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9일 토요일 오후 6시 34분 경찰에 첫 신고가 들어왔다. "압사당할 거 같다." 공권력이 제대로 대응만했다면 15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이태원 참사의 비극을 막을 수 있었다. 경찰을, 사업가를, 음악가를, 간호사를, 배우를 꿈꿨던 159명의 바람은 이뤄졌을지 모른다. <오마이뉴스>는 이태원 참사 100일을 맞아 매주 토요일 오후 6시 34분 이태원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이태원 참사를 잊지 않기 위해서다. [편집자말] |
대학에 막 합격한 스무살 새내기 시절, 강민지(27)씨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저 초록불 신호등에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을 뿐이었던 민지씨에게 불행이 덮쳤다. 우회전하던 좌석버스가 민지씨를 쳤다. 얼굴을 먼저 부딪히고, 다리를 밟혔다. 턱관절이 부서졌다. 다리 정강이뼈가 조각났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정강이뼈가 붙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왜 안 붙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입원과 수술, 퇴원을 해마다 반복했다. 골반뼈를 두 번이나 떼서 이식도 해봤다. 그래도 뼈는 붙지 않았다. 민지씨는 한창이었을 20대 시절 대부분을 다리에 깁스를 한 채 살아야 했다.
햇수로 8년, 여리 여리하던 체구의 민지씨는 거동이 불편해 체중이 늘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도 일을 할 수 없었다. 버스공제조합과의 소송도 피해자인 민지씨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2022년 봄, 드디어 뼈가 붙었다. 병원에서는 "왜 붙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2022년 여름, 버스공제조합과의 지루한 소송도 마무리됐다. 합의가 이뤄진 날, 민지씨는 언니 강한나(38)씨에게 뛸 듯이 기뻐하며 전화를 했다고 한다.
"언니, 나 합의 봤어, 끝났어, 진짜로 해방됐어."
언니는 "그날 행복해하는 민지 목소리가 아직도 기억난다"고 했다. 동생 앞날에 "드디어 좋은 날만 있을 거 같았다"고 떠올렸다. 민지씨의 행복을 바라는 언니의 마음이 남달랐기에, 더욱 그 순간이 기억난다고 했다.
민지씨는 언니가 10살이던 해 태어났다. 일하러 가신 엄마를 대신해 밤낮이 바뀐 동생의 분유를 타 먹이고, 기저귀 갈고, 놀아 주고 업어도 준 게 언니 한나씨였다. 동생 준비물을 챙겨주고, 민지를 괴롭히는 애들이 있으면 학교로 쫓아간 것도 언니였다. 전화 인터뷰에 앞서
<오마이뉴스>에 사연을 적어 보낸 언니는 "정말, 딸같이 키운 녀석"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민지씨가 초등학교 6학년이던 시절 돌아가셨다고 한다. 집에는 엄마, 한나씨, 민지씨 셋뿐이었다.
언니의 어깨가 무거웠다. 집안의 가장 노릇도, 언니이자 엄마 노릇도 해 온 한나씨는 민지씨가 건강을 되찾고 취직도 하자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고 했다. "언니 다운 모습을 보여야만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에서 벗어나 이제 민지랑 진짜 친구처럼 편하게 지낼 수 있게 됐다"고 생각했다. 2022년 10월 30일 오전까지만 해도 그런 날들을 꿈꿨다. 그러나 민지씨는 영원히 스물일곱에 머무르게 됐다.
언니는 말했다 "너무 예쁜 내 동생, 안타까워 미치겠어요"
언니는 몰랐다. 무심결에 틀어놓은 TV 뉴스에 이태원 참사 소식이 나오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나"라고만 했다. 그날 오전 아이들과 함께 수영장에 놀러갔던 터라, 씻기고 갈아입히고 챙기는 데 바빴다.
