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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선의 최소' 남수지·윤별이씨
'최선의 최소' 남수지·윤별이씨 ⓒ 월간 옥이네
 
지난 2월, '월간 옥이네'로 한 통의 메일이 날아왔습니다. 특별한 일을 꾸리기 위해 청년 여성 소농을 만나고 싶다고, 이를 위해 월간 옥이네의 도움을 받고 싶다고요. 먼저, 이 요청과 함께 온 편지글 일부를 소개합니다.

"(...) 갈수록 변화무쌍해지는 기후를 최전선에서 체감하는 농부님들은 어떤 고민을 가지고 계신가요? 저희 역시 자연을 감각하기 어려운 도시에서 작년부터 고민의 싹이 움트기 시작했습니다. (...)

도시에서 소비하는 식문화는 어느새 사회의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직관적이고 가시적인 행복이 중시되는 모습에 따라 자극적이고 맛있는 음식의 과소비만이 최선이 되며 식문화에 대한 고민 자체가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자연과 가까운 음식을 최소한으로 소비하는 것이 도시 내의 최선이라고 느낍니다. 적게 소비하고 덜 먹는 삶 (...) 모두가 자급자족하는 삶을 꿈꾸며 아래와 같은 일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 모두를 살리는 식탁 만들기 : 최선의 최소 


소농이 길러내는 친환경 농산물을 유통하되, 1인 가구도 쉽게 구입할 수 있도록 소분해 무포장 판매한다는 게 '모두를 살리는 식탁 만들기: 최선의 최소(이하 최선의 최소)'의 활동 내용입니다. 이를 통해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고 도시에서도 건강한 식문화 공동체를 만들어 간다는 게 그 목표이고요.

그래서 만나봤습니다. 식과 농이 사라진 도시의 문제를 풀기 위해 스스로 문을 두드리고 길을 열어가려는 사람들, 도시와 농촌 그곳의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다양한 연대를 실현하려는 '최선의 최소' 남수지·윤별이씨입니다. 

썩은 양파에서 시작된 '직접 행동'

"냉장고 속 채소는 너무 많이 남아 그대로 썩어가고, 그나마 소분해서 파는 것은 온통 랩에 싸여있고. 청년 1인 가구가 '무해'하게 살기 정말 어렵다!"

1인 가구라면 누구나 공감할 한탄이다. 보통 한 묶음, 한 상자, 한 봉지 단위로 시중에 유통되는 신선 채소류는 1인 가구가 한 번에 소비하기엔 양이 많기 때문에 조금만 신경을 못 쓰면 금세 상해버리고 만다. 그나마 소포장 판매도 온통 비닐과 플라스틱, 랩으로 옷을 입고 있으니, 이러나저러나 1인 가구에게 마트 채소 코너는 여러 갈등을 느끼게 하는 장소다.

'최선의 최소'는 바로 이런 현실적 문제에서 시작됐다. 윤별이씨의 한탄에 남수지씨가 곧바로 "우리가 만들어볼까"를 외친 것이다. 벌써 지난해 여름의 일이다.

"다른 일로 회의를 하던 중에 제가 집에서 썩어가는 양파 이야기를 꺼냈어요. 아깝게 또 버려야 하는구나, 왜 무포장으로 소분해 파는 채소가게는 없는 건가 했더니 '직접 해볼까' 하는 답이 돌아온 거죠. 그때 마땅히 메모할 곳도 없어서 갖고 있던 책 제일 앞장을 펼쳐 이것저것 써내려갔던 기억이 나요." (윤별이씨)

그렇게 순식간에 활동 방향이 그려졌고, 이후 여러 관련 도서와 자료를 찾아 공부한 끝에 탄생한 것이 '최선의 최소'다. 이들이 정한 일은 크게 세 가지.

1. 자연과 가까운 안전하고 건강한 농산물 유통하기 : 여성 소농 중심의 지속가능한 농법을 기반으로 한 농산물 유통
2. 자연과 가까운 안전하고 건강한 농산물 소분 판매하기
3. 식문화의 새로운 보편성 만들기 : 생산자(농부)-매개자-소비자 간 네트워크 만들기, 도시 내 건강한 식문화 커뮤니티 실험하기


두 사람은 이를 실행에 옮기기 전에 더 많은 농민, 농업 현장과 만날 수 있길 바란다. 자신들의 문제의식이 지역 농민들이 겪는 어려움과 이어져 '함께' 일을 만들고 싶다는 소망이다. 그 때문에 지역의 농민들을 찾아 나섰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월간 옥이네의 문을 두드리게 된 것이다. 

