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수필(가명)
- 2021년 3월 31일 ○○○○회사 퇴직
- 2022년 4월 1일 학교 시설당직원(공무직-정규직) 취업
오래전 학교 야간 당직은 교사들이 순번제로 근무했으나 지금은 당직전담요원을 채용해 근무하게 한다. 용역회사를 통한 우회적 채용과 교육청 직고용 체제가 병존했으나 최근엔 직고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경기도의 한 학교에서 당직전담요원으로 근무하면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는 황씨를 지난 11월 말에 만났다. 그는 열악한 근무조건이지만 몸을 움직여 일할 수 있고 건강을 지킬 수 있음에 감사한다고 했다.
- 퇴직 후 소감 한 말씀해 주신다면?
"60세에 퇴직한다고 하면 우리 생은 사실 한 50년 정도 남았다고 봐야 하거든요. 저희 아버지 연세가 지금 만 90세입니다. 작년에 자전거를 타시다가 넘어지셔서 고관절을 다치셨어요. 노인 분들은 고관절을 다치면 걸을 수가 없어요. 누워있어야 하니까 욕창이 들게 되면 거의 2~3년 안에 약 30%는 돌아가신다고 하더라고요. 걱정 많이 했죠.
그런데 아버지는 고관절 수술 후에 자전거도 타시고 지팡이 없이 걸어 다니세요. 의지력과 회복력이 아주 뛰어난 거죠. 아버지를 보면서 느끼는 게 120세까지 살 수도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뭘 하면서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일하는 이유가 반드시 경제적인 문제 해결 때문만은 아니더라고요. 내 건강을 위해서 작은 일이라도 해야 하더라고요. 거기다 용돈까지 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
저는 준비만 되면 퇴직은 빨리하시는 게 좋다는 생각이에요. 직장 그만두고 새로운 뭔가를 시작한다는 게 두렵기는 하지만 제가 하고 싶었던 일을 준비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매일 아침 출근길이 아주 가볍고 좋아요."
-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 일을 하게 되셨나요?
"직장을 조금 일찍 퇴직한 이유는 예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던 농촌관광 사업 때문이었어요. 제가 하고 싶었던 것이 마을 살리기 사업 즉 농촌체험마을이었어요. 그 사업을 전체적으로 총괄하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직장 퇴직 후 국가지원사업인 소규모 체험마을 본부장으로 한 3~4개월 정도 사업을 했어요.
제가 당뇨병과 고혈압이 있어서 건강이 안 좋아요. 체험객 몇백 명이 몰려와서 통제가 안 되니까 스트레스가 되게 심했어요. 저혈당으로 건강을 해칠 수도 있겠다 싶어서 그만뒀어요. 뼈아픈 결정이었죠.
그 후 인천에서 다육이 사업을 하시는 친척분한테서 도와 달라는 연락이 왔어요. 다육이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던 제가 6개월 정도 열심히 친척분 일을 도왔어요. 그 와중에 저희 아버지가 다치셔서 고관절을 수술하셨는데 병간호를 할 사람이 없어서 제가 했어요. 아버지는 저를 많이 의지하세요. 아버지가 저한테 전화를 하신 거예요. 아버지 병간호하느라 다육이 농장에 못 갔지요. 결국 정리했어요.
집에 있으면서 학교에서 방과 후 교사를 하고 있던 아내와 의논한 끝에 학생들 등교 시간에 아이들의 안전을 챙겨주는 '학교 지킴이' 봉사활동을 하기로 했어요. 오전 오후로 나눠 두 사람이 하는 학교 보안관 같은 거죠. 봉사활동 중에 교장 선생님이 직원 채용 안내문을 하나 주시면서 학교 앞 아파트 주민이시니까 관리사무소장에게 얘기 좀 해달라고 하시더라고요. 집에 와서 아내에게 보여주니까 당신이 하면 되겠네 하더라고요."
- 이 일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아침 6시 45분에서 50분 사이에 학교에 출근하고 학교 건물 내외부를 한 바퀴 순찰하면서 이상 유무를 확인해요. 밤 동안 잠가뒀던 교실 문 등을 열고 당직실에 돌아오면 업무 관련 장부를 정리해요. 또 CCTV를 통해 학교 전체를 다시 점검하죠.
8시 30분에 퇴근해서 집에 가면 아내 아침 식사를 간단히 챙겨주고, 저는 탁구 등 운동하러 가요. 또 일본 여행을 좋아해서 일본어를 배우고 있고, 평생교육 대학원 강의를 일주일에 한 번 듣고 있어요. 아주 삶이 이렇게 정확하게 짜임새 있게 돌아가니까 시간이 너무 잘 가요.