그런데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민지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거 같다"고. 민지가 다니는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고 했다. 회사에서는 이태원 참사가 발생하고 전 직원에게 연락을 돌렸는데, 민지씨만 끝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고 했다. 스무 번 넘게 울린 전화를 대신 받은 건 경찰이었다. 경찰서에 민지씨 휴대전화가 있다고 했다. 민지씨 소재 파악은 안 된 상태라고 했다. 1시간 뒤 연락이 왔다. '민지가 경희대 병원 영안실에 있다'고.
민지씨를 확인한 건 언니였다. 새파랗게 부어있는 얼굴, 동생이 아닌 것만 같았다. 경찰서로 조사를 받으러 가서 언니는 "사람들이 일부러 약을 먹였다는 소리도 있던데, 사건 만들려고 한 거 아니냐"라며 "부검을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마약 성분이 나온다 한들, 본인이 먹었는지 누가 먹였는지 어떻게 알겠냐"며 만류한 건 되레 경찰이었다. 경찰이 민지씨 사진을 보여주며 "다른 타박상도 없고 압박돼서 나타나는 증상뿐이다. 부검 안 해도 사진으로 사인(압박사)을 알 수 있다"라고 설득했다고 한다.
경찰에게서 돌려받은 민지씨 휴대전화는 잠겨 있었다. 도저히 풀 수 없어 사고 소식을 전하지도 못했다. 평소 언니와도 알고 지내던 민지씨 친구 한 명에게만 연락했다. 그럼에도 장례식장에 150명 넘는 친구들이 찾아왔다.
"나중에 중·고등학교 친구들 조의금 봉투를 보니 154명이 온 거예요. 민지 조문객은 그보다 더 많이 왔고요. 뒤늦게 알게 돼서 민지 휴대폰으로 연락 해온 대학교 친구들도 있고 사회에서 만난 친구들도 많아요.
하나같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였는데' 하면서 울면서 전화가 와요. 그럴 때마다 저도 마음이 참 힘들더라고요. 친구들뿐 아니라 민지 회사 분들도 많이 와주시는 걸 보고 친척들이 '민지가 정말 잘 살다 갔다, 많은 사람한테 사랑받고 갔구나' 하시더라고요."
민지 발인 날, 외할머니마저 돌아가셨다. 발인을 끝내고 상복으로 다시 갈아입고 외할머니 초상을 치렀다. 민지씨 엄마는 남편을 먼저 보내고, 딸을 보내고, 엄마마저 잃었다.
"너무 예쁜 내 동생... 안타까워 미치겠어요. 저나 엄마나, 종교의 힘으로 버티고 있어요."
먼저 간 민지씨는 말했다 "나도 꿈을 꾸고 싶어"
기적적으로 다리뼈가 붙은 민지씨는 "많이 밝아지고 편안해지고 좋아졌다"고 한다. PT를 받으며 체중 관리도 했고, 원하던 회사 입사도 성공했다. 직장 생활도 안정돼 정규직 전환을 앞두고 있었다고 한다.
"회사에서 나중에 연락이 왔어요. '민지씨가 하던 일을 다른 직원들이 하게 됐는데, 민지씨 빈자리가 너무 크다. 앞으로 없을 최고의 직원이었다'고요. 민지가 세금 업무, 회계 업무도 했고 홈페이지 관리도 했대요. 여러 영역을 맡다 보니 스스로 공부하며 배웠고, 공부한 노트가 몇 권씩 나오더라고요. 그렇게 능력을 인정받아 11월에 정규직 전환 워크숍을 간다고 했어요.
남자친구도 생겼어요. 친구들한테는 '결혼을 한다면 이런 남자랑 하고 싶다'고 얘기했다더라고요. 남자친구와 이태원에 함께 갔어요. 그분도 사망하셨어요... 민지가 그랬어요. '학자금 대출도 다 갚았고, 앞으로 열심히 살고 싶다'고. '나도 꿈을 꿈고 싶다'고... 민지 가고 나서 확인해 보니 몇 개월 전부터 저축도 하고 청약도 넣고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더라고요."
