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사실 고백할 게 있다. 이전의 글에서 매일매일 계획 하에 장을 보는 것이 건강한 소비습관이라 적은 바가 있는데 사실 그것은 지향하는 바일 뿐, 나는 충동구매의 노예다. 이게 다 식탐 때문이다.
본래 나는 식탐이 없는 사람이었다(진짜다). 하지만 식당에서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먹는 것에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목수가 사는 집에 비가 샌다고 했던가. 막상 해보니 요식업은 굉장히 배고픈 일이었다. 뭘 먹기가 생각보다 힘들다는 점에서 말이다.
늘 배고픈 일, 폭주하는 식욕
대개 식당의 식사시간은 오후 세 시다. 그 시간대에 브레이크 타임이 없는 우리 가게는 식사시간이 되어도 손님을 맞곤 했다. 좀 여유 있게 밥을 먹고 싶은 욕구는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있는 법. 허나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했던가. 점심시간 늦게라도 손님이 오면 한숨을 쉬며 숟가락을 내려 놓곤 했다. 그렇게 몇 번 손님이 오면 어느새 내 식사시간이 끝나 있었다.
한동안은 이게 너무 싫어서 혼자 창고에 들어가서 밥을 먹기도 했다(지금은 식사시간을 둬서 30분 동안은 주문을 받지 않는다). 예전보다는 나아진 여건이지만 여전히 여유로운 식사와는 거리가 있다.
말이 식사시간 30분이지 그 안에 밥까지 다 차려서 먹어야 한다. 식사 시간을 조금 더 늘려야 하나 싶다가도, '일개 프랜차이즈 가게 따위가 무슨 브레이크 타임씩이나 걸어야 하나' 싶어서 그냥 이대로 살고 있는 중이다.
어떤 것을 향한 욕망은 제한된 상황에서 더욱 강해진다. 그 제한된 노동 환경이 '소식좌'인 나의 식탐을 깨운 것이다. 그 정점은 퇴근 후 장보기다. 배가 고프면 분명 다 먹지 못할 걸 알면서도 여러 음식들을 고르는 버릇이 튀어나온다.
좋게 말해 버릇이지 사실은 정신을 못 차리는 수준이다. '앗! 생크림 도넛이 새로 나왔네?' '촉촉한 쿠키 초코칩 버전이 새로 나왔다고?' '파기름 짜장라면 매운맛이라니, 이건 못 참지!' 당연히 장을 보는 데 낭비가 생기게 되고, 의미 없이 버려지는 음식들이 생기곤 한다.
오후 세 시에 밥을 먹고 여섯 시간 가까이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집에 오면 냉정하게 장을 보기란 쉽지 않았다. 뭐든지 다 먹을 수 있다는 자신감과 상상으로 느껴지는 과자와 라면의 맛들이 자꾸 구매를 부추겼다.
하지만 이런 소비 패턴에는 결국 제동이 걸리기 마련이다. 같이 사는 동반자가 가만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일주일 전 일이다. 퇴근 후 같이 아내와 마트에 가서 두부와 시금치, 귤 7천 원어치를 사기로 약속했는데 결국 과자 코너로 들어가 초코파이 한 상자에 라면 한 묶음을 집어 들었다.
충동구매 막으려는 아내의 제안
그때 아내의 표정을 나는 잊지 못한다. 다행히 아내의 단호함으로 충동구매는 저지되었다. 그때 스스로가 조금 한심하게 느껴졌다. 재수생 시절 치킨이 너무 먹고 싶어 기숙학원을 탈출했다 붙잡힌 내 친구가 생각나서였다. 만 36세에 과자 하나를 못 참아서 혼이 나다니. 어쩌면 이것도 경미한 쇼핑 중독이 아니었을까.
장을 보고 집에 돌아오는 길, 아내가 충고 겸 제안을 했다.
"앞으로는 밥을 먹고 장을 보러 가자. 너무 오래 굶고 집에 오니까 제대로 판단이 안 서는 거야."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을 거부할 명분이 전혀 없었으므로. 그리고 이를 실행에 옮긴 그제. 놀랍게도 포만감이 가득한 상태에서 장을 보니 뭘 살게 없어 보였다. 탐스러운 귤도, 녹차 아이스크림도 어딘가 눈에 차지 않았다.
딱 살 것만 집어 든 뒤 만 원 이하의 지출로 장보기를 마쳤다. 그저 밥을 먹고 장을 봤을 뿐인데 이 정도로 차이가 난다는 말인가. 만약 평소처럼 마트에 갔으면 어땠을까. 아마 일주일 전처럼 라면 코너로 뛰어들어가 파기름 짜장라면을 덜컥 집어 들었겠지.
그리고 유제품 코너로 뛰어가 생크림 도넛을 사고 또 바로 옆 빵집에서 식빵을 샀을 것이다. 그걸로 프렌치토스트를 네 장씩 구워서 꾸역꾸역 먹은 뒤 나머지 재료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테고. 그 모습에 또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겼을지 모른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이유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의 저자 폰 쇤부르크는 두뇌 연구가 볼프람 슐츠의 원숭이 실험을 예로 들며 충동구매가 발생하는 원인을 설명한다. 그 실험에 따르면 먹이를 준다는 신호를 보냈을 때 원숭이의 뇌를 흥분시키는 도파민 수치가 제일 높았다고 한다.
정작 먹이를 먹는 순간의 도파민 수치는 그보다 오히려 하락했다. 이미 먹이를 먹는 단계에서는 뇌가 쾌락에 어느 정도 적응한 것이다. 그러니까 뇌의 쾌락수치가 제일 극대화되는 지점은 맛을 보는 순간이 아니라 그 먹이를 손에 쥐기 직전이었던 셈.
폰 쇤부르크는 이 실험을 근거로 물건을 소유하기 전의 흥분과 기대치가 이성적인 구매행위를 방해한다고 지적한다. 나는 폰 쇤부르크의 주장에 바로 동의했다. 마트에서의 충동구매가 딱 그랬으니까. 허기가 강하게 느껴질수록 진열된 음식을 향한 흥분과 기대치도 함께 커졌다.
이런 충동구매는 마트에서 물건을 사고 나오는 순간부터 후회가 시작됐다. 허겁지겁 라면과 과자들을 집어서 계산하고 나면 먹지도 않았는데도 이미 식욕이 줄어드는 느낌이 들곤 했으니까. 밥을 먹고 마트에 가는 건 그런 의미에서 현명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구매 직전의 기대치를 현저히 줄인다는 점에서 말이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이유는? 낭비도 낭비지만, 무엇보다 가정 경제에도 부침이란 게 있기 때문이다. 갑작스레 목돈을 써야 하는 일이 생기거나 갚아야 할 대출 이자가 늘어나거나 하는 일들이 살면서 한두 번쯤은 생기기 마련이다.
그럴 때일수록 평소에 훈련한 인내와 절제들이 불안한 미래를 견뎌낼 수 있는 방패가 되어준다. 혹시나 하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호신술을 배워 놓는 것처럼. 좋을 때는 힘들 때를 생각하고, 힘들 때는 좋은 때를 생각하자. 인플레이션과 고금리의 시대, 바로 지금이 힘들 때를 대비해야 할 적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