감인데?'라는 얘기까지 했다. 그랬더니 '오빠 진짜라니까'라고 했다.."
기자가 '첼리스트가 분명히 윤석열 대통령이 술자리에 와서 봤다고 얘기했나?'라고 캐묻자 "자기가 연주한 자리에 윤 대통령이 와서 봤고, 늦게까지 있었다고 했다"라고 답변했다. 다만 한동훈 장관의 참석 여부에 대해서는 "그때는 한동훈 장관 얘기는 안 물어봤고, (첼리스트가 한 장관을 언급한 것은) 특별히 기억은 없다"라고 전했다. "한동훈 장관 얘기만 없었고 녹취록과 거의 비슷했다"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
관련기사 : "나도 '윤 대통령 술자리' 이야기 들었다" http://omn.kr/21gbc)
이렇게 청담동 술자리 의혹의 개연성이 점차 커지면서 첼리스트를 직접 만나 사실여부를 확인해야 할 필요성도 커졌다. 이를 위해 기자는 첼리스트에게 수차례 전화하고 문자를 보냈지만 그는 끝내 응답하지 않았다.
그 사이 핵심 목격자인 첼리스트 활동과 사생활 등을 공격하는 보도들이 <조선일보>와 우파 유튜브를 통해 집중적으로 흘러나왔다.
그런 가운데 11월 23일 첼리스트가 경찰에 출석해 "전 남자친구를 속이려고 거짓말을 했다"라고 진술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첼리스트가 경찰조사를 받은 다음날(24일) <조선일보>의 '경찰발' 단독기사를 통해서였다. <조선일보>는 이러한 첼리스트의 경찰 진술을 보도하면서 "경찰은 첼리스트가 전 남자친구에게 말한 내용이 거짓이라고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첼리스트가 전 남자친구에게 거짓말을 한 이유는 설득력있게 제시되지는 않았다. 다만 첼리스트의 변호사(박경수 법무법인 지름길 변호사)가 보도 직후 언론들과 한 인터뷰에서 그 이유를 추정해볼 뿐이다.
"A씨(첼리스트)와 B씨(전 남자친구)는 2021년 6월경부터 2022년 7월 말경까지 함께 지내며 연인관계를 유지했었다. 7월 19일 B씨의 귀가가 늦어지자 B씨가 A씨를 추궁했고, 새벽 3시 경 귀갓길에 A씨가 B씨와 통화하면서 둘러대는 과정에 사실이 아닌 내용을 이야기한 것이다. A씨는 첼로 공연을 하는 사람이라 귀가가 늦는 경우가 잦았는데, B씨가 평소 A씨의 귀가가 늦을 때마다 의심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대통령이 온 술자리라고 하면 B씨가 더 이상 의심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변명하는 과정에서 진실 아닌 내용을 이야기했다고 한다."(11월 24일, <미디어스> 인터뷰 중 일부)
"B씨가 교제 당시 A씨에게 욕설을 자주 했고, A씨를 밀치는 등 폭행해 경찰이 출동하는 일도 있었다. 사건 당일에도 B씨가 A씨에게 새벽 3시까지 귀가하지 않는 이유를 추궁하자 A씨가 상황을 모면하려 거짓말을 한 것이다."(11월 24일, <조선일보>와의 전화통화 중 일부)
청담동 술자리 당일 전 남자친구가 귀가하지 않는 이유를 추궁하자 그것을 모면하기 위해서 첼리스트가 '윤석열-한동훈-김앤장 변호사가 참석한 술자리'를 꾸며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마이뉴스>의 취재 결과, 첼리스트는 전 남자친구 외
에 최소한 2명의 지인에게 청담동 술자리를 얘기했다. 한 명은 이미 앞서 언급한 인사이고, 다른 한 명은 C체육회 골프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D씨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첼리스트와 전 남자친구의 또다른 전화통화 녹음파일에 따르면, 첼리스트는 전 남자친구에게 "D에게 '윤석열 대통령을 만났다'고 다 얘기했다"라고 말했다. (D씨는 실제 C체육회 골프협회 회장이 맞다. 기자가 C체육회를 통해 D씨와의 전화통화를 요청했지만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전 남자친구를 속이려고 거짓말을 했다면 굳이 지인 2명에게까지 대통령 술자리를 언급할 필요가 있었을까?