'돌봄'이자 '생명'이 된 농사
 
 소농이 길러내는 친환경 농산물을 유통하되, 1인 가구도 쉽게 구입할 수 있도록 소분해 무포장 판매한다는 게 '모두를 살리는 식탁 만들기: 최선의 최소'의 활동 내용이다.
소농이 길러내는 친환경 농산물을 유통하되, 1인 가구도 쉽게 구입할 수 있도록 소분해 무포장 판매한다는 게 '모두를 살리는 식탁 만들기: 최선의 최소'의 활동 내용이다. ⓒ 월간 옥이네
     
 "의미와 가치를 더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널리 잘해보고 싶어요."
"의미와 가치를 더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널리 잘해보고 싶어요." ⓒ 월간 옥이네
 
이런 활동을 함께 도모한다는 점에서 두 사람을 꽤 오래 알고 지낸 사이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둘의 인연도 이제 2년 남짓. 현재 서울시 마포구에 사는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2021년 서울의 한 대안학교 교사를 하면서부터인데, 교사를 그만둔 지금도 '최선의 최소'라는 활동을 함께하고 있으니 시간에 비해 꽤 탄탄하게 엮인 인연인 셈이다.

둘은 함께 일하던 대안학교의 자연농 수업을 통해 농업과 먹거리, 기후위기 문제에 본격적으로 눈을 떴다.

"그때 했던 걸 '농사'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웃음) 어쨌든 일주일에 2~3일 정도는 밭에 나가 작물을 돌봤어요. 완두콩, 감자, 고구마 같은 것을 비롯해 쥐이빨옥수수, 아주까리밤콩, 뿔시금치, 토종배추 등 토종종자를 심었고요. 무경운에 비닐 대신 잡초로 멀칭을 하는 자연농법이었죠. 적은 면적이긴 했지만 쉽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은근히 재밌었어요." (남수지씨)

15평 남짓한 밭을 가꾸는 일은 두 사람으로 하여금 농사를 새롭게 인식하게 했다. 먹거리 생산 혹은 학교 교육 활동의 수단 정도로만 생각했던 농사가 돌봄이자 생명으로 가닿은 것이다.

"먹기 위한 농사만을 알았는데, 직접 자연농을 하며 생태계 망 안에서의 연결과 순환을 배운 거예요. 왜 흙과 물, 생명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지 몸으로 알게 된 거죠. 농사가 생명을 연결하는 하나의 의식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윤별이씨)

이런 특별한 감각은 밭을 함께 돌본 모두에게 전해졌다.

"교실에서는 서먹한 관계도 밭에 나가 농사를 짓다 보면 자연스레 생기가 돌아요. 농사와 일상이 맞닿아 있음을 느꼈고, 그걸 학생들과 함께 나누며 공통적으로 배우게 된 거죠." (남수지씨)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것의 필요를 알리기 위해
     
앞선 설명대로 두 사람이 농업과 생태를 본격적으로 마주하게 된 건 꽤 최근의 일이다. 하지만 이 둘이 오래도록 지향해온 길은 훨씬 전부터 그것들과 맞닿아있었던 듯하다. 기독교 선교단체와 환경단체 활동을 하며 환경, 난민 문제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기도 했던 수지씨, 어릴 적부터 장애·비장애 통합교육을 그리며 특수교사의 꿈을 향해 온 별이씨였기에 농업, 생태와 같은 '소수'의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두 사람이 같은 지향을 갖고 힘을 합칠 수 있는 배경이다.

물론, 세상을 느끼는 감각이 남다른 만큼 때때로 괴리를 느끼기도 한다. 친구들 사이에서 종종 "그걸 왜 하는 거냐"는 반응을 접할 때가 그렇다. 각각 경남, 경기도가 고향인 수지씨, 별이씨 모두 대학 진학을 계기로 서울로 이주해왔는데, 고향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겪은 웃지 못 할 일화도 하나씩은 갖고 있다.

