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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북 옥천 파파머리방에서 함께 점심 먹는 손님들
충북 옥천 파파머리방에서 함께 점심 먹는 손님들 ⓒ 월간 옥이네
 
한 사람의 넉넉한 마음에서 생겨난 공유부엌이 있다. 다른 이름으로는, '점심 주는 미용실'이다. 지도를 검색해보아도 도무지 찾아가기 어려워 들러본 이만 안다는 곳. 충북 옥천종합상가 맞은편 골목 안, 거기서 또 작은 골목을 통해서야 다다르는 이곳은 박숙자(67)씨가 운영하는 파파머리방이다. 

시술하는 동안 함께 먹는 점심... 파파머리방 풍경

이른 오전부터 하나둘 손님들이 찾아온다. 대부분 70-80대 여성들로 가까이는 옥천읍, 멀리 면 지역에서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온다. 버스가 안 닿는 오지마을을 위한 '옥천군 다람쥐 택시'를 타고 온 이들도 있다. 

"아이고, 오랜만이네요!" 박숙자씨가 환히 웃는 표정으로 이들을 반갑게 맞이하자 손님들도 따라 웃는다.

어떤 머리를 할지 고민은 길지 않다. '파마와 염색'이라 하면 곧바로 미용이 시작된다. 수건을 두르고, 머리에 약품을 바르고, 파마 도구를 돌돌 말아 고무줄로 하나씩 고정한다. 커피 스틱도 이곳에서는 파마 도구를 고정해주는 효과적인 도구로 탈바꿈한다.

"이거 커피 스틱 맞아요. 오랜 세월 미용하면서 알아낸 내 노하우지(웃음)." 

머리카락을 돌돌 마는 작업이 끝난 후 둘렀던 수건으로 모자를 만들어 머리를 감싸면 1차 완성. 파마가 잘되도록 잠시 뜸을 들일 시간이다. 손님들은 바닥이 뜨끈한 사랑방으로 자리를 옮겨앉는다. 벌써 누워 한숨 쉬고 있는 이도 있다. 파마 2만 원, 커트 6천 원. 다른 미용실과 비교가 어려울 만큼 저렴한 가격이지만 아직 놀라기는 이르다. 

손님들이 쉬는 사이 박숙자씨는 다시 한번 바빠진다. 점심 식사 준비 때문이다. 메뉴는 보리비빔밥. 보리밥을 안치고 구수한 된장국을 끓여내자 잠시 후 키 작은 원형 탁상에는 보리밥이 푸짐히 담긴 양푼 밥그릇, 고추장, 된장찌개, 소복이 쌓은 김치, 콩나물무침, 새싹 채소가 올랐다.

"할머님들, 점심 잡수셔요." 손님들이 모여앉아 맛있게 식사를 한다. 별다른 대화는 없어도 포근하고 살가운 공기가 흐른다. "밥 좀만 더 퍼줄래요? 아유, 같이 먹으니 맛나네." 머리에 수건을 두른 채 한 그릇을 금세 뚝딱 비우곤 말한다. 

"사장님이 인정이 정말 많으셔. 여기로 다닌 지 7-8년 정도 됐어요. 밥뿐이에요? 계란이나 튀밥을 간식으로 내놓으실 때도 있지. 이런 데 없어요. 다들 나누려고 안 하는 때인걸..." -군북면 송희래(88)씨

"다른 데보다 파마 비용도 싸요. 그런데도 여기서 파마하면 머리가 보들보들하니 좋아. 집에 있었으면 밥도 혼자 먹고 심심했을 텐데, 여기서는 같이 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군서면 이월순(77)씨

같이 국수나 끓여먹으면 좋겠네
 
 충북 옥천 파파머리방 박숙자씨와 펌 중인 손님
충북 옥천 파파머리방 박숙자씨와 펌 중인 손님 ⓒ 월간 옥이네
 
 '점심 주는 미용실' 충북 옥천 파파머리방
'점심 주는 미용실' 충북 옥천 파파머리방 ⓒ 월간 옥이네
 
박숙자씨가 파파머리방 문을 연 것은 1996년도. 그가 미용실에서 점심 식사를 준비하게 된 것은, 손님들과의 대화를 통해서였다. 

"할머님들이 오전부터 와서 파마하시잖아요. 2-3시간쯤 있다 가시는데, 파마하다 보면 점심시간이 돼요. 배가 고프니까, 우스갯말로 '여기서 국수 좀 삶아 먹었으면 좋겠다' 하시는 거예요(웃음)." 

그렇게 정말 국수를 끓여먹게 됐다. 금방 차릴 수 있는 간단한 국수나 보리밥을 내놓고 나누어먹으니 손님들의 반응이 좋았다. 일하는 동안에는 끼니를 챙기기 어려웠던 박숙자씨 역시 덕분에 조금이라도 점심을 챙겨먹게 되니 더 좋았다.

미용 공간 옆의 온돌형 쉼터도 이들을 위해 만들었는데 박숙자씨가 일하다 잠시 쉬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시작한 점심 봉사가 이어진 지도 어느덧 20년이 훌쩍 넘었다. 

"혼자 계신 할머님들이 많은데, 보통 잘 못 챙겨 드시잖아요. 번거로워도 여기서 맛있게 식사하시는 모습 보면 좋아요. 초반에는 국수, 요즘은 보리밥을 주로 내놓고 있어요. 저도 챙겨드릴 분들이 있으니 이전보다 더 잘 먹게 됐고요." 

힘들기보다는 기쁜 마음으로 점심 식사를 준비하고 함께 나누게 되었다는 박숙자씨. 그런 세월을 보답이라도 받듯, 2012년 그는 선행·봉사·사회 공헌을 한 주민에게 시상하는 모범도민표창을 받기도 했다. 당시 박숙자씨는 "생각지도 않은 상을 받게 됐다. 앞으로 어르신들과 더 잘 지내라는 의미로 알고 봉사 활동도 열심히 하겠다"고 소감을 전했는데, 그 마음은 지금도 여전하다. 

"이제는 할머님들도 이전보다 많이 못 오셔요. 이전에는 아침부터 일고여덟 분이 와계셨는데 지금은 아니에요. 연세가 많이 드셔서 이제는 미용실까지 직접 못 오시는 분들도 많고, 하늘나라 가신 분들도 많이 계세요. 그런 것 보면 너무 안타까워요. 내 건강이 닿는 데까지 할머님들 곁을 지켜야겠다 생각하죠."

함께 먹을 밥을 차리고 가진 것을 나누는 것. 박숙자씨가 생각하는 행복한 삶이다. 그가 내놓는 밥 한 그릇에는 한 끼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을 테다. 그 가치를 전하는 이들이 앞으로 더 많아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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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북 옥천 파파머리방 박숙자씨
충북 옥천 파파머리방 박숙자씨 ⓒ 월간 옥이네
 
월간 옥이네 통권 68호 (2023년 2월호)
글·사진 한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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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파머리방#옥천#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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