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술에 있어 부족한 분야를 이야기 하자면 양조장들에 대한 전국적인 통계이다. 통계는 사회집단이나 현상에 대한 조사를 통해 사회적 현상이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과학적 결과물이며, 이를 통해 문제점을 인식, 분석, 대응 방안을 도출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이러한 양조장 통계 자료의 부족으로 우리 술 정책 수립을 할 때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몇 년전부터 '주류시장 트렌드 보고서'라는 자료가 나오지만 양조장에 대한 통계보다는 현재 주류 시장만을 다루기에 한계가 있다. 오히려 아날로그 형태로 조사된 1900년대 초 조선의 양조장 통계에서 더 많은 자료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근현대 술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참고하는 책 중 '조선주조사'가 있다. 1907년부터 1935년까지 일제시대에 작성된 우리나라 주류업에 관한 통계 기록이다. 조선 술 전반에 대한 공식 통계 기록인데, 일제가 이 자료를 수집한 이유는 조선의 양조업 현황을 확인한 후 세금(주세)을 걷기 위해서다.
이 책에는 조선말 술의 종류와 제조법, 생산과 수급, 주류의 거래, 주조업의 개선에 대한 시설, 주조법의 변천 등 다양한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기술해서 근현대 우리 술 역사 연구에 도움이 된다.
이 책에의 마지막에는 재미있는 글들이 있다. '주조의 장래에 관한 명사의 의견'이라는 부분이다. 조선 주조의 발전에 대한 자료를 얻기 위해 여러 명사에게 주조에 대한 의견을 기술해 달라고 한 칼럼 형태의 글들을 모은 부분이다.
28명의 다양한 지위에 있는 명사들 중에는 지금의 도지사에 해당하는 사람이나 세무서국장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들이 보는 조선술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기에 그 당시 조선술에 대한 평가를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상당 부분의 내용은 조선술이 위생이나 품질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일본의 주조 교육이나 관리에 의해 품질이 좋아졌다는 의견들을 많이 제시하고 있다. 반면 술의 원료에 있어 쌀의 중요성 및 조선 쌀의 우수성도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이야기 외에 몇몇은 조선술에 대한 다양한 문제점, 의견 및 발전을 이야기했고 그중에 몇 가지 내용을 살펴보려 한다.
'세계적인 '물건'을 원하다(조선총독부 상공과장, 堂本貞一, 도모토 사다카즈)
(중량) 조선의 것으로서는 탁주가 있고 약주가 있다. 약주의 상품은 청주(사케)를 앞서고 과실주를 초월하기에 이르렀다.(중략)
'주조의 장래에 관한 의견(충청남도지사, 이범익)'
(중략) 조선주의 양조방법이 지나치게 일본주를 모방하기 때문에 조선주의 독특한 향기롭고 맛 좋은 술을 잃어가는 것과 (중략)
'주조의 장래에 관하여(경상북도지사, 岡崎哲郎)
(중략) 농민은 오늘날 '술' 맛은 변해 있고 즐거움이 없어졌다고 한다. 조선주도 통제되어 기업화하기 위해 지방의 특색이나 양조가에 비밀리 전해 내려오는 방법이 없어져 버렸다.(중략)
'주조의 장래에 대하여(전라북도지사, 고원훈)
(중략) 통제지도의 필연적 결과로서 종래의 지방에 있어 각각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는 '술'이 동일 향미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은 일면 심히 쓸쓸한 기분이 든다. 장래 이들의 점도 연구하여 개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중략)
조선총독부 상공과장인 도모토 사다카즈는 조선의 약주가 청주를 앞서고 과실주보다 품질이나 맛이 좋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뒤의 중략된 부분의 내용에는 그래도 아직 세계는 물론이고 동양에 자랑할 만한 제품이 나오지 못하고 있기에 더욱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하고 있다.
각 지역 도지사들의 이야기는 비슷한 부분이 많다. 원래 조선주는 독특한 향과 맛을 가지고 있는데 일본주를 모방하거나 통제되어서 각 지역의 특색 있는 술들이 없어지고 있는 것을 아쉬워 하는 내용들이다. 아마도 이것은 지역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으로서 지역 양조장의 이야기를 대변하거나 평소 지역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쓴 것이라 생각된다.
이 당시를 보면 세금 확보를 위해 조선주의 품질을 높이는 방법으로 각 지역 재무국 소속 기술관을 통해 술 제조 지도를 지속적으로 해왔다. 또한 주류 시험실에서도 기술관을 파견하여 전국을 순회하면서 주조에 관한 사항을 기술지도하였다.
이러한 기술관들은 대량으로 생산시 안전하게 만드는 방법과 함께 지역의 특징을 반영하기보다는 중앙의 제조법을 교육시켰기에 전국의 술맛들에 대한 평준화가 시작되었다.
또한 전국에 있는 양조장 중 상당수를 관리가 어렵다는 명분으로 지역적으로 통폐합(집약정리)을 하고 있던 시기여서 지역의 작은 양조장에서 특색 있게 만들던 술들도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이러한 일련의 일들로 인해 아마도 지자체를 관리하는 지사들은 지역 술들의 획일화에 대해서 걱정을 하지 않았나 싶다.
조선에서 걱정한 술에 대한 획일화는 과거의 일이기도 하지만 지금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다. 물론 최근들어 다양한 부원료들을 사용해서 과거에 마셔보지 못한 술들이 만들어지고 그러한 술들을 젊은 층이 좋아하거나 새로운 술로써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고 있는건 사실이다.
그래도 전반적인 술 제조의 흐름에서는 최근 만들어지는 술들을 보면 과거에 비해서 원료의 단순화, 균주의 단일화, 발효 방법의 통일화 등으로 맛과 향에서 상당 부분 비슷한 부분들이 많아지고 있다. 아마도 1930년대의 술의 맛과 향보다 지금은 더 단순화되어 다양성이 더 적을지도 모를 것이다.
술은 대량생산을 통한 일반 소비자의 대중성도 중요하지만 그와 못지않게 지역의 술들에 있어서는 맛과 향의 다양화도 중요하다. 지역의 다양한 원료를 사용하고 균주 역시 그 지역의 특색을 나타내는 균주(누룩, 효모)를 사용함으로써 술들 자체의 차별화 및 다양화를 이끌어 내야 한다. 다양한 제품을 통해 소비자의 선택 폭을 넓힐 수 있기에 모든 술들의 발전을 이끌 수 있다.
현재 우리 전통주들이 가는 방향이나 미래에 대한 걱정이 조선술의 장래에 대한 걱정을 했던 당시 명사들이 지적한 동일한 길을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말이 있다.
옛 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서 새 것을 안다는 뜻의 고사성어이다. 과거 조선의 술들을 걱정했던 명사들의 말을 다시금 새겨 들어서 현재의 우리 술들의 다양성을 넓히는 방법에 대해 더 고민해 봤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에 동시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