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기자들이 취재 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
윤석열 대통령이 내세우는 국정 철학은 '법치'다. 지난 2020년 검찰총장직을 사퇴하면서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고 일갈했던 그는 대통령 선거 과정과 집권 이후에도 수시로 법치를 내세운 통치를 강조하고 있다. 20년 넘게 법집행기관인 검찰에 있다가 정치인이 된 윤 대통령에게 법치는 국정철학으로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인지 모른다.
그런데 최근 윤 대통령은 '법치'를 비판 언론들을 겨냥한 칼로 쓰고 있다. 윤 대통령은 뉴욕 순방 중 벌어진 비속어 사용 논란을 보도한 MBC에 대해 전용기 탑승을 배제하면서 "헌법 수호를 위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또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취재하던 <더탐사>를 향해선 "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어떤 고통이 따르는지 보여줘야 한다"고 직격했다. 비판 언론을 향한 비장한 결기마저 느껴지는 말이다.
법치로 비판 막겠다는 대통령
법치를 앞세워 비판 언론의 입을 막겠다는 윤 대통령의 생각은 사실 법치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일이다. '법에 의한 지배', 법치는 비판 언론을 구속하면서 작동되는 원리가 아니다. 독일의 저명한 법철학자인 아르투어 카우프만이 쓴 '조그만 동전의 저항권'이란 제목의 논문은 '법치국가'는 언제든지 '불법국가'로 타락할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카우프만은 "불법국가로의 타락 위험으로부터 벗어난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하면서 "법치국가를 사람들이 따라야 할, 도달된 목표로 보기 시작하면 타락은 이미 시작된다"고 했다. 이에 따르면 권력자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내세우는 '법치'는 타락의 시작으로 볼 수 있다.
카우프만은 그러면서 '불법국가로의 타락'을 예방하기 위해 '조그만 동전의 저항권'을 제시한다. '조그만 동전'이라는 말은 시민들이 권력자들에 '동전'을 던지듯 견제하는 것을 비유한 용어다. 국가 권력에 대한 시민의 지속적인 저항과 비판이, 권력을 견제해 법치국가를 유지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조그만 동전의 저항권은 힘을 가진 자에 대해 공적 비판을 할 수 있는 용기, 폐단의 폭로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고 정의했다.
언론의 공적 책무인 권력 비판 역시 이 '조그만 동전'에 포함되는 요소다. 카우프만은 시민들의 저항권이 "책임 있는 자들이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철저하게 숙고하고, 그것을 세심하게 정당화하도록 강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카우프만은 이러한 시민 저항권이 법치국가의 필수적인 요소임을 거듭해 강조한다. 저항권은 법치국가의 확립을 위해 "절대 포기될 수 없다"고 하면서 말이다.
"저항은 법과 법치국가가 지속적인 쇄신을 위해, 그럼으로써 자신의 타락을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운동력이다. (...중략...) 저항권은 민주주의 법치국가에서 포기될 수 없다는 것은 아무리 과대평가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같은 법치국가의 원리는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영국 정치가 존 에머리치 액튼의 명제에 대한 해답을 제공한다. 그런데 법치를 주장하는 대통령, 그리고 정부·여당은 '조그만 동전'조차 허용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대통령 비속어 보도를 했다는 이유로 대통령실은 MBC를 전용기 탑승에서 배제했고, 국민의힘 시의원은 MBC를 경찰에 고발하기까지 했다.
고발 당사자가 된 법무부 장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자신을 취재하던 <더탐사> 기자들을 '스토킹범'으로 규정했고, 경찰의 전방위적 수사가 이어지고 있다. 거대 권력자들이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 특정 언론들을 거세게 몰아붙이고 있다. 비판에 대한 전면 거부 선언이다. 국민의 대표자인 대통령이 공적인 자리에서 특정 언론사를 향해 적대적 언사를 쏟아내고, 법무부 장관이 고발 당사자가 돼 국민들을 압박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태도인지도 의문이다.
게다가 MBC 기자와 대통령실 비서관과의 설전 이후 대통령은 출근길 문답을 전면 중단하고 기자들의 질문을 받지 않고 있다. 비판을 틀어막고 기자들의 질문도 받지 않는 '불통' 대통령이 어떻게 법치를 실현할 수 있을까. '저항권', '민주주의'가 없는 법치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저항권의 필요를 강조했던 카우프만의 논문은 아래와 같은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단지 복종과 저항의 긴장 속에서만 자유는 구체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