"고등학교 친구들에게 '마을 청년 축제' 이야기를 하니까 다들 엄청 놀라더라고요. '마을'이 뭐냐고, 그건 옛날 말 아니냐고(웃음). 마치 '동물의 숲(일본 게임회사 닌텐도의 인기 게임 중 하나)'에 나오는, 현실에는 없는 개념으로 느끼더라고요. 그런 데서 약간의 외로움을 느끼기도 하죠. 저는 공동체의 성원으로서 잘 생존하고 싶고 공동체 안의 연대로 그걸 보장하고 싶은데, 요즘은 그냥 개인의 노력으로만 삶을 꾸려가려고 하잖아요. 제가 추구하는 게 얼마나 소수자의 것인지 새삼 느껴지더라고요." (윤별이씨)

어쩌면 이것이 도시와 농촌, 그 사이의 심각한 불균형 속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감각의 차이인 것은 아닐까 하는 성찰도 뒤따른다.

"지역에 사는 것에 대해 여전히 '남겨졌다', '패배했다'는 인식이 있잖아요. 그런 인식이 지역 공동체나 마을에 대한 관심을 '필요 없는 것'으로 여기게 하고요. 결국 각자 사는 곳에 따라 지향하는 것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건데, 저 역시 운 좋게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알게 된 것이지, 어쩌면 영영 모르고 살았을 지도 모르는 거죠. 종종 아찔한 반응을 접할 때도 있지만, 그래서 더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이런 의미와 가치를 더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널리 잘해보고 싶어요." (남수지씨) 

함께 일 벌일 여성 농민을 기다립니다
     
 "먹기 위한 농사만을 알았는데, 직접 자연농을 하며 생태계 망 안에서의 연결과 순환을 배운 거예요. 왜 흙과 물, 생명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지 몸으로 알게 된 거죠."
"먹기 위한 농사만을 알았는데, 직접 자연농을 하며 생태계 망 안에서의 연결과 순환을 배운 거예요. 왜 흙과 물, 생명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지 몸으로 알게 된 거죠." ⓒ 월간 옥이네
 
하지만 역시 쉽지만은 않다. 농촌 생활을 해본 것도 아니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지었던 것도 아니니 농민, 농업 공동체와 연결되기가 생각보다 더 어려운 것이다. 실제로 이 활동이 농민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아직은 미지수.

만약 별도의 매장을 내게 된다면 닥쳐올 현실적인 문제, 예컨대 월세나 운영비를 감당하는 것도 아직은 걱정이 앞선다. 무엇보다 "주변에서 누구 하나 지지해주는 이 없이 서로를 가장 의지해야 하는 상황"인 것도, 일의 진행이 수월치만은 않음을 짐작케 한다.

그럼에도, '최선의 최소'는 이들에게 새로운 경험과 배움이다. 자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직접 실행해가는 뿌듯함, 남이 하지 않은 일을 해보고 싶다는 욕구, 동시에 '사람들이 하지 않는 일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지 아닐까'하는 두려움. 그런 것들이 마구 뒤섞이는 가운데에서도 두 사람은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올해 초 여성환경연대 지원사업에 신청하기도 했는데 최종적으로 선정되진 못했지만, 어떤 식으로든 이 일을 해나가고 싶어요. 내가 먹는 것이 나를 구성하는 일부가 되고, 나는 그렇게 세상과 연결돼 지구에 존재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나도 모르는 새 세상에 해를 끼치기도 하고요. 저는 과자를 정말 좋아하는데, 과자 원료 생산부터 포장까지 무수히 많은 생명에게 피해를 주기도 하는 것처럼요.

이런 세상에서 내가 먹는 것이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그 과정을 가능한 무해하게 가져갈 순 없을지 함께 고민하는 분들을 기다리고 있어요. 올해는 우선 전국의 여성 농민들을 만나 함께 일을 만들어 가는 감각을 키우고 싶어요." (윤별이씨)

자신들의 최종 목표는 '결국엔 사라지는 것'이라는 최선의 최소. 도시 안의 무수히 많은 생명이 연결과 돌봄의 감각을 살려낼 때 최선의 최소가 할 일도 끝날 것이라는, 어쩌면 멀고도 먼 소망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두드리는 자에게 문이 열리는 것처럼, 두 사람이 그리는 최선의 길을 만나 최소의 꿈이 미련 없이 잠들 날을 함께 바라본다.

"저희 이야기에 동의하는 분들이 계신다면 주저 말고 연락 부탁드려요. 저희의 일은 커질수록 좋은 거 같아요. 함께 일을 벌일 여성 농민들을 기다립니다." 
     
*월간 옥이네 편집국(043-732-8116)으로 연락 주시면 '최선의 최소'와 연결해드립니다.

월간 옥이네 통권 69호 (2023년 3월호)
글·사진 박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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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의 최소#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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