민지씨는 이모 노릇도 톡톡히 했다. 자주 찾아와 조카들에게 용돈을 챙겨주고 장난감도 사주고 놀아줬다. 언니가 민지씨를 위해 해 오던 일을, 이제 민지씨가 조카에게 해주고 있었다.
"민지가 제 아이들을 챙기니까, '우리 민지도 많이 컸구나' 했어요. 마냥 아기 같았는데 이제 제가 기댈 수 있는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됐구나. 그동안 못한 거 여느 자매들처럼 함께해야지 그랬어요."
소소한 일상을 나눴다. 어느 날 민지씨가 '화장품 숍에 가야 한다'고 하니, 언니가 '나도 클렌징 오일 사러 가야 하는데 귀찮다'고 답하고 며칠 뒤, 민지씨가 "세일하길래 샀어"라며 클렌징 오일을 툭 건네는 식이었다. 휴대전화 충전이 잘 안 된다는 언니에게 최신형 휴대전화를 건네준 것도 민지씨였다.
"제가 애들을 미용실 데리고 갔어도, 친구들한테는 연락하긴 뭐 해도 민지한테는 조카니까 '애들 머리카락 잘랐다'라며 연락하고 그랬죠. 진짜 단짝 친구처럼 지냈는데 영혼의 반쪽을 잃어버린 기분이에요.
민지가 몸이 안 좋으니까 여행을 한 번 못 가봤는데 엄마랑 셋이서 가족 여행도 가고 싶었어요. 제가 결혼해서 아이를 연년생으로 낳아서 육아하느라 바쁘고 힘들었는데, 얘들도 좀 크고 이제 막 여유가 생긴 때였어요. 민지도 여유가 생겨서 같이 누릴 일만 남았는데... 너무 마음이 아파요."
와조스키는 말했다 "우리의 우정보다 중요한 건 없어요"
언니는 민지씨 사진을 기사에 남기고 싶진 않다고 했다. 녹사평역 분향소에도 영정 사진을 올리지 않았다. 대신, 픽사 애니메이션 <몬스터 주식회사> 캐릭터 마이크 와조스키(영화에 등장하는 초록색 괴물) 이야기를 꺼냈다.
"초록색에 눈 하나 있는 그 캐릭터를 정말 좋아했어요. 펜에 칫솔, 스티커 별거 별거 다 갖고 있었어요. '괴물인데 왜 좋아해?' 했더니, '와조스키는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사는 캐릭터고, 얘 성격도 너무 좋아'라고 하더라고요.
스스로가 무너지고 나약했던 시절이 있으니 밝고 긍정적으로 사는 삶을 동경했던 거 같아요. 우리 민지가 와조스키처럼 밝고 긍정적이게 살아내고 있었고요. 민지 사진 대신에 민지 회사 사원증에 걸린 목줄 사진을 기사에 사용해도 될까요? 민지를 잘 나타내주는 사진 같아요."
영화 속 마이크 와조스키는 '몬스터 주식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이다. 이 회사는 인간세계 아이들에게 겁을 주며 얻은 비명 게이지로 전력을 얻어 수익을 낸다. 그중 항상 1등인 제임스 설리반과, 그의 단짝 친구이자 동료인 와조스키가 콤비다. 와조스키의 어린 시절은 조금 암울했는데, 괴물임에도 작은 키에 귀엽게 생긴 외모를 가졌다는 이유로 반 아이들에게 소외 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와조스키는 특유의 밝고 긍정적인 성격을 잃지 않았고, 설리반과의 우정을 통해 계속 성장해 나간다. 와조스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누구도 당신에게 '다르다'고 말하게 내버려 두지 마세요"(Don't let anyone tell you different)라고. 또, "우리의 우정보다 더 중요한 건 없어요"(Nothing is more important than our friendship)라고.
언니는 민지씨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내 단짝 민지야, 언니는 우리 민지가 예쁜 얼굴로 천국에서 행복하게 있을 거라 믿어요. 편안히 있다가 나중에 꼭 만나자.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