오후에는 4시 반부터 10시까지 근무하는데 교내외를 꼼꼼하게 순찰하고 모든 출입문을 잠근 뒤 CCTV 운영실에서 당직 근무에 임하죠. 중간에 휴게시간이 있어서 하루에 총 6시간 근무하고 일주일에 하루 쉬어요. 불상사가 없다면 만 65세 정년까지 할 수 있어요. 공무직이라는 무기계약 정규직으로 신분보장이 돼요. 바로 집 앞에 있는 학교라 저한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직장이죠."
- 이 일을 해보고 싶은 사람은 어떤 준비를 미리 해야 할까요?
"기초체력은 갖추고 있어야 해요. 당직원 응시자격으로 국민체력100 체력인증센터에서 발급하는 체력 측정 3등급 이상 인증을 받아야 해요. 계약 체결 전까지 인증서를 제출하게 되어 있어요. 그 외 별도로 준비해야 할 것은 없어요."
- 재직 중 힘든 일이 있으셨다면?
"솔직히 힘든 일은 없었어요. 너무 재미있어요. 특히 우리 나이가 60세 전후잖아요. 학생들이 정말 손주 같은 느낌이라서 너무 귀엽고 예뻐요. 힘든 게 진짜 없어요. 특별히 민원 응대할 게 거의 없다 보니 힘든 게 없어요.
이런 일은 있었어요. 어느 날 제가 저녁에 어떤 모임이 있어서 좀 일찍 조퇴해야 했어요. 교내외 순찰을 모두 했는데 깜빡하고 창문 쪽 잠금장치 하나를 제대로 잠그지 않았나 봐요.
학생 중 한 명이 토요일에 왔는데 문이 잠겨 있으니까 그냥 가지 않고 이 녀석이 혹시 문 열린 게 있나 보다가 잠금이 안 되어 있던 창문을 열고 들어오는 바람에 무인경비시스템이 경보를 울린 거죠. 경비회사 직원이 와서 조치했고 나중에 잠금장치를 소홀히 한 책임을 물은 거죠. 정말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흔치 않은 일이죠."
- 이 직종만의 매력은 뭔가요?
"이 일은 아시다시피 시간적인 여유가 너무 많고 심신의 피로가 적은 노무에 종사하는 경우(수위, 경비원 등)에 속해요. 특히 55세 이상을 뽑는 이유가 단순 노무로 학교 순찰하고, 현관문 등 잠금장치를 철저히 잠근 후 근무 시간 중 CCTV만 잘 주시하고 있으면 돼요. 노동력이라고 할 것도 없어요. 그냥 이거는 건강에 도움이 되는 일이에요. 순찰 등으로 걷기 운동을 모두 합하면 하루에 2만 보 정도 걷더라고요."
-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시다면?
"제가 주로 하는 일이 교내외 순찰이에요. 아침에 일찍 출근해서 순찰하면 중학교 1학년 애들이 사춘기에 특히 남녀 공학이다 보니까 좀 일찍 등교해서 남녀 학생 둘이서 약간 은밀한 곳이나 빈 교실, 계단 쪽에서 서로 기대고 앉아 있을 때가 있어요. 이럴 때는 학교 담당 선생님께 전달해요. 간혹 그런 일이 있어요."
- 수입은 어느 정도 되나요?
"하루 6시간 근무에 기본급이 150만 원 정도 돼요. 정규직인 공무직 월급이죠. 복지 포인트가 1년에 70만 원, 명절휴가비 1년에 120만 원, 정액급식비 월 14만 원, 정기상여금 연 90만 원, 4대 보험 모두 적용받아요. 전부 합해서 연봉 2000만 원이 조금 안 돼요. 월수입은 근무시간, 근무형태, 그리고 지역에 따라 약간씩 다른 걸로 알고 있어요."
- 전망은 어떨까요?
"학교마다 무인경비시스템이 완비되어 있어도 불이 난다든지 비상 상황이 발생했을 때 초동대처를 즉각 할 수 있어야 하니까 당직전담요원 1명은 꼭 필요해요. 밤에 학교에서 잠을 자면서 당직 서는 학교도 있지만 좀 더 선호하는 당직 운영 방식은 제가 근무하는 방식이에요.
휴게시간 운영방식이 당직원에게 불리하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어서 앞으로 이 방식으로 바뀔 것 같아요. 학교에서 밤새우는 당직 방식은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구인 광고가 많이 나오고 있다는 것은 채용이 순조롭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죠. 이 직종은 앞으로 사람과 무인 경비가 병행하고 상생할 수 있는 여지는 많을 것 같아요."
- 앞으로 계획이 있으시다면?
"하고 싶은 일이 정말 많아요. 당직이라는 일의 특성상 시간적인 여유가 많으니까 저는 여기서 공부를 좀 더 해서 평생 교육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2028년 당직원 퇴직하기 전까지 평생교육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한 다음 평생 교육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저의 네이버블로그와 다음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