동석자 이세창 "청담동에 없었다"→"밤 10시께까지만 있었다"
또한 청담동 술자리를 주선했다는 이세창 전 한국자유총연맹 총재 대행(국가미래전략연구원 상임대표)의 '알리바이'도 논란거리다. <더탐사>와 전화인터뷰에서 청담동 술자리를 인정했던 이 전 대행은 관련 의혹이 제기된 직후인 지난 10월 25일 기자회견에 나서 첼리스트의 증언을 "술 취한 여성의 술주정"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한 바 있다.
이후 이 전 대행은 경찰조사에서 술자리 당일 청담동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그는 자신의 휴대전화 위치기록을 경찰에 제출했고, 경찰도 법원을 통한 통신기록 확보 등을 통해 그의 휴대전화 신호가 서울 영등포와 강서 일대에서 포착된 것으로 파악했다고 언론들은 보도했다. 그는 11월 11일 <조선닷컴>과의 전화통화에서 "마지막 통화장소는 강서구 등촌동이었는데 지인들과 모임이 있었다"라며 술자리 당일 자신은 청담동에 없었음을 거듭 강조했다.
그런데 11월 13일자 <국민일보>는 "다만 그 무렵 이 전 대행이 청담동 주점을 방문한 사실 자체는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며 "이 전 대행은 지인들과 식사를 하던 중 한 지인이 평소 알고 지내던 밴드 마스터 소개로 청담동 주점을 찾았다, 이 자리에서 첼리스트가 연주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라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도 지난 11월 21일 경찰의 위치정보 분석 결과를 전하면서 "이씨(이세창) 일행은 7월 19일 오후 10시 무렵 해당 주점(청담동)을 빠져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라고 보도했다. 첼리스트의 변호사도 지난 11월 24일 <조선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사건 당일 실제 A씨(첼리스트)가 청담동 주점 자리에 참석한 것은 맞다"라고 했다.
그날 '청담동 술자리'가 있었던 만큼은 사실로 확인된 셈이다. 다만 이 전 대행과 첼리스트 등이 7월 19일 '오후 10시께' 청담동 술집을 나왔기 때문에 다음날(7월 20일) 새벽 3시께까지 있었다는 청담동 술자리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경찰과 일부 언론들의 결론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왜 이 전 대행은 애초 그날 청담동에 자신이 없었다고 주장해왔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이와 함께 이 전 대행은 지난 10월 25일 기자회견에서 "김앤장 변호사처럼 비싼 변호사들은 알지도 못한다"라고 주장했는데 이러한 주장과는 다른 보도내용이 나왔다. <조선일보>는 지난 11월 24일 첼리스트 변호사와의 전화통화 내용을 전하면서 "(청담동 술집에는) 이 전 총재가 '김앤장 출신 변호사'라고 소개한 지인 등 7~8명만 참석했고"라고 전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난 11월 초께 첼리스트와 친분을 유지하고 있던 지인이 카톡을 통해 "경찰이 나서서 이세창이나 그 윗선이랑 말을 맞추는 것 같다"라고 지적하자 첼리스트는 "당연히 이미 그러지 않았을까?'라고 답한 점도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대화 과정에서 "뭔가 미궁 속으로 내가 빠지는 것 같다"라고도 했다. 특히 지인이 "시작은 타의에 의한 것이었어도 빠져나오는 방법은 직접 나서는 수밖에 없다"라는 취지로 문자를 보내자 "너무나 귀찮지만 싸워야겠지"라고 답했다.
이랬던 첼리스트가 며칠 만에 "남친을 속이려고 거짓말을 했다"라고 돌아선 이유는 정말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