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와 출간계약을 하고 지난겨울 내내 원고 교정작업을 했다. 그간 써온 글 분량이 적지 않아서 늦가을에 계약하고도 올 연초 출간이라는 일정이 가능했다. 오마이뉴스에 2년여간 꾸준히 글을 올렸고 출판사가 우연히 내 글을 보게 된 사연은 지난 글에 썼다.
[관련기사]
오마이뉴스에 쓴 글 읽고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https://omn.kr/22e9h
읽고 또 읽고. 교정작업은 글쓰기와는 또 다른 진득한 에너지가 필요했다. 어떤 글은 '지금 쓰면 약간은 다르게 쓸 텐데 아예 다시 써버릴까'를 고민도 했었고 어떤 글은 지금 읽어도 너무 재밌네 하며 스스로 감탄하기도 했다.
어떤 글은 문단의 순서를 바꿨고 또 어떤 글은 한 문장만 수정하기도 했다. 딱 한 단어를 바꾸고 나서야 부족한 1프로가 채워지는 만족감. 그게 얼마나 벅차오르는 심정인지 글 쓰는 사람은 안다. 비로소 용이 하늘로 올라가듯이 내 입술에 화룡점정의 미소가 지어진다. 완벽한 글이 어딨으랴. 그럼에도 전체를 퇴고하면서 맥락에 맞게 잘 다듬어지는 쾌감이 있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새로 써야 했다. 그간 글감이 떠오를 때 글을 썼던 습관 때문인지 아니면 출판사와 마감 약속을 의식해서인지 글이 잘 안 써졌다.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몰라했을 때 출판사는 재촉 대신 응원을 해주었다. 프롤로그의 의미라던가 에필로그에서 독자들이 알고 싶어 할 이야기가 무엇일까를 다정하게 말씀해 주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
두세 번의 원고 교정이 진행된 시점에서 출판사는 디자인 작업에 들어간다. 원고 외에 책 디자인에 대해서는 '무조건 출판사가 옳다'는 평소의 생각이 있었음에도 그 과정을 모두 이야기해 주고 나의 피드백을 일일이 확인해 주어서 존중받는 기분이 들었다.
책에서 표지란 게 얼마나 중요한가. 사실 나는 계약 후 제일 기대되는 게 표지였다. 나의 책 출간을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고 응원해 주는 친구들도 역시 표지에 극대한 관심을 보였다.
제목의 위치 하나로도 표지 색감 이야기로도 밤이 늦도록 찬반 토론의 장을 펼쳤다. 사실 실제 작업은 일러스트작가님이 다 하는데 말이다. 작가님의 그림 실력과 출판사의 열정으로 표지까지 잘 마무리 되었다.
인쇄가 시작되면서 온라인 예약판매도 동시에 시작되었다. 출판사에서는 판매지수와 순위 진입 상황을 실시간 문자로 보내주었다. 비로소 실감이 났다. 어쨌든 이제 내가 할 일은 끝났고 책이 알아서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주었으면 좋겠다 싶지만, 사실 작가야말로 책을 열심히 홍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황선진 님께. 제가 책을 낼 수 있는 건 당신 덕분입니다. 늘 평안하시고 그저 하하 호호 웃음이 꽃처럼 피어나시길... 아빠. 오래오래 사세요. 황승희 드림."
"고정미 님께. 숨 쉴 때마다 사랑합니다. 당신이 나의 엄마라서 감사하고 감사하며 또 감사합니다. 엄마. 내가 지금부터 더 잘할 거니까 나랑 오래오래 살아요. 황승희 드림."
엄마 아빠에게 각각 사인을 해서 드렸다. 아빠는 다음날 연락이 왔다. 서너 권정도 더 줄 수 있냐는 것이다.
"큰집이랑 작은집에도 줘야 하고, 교장 하시던 작은 할아부지 말여, 책 드리면 좋아라 허시거덩. 그다음에 여기 내 친구 이장네 한 권 줘야지 않겄어? 또 말이다, 마을 회관에도 한 권 놓을라 그러는데."
더 필요하면 언제든 말씀하시라고 하면서 나는 혼자 상상했다. 시골에서 책 선물이란 것이 얼마나 생경한가. 하지만 아빠는 그냥 책이 아니라 자식의 책이라 할 테고 받는 사람은 또 "아이고, 시상에나~ 자식이 대단허네잉. 책을 다 냈어" 하겠지, 아빠는 또 "아이고, 별거 아니유~" 할 테고. 그 집을 나오면서 얼마나 세상 뿌듯한 미소를 지으실까.
누가 어떤 경로로 내 책을 읽게 될지도 궁금하고 또 출판사의 카피처럼 '웃음과 감동'을 얼마나 느낄까도 참 궁금하다. 읽으신 분의 후기 글을 클릭할 때 바들바들 까지는 아니어도 폴딱폴딱 떨리는 심정이 있다.
다행히 악플은 없었다. <사이보그 가족의 밭농사> 제목에 대해 흥미로웠다는 내용이 많았고 엄마 아빠이야기 대목에선 부모님이 생각나서 전화를 드렸다는 후기가 제일 많았다. 귀농에 대한 소망을 써주신 글도 꽤 있었다. 내가 생각지도 못한 관점과 해석도 재밌었다. 각자 꼽은 문장이 다르고 밑줄 친 부분이 다른 것도 좋았다.
칭찬 부분만 모아놨다가 힘들 때 꺼내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혼자 웃었다. 진짜 만나서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잖아도 이번 달은 선인세를 밥값으로 다 쓸 작정이다. 후기를 여러 번 읽다 보니 독자와 소통하는 작가의 마음과 자세가 이런 거구나를 알게 되었다. 그만큼 성의껏 감사 댓글을 올리며 즐기고 있는 요즘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와 블로그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